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중 9명이 우리나라 부패수준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으며, 10명중 6명은 참여정부 출범 뒤에도 부패수준에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과거 분식회계나 불법 정치자금 연루 경제인과 정치인에 대한 사면, 면죄여부와 재벌2세 경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정부 공공분야, 정치권, 경제계, 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추진중인 '반부패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계기로 전문여론조사 기관인 TNS코리아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우리나라 부패수준 61.8% '심각한 편'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 부패수준을 묻는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가30.1%, '심각한 편이다'는 61.8%로 각각 나타났다. 참여정부 출범 뒤 부패문제 개선여부에 대해서는 '차이가 없다'는 응답이 61.6%를 차지한 가운데 '개선됐다'(21.2%)는 응답이 '악화됐다'(16.3%)는 응답보다 다소 높았다. 부패문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이와 관련된 경제,정치인들에 대한 처리해법과 관련, 사면,면죄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제인들에 대한 사면,면죄가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과거분식회계, 불법정치자금 연루 기업인에 대한 처리방법을 묻는 질문에 '위법사항 처벌, 사면불가' 입장은 14.9%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41.2%가 '위법사항 처벌, 사면불가' 태도를 보였다.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면죄는 '기업의 개선노력 뒤 평가에 따라 처벌면제'에 응답한 사람이 3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위법사항 처벌 뒤 사면'(35.3%), '새출발 차원에서 곧바로 모든 잘못 면죄'(9.9%) 순이었다. 치인에 대해서는 '위법사항 처벌 뒤 사면'(35.5%), '정치인 개선노력 뒤 평가에 따라 처벌면제'(19.4%), '새출발 차원서 곧바로 모든 잘못 면죄'(3.0%) 순으로 조사됐다. 또 재벌2세 경영에 대해서도 '법적인 문제가 없고 전문경영인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56.0%), '기업 내부 판단에 맡겨야'(15.8%)로 나타나 과거의 부정적인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태도를 보였다.
TNS는 이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최근 몇 년간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의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전화조사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다.
◆경제분야 부패 오히려 악화
이번 여론조사에서는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응답자들은 경제분야의 부패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기업인 처벌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비리 기업인 처벌에 대한 관대한 입장은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라는 여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조사에서 여론은 경제분야의 부패는 여전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반드시 처벌하고 사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14.9%에 불과했다. 이는 불법자금을 수수한 정치인에 대해 41.2%가 '처벌과 사면불가'를 고집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결과는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불황 탈출이 최대의 희망사항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더라도 국민들의 정서는 분배에서 성장으로 흐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TNS)이 지난 2003년 2월 실시한 조사에서 '경제정책의 방향을 성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응답은 32.6%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8월과 12월 조사에서는 각각 63.0%와 62.2%로 급증했다.
성장을 통한 불황 탈출을 위해서는 비리 기업인에 대해서도 처벌보다는 자발적인 노력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분야 부패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들은 경제 의욕을 꺾는 '기업인에 대한 처벌 강화'(28.0%)보다는 '기업투명성 강화'(30.3%)를 선호했다. 연령별로는 20대(41.8%)와 40대(44.8%)가 처벌면제를 선호했다.
여론은 '2세 경영'에 대해서도 대부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법적인 문제가 없고, 전문경영인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응답이 56.0%를 차지했고, '기업 내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도 15.8%에 달했다. '반기업 정서를 감안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14.0%)거나 가족 승계는 무조건 바람직하지 않다(12.0%)는 응답은 소수였다.
TNS는 "이는 과거 2세 경영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여론과 상당히 다른 것"이라며 "이미 대기업 2세들의 경영이 현실화하고 있는데다 전문경영인체제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더욱이 이처럼 경제인들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경제분야 자체에 대한 인식과 비교할 때 주목된다. 실제 참여정부 출범 이후 경제분야의 부패 문제는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식이다.
개선된 분야를 묻는 질문에서 경제분야를 꼽은 응답자는 11.9%에 불과했다. 시민사회(27.1%) 공공분야(24.9%) 정치분야(16.5%)에 이어 꼴찌를 차지했다. 반면 '악화됐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묻자 정치권에 이어 경제분야(22.6%)를 꼽았고, 특히 20대(28.2%)와 블루칼라(27.9%) 계층에서 그 비율이 높았다.
기업 인수과정에서 뇌물제공과 편법 상속 등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아자동차 노조 채용비리 사건이 불거지면서 결정적인 영향이 미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기아차 사건은 도덕성이 생명인 노동조합까지 비리에 가세했음을 보여줌으로써 경제분야에 대한 불신을 키운 것으로 풀이됐다.
◆정치분야 가장 악화
또 참여정부의 부패척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우리사회의 부패 문제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부패문제가 악화되었다는 의견도 상당수에 달했다. 또 부패문제가 가장 개선된 분야로 시민사회가, 부패문제가 가장 악화된 분야로는 정치분야가 꼽혔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부패문제의 개선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과반수 이상이 61.6%가 '차이가 없다'고 답해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부패도는 크게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개선되었다는 응답이 21.2%로 악화되었다(16.3%)는 응답보다는 다소 높게 나타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부패 문제가 가장 많이 개선된 분야를 묻는 질문에는 시민사회가 2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공공분야 역시 24.9%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으며 정치분야(16.5%), 경제분야(11.9%)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부패문제가 개선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중에서는 정치분야가 개선되었다는 응답이 39.3%로 가장 높게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패 문제가 가장 악화된 분야로는 정치분야(41.4%)가 꼽혔다. 다음으로 경제분야(22.6%), 시민사회(10.6%), 공공분야(8.6%) 등의 순이었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부패개선 노력에 대해 국민들의 평가가 냉담한 이유는 부패 척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일반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 충분히 파급되지 못했고, 전국민적인 실천운동으로도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패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 관행이 정착되지 못한 점과 부패 개선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미흡했던 점도 이 같은 국민들의 평가에 일조 했다고 TNS는 분석했다.
정치,공공분야 처벌강화를
국민들은 부패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처벌 강화'를 꼽았다. 특히 정치 분야와 공공 분야에서 이같은 처벌강화 답변이 많았고 지역․연령 등에 관계없이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반면 경제 분야에서는 처벌보다 기업 투명성 강화가 더 시급한 현안으로 지적돼 경제와 정치,공공 분야간 인식 차이를 보였다.
분야별로 정치 부패 해결을 위해 시급한 현안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35.3%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정치인 처벌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답했다. 다음으로는 국회의원 윤리의식 제고 및 모니터링 강화(27.7%), 선거공영제 등 돈 안드는 정치풍토 조성(20.0%), 정치자금 모금,운영의 투명성 강화(15.7%)가 뒤를 이었다.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서울 지역(40.2%)과 20대(40.4%)에서 특히 높게 나타났으며 전 지역, 전 연령, 전 직업에서 고르게 30% 이상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경제 부패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는 기업 소유․지배구조 및 회계투명성 개선 등 기업 투명성 강화(30.3%)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뒤를 이어 근소한 차이로 불법 정치자금 제공 기업인에 대한 처벌 강화(28.0%)가 2위를 차지했고, 하도급 거래관행 개선, 윤리경영 조직 운영 등 풍토 정착은 22.0%, 정부의 경제관련 규제 완화는 15.9%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기업 투명성 강화는 20대(43.6%)와 30대(35.5%), 대학재학 이상(38.9%), 화이트칼라(45.5%)에서 특히 높았고, 처벌 강화는 50대 이상(35.4%), 중졸 이하(41.5%), 주부(31.5%)와 150만원 이하 소득층(38.5%)에서 높게 나타났다. 공공 분야는 부패관련 공직자 처벌 강화(37.0%), 공직자 윤리의식 제고(26.2%), 공직 내부 부패감시․고발 및 통제 강화(19.9%), 각종 행정규제 완화(14.7%)순이었다.
TNS는 정치권에 대한 처벌강화가 가장 주요한 부패문제 해법으로 나온 것에 대해 "최근 정치자금, 선거법 위반 등과 관련된 정치인들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과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반부패 사회협약 필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10명중 9명 이상이 아직도 우리사회의 부패 수준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리사 회의 가장 부패한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치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우리국민 10명중 8명 정도가 '반부패투명사회협약'이 필요하고 이를 시행할 경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사회의 부패수준을 묻는 질문에서 91.7%(매우심각 30.1%, 심각 61.8%)가 심각한 편이라고 답해 부패체감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부패수준이 심각하지 않다는 답변은 7.5%(심각하지 않음 7.4%, 전혀 심각하지 않음 0.1%)에 불과했다. 가장 부패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70.7%가 국회, 지방의회, 정당 등 정치분야라고 답해 여전히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다음으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분야(14.1%) , 기업 및 경제단체 등 경제분야(10.7%), 시민단체, 민간 기구 등 시민사회(3.6%)의 순이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반부패투명사회협약'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84.8%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협약의 효과에 대해서도 71.4%가 효과가 있을 것(매우 효과 클 것 4.9%, 다소효과가 있을 것 66.5%)이라고 답해 부패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약속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부패문제를 해결할 경우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량인 47.1%가 정부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도 상승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경제 전반의 경쟁력 강화 되고 경제회복(28.5%), 우리나라 대외신인도 상승(12.4%), 선진정치를 통해 민주주의 실현(9.3%)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패신고 포상금 20억까지 준다
부패방지위원회가 보고한 부패방지 중점 추진 대책은 크게 ▶부패요인 사전 차단 ▶부패 신고 및 처벌 강화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각 분야의 부패요인을 미리 발견해 차단하고, 부패 적발시에는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입체작전'을 펴겠다는 의도다. 정성진 부방위 위원장은 "부패방지 성과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은 각 기관들이 본질적인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고, 부패에 대한 엄정한 처벌관행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부방위가 강도 높은 부패근절 대책을 내놓은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부패 요인의 사전 발굴과 차단=부방위가 가장 역점을 둔 대책은 '부패영향평가제'의 도입이다. 이 제도의 골자는 정부 각 부처들이 법을 제.개정할 때 반드시 법조문의 부패유발 가능성을 평가해 개선방안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종 공사 발주나 계약관련 법령의 경우 공무원에게 부여된 재량권이 적정한 것인지, 관련 정보에 대한 민간인의 접근이 쉬운지 등을 법령 제.개정 담당 부처가 평가보고서를 작성, 부방위에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부방위는 보고서를 평가한 뒤 개선방안 등을 해당부처에 통보할 방침이다.
부패영향평가제는 법령뿐 아니라 각종 훈령, 예규, 고시 등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부방위 관계자는 "부패영향평가제 도입을 담은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2월 임시국회를 통과하는 대로 시행규칙 제정 등 후속작업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방위는 또 국민이 높은 청렴도를 요구하나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교육,인사,법조 분야 등을 사각지대로 지목하고 앞으로 집중적인 부패척결작업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시민사회, 경제계, 정계, 공직사회가 참여하는 '반부패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통해 온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부방위가 추진 중인 부패근절을 위한 중요 방안 중 하나다.
◆부패 신고 활성화와 처벌 강화=그동안 부패 신고자에 대한 보호나 보상이 미약한 탓에 신고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이 부방위의 판단이다. 부방위는 현재 신고자가 신분상 불이익을 당한 경우에만 신분보장조치를 요구할 수 있던 것을 앞으론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로 확대키로 했다.
또 현행 최대 2억 원까지 지급되는 신고 보상금을 최대 20억 원까지 늘리기로 했다. 신고자에 대해 보복을 가한 기관장의 처벌수위도 종전 징계요구나 과태료 처분에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로 강화키로 했다. 부방위는 또 부패가 빈발함에도 제도개선에 소극적인 기관에 대해선 조직과 인력을 감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패로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정부에서 발주하는 사업 등에 불이익을 주는 '부패전력자 실격제'의 도입도 추진 중이다.
◆ 문제점은 없나=전문가들은 "부패영향평가제가 도입될 경우 부패요인 제거라는 명목으로 공무원의 재량권 등을 지나치게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오히려 융통성 없는 행정으로 인해 민원인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실을 도외시한 행정이 자칫 국민생활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방대한 분야에 걸친 부패영향평가의 적정성 여부를 부방위가 제대로 걸러낼 수 있느냐도 제도 성패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