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외유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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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외유논쟁
  • 글/ 최승걸 기자
  • 승인 2005.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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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위한 외교활동인가 단순 외유인가
정기국회도 모자라 임시국회까지 열고도 으르렁거리며 싸우느라 일도 제대로 못한 국회의원들이 외국 나들이에는 여야 없이 선착순으로 몸과 마음을 합쳐 나서고 있다. 명목은 의원외교라지만 남은 예산을 써버리기 위해서 서둘러 만든 외유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특히 올해부터 국회 예산 가운데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100억원이 증액돼 의원외교활동 등을 지원키로 함에 따라 예년보다 출국횟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반년 동안 자리다툼만 일삼다가 해외여행을 간다“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아랑곳없이 의원의 해외출장은 줄을 잇고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활동인지, 단순한 외유에 불과한 것인지 연말연초가 되면 잦아지는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을 취재했다.



외유활동 내용 사실상 검증 불가능
의원들의 잇단 해외 방문으로 지난달 국회가 텅 빈 상태였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지난달에 외국을 공식 방문하는 의원은 모두 23개 팀 92명. 각 팀의 평균 해외 체류 기간은 11.3일. 이 밖에 개인적 목적으로 외국을 방문하는 의원까지 합치면 재적의원 298명의 절반가량 되는 150명 안팎이 지난달 출국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국회에서 4개 쟁점 법안 처리 문제에 매달려 있던 의원들이 2월 임시국회까지의 방학을 활용하기 위해 한꺼번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부일정표는 관광으로 채워져 지난해 외유가 집중됐던 7·8월을 보면 더욱 심각하다. 공부나 외교활동보다는 유람에 무게가 실려 해마다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던 구태를 이어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건설교통위원회(이하 건교위). 건교위의 김한길 위원장(열린우리당)과 여야 간사인 이호웅 의원(열린우리당)·김학송 의원(한나라당) 등 3명은 지난해 8월5일부터 14일까지 9박10일 일정으로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체코 4개국을 부부 동반으로 방문했다. 이들 세 의원 부부가 열흘 동안의 일정 가운데 업무로 꼽을 만한 △독일 헤센주 경제교통지역발전부 차관 면담 △오스트리아 교통기술혁신부 방문 △헝가리 국회 방문 △체코 프라하 공항관리공단 방문 등을 모두 합쳐도 채 하루가 되지 않는다. 프라하 공항관리공단 방문은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성격이 짙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인천공항을 지어놓고 프라하 공항에서 뭔가를 배울 점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외교활동 내용 사실상 검증 불가능 그렇다면 지난해 7·8월에 추진된 10여건의 다른 상임위 경우는 어떨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 6명(박희태·이미경·김재윤·안민석·정병국·고흥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참관단
(개막팀)'이란 이름으로 8월11일부터 9일간의 일정으로 그리스 등 유럽 4개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항공료와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3600만원가량을 썼고 숙박비·경기장 입장료 등 현지 경비는 문광위 피감기관(대한체육회)의 산하기관(올림픽위원회)이 지원했다.
이들의 활동 내역을 보면, 그리스 아테네에서 한국 선수단과 취재진 격려 방문과 개막식 참석이 전부이고 이어진 일정에서는 불가리아·슬로바키아·폴란드의 국회·문화부·언론사를 방문했다. 개막팀이 돌아오면 후발대로 출발할 예정이던 폐막팀은,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경제위(김무성·김종률·문석호·엄호성 의원), 통일외교통상위(임채정·박계동·박세일·이화영 의원), 환경노동위(이경재·단병호·장복심·이덕모 의원), 산업자원위(배기선·오영식·맹형규·안경률 의원)와 법제사법위·농림해양수산위 등도 적게는 4천만원에서 많게는 8천만원까지
7·8월에만 모두 4억여원가량의 예산을 썼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의원 외교활동이 얼마나 내실 있게 진행됐는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 등 홈페이지를 통해 단편적이나마 '가서 뭘 했구나' 알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아예 말이 없다. 국회에 자료를 요청하면 해당 상임위나 의원들에게 알아보라거나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는 싸늘한 답변이 돌아온다.
아직도 쉬쉬하면서 떠나고 돌아와서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면 그냥 뭉개는 식의 구태가 이어지는 셈이다. 지난해 여름 의원들의 외유가 예년에 비해 늘어난 것은, 16대 국회에서 2004년 예산심의를 하면서 상임위별로 3800만원가량의 국외시찰 예산을 따로 배정했기 때문이다.
행정부를 향해서는 "경제가 어려우니 불요불급한 예산을 삭감하겠다"라고 엄포를 놓는 국회의원들이 세금으로 외교활동에 나서면서, 떠나기 전에 보도자료를 내고 다녀와서는 얼마를 썼고 뭘 보고 배웠으며 어떤 성과를 남겼다고 당당히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꿈일까.


해외출장계획 심사기구 전무
문제는 무분별한 '외유성 해외출장'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여전한 가운데에도 관련규정을 강화하지 않은 채 대부분의 절차를 국회의원들이 심사·결정한다는 점이다. 국회의원들의 외국 방문은 먼저 의원외교운영협의회에서 방문국과 방문내용 등 전반적인 계획을 결정하면 각 상임위원회와 국회사무처 산하 국제협력국에서 방문의원단과 구체적 일정 등을 정한다. 상임위에서는 상임위 간사와 방문할 의원들이 협의해 세부사항에 대한 최종결정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상급기관으로 보고를 하거나 심의를 받는 절차는 전혀 없다.
의원외교운영협의회는 의장·부의장·통일외교통상위원장·각당 원내대표 등으로 구성돼 있어 세부사항 결정부터 심의까지 모두 국회의원들이 처리하는 셈이다. 부적절한 사항이 나와도 제동을 걸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국회 일각에선 의원외교활동운영협의회가 느슨하게 운영되는 바람에 해외 방문 계획이 꼭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방문 계획이 정해지면 그에 맞춰 예산이 배정된다. 지난달 해외를 공식 방문하는 의원 92명의 여행비용은 모두 국회 예산으로 충당된다. 어느 의원이 해외를 방문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원내대표에게 집중돼 있
다. 각 상임위에서 해외 시찰을 나갈 경우 상임위원장이나 정당 간사는 각 당 원내대표에게 해외 방문 예정 의원의 명단을 통보해 협의를 해야 한다. 또 의장단의 공식 방문 행사나 외교협의회, 국제기구회의, 한일의원연맹 등에 참석할 의원도 관련 기구 대표가 원내대표와 협의해 결정한다.
따라서 원내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특정 의원에게 해외 방문 기회가 몰리는 경우도 간혹 있다. 국회의 예산을 쓴 공식 해외 방문 일정을 마친 방문단은 반드시 관련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방문단을 수행했던 국회사무처 직원이 작성하도록 돼 있어 해외 방문을 통해 의원 개개인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평가할 수단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시민단체는 "지나친 외교활동 자제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홍석인 참여연대 의정활동감시센터 간사는 "국회의원들의 외교활동은 문제되지 않지만 정기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나친 외교활동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관광성 외유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간사는 "국회의원들의 외교활동에도 독립적인 심사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독립적 심사기구 설치에 동의했다.
한편 김기만 공보수석은 3일 기자실을 찾아 "앞으로 의원들의 외교활동을 100% 공개할 것"이라며 "의정활동의 일환으로 일정과 경비 등 모든 것을 다 공개해 투명하고 검증받는 외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공보수석은 이어 "아직도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의원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을 혁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지만 달라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특권 제한 공약 '공염불'
면책특권 제한 등 총선 공약도 '공약(空約)'으로 그치고 있다.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보좌관들은 16대에 이어 17대에도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특권과 특혜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만, 아직 바뀐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4·15 총선 전 각 당은 앞 다퉈 국회의원의 특권제한과 탈권위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한바 있지만 실제 무엇인가를 바꿀 채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물론 개원 몇달만에 뭔가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개혁특위'는 개점 휴업상태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 특권을 버리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바꿀 것이 별로 없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인사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다만 일부 의원들이 특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해 놓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습을 평가해 볼 때 과연 특권을 바꿀 의지가 있나라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바뀐 게 하나도 없다=국회의원 특권 가운데 상징적인 것이 바로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이 특권에 대해 여야는 총선전 앞다퉈 '제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4월 6일 한국정책학회(회장 최병선 서울대 교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정책공약 토론회에서다. 이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의 제한을 모두 동의했다. 일부 정당은 특권을 제한하는 수단으로 국회의원을 포함한 국민소환제와 불법자금국고환수제의 도입도 약속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원과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전자투표 방식으로 해 누가 투표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노동당도 '국회의원특권폐지특별위원회'를 당 기구로 공식 설치, 200여 개에 이른다는 국회의원특권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것을 지난 6월 국회 개원 전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각 당의 총선 전 약속들은 아직 공약(空約)에 머물고 있다. 6월 29일 상정된 '박창달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는 전자투표가 아닌 무기명 투표로 진행됐다. 제도개선을 다룰 국회개혁특위는 언제 열릴지 아직 전망하기 힘든 상태다.

◆특권과 특혜 관행 여전=17대 개원 전 국회의원들은 제도적 개혁뿐만 아니라 '관행적 특혜'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공항 귀빈실 이용, 철도(국유교통수단)의 무료 이용 등 국회의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혜도 개선하겠다고 밝힌 것. 개원 초기에는 공무 외에 개인 업무 시 귀빈실과 무료 철도 이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 했다. 또 국회의원 전용 엘리베이터와 전용 출입문도 없애자거나 심지어 국회담장을 허물고 정치토론 시민광장을 설치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논의되기도 했다. 공무와 무관한 국고를 낭비하는 외유에 대해서도 자제하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직 바뀐 게 없다. 의원들은 여전히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고, 고속철도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의원전용 엘리베이터 앞에는 여전히 의원용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의원 전용 중앙통로는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한나라당내 소장파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은 지난해 7월 14일 특혜적 관행을 제한하겠다는 새정치실천강령을 발표한 바 있지만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노출되지 않은 관행적 특혜 더 심각=하지만 제도적 특권이나 관행적 특혜는 그나마 약과라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얘기다. 드러난 것은 그나마 노출되어 언제든지 검증이 가능하지만 더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특혜'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다. 16대 때 보좌관을 했던 최 모씨는 "국정감사가 열리면 대부분 피감기관으로부터 점심과 저녁을 제공받고 있다"며 "심지어 저녁식사가 술자리와 향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또 다른 이 모 보좌관은 "상임위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피감기관으로부터 1년에 1회 이상 해외시찰 등의 편의제공을 받아왔다"며 "피감기관에 인사를 청탁하거나, 감사 자료를 이용한 이권개입 등도 보이지 않는 특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만 하더라고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일본의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등을 시찰한 산업자원위 소속 일부 의원들이 피기감기관인 한국원자력문화재단으로부터 항공료와 숙박비 등 편의를 제공 받았다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실련 위평량 사무국장은 "국회사무처에서 의원과 보좌진의 식대를 지급하고, 국회의원들은 국감이 시작되기 전 피감기관으로부터 각종 편의를 제공받지 않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해외 시찰도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제기했다. 현재 국회의원들의 해외 활동은 대외비로 분류되어 국민들이 알 권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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