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으로 뛰어든 다람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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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으로 뛰어든 다람쥐의 선택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0.08.16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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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쇄신의 날카로움으로 국민의 손등을 물어주기를

한나라당의 모양새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7월14일로 전당대회는 끝났고 그 결과 안상수 호가 닻을 올렸지만, 여전히 전대는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안 대표는 연일 화합과 안정과 쇄신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당은 여전히 메아리 가득한 무주공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권에 도전했다가 차점자로 고배를 마신 홍준표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결과에 승복한다”면서도, 연일 ‘反안상수체제’ 발언을 쏟아내며 비주류 결집을 주도하는 중이다.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의 갈등도 여전하다. 이번에는 안 대표가 제시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불씨가 됐다. 친박계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치밀한 사전포석”이라며 다시 격앙된 상태다.

 

설상가상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파문까지 더해졌다. 이에 당은 “출당을 포함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강 의원의 발언이 상습적으로 반복되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총리실 산하 공직자윤리지원관실에 의한 불법사찰이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 등 당내 중진의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대한민국이 성공한다”며 청와대 중심의 화합을 외쳤던 안 대표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진 상황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금이 간 거울처럼 급속히 분열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전대 기간 내내 화합과 쇄신에 대한 방안이 난무했지만, 반목과 갈등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당 대의원들은 안상수 대표의 ‘안정론’을 선택했지만, 지금 한나라당은 안정이 아니라 진정을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무주공산에 무성했던 메아리

이러한 혼란양상은 전당대회 과정에서 충분히 예상한 바였다.

거물급 주자들이 대거 빠진 가운데 출발부터 김이 빠져버렸지만, 오히려 당내 분위기는 이상과열 현상을 보였다. 이 결과 전대 초반에 무려 13명의 후보들이 난립했다. 이들은 하나 같이 화합과 쇄신을 대안으로 내놨다. 이를 위해서는 희생과 배려가 선행되어야 했지만, 그 많은 후보들 중에 먼저 손해를 보겠다고 나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유력 후보군이었던 안상수, 홍준표 두 의원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이웃집 개싸움 논란’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 낮은 언쟁이 줄을 이었다.

 

더구나 이 같은 광경이 공당이자, 여당이며, 국회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초거대 정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속출했다는 점은 참담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문제를 지적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입바른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눈에 띄는 정책과 대안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2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대선의 실질적 영향력이 걸린 전대였던 만큼,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했다. “계파 간의 갈등이 악화될 수 있다”며 극구 출마를 사양했던 박근혜 前 대표조차 “대표직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여권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란 씁쓸한 분석이 잇따랐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파구도를 극복하고 화합과 쇄신을 이루자”는 후보들의 주장은 무슨 조사나 접속사처럼 빠짐없이 끼어있었다. 모두가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하나, “그 문제의 출발점은 내가 아닌 그에게 있다”고 소리쳤다. 그들이 찔러대는 손가락 탓에 허공이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다.

후보는 많았으나 인물을 찾아내는 어려웠고, 말은 넘쳐났으나 정책을 가려내긴 힘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후반기 국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화합과 쇄신으로 민심을 불러 모으기 위한 11차 전당대회”는 결국 수준 이하의 권력배분행사로 전락한 셈이 됐다.

연일 신문과 방송이 전대 과정을 보도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이는 긴장감이 부족했던 판세 때문이 아니었다. 실체 없이 떠도는 말만 두고서는 반박도, 비판도, 질타도 모두 부질없는 허사였기 때문이다.

벽이 높을수록 그림자는 크고 짙다

사실 한나라당이 안고 있는 문제는 단순명료하다.

지난 대선을 전후로, 한나라당은 그들 스스로 높고 단단한 벽을 쌓기에 바빴다. 각 계파는 벽돌을 만들어내는 공장이었고, 간간이 불거져 나온 이심(李心)과 박심(朴心)의 충돌은 이러한 벽돌들을 단단히 접착시키는 시멘트 역할을 했다.

 

벽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는 크고 짙어지는 법이다. 민심의 해는 중천에 떴지만, 한나라당 내부는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지난 6.2지방선거의 패배는 외부에서 휘몰아친 바람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올린 벽 때문이었다. 일종의 자해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파갈등의 벽을 허물어 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갈등을 구축한 벽 자체가 견고해서라기보다는 영향력 유지를 통한 차기 권력 기반 마련 등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이 걸려 있다.

물론 권력과 이익 추구가 정당과 그 구성원이 가지는 기본적인 속성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추구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상대방 깎아내리기에 거침이 없는 한나라당을 보면 그 방향과 진정성을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림자에는 질량이 없는 것이므로 이로 인해 당을 둘러싼 울타리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압박이 당장 느껴지지 않는다고 안심하는 중이라면 큰 오산이다. 변화와 쇄신을 바라는 국민들의 분노와 요구가 땡볕처럼 내리쬐는 동안 그림자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쌓아올린 담이 얼마나 견고하고 높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경악하며 서서히 말라가게 될 것이다. 또한 지난 6.2지방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관대함과 인내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가를 똑똑히 체험하게 될 것이다.

자만심과 경쟁심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경쟁심 가운데서는 훌륭한 행동이 있을 수 없고, 자만심에서는 고상한 행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통해 현재 한나라당이 보이고 있는 행태의 의미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무능하고, 친북적이며, 독단적인 좌파정권”으로부터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며 환호했다. 하지만 그 승리가 주는 시대적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은 부족했고,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나태하고, 무책임하며, 우유부단한 세력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또한 지나친 감격과 성취감은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거 없는 자만과 오만을 유발시켰으며, 또한 대선 이후 비생산적이고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계파갈등에 집중할 수 있었던 원천이 되었다. 그 몰염치한 자만심에서 기품 있는 대안이나 고상한 정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게다가 거대 여당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몸집을 급격히 불린 것도 문제였다. 진정성이 결여된 이익 중심의 이합집산은 동지가 아닌 경쟁자만 불러 모은 꼴이 됐다. 이는 당내 계파성격이 짙은 수많은 소모임을 잉태케 했으며, 이미 지난 대선 준비과정에서 본격화된 계파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이러한 경쟁심이 훌륭한 정책과 대안을 만들어낼 수 없었음은 이미 우리가 지켜본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마땅한 해결책도 없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남북관계는 10년 전 긴장상황으로 복귀하고 말았다. 당정 갈등에 여염이 없던 한나라당은 여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채 원론적인 대북 비난만 쏟아냈을 뿐이다.

또한 유럽발 경제한파가 몰아치던 와중에 대한민국을 지탱했던 복지정책의 대부분은 지난 10년에 동안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이룩해 놓은 것들이었다. 청와대가 서민경제의 회복을 부르짖고, 청년실업 문제의 범정부적 접근을 천명할 때도 성의 있는 법안 하나를 입안하지 못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보수로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로의 복귀”에 일조하고 있다는 세간의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벽을 넘기면 통로가 된다

새롭게 등장한 안상수 당 대표체제가 변화가 아닌 안정을 표방한다고 해서 앞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한 그간의 당내 분위기나 수준을 고려해 볼 때, ‘변화에 대한 섣부른 시도’는 또 다른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끝없이 대립으로 치닫는 현재의 상황을 시급히 안정시키는 것이 변화를 도모하는 의외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점에서 7월14일 이후 안상수 대표의 행보에서는 사뭇 처절함이 배어나왔다. 안으로는 당 대표 선출 결과에 대한 불복의 혐의가 짙은 “안상수 때리기”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고, 밖으로는 논란을 거듭 중인 불법사찰이며, 현직 의원에 의한 성희롱 등 각종 악재들을 수습해야 했다.

7.28재보선 지원으로 한창 분주하던 7월22일, 안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석상에서 “국민께 염치가 없지만 너무 회초리만 들지 마시고 당과 정부가 힘을 합해 일할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또한 “이번 재보선도 굉장히 어려울 것이며, 민심을 얻는 일 쉽지 않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한나라당이 지속해온 염치없는 행태를 망각한 채 “뻔뻔한 지지호소”를 쏟아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상이 찌푸려질 만한 발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추구하는 안정과 쇄신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신뢰마저 일어나는 듯 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신이 선언한 안정과 쇄신에 대해 늘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친이계의 핵심인 그가 제시했던 ‘안정’이 당정 간의 밀실교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당내 압박은 물론 범국민적 지탄을 감당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민심행보를 빙자해 거리를 배회하는 일 또한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현재 상황에서 안 대표가 있어야 곳은 거리가 아니라, 회의실이어야 한다. 또한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은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6.2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에서 쏟아져 나왔던 반성과 사과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때 아닌 ‘사과풍년’을 경험했다.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뼈저린 반성과 자숙의 흔적이 서려 있는 정책이요, 대안일 뿐이다.

안상수 대표는 모든 문제의 근원인 계파갈등의 벽을 허물겠다고 연일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그 일을 감당하기엔 벽이 너무 견고하고 높다. 우선 각 계파의 구성원들과 조건 없이 손을 맞잡고 밖을 향해 벽을 밀어내야 한다. 그 힘의 진정성이 느껴지면 벽 밖에 내동댕이쳐진 국민들이 함께 당겨줄 것이다. 애초에 벽은 조금씩 허무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넘겨 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리고 벽이 있던 자리는 새로운 통로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돌풍 속의 작은 희망

한편, 이변이 전혀 없었던 이번 전대에서 나경원 최고위원이 일으킨 돌풍은 작은 희망을 남겼다. 나 위원이 득표율 3위를 기록하며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올라선 것이다. 비록 지난 5월,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오세훈 대세론을 이기지 못한 채 한 차례 무릎을 꿇었지만, 이후 그녀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로 거세졌다. 전대 당시, 대의원투표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안상수 대표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나 위원은 지난 2004년 판사 출신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당 대변인을 거쳐 재선에 성공한 차세대 여성정치인이다. 그리고 이번 전대를 계기로 명실 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류 여성정치인으로 등극하게 됐다.

 

사실 “준수한 외모” 때문에 자질과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당 대표 주자로 뒤늦게 합류하던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도 그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자력으로 최고위원에 올라 이러한 오해를 스스로 벗었다. 또한 여전히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긴 하지만, 나 위원이 가진 정치력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평가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또한 나 위원이 ‘공천제도개혁특위 위원장’을 맡았다는 점도 이러한 정치적 잠재력을 더욱 증폭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녀가 계파갈등의 핵심인 공천논란에 대한 근원적인 해소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계파로부터 자유로우며, 여권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기대에 더욱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와 함께 ‘미녀 대변인’에서 ‘정치인 나경원’으로 변신하는 동안 그녀가 일으킨 돌풍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차기 총선과 대선을 전후하여 불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권 세대교체 바람’에서 나 위원이 창출해낼 이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박근혜 前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만큼의 지위와 인지도를 확보한 점은 향후 2012년 총선과 대선, 그리고 2014년에 이어질 지방선거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의 수가 더욱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또한 나 위원의 행보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막다른 골목에 든 다람쥐의 선택은?

호랑이가 다람쥐를 무는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며 엄연한 생태계의 진리이지만, 다람쥐가 호랑이를 무는 것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초유의 사건이 된다. 이 이변은 주로 막다른 골목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극단적인 공간특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스스로 몸을 던져 상대를 허무하게 만들 수 있는 벼랑이 없거니와, 설사 혀를 깨물어 자결을 선택한다하더라도 상대에 의해 저지당할 가능성이 높다.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며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 초유의 현상이 발생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공간, 생존을 위협받는 극단적인 상황, 외부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하지만 생존에 대한 무한한 열망. 이 네 가지 요소가 맞아 떨어질 때 생태계의 오랜 법칙을 뛰어넘는 이변이 창출되는 것이다. 결국 근원적인 공포가 이변창출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한나라당의 상황 또한 이러한 다람쥐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민들은 지난 6.2지방선거와 7.28재보선을 통해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 동안 호랑이의 관대함과 인내심을 먹고 몸집을 불려온 탓에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거품이요, 지방덩어리에 불과할 뿐인 거대한 덩치만 믿고, 호랑이와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호랑이가 몰아갈 곳도, 다람쥐가 물러설 곳도 없다. 선택은 온전히 호랑이가 하는 것이지만, 관대한 그는 선택의 일부를 다람쥐에게 건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리고 있다. 호랑이가 기다리는 것은 이 거대한 다람쥐의 자멸이 아니다. 변화와 쇄신의 날카로운 이빨을 세워, 자신의 손등을 따끔하게 물어줄 이변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막다른 벽에 등을 기댄 다람쥐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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