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세상, 꿈과 희망을 뿌려 촉촉이 적시는 성당중학교 사람들

“학벌이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입시와 점수위주로 몰아붙이는 것도 무리라고 볼 수 없는 거죠. 그럴수록 교육환경은 점점 살벌하게 변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10년이 넘도록 배우는데, ‘더불어 사는 삶’이란 덕목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습니까?”
손 교장은 이렇듯 냉랭하고 참담한 현실을 ‘칼날의 악순환’이라는 표현으로 명료하게 정리했다. 맞물려 돌아가는 동안 서로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내는 형국이라는 것. 교육현장이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과관계를 주고 받는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하는 얘기다. 따라서 세상의 탓을 교육현장에 물을 수 없고, 대입을 향한 관문으로 전락해버린 교육현장의 암울함 또한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 탐탁찮은 고리를 끊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일 게다.
“이미 삶에 찌들어버린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먼저 바뀌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의성에 바탕을 둔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원론으로서 주입하는 게 아니라, 결과로 나타나게 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어렵답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
손 교장은 이러한 창의·인성교육의 출발점이 ‘꿈 찾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오늘만큼의 세월을 밀어내며 살아가는 법인데, 꿈이 없는 사람은 미래에 대한 설렘도 없으므로 오늘을 밀어내는 힘이 그만큼 약해지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매년 돌아오는 ‘스승의 날’도 성당중에서는 특별한 기념일로 옷을 갈아입는다. 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아기자기한 각종 행사들을 펼친다. 이날의 주인공인 교사들의 얼굴이 교문 앞 전시대에 등장한다. 그리고 주위에는 제자가 스승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보내는 깨알 같은 사연들이 자리를 메운다. 이는 사제 간의 사랑이 남달리 훈훈한 성당중만의 특별한 전시회다.
그 특별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타, 드럼 등 악기연주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교사 그룹사운드’가 학교축제의 흥을 더욱 돋우기도 하고, 학생상담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친한친구교실’을 상시운영하기도 한다. 특히, ‘친한친구교실’은 ‘Living(생활), Love(사랑) and Learning(배움)’을 핵심으로 한다고 해서 ‘성당 3L 클래스’로도 불리는데, 이 프로그램은 자칫 낙오될 수 있는 要관심대상학생이나 부적응학생의 자신감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읽기, 쓰기, 셈하기” 그리고 “어떻게”
손태복 교장과 성당중 교사들은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함부로 ‘밑줄’을 긋지 않는다고 했다. 창의성 신장과 올바른 인성을 함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자체가 교육이고 수업이 된다. 이를테면 몇몇의 단어나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단 하나를 커다란 동그라미 속에 담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그 깊이와 색감이 전혀 다른 교육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손 교장은 ‘좋은 성적’이라고 짧게 설명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상이었다. 과학발명품 남부교육청대회, 대구광역시교육청대회에서 금상, 은상, 동상, 장려상을 휩쓸다시피 했고, 교사지도논문대회에서는 2등급, 남부교육청과학전람회에서는 특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성과가 줄을 잇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탐스러운 조건을 걸어서 이룬 성과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더욱 컸다. 손 교장과 성당중이 그토록 강조했던 ‘창의성’이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씩 싹이 트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성당중은 지난 5월25일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미술중점학교’로 지정받았단다. “새로운 가능성과 재미난 도전을 준비 중”이라며 손 교장은 환하게 웃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성당중이 해왔던 “감각과 재능이 있는 학생들의 조기 발굴”이라는 지도목표에 따뜻한 의미가 하나 더 포함됐다. 상대적으로 미술교육에 소외되기 쉬운 소외계층에게 질 높은 미술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사교육비를 절감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의 문화증진에 기여하겠다는 것.
“세상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는 점에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열린 채로 있기 때문에 변화도 빠르게 일어나는 것이죠. 그 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면 더욱 팍팍하게 다가오는 것이 또한 세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창의성을 바탕에 둔 지적능력을 갖추고,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아는 21세기 글로벌 인재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손 교장은 “21세기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엄청난 투자나 복잡한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존에 해 왔던 대로 ‘읽고, 쓰고, 셈하기’에 집중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지식의 원동력이 되어줄 ‘어떻게’를 탐색할 수 있도록 지도하면 된다는 것이다.
손 교장의 목소리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은 이미 절반 이상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어느새 교실과 복도와 운동장에는 ‘21세기 글로벌 인재들’의 명랑하고 발랄한 목소리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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