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현대사 주역의 모임 현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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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설현대사 주역의 모임 현건회
  • 글/ 편집국
  • 승인 200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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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뒤에는 현대건우회가 버티고 있다
92년 정주영 대선후보 시절 직간접 선거운동 참여경험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시장 뒤에는 든든한 조직이 버티고 있다. 현대건우회(현건회)의 존재다. 현대건설 임직원 출신들의 모임이다. 올해 10년째인 이 단체는 표면상 친목모임에 불과하지만 막강한 결속력은 정평이 나있다. 말단 사원에서 출발해 현대건설 회장까지 역임한 이 시장 역시 이 모임 소속. 대한민국 건설 현대사의 주역들이 모인 현건회는 자긍심도 남다르다. 이 시장에게 있어 현건회는 무엇보다 듬직한 원군이고, 현건회에게 이 시장은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현대그룹 안팎에서는 현건회가 이 시장의 대권행과 관련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현건회 회원 대다수는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를 위해 직간접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 시장이 대선후보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이들이 뒷짐 지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시장은 다른 어떤 후보도 가지고 있지 못한 '독특한 사조직'을 갖고 있는 셈이다.


조직이 움직이는 것 같기는 한데
한나라당의 한 전직 당직자는 "이명박 쪽이 캠프에서 일할 만한 사람들을 많이 늘려가고 있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데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이명박 쪽에서 사조직 관리를 아주 철저히 잘 하고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에 명퇴한 한나라당 실국장 출신들을 중심으로 접촉이 빈번한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포섭된 것으로 알고 있고 이회창 전 총재 사람들과도 연결고리를 만들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연말에는 이 시장이 교수 등 전문가들과의 잦은 접촉을 갖자 '대선 실무팀이 구성됐다'는 말까지 무성했다. 하지만 실체는 밝혀진 건 없다. 이 같이 베일에 가려진 듯한 모습 때문에 한나라당 당 내에서는 '이 시장의 조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재선 의원은 "손학규의 경우 주변 조직을 가동하는 모습이 비교적 잘 드러나는데 이명박은 어떻게 세를 확장하고 있는 지 알쏭달쏭한 면이 많다"고 말했다. 분명히 조직적으로 움직이고는 있는데 파악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 시장 측에서는 올 상반기까지는 단체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6월 이내에 가시화 될 청계천 복원, 뚝섬 서울파크 건설 사업 등을 마무리 한 뒤에 당 조직을 다지는 일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들 대형 사업을 통해 대중적 관심을 최대한 확보한 다음, 이를 중앙정치 무대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이 시장 측에서는 '대선을 겨냥, 꾸준히 외연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외연 확대에 동원되고 있는 '밝혀지지 않는 조직'에 대해서는 전혀 내색을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건회의 존재는 주목을 끈다.
현건회의 성격에 대해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형 기업의 임직원을 지냈을 정도면 정관계와 재계에 발 닿는 범위는 상당하다"며 "이런 임직원 출신 수백명이 결성된 조직인 현건회의 인맥 파워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고 말했다.


현건회, 어떤 모임인가?
현대건우회(회장 도영회)는 현대건설 임직원 출신들의 친목 모임이다.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현건회 소속 회원은 670여명. 현대건설 CEO를 지낸 박재면, 심옥진, 심현영, 김정국씨 등 건설계를 이끌었던 쟁쟁한 인물들이 소속돼 있다. 이 모임에는 퇴임한 임직원들이 자동 가입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회비를 내야만 회원으로 인정받는다. 현건회는 지난 1월 제10차 정기총회를 가졌다. 현건회 회원 260여명과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등 30여명이 함께 자리했다.
현건회는 단순한 친목 단체 이상의 활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지난 2000년 현대건설이 부도를 겪는 등 어려움에 빠졌을 때, 현건회가 적극적인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세상에 모습이 알려진 것. 당시 현건회는 회사 임직원, 노조, 협력업체 등과 함께 국민들을 대상으로 '현대건설 살리기 서명운동'을 벌였다. 또 정부 관련 부처와 국회, 채권단 등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현대건설 유동성 지원을 위해 자신이 보유중인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 전량을 매각, 현대건설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졌을 때도 현건회는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현건회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현대건설 계좌에 입금시키는 등 모금운동에 나섰다.
또 2001년 심현영 현대엔지니어링플라스틱 사장이 우여곡절 끝에 현대건설 사장을 맡을 당시에도 현건회는 결정적인 막후 역할을 했다. 당시 심 사장은 채권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사장 자리를 계속 고사했다. 하지만 한솥밥을 먹으며 고생했던 현건회 회원들이 설득에 나섰다. 현건회 회원들은 심 사장을 초청해 골프회동을 갖고, 이어 연이틀 동안 식사자리를 마련해 설득작업을 벌여 심 사장의 현대건설 행을 성사시켰다.
현건회가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현대건설의 위기 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명박의 현상황'은 현건회 회원들을 과거처럼 또다시 결집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우리나라 건설의 산증인들이 모인 현건회는 일단 목표치가 정해지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달성하고야 마는 대단한 고집의 소유자들"이라며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배운 이 고집은 현대맨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건회는 특별한 대외 사회 활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건회가 세워놓고 있는 올 한 해 계획은 회원경조사, 골프체육대회, 정주영 기념관 방문, 정몽헌 묘소참배, 현대 계열사 산업시찰, 개성공단 시찰 등. 이 가운데 개성공단 시찰 계획과 관련 현건회 관계자는 "아직 일정이 정확히 잡혀 있지는 않지만 올 6월경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건회가 계획대로 개성공단 시찰을 실행에 옮길 경우 '서울시장의 방북'이 성사될 수도 있다. 올 6월은 남북정상회담 5주년이 되는 때다. 그 어느 때보다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과 관련 한나라당 측에서는 구경 외에 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없다. 대북 '채널'도 마땅찮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장의 방북이 이뤄질 경우 이 시장은 당내 대권경쟁자들이 갖지 못하는 능력을 과시할 수 있다.
이와 관련 현대아산 측에서는 "아직 개성공단에 대한 방문은 투자 목적에 의한 것으로만 한정이 돼 있기 때문에 관광시찰의 경우 북측이 허락을 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현건회가 일반 관광객이 아닌 현대그룹 관계 단체란 점 때문에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에 대한 앙금 아직도
이 시장은 1965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불과 5년만에 이사에 올랐고, 13년만에 사장으로 진급했다. 현대종합상사 이사, 인천제철,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등을 거쳐 88년에 현대건설 회장에 올랐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이 시장은 92년 민자당에 입당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그 해 정주영 회장은 국민당을 창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 '아버지-아들' 지간에 버금갔던 정주영-이명박 관계는 정치 진출을 계기로 완전히 틀어졌다. 현재 현건회 회원 상당수는 당시 현대건설에 몸담고 있었다. 당시엔 이 시장이 선거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현대건설 내에서는 '정주영파-이명박파'가 나뉠 정도였다고 한다. 한 현건회 회원은 "당시 이 시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쪽도 있었지만, 배신자로 취급하는 분위기도 많았다"며 "자신을 키워준 은혜를 배신하고 자기 살 길 찾아 떠나버렸다는 점 때문에 아직도 이 시장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3년에 발족한 현대건설협력업체협의회 모임도 '현건회' 이름으로 불린다. 지난해 12월 12차 정기총회를 열었고, 135개 회원사가 소속돼 있는 큰 조직이다. 이모임은 현대건설 자재 협력업체들간의 협력 증진을 통한 원가절감, 품질 향상 등을 도모하기 위해 결성됐다. 현대건설과는 한 집안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연결고리가 끈끈하다. 2000년 당시 현대건우회와 함께 현대건설 구제 운동에 적극 나서는 등 한집안 식구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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