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범죄를 꿈꾸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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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범죄를 꿈꾸는 사회
  • 글/ 최승걸 기자
  • 승인 2005.0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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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경기불황이 사이버 범죄 부추긴다
청년 실업난 심화되면서 사이버 범죄로 눈길

사이버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 환경이 첨단을 치닫고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를 악용하는 범죄도 부쩍 늘고 있다. 함께 범행할 대상까지 인터넷에서 구하는 지경이다. 이에 따른 피해가 무차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불황 여파로 청년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30대 이하 무직자들의 사이버 범죄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지능화하는 사이버 범죄와 이를 막는 사이버 수사의 현장을 진단해 본다.


활개치는 사이버범죄, 유형도 다양
휴대전화 복제 사건을 수사하던 한 경찰관은 용의자의 주도면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우선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ISP(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에 가입한 뒤 가상의 물건을 인터넷 경매사이트 올렸다. 낙찰되자, 이 용의자는 그때서야 복제 휴대전화 결제를 통해 물건을 구입해 낙찰자에게 보내줬다.
낙찰자에게는 대포통장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자신을 철저히 숨겼다. 물건 값은 복제 휴대전화의 실제 주인에게 부과됐고, 용의자는 한푼도 안 들이고 돈을 챙겼다. 경찰은 IP(숫자로 된 인터넷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 통장 계좌번호를 추적했지만 이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만 나타났다. 경찰은 "용의자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이용해
다른 사람 행세를 했다"며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인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거의 모든 범죄에 인터넷이 수단 또는 범행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정도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이 몸값을 노린 납치 범행을 공모하는 등 수법도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범죄분석 전문가들은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현실세계와 사이버 공간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며 "사이버 범죄가 이미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만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0년 2444건에 불과하던 사이버범죄는 2001년 3만3289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02년 6만68건, 지난해에는 6만8445건으로 꾸준하게 늘고 있다. 인터넷 사기와 명예훼손, 불법·유해 사이트 운영에서부터 해킹이나 바이러스 유포까지 범죄 유형도 다양하다.
특히 범행모의, 병역기피, 가출, 장물처분, 폭발물 제조 등을 주제로 한 불법·유해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이미 인터넷으로 거의 옮겨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최근 들어선 기존 오프라인 범죄와 구별이 불분명해지면서 서로 융합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e메일을 이용한 명예훼손과 사이버 성폭력, 폐쇄적 대화방을 통해 이뤄지는 원조교제 등 인터넷은 이미 범죄의 온상이 돼 버린 현실이다.

◆인터넷 사기도 판친다
인터넷 사기사건도 전체 사이버 범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급증했고 해킹 같은 사이버 테러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작년 한해 전체 사이버범죄는 모두 2천205건이 발생, 이 중 1천893건을 검거했다. 이는 전년도 1천543건이 발생, 1천427건을 검거한 것과 비교해 발생은 42.9%, 검거는 32.7% 증가한 것.
유형별로 보면 작년 한해 사기 등 일반 사이버 범죄는 1천858건(84.3%), 해킹 같은 사이버테러형 범죄는 347건(15.7%)이 발생했다. 특히 일반 사이버 범죄 중 인터넷 사기는 모두 1천240건이 발생해 전체 발생 건수의 절반을 훨씬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게임 관련 사기가 665건에 달하고 인터넷상 물품 구입 등의 사기도 575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터넷 이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게임 관련 아이템이나 물품을 구입하는 과정 등에서 관련 정보를 좀 더 주의해서 읽고 대처했더라면 범죄를 줄일 수 있지만 대부분 이를 맹신한데 따른 것이라고 경찰은 분석했다.
경찰은 또 청소년 상당수가 비정상적인 인터넷 게임 문화에 빠져있는 것도 한 몫 했으며, 인터넷의 익명성도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인터넷 개인 계정에 침입하는 등의 해킹 같은 사이버 테러형 범죄도 전년도 281건에 비해 23.5%나 증가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경찰은 "인터넷 상에서 개인간 직거래와 지나치게 싼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 의심을 하고 거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해야하며, 관련 정보를 너무 믿어서도 안된다"며 "특히 초등학생 등 인터넷이 미숙한 층이 이 같은 사기를 많이 당하는 편인 만큼 이에 대한 자녀 가정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황·청년실업난 사이버범죄 불러
이와더불어 사이버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불황 여파로 청년 실업난이 심화되면서 30대 이하 무직자들의 사이버 범죄 발생률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강원청 관내에서 발생한 사이버 범죄는 모두 2천900건(입건 2천305명)으로 지난 2003년 2천604건에 비해 11.4% 증가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통신, 게임사기가 1천347건으로 가장 많았고 해킹 373건, 명예훼손 및 성폭력 등 118건, 개인정보 침해 100건, 불법복제·판매 44건, 불법 사이트 운영 44건, 기타 875건 등이다.
특히 경찰에 검거된 사이버 범죄자 연령별로는 20대가 856명(37%), 10대711명(31%), 30대 424명(18%) 등으로 30대 이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직업별로는 무직자가 1천12명(44%)로 가장 많고 학생 561명(24%),자영업 189명(%)등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속된 경기불황과 청년 실업난 탓에 30대 이하 무직자들이 생계 등을 위해 사이버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기 때문으로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9월께는 인터넷상에 청부살인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동거남의 네살난 딸을 살해해 달라'는 20대 여성의 의뢰를 받고 인터넷상에서 범행을 모의한 이모(30)씨가 경찰에 붙잡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조사결과 무직자인 이씨는 생활비 마련 등을 위해 이같은 불법·유해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범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전체 사이버 범죄자 가운데 24%를 차지한 학생중에는 고교생이 280명(50%), 중학생 185명(33%), 대학생 74명(13%), 초교생 7명(2%), 대학원생 5명(2%) 등 중고생이 전체 학생 중 83%를 차지했다.

◆모든 사이트 상시감시의 어려움
이런 가운데 일선수사담당자들은 단속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사이버 수사관 A경정은 인터넷에 올라 온 글이 범죄에 악용될 것 같아 조사하려 해도 게재자가 "표현의 자유"라고 우기면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더구나 범행을 모의하거나 타인에게 범행 수법을 가르쳐 주는 네티즌은 대부분 가짜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고 익명을 사용하고 있어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또 실제 범행으로 이어지기 전 단계에서는 관찰만 할 뿐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인터넷의 확산은 범죄의 급증을 초래했지만 해당 사이트를 폐쇄시키는 등의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송병일 기획수사팀장은 "수시로 인터넷에 생겨났다 사라지는 모든 사이트를 감시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인터넷이 강력범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어 관련 법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치안수요
인터넷 범죄는 의사전달의 신속성과 익명성이 보장돼 강력사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범죄모의 사이트에서 구체적인 범행 방법에 대한 고급정보가 오가면 범행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익명으로 범행을 모의하면 계획은 더욱 대담해지고 구체화된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워낙 범위가 넓은 탓에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임승택 총경은 "네티즌들의 자체 정화 노력이 절실하다"며 "특히 유출된 개인정보가 범죄에 이용되는 만큼 정보 유출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다고 해서 법에 어긋나는 모든 것이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실과 인터넷 공간이 결코 다르다고 인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장난성 글로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사이버 명예훼손도 당연한 범죄 행위이며 형법은 사이버 명예훼손에 대해 심각한 피해와 빠른 전파력 때문에 일반 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IP기록 보관 법제화 추진
사이버범죄 수사는 인터넷에서 범죄 혐의가 있거나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글 등 게시물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단서를 포착한다. 이어 형법이나 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률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수사를 시작한다.
우선 해당 사이트에 의뢰, 게시물이 발송된 컴퓨터의 IP를 파악하고 KT 등 ISP에 해당 IP의 가입자를 확인한다. 컴퓨터의 위치가 확인되면 수사진을 급파하지만, 범행 장소가 PC방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정도 절차를 밟아 범인을 검거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일부 사이트는 게시물 발신지 컴퓨터의 IP 기록을 보관하지 않는 데다 ISP는 정액요금제 사용자의 IP를 일일이 파악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IP 기록 보관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이 "국가가 국민들의 사이버 생활을 감시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외국에 근거를 둔 음란 사이트에 대한 수사는 더욱 힘들다. 압수수색영장의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음란물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는 나라도 많기 때문이다.



사이버포렌식센터 설립
신속하고 체계적인 사이버범죄 대응 위해 추진중
과학적인 디지털 증거 분석을 전담할 '사이버포렌식센터(가칭)' 설립이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진됨으로써 사이버 범죄 수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전망이다. 특히 이를 계기로 그동안 일부 관심있는 대학 등에서만 추진돼 온 기술 개발 및 기초 연구 작업 등이 확대되는 것은 물론, 관련 전문 인력 양성 작업도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된다.

◇설립 배경=경찰청은 지난해 들어 주요 국가 기관에 대한 잇따른 해킹 공격과 고 김선일씨 동영상 유포 사건 등을 거치면서 사이버 테러에 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을 추진중이다. 이 같은 조직 확대 작업의 일환으로 사이버포렌식 전담 조직을 설립키로 한 것은 날로 고도화되는 사이버 범죄에 대한 대응책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인터넷 환경 구축 및 이를 활용한 서비스의 증가로 컴퓨터 해킹, 전자지불 및 게임아이템 사기 사건 등 각종 사이버 범죄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또 국제적으로는 우리나라 정부기관 등의 컴퓨터가 해킹사고의 경유지로 활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경찰청이 공개한 사이버 범죄 발생과 검거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범죄 발생 건수는 6만8445건으로 2001년 3만3289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사이버 범죄로 인한 구속자 수도 지난해 4629명으로 2001년 650명에 비하면 무려 7.1배나 늘어난 수치다. 무엇
보다 통신 판매 및 게임 관련 사기와 해킹, 바이러스 유포 사범이 전체의 절반이 넘어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사이버 범죄 수사 구심점=경찰은 이에 따라 우선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내에 '실' 단위로 사이버포렌식을 전담할 조직을 구성한 뒤 이른 시일 내에 센터로 승격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센터의 인력 규모 등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외부 전문가 공개 채용 등을 거쳐 디지털 증거 분석, 사이버 범죄 수사 기법 및 프로그램 연구개발 등을 전담할 인원을 가급적 많이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 향후 센터 내에서 사이버포렌식 요원들에 대한 전문 교육 등도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별도의 전문 조직이 발족되면 지금까지 사이버테러대응센터 내 기술지원팀을 중심으로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던 관련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는 것은 물론, 해외 수사 기관과의 협력도 보다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 인력 확보 방안 등 과제=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사이버포렌식센터가 출범하기 위해 전문 인력 확보가 관건으로 부각됐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재 몇몇 대학이 비정기적으로 관련 과목을 개설, 운영하는 것 외에 별다른 교육 기회가 없어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경찰청 등 사이버 수사와 관련한 기관에도 별도의 전문 조직은 없어 체계적인 연구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경찰청은 올해도 디지털 증거 분석 요원 공개 채용을 통해 소수의 인력을 뽑아 충원하는 등 인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며 "조만간 사이버포렌식센터 설립을 계기로 자체 교육을 실시하는 등 인력 양성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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