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가는 요정문화, 저라도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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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요정문화, 저라도 지켜야죠”
  • 김실 기자
  • 승인 2010.07.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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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를 찾는 이들, 우리 문화에 대해 다양한 생각 해줬으면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는 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성황을 이뤘던 요정 골목이 있다. 90년대 이후로는 이곳의 모든 요정들이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잊혀져가는 요정문화를 고집하며 오늘도 가야금 소리에 맞춰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곳이 있다. 대구광역시의 마지막 남은 요정 ‘가미(加味)’가 바로 그곳이다.
올해로 24년 동안 가미를 이끌고 있는 윤금식 대표는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가미에서 보냈다. 18살 때 웨이터로 가미에 입성하여 10년간의 근무, 관리자로 2년, 1986년 가미창업, 이렇듯 그의 인생은 세 줄로 표현할 수 있다. 가미는 윤 대표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이다. 단순히 유흥업소로 남기보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한국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윤금식 대표, 그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많은 이들에게 우리의 문화 보여주고파
대구 중구 종로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가미라는 현판이 눈에 띈다. 주변건물과는 달리 전통적인 한옥의 모습을 한 이곳의 대문을 지나면 우리나라의 고유문화를 듣고 볼 수 있는 가미가 있다. 금강경으로 쓰인 우리나라 지도와 유명작가가 촬영한 백두산 천지의 사진, 금강경과 반야심경으로 쓰인 태극기가 눈에 들어오며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고미술품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님을 모시는 방 하나하나 기자를 이끌며 설명을 하는 윤금식 대표는 36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요정을 이끌어 온 소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정주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는 밝은 미소와 너털한 웃음을 지닌 옆집아저씨와 같다.
윤 대표가 설명했던 방들마다 각각의 지닌 의미는 다르다. 각 방마다 고유의 테마를 갖고 한국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각 방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든 작품은 우리문화를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각 방마다 테마를 둔 이유와 이 모든 작품들을 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기자의 물음에 윤 대표는 “이곳에 있는 방들 중 똑같은 의미를 지닌 방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각 방마다 뜻하고 있는 바가 다 다릅니다. 이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올 때마다 우리문화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작품들은 수집하기 위해 구한 것이 아닌 우리의 고유문화를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이 앞서 이곳저곳 수소문하며 구하게 됐습니다”고 답했다.

우리 고유의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가미의 방들을 돌아보면 한국의 문화가 하나하나 드러난다. 16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지도인 원천전도, 북한작가가 그린 금강산, 인간문화재 원광식 선생이 제작한 신라범종, 한 유명작가가 닥종이로 만든 과거의 우리 삶의 모습, 애국지사들의 친필 서찰, 능산스님의 서예 작품, 베틀, 100여년 된 누드화, 다양한 현판들, 서각, 천문지도 등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또한 작년에 모든 공사를 마무리한 가미 전시관에는 윤 대표가 직접 찾고 기록한 기생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고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과, 우리 고유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들이 가득하다. 이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지역 관리들의 앨범같이 쉽게 찾을 수 없는 물건들도 있다. 이곳을 다녀간 외국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지켜 세우며 ‘최고다’라는 평가를 할 때마다 윤금식 대표는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더욱더 느낀다고 전한다.
그는 “한정식과 술을 판매하는 요정이 아닌 우리고유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작품들은 작가의 정신과 함께 우리전통의 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들을 본다면 시각적인 효과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우리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가미가 한국문화를 알 수 있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여 내외국인 모두 문화로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는 포부를 밝혔다.
윤 대표는 가미가 술집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술은 있으나 술이 전부가 되지 않는 곳, 한국의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한국문화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 그곳이 가미(加味)라고 말한다.
가미 여종업원들은 개량한복, 마담은 전통한복을 무조건 입어야 한다. 이는 과거와 현대를 함께 반영하는 것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일하는 사람들도 윤 대표의 이런 뜻을 잘 이해하고 시행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술과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닌 전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가미의 식구들도 이에 동의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항상 고유문화와 교양 및 다양한 예술 공부에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같은 생각으로 새로운 가미문화를 창조하는 식구이기 때문입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의 인생을 가미와 함께 전통의 계승 및 발전시키는데 주력하겠다는 윤금식 대표, 그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겸비한 새로운 요정문화를 만들길 기대해본다.

‘가미’는 최초에 아세아극장 뒤 ‘한일관’ 지배인으로 근무하던 서영환에 의해 대구시 중구 종로1가 47번지 소재의 가정집을 개조하여 1962년 12월 20일 요정 ‘식도원’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10년 동안 성업을 이루다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년 동안 서영환의 동생 서종환, 서재춘에게 승계되어 원업을 이어가던 중 1974년 당시 45세였던 권옥순에게 승계되었다. 권옥순은 1964년부터 ‘식도원’ 바로 옆 종로 1가 46-1번지 소재의 요정 ‘일락장’을 운영하고 있던 바 ‘일락장’과 ‘식도원’을 하나로 통합하여 상호를 ‘동심장’이라 칭하고 1986년 윤금식이 ‘동심장’을 승계하기 전까지 22년간 성업을 다하였다.
윤금식은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0년동안 ‘동심장’ 종업원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1986년 6월23일 30세의 나이로 ‘동심장’을 승계하여 맛과 멋을 더하는 마음으로 상호를 ‘가미’로 상재했다. 찾아오는 사람도 맞이하는 사람도 의로운 풍류 정이 되고 덕이 되도록 성심을 다하여 ‘가미’를 섬겨온 지 24년, 혼이 깃든 현재의 ‘가미’로 거듭났다. 이에 1962년부터 2010년까지 4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휴업하지 않고 업을 이어온 대구 유일의 장소로 그 소중함을 기리고자 기록으로 남기는 바이다.
2010년 6월 23일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 1가 47번지 요정 ‘가미’ 윤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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