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당사(政黨史)가 끊임없는 이합집산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당정치가 가진 근본적 속성인 ‘권력추구’에서 그 연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유심히 바라봐야 하는 대목은 “권력만 추구했던 정당은 일찌감치 수명을 다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비난과 조롱 한 가운데서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6.2지방선거 이후 정계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각종 ‘대통합’과 ‘대연합’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되며, 대통합 실현 여부뿐만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는 범야권통합
6.2지방선거 이후 여당의 계파갈등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한 범야권 대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회민주주의연대가 ‘시민회의’를 구성하고, 이에 민주당을 제외한 야4당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진보개혁 성향의 새로운 통합정당을 발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이 현실화 될 경우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구성된 양강 구도가 새롭게 개편될 수도 있어서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과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11월에 진보대통합 추진대회를 개최하고, 늦어도 내년까지 진보대통합 정당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온 바 있지만, 이를 주도하고 있는 시민회의 측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황이며 내부토론을 통해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등 야4당 의원들 역시 “개인자격으로 참석하고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히며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 민주당 내부에서도 야권통합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바 있지만, 이번 범야권 통합 논의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야 5당이 부분적인 연합전선을 구축해 성과 를 낸 바 있지만 그 지분의 대부분을 민주당이 챙겨간 까닭이다.
이렇듯 야4당은 기대 이상의 정당지지율을 거뒀음에도 이에 못 미치는 의석을 차지했던 지난 6.2지방선거 결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상대적으로 미약한 정치적 위상으로는 대등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연대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주도하는 협상이 아닌, 끌려가는 협상이 되어 버렸다는 게 그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2년 앞으로 다가온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실질적인 화력을 내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연대보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 물리적인 결합에 그쳤던 정치연대나 통합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진보개혁세력의 규모를 확장해 외부로 드러나는 힘을 키우는 게 시급하지만, 이러한 단순 통합이 발생시킬 수 있는 갈등과 반목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시민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대통합 논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넓고 다양한 대중조직의 참여가 더욱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발휘될 것이기도 하고, 통합정당 발족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상황에서 객관적이고 효율적인 조정자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대통합에 이르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범야권통합에 대한 내용이나 필요성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그 과정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실현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통합의 주체이자 대상인 야4당은 평당원체제를 기반으로 하는데, 통합을 위한 당해체 작업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것. 이에 무려 4개의 정당이 통합해야 하므로 실무적인 절차나 기간이 만만치 않는 것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넓은 의미의 진보개혁세력으로는 모두가 한 울타리로 묶을 수 있겠지만, 각 정당이 만들어지게 된 데에 따른 정치적 배경이나, 주요 추진정책들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거대한 이슈 앞에서 어떻게든 통합을 성사시킨다 하더라도, 결국 내부적인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지난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이 각 진영의 노선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8년에 이르러 결국 분당한 사례는 통합논의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더욱 숙고해야 할 본보기로 남아 있다.
이에 맞서는 보수통합론
이렇듯 야권과 진보진영의 통합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보수성향의 정당들 또한 이와 유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나라당 중심의 보수대연합론은 이미 가시권에 진입한 상태다. 이는 6.2지방선거 참패를 겪으며, 보수세력의 결집 없이는 보수정권의 재창출은 불투명하다는 위기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단초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가 제공했다.
이 대표는 현재의 상황을 두고 자신이 노무현 前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2002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보수세력이 이해타산을 따지며 시간과 역량을 허비하는 동안 당시의 패배를 또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중도세력과 보수세력이 결집해, 차기 보수정권 창출을 준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주장이 기득권을 쥐고 있는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당내 계파갈등 양상이 아직 심각한 수준에 머무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보수통합의 주체로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이는 섣부른 보수대연합보다는 당내 분위기 수습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거판은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의 욕망이 정점을 이루는 공간이다. 선거판과 전쟁터가 종종 비교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총선과 대선은 그 규모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세계대전급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총선과 대선까지는 아직 2년이나 남아 있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는 벌써부터 전쟁준비로 분주해 보인다. 전쟁이란 행위의 특성상 얼마간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전혀 발생하지 않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