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무학대사, 정운찬 총리가 본 것은?”
상태바
“MB정부의 무학대사, 정운찬 총리가 본 것은?”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0.08.16 1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중심도시 원안대로 추진, 플러스 알파 논란은 불씨로 남아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조선의 도읍지를 찾던 무학대사의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명당이라 여겼던 땅에 궁궐을 세우려고 터를 다질 때 ‘십리를 더 가라[往十里]’고 새겨진 돌이 나왔고, 이에 무학대사는 공사를 중단시킨 후 궁궐이 들어설 땅을 새로이 정했다고 전해진다. 돌이 발견됐던 첫 명당이 지금의 왕십리 부근이었으며, 이는 지명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 국가의 중심을 옮기게 했던 그 돌의 출처와 발견 경위에는 얼마간의 의문이 서려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신비로움을 걷어내더라도 태조의 왕사이기도 했던 무학대사의 탁월한 안목과 판단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뜨거운 논란을 거듭하다 끝내 폐기되고 만 ‘세종시 수정안’ 논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무학대사를 자처했던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에서 발견한 돌에는 어떤 글귀가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수정법안 백지화, 세종시는 다시 원점으로
세종시 수정법안이 지난 6월29일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결국 부결됐다.

재적의원 291명 가운데 찬성은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이로써 수정법안은 즉시 폐기되었고, 참여정부가 수립한 원안대로 세종시 건설을 추진하게 됐다. 지난해 9월, 정운찬 국무총리가 수정안에 대해 처음 거론한 이후 10개월, 국회에 수정법안이 제출된 지 석 달 만에 확정된 최종 결과였다. 이는 소관 상임위인 국토해양위에서 부결된 바 있고, 본회의 부의를 둘러싼 한 차례의 논란을 겪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였다.

이날 표결에 앞서 여야의원은 물론 계파별로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 간에 뜨거운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박근혜 前 대표가 5년 만에 본회의 발언에 나서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며 수정안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한편 같은 당 차명진 의원은 “원안에 대한 심판은 이제 시작이다”며 “수정안이 부결되면 원안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현실화될 것”이라며 수정안 통과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핵심기능인 행정기능을 빼고 세종시를 추진하려는 것은 팥소 없는 찐빵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이는 국가 균형발전을 포기하는 의미한다”고 밝히며 수정안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진행된 표결에서 수정안이 부결되자 한나라당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고 이에 비해 야당은 “(수정안 폐기는) 당연한 결과이며, 국정혼란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하고, 정운찬 총리는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VS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
지난 1월11일 정운찬 국무총리는 원안을 대폭 수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세종시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세종시를 인구 50만 명의 교육과학중심도시로 건설하며, 이를 위해 당초 8조 5,000억 원 수준이었던 관련 예산을 2배 가까이 늘어난 16조 5,000억 원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정 총리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로 지정해 기초과학연구원, 금융복합연구센터 등 세계 수준의 과학연구,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고려대, 카이스트 등 국내외 우수대학 4~5곳도 유치하기로 했다”며, "이는 어제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자 새로운 내일의 토대를 다지는 시대적 과업으로, 21세기 대한민국의미래상에 가장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정부는 기존의 행정부처 이전안이 도시 건설의 비용 및 효과를 체계적, 객관적으로 분석·검증하지 않고 중앙부처 이전을 전제로 모든 대안을 검토했으며, 연구용역·공청회 등에서 제시된 여러 방안들이 실제 법령과 계획에 거의 반영되지 않아 당초 계획된 자족도시 조성이 곤란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를 이전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학 등이 포함된 인구 50만의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으로 전면 수정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정부가 내놓은 교육과학중심도시는 수도권의 과밀해소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거점지역을 조성하고자 했던 당초 목적을 폐기한 채 충청권에 또 하나의 특화 신도시를 건설하는 구상으로 전락했다는 의견이었다. 이는 원안이 품고 있던 균형발전효과를 과소 평가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지적하는 한편, 거대 경제도시에 대한 자족성의 환상에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에 더해 내놓은 이른바 ‘플러스 알파’에 대한 논란도 거셌다.

당초 다른 기업도시나 혁신도와 동일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가재정의 투입비율이 월등히 높고, 교통기반 시설 등이 확충되는 효과가 있어 결과적으로는 타 기업도시와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세종시 주변 중소도시의 고사를 유도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또한 정부 부처의 이전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정부재정을 투입해 입주기업에게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세종시 수정안이 일 년여 만에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렇듯 사업 전반이 품고 있는 내용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전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수정안 자체가 급조된 감이 없지 않은 데다 이미 제정된 법률에 의해 전체 공사일정이 1/4 이상 진척된 상황에서 원안을 번복하기 위한 충분한 사전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논란의 불씨를 남긴 플러스 알파(+a)
이렇듯 세종시 문제는 본회의 부결로 일단락되었지만, 수정안에서 제시된 인센티브인 이른바 ‘플러스 알파'를 둘러싼 갈등은 만만치 않은 불씨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당초 정부가 “원안에서 기업 등 유치 방안이 없어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수정안을 제시한 데 대해 야권과 친박계가 ‘원안 플러스 알파’를 주장한 바 있다. 원안에서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보완할 대책을 추가하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행정부처 이전에다 대기업과 대학까지 유치하자는 것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前 대표가 주장한 방안이다. 9부 2처 2청의 행정부처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원안과 행정부처 이전 대신 과학벨트 구축과 대기업, 대학을 유치해 교육과학중심도시를 만들겠다는 수정안을 절충한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수정안이 아니면 원안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표결 전부터 고수해왔다. 그리고 수정안 추진과 함께 제시했던 일련의 특혜는 행정부처 이전을 하지 않는 데 따른 보상차원이었기 때문에 수정안이 부결된 상황에서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 때문에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청와대는 “원안이 지향하는 행정중심도시와 수정안이 지향하는 교육과학중심경제도시를 절충해 섞어버리면, 소규모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어 정체불명의 도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원안보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향후 정부가 세종시 원안을 계획대로 추진해 나갈 경우 야당 및 여당 친박계 의원들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정부의 입장대로 보완 없는 원안이 추진될 경우 세제지원이나 원형지 공급 등 혜택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기업이나 대학들의 유치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야권은 ‘플러스 알파’가 이미 원안에 포함돼 있던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와 여권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책임지겠다” 입장 난처한 정운찬 국무총리
국회에서 수정안이 부결된 직후, 정운찬 총리는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수정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이는 6.2지방선거 이후 한 차례 사의를 밝힌 바 있는 정 총리가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이후 이어졌던 정 총리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정 총리가 수정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은 내가 짊어져야 할 이 시대의 십자가였다”며, “지난해 9월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의 선택은 똑같을 것”이라고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이번 부결이 “수정안에 대한 나의 순수한 생각이 현실정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국가의 미래와 충청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지 헤아려 달라는 나의 목소리는 충청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가려 크게 들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수정안을 부결시킨 야당과 여권 일각을 향해 원망 섞인 심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정·관계에서는 개각 1순위로 정 총리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교체가 거의 기정사실화 되기도 했다. 하지만 7월말 현재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 추진 당시 못지 않게 활발한 현장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예정되어 있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일 뿐 향후 거취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최근의 정 총리를 행보에 대해 일상적인 업무수행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서울대 총장 재직시절부터 관심을 기울여 온 3화 정책인 고교교육 다양화, 대학 자율화, 학력차별 완화 등의 법제화 추진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또한 정책적 관심 영역이 대폭 확대되고 있는 점은 향후 정 총리의 유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해석을 부르고 있다.

실제 정 총리는 이 대통령과의 독대 이후 거취와 관련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지난 7월16일 정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던 일부 여당 의원들이 전한 발언은 이러한 정 총리 유임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정 총리가 수정안 국회 표결 당시 찬성한 의원을 대상으로 만찬을 열었던 것인데, 그가 이 자리에서 “6.2지방선거 이후 세 번이나 사의를 표명했는데, 대통령께서 만류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가능성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과 연관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 주목된다. 지금 총리를 교체하면 원점으로 돌아간 세종시에 대한 책임을 정 총리에게 전가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여권에서는 정 총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당장 구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고심을 하고 있다”고 확인할 뿐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권은 현재 추진 중인 개각이 집권 하반기 체제 구축이란 의미가 큰 만큼 총리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데다, 청와대가 총리교체 상황에 대비해 후임자 물색에 들어갔다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어, 정 총리 유임 가능성에 대해 확고히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반전카드는?
세종시 수정안은 4대강 정비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양대 핵심 정책이었다. 정 총리가 표면에서 주도했지만, 그의 ‘단독 프로젝트’가 아닌 ‘이 대통령과의 적극적 교감’으로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6.2지방선거 참패와 더불어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정치적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따라서 수정안 부결은 나머지 핵심사업인 4대강 정비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정부는 이번 논란을 통해 야권과 종교계, 환경단체 등 분산됐던 화력을 한곳에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됐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의 고민이 더욱 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가진 반전 카드는 존재한다. 7월 중순에 청와대 조직개편을 완료했고, 7.14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이계 핵심인사인 안상수 대표가 당권을 거머쥐는 등 여론반전을 도모하기 위한 청와대 안팎의 진용을 갖췄다. 또한 8월 중으로 계획하고 있는 중폭 이상의 개각 등 굵직한 정치스케줄도 예정되어 있다. 이에 민심이 만족하는 여권 및 국정쇄신이 이루어질 경우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운은 이 대통령과 정 총리에게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수정안에 부정적이었던 시각에서는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졸속 수정안”이라는 지탄이 있었지만, 부결 직후 정 총리가 드러낸 발언에서는 간단히 외면하기 어려운 진정성 또한 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 흘러간 역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이는 ‘수정안 패배’를 통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정부와 총리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뜻을 받아 세종시 수정안 추진에 나섰던 정운찬 총리의 실패담에서 어떤 신비로운 일화를 찾아내게 될까?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