한국철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새로운 도약
‘제2의 고속철도’인 (주)SR이 출범한데 이어 지난해 12월 9일 ‘SRT’가 오전 5시10분 목포행 651열차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행에 들어갔다. 이로써 한국철도 역사 최초로 경쟁 체제가 도입됐다. 한국철도 역사는 1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인선 개통을 시작으로 발전해온 한국철도는 한국 발전을 함께 이끈 원동력이자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바꾸는 등 생활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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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뉴시스] |
1899년 9월 18일 노량진~제물포 간 33.2㎞의 경인선이 개통된 것이 한국철도의 효시다. 이후 1905년 1월에 경부선, 1906년 4월에 경의선, 1914년 1월에 호남선, 같은 해 9월에 경원선, 1936년 12월에 전라선, 그리고 1942년 4월에 중앙선을 각각 개통함으로써 철도의 주요골격이 형성되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이 된 1945년 8월에는 영업거리 6,363㎞, 역 762개소, 기관차 1,166대, 객·화차 1만 7,379량, 직원 10만 527명이었으나 국토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비운으로 남한의 철도는 영업선 2,642㎞, 역 300개소, 기관차 488대, 객·화차 9,704대, 직원 5만 5,960명으로 남게 되었으며 미 군정청의 3년간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교통부가 철도를 운영하게 된다.
한국철도 어제와 오늘
1950년 한국전쟁에서 철도는 군사수송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전쟁수행에 큰 기여를 했으나, 전쟁 후 수송장비의 70%, 시설물의 50%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53년 휴전이후 철도는 파괴된 장비와 시설의 복구에 착수하여 태백·영동지구에 산업선을 건설하고 수송력 증강에 노력했다.
1963년 9월 교통부의 외청으로 철도청이 발족하여 철도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제1차 경제 개발5개년 계획에 따라 1963년에 영동선, 1966년에는 태백선과 경북선, 1968년에는 경전선을 차례로 개통하여 석탄·비료·양곡 등 대부분의 산업물자를 원활히 수송하여 국가산업과 경제발전의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1974년 8월 경인선, 경부선 및 경원선의 수도권 전철을 개통하고, 1994년에는 분당선 및 과천선을, 1996년에는 일산선 전철을 각각 개통하여 수도권의 도시교통 난을 해소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됐다.
1968년부터 중앙선에 열차 집중 제어장치인 CTC(Centralized Traffic Control)의 설치를 시작으로 1969년부터 열차 자동정지장치인 ATS(Automatic Train Stop), 1994년부터 열차 자동제어장치인 ATC(Automatic Train Control)와 신호원격제어장치인 RC(Remote Control) 등을 설치하여 시설과 장비를 현대화함으로써 수송력을 증대하고 안전도를 향상 시켜왔다.
또 건널목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928년부터 사용해온 경보장치에 이어 1982년부터 전동차단기와 1991년부터 지상물 검지장치를, 1995년부터 장대형 전동차단기와 현수형 경보기를 설치했다. 아울러 건널목 입체화를 매년 확대 시행하는 한편, 1999년부터 원격검지장치, 영상감시장치, 도로교통신호체계와의 연동화 등 첨단시설과 장비를 설치하여 사고를 대폭 감소시켜 나가고 있다.
철도차량은 최초 개통 당시에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서 시작해 1945년에는 우리 기술로 만든 증기기관차로 ‘해방자호’를 운행했고, 1951년부터 디젤기관차, 1973년부터 전기기관차를 운행했다. 현재는 우리 기술로 제작한 철도차량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열차운행에 있어서는 경부선 개통 당시 서울 서대문~부산 초량간을 17시간에 운행했으나 1946년 5월 해방자호가 서울~부산 간을 9시간에 운행하고 디젤기관차가 도입되면서 1959년 2월 통일호가 7시간 10분, 1969년 관광호가 4시간 50분, 1985년 새마을호가 4시간 10분으로 시간을 단축해 운행하고 있다.
고속열차 시대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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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선 개통을 시작으로 발전해온 한국철도는 한국 발전을 함께 이끈 원동력이자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바꾸는 등 생활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사진_뉴시스] |
우리나라의 최초의 고속열차는 KTX다. 1992년 6월 30일 착공하여, 서울~부산 간 총 연장 약 410㎞중 1단계 공사를 완공하여, 2004년 4월 1일부터 영업운행이 시작되었다. 영업최고속도는 300㎞/h이며, 직선구간에서는 이보다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서울~부산 간에 주요 역은 광명, 천안·아산, 대전, 동대구 등이 있으며, 운행은 stop & skip 형태로 하고 있어 이용에 편리하다. 동대구에서 경주를 거쳐 부산까지의 2단계 공사는 몇 년 후 개통을 눈앞에 두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열차 설계의 기본 개념은 프랑스에서 오랜 동안 운행으로 입증된 TGV 시스템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개선했다.
KTX는 몇몇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속도와 안락함으로 개통 초기부터 한국의 교통 체계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지난해 12월 9일에는 SR 고속열차 ‘SRT’가 목포행 651열차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행에 들어감으로써 117년 한국철도 역사 최초로 경쟁 체제가 도입됐다. 지난해 8월 8일 시설물 검증 시험을 통과하고 11월 한 달간 영업 시운전까지 성공리에 마치며 철저히 출범을 준비했다.
SR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수서역을 출발역으로 경부선(수서~부산 401.2㎞, 소요시간 2시간15분)과 호남선(수서~목포 354.2㎞, 소요시간 2시간 11분)을 운행한다. 운행 횟수는 주중 경부선 편도 40회, 호남선 편도 20회 등 하루 총 120회다. 여객 수요가 많은 주말에는 총 15개 열차를 중련 편성한다. 이로써 주중에는 하루 5만 3,300석을, 주말에는 하루 6만 1,500석을 각각 공급한다.
신설 역은 수서역을 비롯해 국내 최초 지하 고속철도 역사인 경기 화성시 청계리 동탄역, 경부선 광역전철과 환승할 수 있는 경기 평택시 지제동 지제역 등 3개다. 이후 양 노선에 걸쳐 천안아산역 등 기존 KTX역 중 14개를 이용한다.
▲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며 비무장지대에 붉게 녹이 슨 채로 남겨져 있던 증기기관차의 비밀이 당시 기관사에 의해 55년 만에 밝혀졌다. 이 기관차는 선로사정이 좋지 않은 산악지대에서도 운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거리화물용 증기기관차로 해방전 북한지방에서 주로 운행되어 졌고 남한에서의 운행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사진_뉴시스]
녹슨 증기기관차의 비밀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며 비무장지대에 붉게 녹이 슨 채로 남겨져 있던 증기기관차의 비밀이 당시 기관사에 의해 55년 만에 밝혀졌다.
임병옥 한국철도공사 차량본부장은 “경기도 파주시의 ‘근대문화유산 지정 보존정비사업’ 추진을 통보 받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 증기기관차를 운전한 기관사의 증언을 통해 경의선 장단역(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 198번지)에 놓여진 증기기관차의 제원과 용도, 현 위치에 놓여진 사유 등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이 증기기관차(사진)는 ‘마터형’ 증기기관차로 최대속도 80㎞/h까지 달릴 수 있으며, 제원은 길이 23m27㎝, 폭 3m20㎝, 높이 4m70㎝이고, 최대견인력 18,450㎏(1,440마력)의 강력한 견인능력을 보유했다. 이 기관차는 선로사정이 좋지 않은 산악지대에서도 운행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거리화물용 증기기관차로 해방전 북한지방에서 주로 운행되어 졌고 남한에서의 운행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증기기관차를 운전했던 기관사인 한준기 씨는 당시 상황을 “1950년 9.28 서울수복과 함께 연합군의 군수물자를 개성역에 세워져 있던 북한소유의 이 증기기관차에 싣고 북진하다가 경의선 한포역(황해도 평산군)에 도착했다. 그 때 중공군의 개입으로 연합군이 후퇴하면서 이 증기기관차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개성역에서 25량의 화물차량을 연결해 계속 남하하다가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군의 명령으로 현 위치(경의선 장단역)에 세워두었다. 1950년 12월 31일 밤 10시10분경 연합군이 퇴각하면서 증기기관차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총기를 난사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22세였던 한씨는 남하하여 휴전 이후에도 계속 철도업무에 종사하다 정년퇴임 했다.
한 씨는 당시 기관차에 연결되어 있었던 화물차 25량이 지금은 없는 것과 증기기관차가 선로를 벗어나 있는 것과 관련해서 “정확한 사항은 할 수 없으나, 증기기관차의 현 상태를 보아 당시 이 곳(장단역)을 다시 점령한 인민군이 화물차 25량을 북측으로 가져간 것으로 보이며, 증기기관차는 사용할 수 없어 폭파시켜 탈선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고 증언했다.
▲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기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역, 바로 추전역이다. 겨울철 역사 한쪽의 눈밭을 거닐며 강원도 오지의 적막강산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역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전리품‘인 추전역 표지석. ‘추전역,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이라 씌어 있다.[사진_뉴시스]
하늘과 가장 맞닿은 간이역 ‘추전역’
여름에도 모기가 없고, 한여름을 빼고는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하는 역.
머나먼 시베리아 철도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해발 855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기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역, 바로 추전역이다.
강원도 태백시에 위치한 추전역은 1973년 11월 10일 태백선이 개통되면서 주로 화물을 취급하는 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한 때 연간 20만 톤의 무연탄을 취급하기도 했으나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역세가 급속도로 위축되었으며, 한 때 직원이 근무하기 않는 간이역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추전역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98년 12월 당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이 환상선 눈꽃순환열차를 개발, 운행하면서부터다. 산간 오지역인 영동선 승부역과 더불어 눈꽃순환열차의 주요관광코스로 설정되었기 때문. 현재까지 눈꽃열차로 다녀간 손님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
겨울철 역사 한쪽의 눈밭을 거닐며 강원도 오지의 적막강산을 감상하는 맛이 일품이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역시 돌아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전리품‘인 추전역 표지석. ‘추전역,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해발 855m’이라 씌어 있다.
‘추전역(杻田驛)’의 역명은 ‘싸리밭골’에 세운 역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골짜기 안쪽에 화전(火田)을 많이 해서 묵밭이 많고 그 묵밭에 싸리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싸리밭골인데 지금도 골짜기 안쪽에는 팔뚝만한 싸리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사진_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