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운하가 악재 된 한나라당 이재오의 정치적 치명상
출구조사와 상반된 개표 결과, 희비 교차
지난 4월 9일 총선 당일 오후6시 발표된 MBC-KBS 출구조사 결과, 문 후보가 53.1%의 득표율이 예상돼 이재오(41.0%) 후보를 크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SBS 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0.3% 포인트 차, YTN 조사에선 이 후보에게 1.3% 포인트 차로 뒤진 것으로 나타나 섣부른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후보 진영은 SBS와 YTN 조사 결과를 보고 한때 “만세”를 외치기도 했으나, 이어진 개표 결과 10%포인트 이상으로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초반 침울했던 문 후보 진영은 개표가 계속될수록 크게 앞서 나가자 환호성을 지르는 등 축제 분위기가 만연했다. 문 후보는 9일 개표가 94%진행된 가운데 52.57%의 득표율로 이 후보(40.59%)에 11%포인트 이상 앞서 남은 표에 상관없이 당선을 확정지었다.
문 후보는 대운하 반대를 기치로 내걸고 이 후보에게 도전장을 냈다. 문 후보는 3월 2일 이재오 의원 3선 지역구인 은평을에 출마를 선언하면서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를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SBS, 한국갤럽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문국현 후보는 43.6%의 지지율을 얻어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37.1%)보다 6.5%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8일 실시된 YTN조사에서는 문국현 후보(44.5%)가 이재오 후보(29.5%)와 격차를 15%포인트 차까지 벌리기도 했다. 총선 출마 발표 후 이재오 후보가 본격적인 유세활동에 돌입하면서 지난 4월 3일 조선일보-SBS 여론조사에서 격차가 7.7%포인트 차까지 줄어드는 등 선전을 펼쳤다. 또 5일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개입 논란’까지 일면서 은평 뉴타운 건설지를 방문하고, 7일 전 한나라당 소속인 친박연대 장재완 후보까지 사퇴하면서 선거판이 이재오 후보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기도 했다. 이재오 후보는 투표일 직전 “현재까지 상황은 야구에 비교하자면 3대0, 9회 말 투아웃이지만 주자가 만루인 것과 같다. 이제 선거 날 홈런만 치면 역전”이라고 판세를 예측하기도 했지만 끝내 역전을 이끌어 내진 못했다.
대운하 저지 총사령관 VS 대운하 전도사
문국현 후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반도 대운하사업은 이미 정치적으로 부결된 사업이다. 온 국민의 관심과 주목 하에 치러진 4.9 총선에서 대운하 추진 전도사였던 이재오 의원이 유리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완패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 심판은 이미 내려진 것이다. 대운하에 최소 건설비만 50조가 들어가고 기타까지 하면 100조가 들어갈 텐데 그게 한 가구당 500만 원 내지 1,000만 원 정도를 국민이 반대하는 쪽에 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나머지 경제가 돌고 중소기업이 살고 결국 내수경기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며 대운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반면 이재오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운하 전도사’다. 인수위의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TF)팀의 상임 고문을 맡았고,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자전거를 타고 한강과 낙동강 탐방 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야당의 우려대로 대운하를 추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지만, 정작 이를 선두 지휘하는 격이었던 이재오 후보가 이번 총선에서 낙마하면서 진행여부에 대한 추진동력을 잃은 것이나 진배없게 됐다. 한나라당이 대운하 추진을 강행한다고 하더라도 여론이 양분된 상태에서 대운하 찬반 논쟁은 정치권뿐 아니라 전국을 다시 뜨겁게 달굴 것이 분명하다.
과반을 달성했음에도 오히려 대운하에 타격을 가한 표심(票心)이 곳곳에서 나타났다는 점도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대운하 사령관’을 자처한 이재오 후보가 ‘대운하 저지’를 명분으로 내걸고 총선에 뛰어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완패한 것이 무엇보다 치명적이다. 총선을 통한 반대의 민심을 읽은 듯, 정부는 당초 이번 총선 뒤 청와대 또는 국토해양부 산하에 운하 추진기구를 만들려던 계획과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추진하려던 대운하 특별법 제정도 보류하기로 했다.
문-당세 쇄신 전기 마련, 이-향후 행보 고심
문 후보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결과는 연고주의와 지역주의, 양대 정당의 벽을 뛰어넘고 새로운 정치와 변화를 바라는 은평구민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 후보는 “은평구는 지역경제나 지역의 전반적인 상황이 많이 낙후하다”며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운하를 추진하는 오만한 정치에 대한 심판이 이번 선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했다.
문 후보는 작년 대선 패배 이후 정치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문 후보는 통합민주당 손학규와 정동영, 김근태 후보가 모두 낙선하면서 새로운 야권 중심인물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게 됐다. 창조한국당은 이명박 정부의 ‘2인자’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을 넘어뜨린 문국현 대표의 선전을 계기로 정책 야당화 행보를 강화하면서 대안 정당론을 내세우며 야권 내 입지확대를 꾀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는 등 지난 대선 이후 주요 인사들의 탈당으로 급격히 1인 정당화의 길로 접어들던 당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여 진다.
이재오 후보는 여당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출마한 선거에서 패했다는 사실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회에 무난히 입성한 다음 7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을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깨진 것이다. 이 후보 측은 최근 “제17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 국회의원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최종적인 거취는 그 이후 결정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정가에선 이 의원의 미국행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재오 후보가 낙선하면서 한반도 대운하 추진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당내 계파 간 힘겨루기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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