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저소득층 육아비 지원, 결식아동 급식비 인상, 교 및 대학생 수업료 지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빈곤 물림 방지 대책' 발표했다. 가난의 대물림이 더이상 국가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위기의식과 가난 대물림의 핵심적인 고리가 교육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고질화된 학벌주의는 부의 대물림, 사회적 신분의 세습을 낳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학벌이 돈을 만들고 돈은 다시 학벌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 잘 한다" 이야기가 옛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빈곤에 빠진 아이들이 헤어 나오기 너무나 힘든 깊디 깊은 '함정'이다.
빈곤 세습의 원인은 사교육비 지출의 차이
지난해 8월 서울대학교 김대일 교수가 쓴 '빈곤의 정의와 규모'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빈곤한 이들이 끔찍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확률이 고작 6% 에 지나지 않는 '빈곤의 함정'에 깊이 빠진 나라다. 그는 이 글을 통해 "한국의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은 빈곤의 세습성 때문인데, 빈곤의 세습은 고소득층과 빈곤층의 사교육비 지출 차이가 7배 정도 혹은 그 이상 나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5년 2월, 우리 아이들의 겨울방학 풍경 속에서 김 교수가 주장한 '빈곤의 늪'의 원인이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교육비 지출 차이로 지금 대한민국은, '빈곤의 늪'에서 익사 직전이다.
최근 5년간 사법시험을 패스한 사법연수원생의 출신 지역과 학교를 분석해보니 서울이 32.8%를 차지했고, 이들중 강남의 8학군 고교 출신이 32%나 된다는 통계가 있었다. 의사, 판·검사,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의 자녀가 서울대에 가는 비율이 생산직 종사자의 27배, 농어민의 30배라는 조사도 있다. 사시합격자 중 강남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 상류층 자녀들이 서울대에 많이 간다는 것은 부와 학벌의 관계를 입증해주고 있다. 투자와 점수는 비례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부와 학벌의 대물림이 더 이상 낯선 현상이 아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어렸을 적부터 최고급으로 가르치면 이들이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가 사회 요직을 다 차지한다. 서민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올라가기 더 힘들어진다. 교육이 미래를 가꾸는 가장 기초적인 투자란 점은 다 아는 일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이 안 먹고 안 쓰며 가르쳤다. 그러나 요즘은 그 정도 투자로는 제대로 자녀를 교육시킬 수 없다. 즉, 가난한 아이들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출발선에 서기도 어려운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하면 아이들조차 옛말로 치부해버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발선이 다른 그들, 개천에 용 없다
방학을 맞아 2박3일 동안 떠나는 캠프 비용 2만5천원을 걷기 시작한 것이 2주 전이었지만, 아직까지 2만5천원을 못 낸 아이가 25% 정도 된다. 이곳 아이들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다. 부모에게 5만원의 부담을 지우는 게 싫었는지 공부방 귀퉁이에서 여동생과 마주 앉은 성희는 동생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캠프 같은 거 우리는 안 간다고 하자. 애들이 캠프 얘기 하면 모르는 체해야 돼" 현수가 간 영어 캠프는 3주 코스다. 미국 보스턴의 명문 학원에서 3주 동안 고급 영어를 기본으로 문법, 회화, 프리젠테이션 연습 등을 체계적으로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5시 이후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하버드의 도시 보스턴에서 프레피(미국 명문 대학에 입학할, 미 동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프레피 문화를 익힐 수 있다는 것도 그 학원의 장점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게 3주 동안 현수가 또래 친구들과 '말도 타고, 공도 때리고, 물장구 치는데' 드는 비용은 숙식, 교육 및 항공료를 모두 포함해 총 400만원 선. 그러니까, 겨울방학 동안 11살 현수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대략 보스턴 3주 코스 550만원에 동남아 3주 코스 400만원을 합해 950만원 정도인 것이다. 여행 준비 비용을 합하면, 1000만원도 쉬이 넘어간다.
2만 5천원 짜리 캠프에 무너지며 귀퉁이로 숨어버리는 사람들과 교육 일정도 마음대로 주무르며, 외국어 공부, 사교 매너 교육, 스포츠 활동에 열을 올리는 '사교육비 1000만원'대의 사람들. "제가 어렸을 때, 공부를 많이 하질 못했어요. 부모님이 많이 못 배운 분들이셨고, 워낙 시골 분들이라 제가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남들 다 다니는 주산학원 한 번 다니질 못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밥을 한 끼 굶는 한이 있어도 우리 민선이 산수 교실은 보내려고 합니다. 저처럼은 안 만들 거예요." 5만원짜리 산수 교습소는 성희를 미래로 이끌어 주는 희망의 끈이었다. 설령 밥을 굶는 상황이 와도 절대 놓고 싶지 않은 마지막 남은 희망의 끈. 못 살고 어려운 것도 서러운데 자식에게까지 가난을 물려줘야 한다면 부모에게 그처럼 큰 고통은 없을 것이다.
◆학비 대준다고 '빈곤 대물림' 끊기나
가정이나 교육기관 등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그물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시스템은 그야말로 미미하다. 빈곤지역의 공부방이나 아동센터는 모두 300곳이 안 된다. 이같은 민간 비영리 지역아동센터(공부방)는 빈곤아동들의 방과 후 생활을 책임지는 곳이다. 부모가 일을 끝내고 데려갈 때까지 저녁밥을 챙겨주고 숙제도 함께 해준다. 여기에 더해 상담과 문화 프로그램, 가정방문, 지역연계 활동까지 벌인다. 이 때문에 이들 센터는 빈곤지역에서는 '어두운 밤하늘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다보니 민간 기부자와 실무자·자원봉사자들의 희생이 없다면 운영이 불가능할 지경에 처해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 가정해체나 방임아동이 생기는 것을 미리 예방하는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이 터지고 난 뒤 이를 기계적으로 관리하는 사후대책에 머무르는 정책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인 셈이다.
세계화에 따른 경쟁격화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빈부격차의 확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고민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극빈층의 상황은 더 심각해 '代물림 하는 가난'은 바닥에 떨어진 이들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진단은 없고 처방만 있다. 그정부가 역점을 두고 시행하는 우선 사업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나 지역간 학업성취도 격차 등 구체적인 학력 실태 조사 없이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숫자, 가구주 교육수준, 지방세 납부액 등을 기준으로 대상지역을 선정했다는 한계가 있다. '못 사는 동네 아이들은 공부도 못할 것'이라는 식의 추정만으로 사업이 구상됐던 셈이다. 빈곤 대물림 방지 대책 역시 '비빈곤 아동은 공부를 못하는 아동 비율이 30%인 반면 빈곤아동은 67%로 2배 이상 높다'는 식의 다소 모호한 근거만 제시됐다.
교육격차 실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소득간, 지역간 교육격차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교육당국의 소극적 자세와 '평가는 곧 서열화'로 이어진다는 일부 교원단체의 반발 때문이다.
빈곤의 함정에 깊이 빠진 나라
얼마 전 백발의 사회 원로들이 종아리를 걷고 스스로 회초리를 때렸다. 교육의 위기가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자성의 몸짓이었다. 우리 모두 종아리를 걷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각 부문에서 양극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빈부 격차는 물론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지방 중소도시와 대도시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여러 부문의 양극화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방학이 되면 교육 환경의 차이는 더욱 심화된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아이들은 급식표를 들고 저소득층 무료 급식을 광고하는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거나 웬만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외면하는 방학 중 교내 수업에 쑥스럽게 끌려가 앉아 있어야만 한다.
이는 교육의 '질'적 측면은 도외시한 채,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가 공급하지 않느냐'는 식의 오만하기 그지없는 일방적인 행정 편의주의에서 비롯된다. 교육 복지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지적되는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복지의 폐해'가 현재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의 교육 복지는 이와 같다. 한국교육개발원 이혜영 연구원이 '도시 저소득 지역의 교육소외 실태와 분석조사'라는 연구에서 "고소득 지역의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 속에서 자라는 저소득 지역의 아이들은 (바람직한 역할 모델들의 부재 등으로 인해) 장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 성취 동기의 부재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듯이, 방학 중 사교육비 1000만원인 아이들과 5만원 정도인 아이들 그리고 0원인 아이들은 성장 환경 속의 문화적 자본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업료, 급식비, 육아비 지원 등 밥값과 학비 중심으로 돈을 나눠주는 방식의 지원과 소득간 학력격차에 대한 명확한 실태 파악도 없이 백화점식 대책만 내놓았던 기존의 저소득층 교육지원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빈곤대물림 차단을 위한 '희망가'를 찾자
빈곤문제는 개인 차원에선 스스로의 책임이 강하다. 그러나 그것이 대를 이어간다면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문제로 넘어간다. 출발선에서 기회는 가급적 골고루 줄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장기적으로 빈곤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교육제도 개선에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현행 제도는 부자가 사교육을 통해 좋은 학교에 가고 다시 고소득층이 되게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 성적만으로 대학입학을 허가해 사교육을 받은 특정지역에서 많은 입학생이 나오는 교육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지역이나 학교별 격차를 두지 않고 각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에게 동등하게 입학기회를 주는 지역할당제와 같은 방법을 확대 실시해 대학입학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지방 고교에서 사교육을 받지 못해 도시학생들보다 성적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성적 외에 리더십 등도 입학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수도권이나 일부지역의 높은 부동산 가격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과 도시의 양극화 현상도 해결할 수 있다. 하버드대 같은 유수 대학은 이런 방법으로 미국 각 지역 학생들에게 평등하고 동등하게 입학기회를 주고 있다. 이렇게 정부정책과 제
도가 개선되고 노동운동의 방향이 바뀔 때 우리는 빈부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리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교육인적자원부는 '도시 저소득지역 교육복지종합대책을 발표해 실질적 교육평등을 실현하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50여 개의 시민단체들도 빈곤의 대물림을 끊자는 취지에서 '위 스타트(we start)'운동을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러한 운동들은 그동안 존재해 왔던 방과후 아이들 무료 교육, 무료 급식, 저소득층 소질 개발 교육 등을 중심으로 하고있어 그 형식에 있어서 기존의 교육 복지와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기존의 저소득층 인적 자본 형성을 통한 경제적 경쟁력 확보라는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폭넓은 '사회적 포용'의 단계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것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본다. 지역사회의 촘촘한 네트워크를 통해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게 이끌어 주고, 교육 환경의 평등, 적극적인 복지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전 사회로 퍼지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빈곤 세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연구에서 교육비 지출을 통해 빈곤이 세습된다고 보았는데 공교육비는 계층에 따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교육비의 차이가 빈부의 대물림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의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도 친구들도 저소득층 무료 급식자가 누구인지 모른 채 동등한 입장에서 교육을 받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지역 사회에서 저소득층을 제대로 파악하고 국가에서 미리 적극적인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그 누구 앞에서도 가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정'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힘 때문이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빈곤의 함정에서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