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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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
  • 남윤실 기자
  • 승인 2010.07.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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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라는 딱딱한 틀을 깨고 부드러움으로 다가가는‘이상목 세무사’

유연한 문장력으로 삶의 지표 제시

이상목 세무사는 종합소득세가 전면 실시되던 해인 1975년에 개인 세무회계사사무소를 창립해 납세자를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35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이상목 세무사는 언제나 바른 길을 걸으며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지니고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세무’라는 딱딱한 틀을 깨고 진실된 부드러움으로 변화되는 우리의 세무업계의 거목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국내 굴지의 대학 및 방송에서 회계학, 세무학을 강의하였으며 초대 송파구의회 의원(1991년~1995년)으로 당선되어 활동하면서 ‘지방의정 연구회장’으로 추대되어 지방의정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그가 발표한 ‘높은 세금, 낮은 목소리’와‘살아 있는 세금’은 사회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출판된 지 얼마 안 돼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각종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는 그의 책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고 책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높은 세금을 강하게 질타하기 위해 쓴‘높은 세금, 낮은 목소리’는 호화주택과 세금, 초만원 서울과 세금, 무서운 세금 등 주옥같은 필치로 조세칼럼을 신문에 연재하고 1988년도에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장 의원들의 질의 자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 ‘높은 세금, 낮은 목소리’에 이어 출간된 ‘살아 있는 세금’은 부의 상속, 절대 부패했던 절대 권력, 불합리한 양도소득세 등 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사회의 모순과 맹점을 꼬집으며 권력과 부의 비틀어진 부패성을 노출시켜 약자의 의분과 억눌림을 해소시키는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다. 두 책 모두 딱딱하고 경직되고 재미없는 소재인 세금문제를 이상목 세무사 특유의 직관력과 독특한 사회비판의식을 토대로 유려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장력으로 풀어나가고 있어 자연스럽게 감동으로 이끄는 문학적 성취에 도달했다는 평가와 함께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수필, 시 등 왕성한 문학 활동하는 세무사

이상목 세무사는 1991년 수필작가로 등단해 한국수필문학회와 경기수필회원으로 활동했으며 2007년 한국문인 신인상을 받으면서 시인으로 재 등단해 수필과 시 문학을 넘나들며 왕성한 문예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그는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경기한국수필가협회에서 주최한 경기수필문학상 시상식 및 출판기념회에서 ‘경기수필문학상’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또 한번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수필 ‘살만한 동네’(명품동네, 푸른숲·맑은물, 택리지·맹모삼천, 고향의 발견)와 시 ‘낭청이’, ‘물’,‘삿갓다리’, ‘무넘이마을’, ‘나바위성당’, ‘나의 도시’, ‘강경(江景)’ 등을 살펴보면 흔히 자연, 고향을 소재로 향토성이 짙은 토속적인 언어, 정형적인 율격, 간결한 이미지와 섬세한 서정성을 담고 있다. 또한 향토적이면서도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그렇다면 이상목 세무사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신적인 풍요와 낭만적인 삶의 이상이 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오늘날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자본주의, 물질주의, 기계문명주의가 가져온 인간성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거울로 비추어 보는 것과 같이 자성할 수 있게 해 주고 삶에 있어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일깨워줌으로써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선친인 소설가 이동우 선생의 정신을 기린다

이상목 세무사의 타고난 문학적 기질은 일제강점기 하에 작가로 활동했던 선친 고 이동우(李東雨)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농촌 계몽과 문맹퇴치,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이동우 선생은 고향에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금지동명학원을 설립,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6.25이후 7년간 강경읍에서 북옥중학교를 운영했던 독립 운동가였다. 이동우 선생이 돌아가신 뒤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87년도에 금지동명학원 제자 600여명이 금지마을 양지 바른 곳에 이동우 선생의 추모비를 세웠다.
이동우 선생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으로‘청춘의 포대’를 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1930년대 식민지 상황을 그린 장편소설로 시대를 뛰어 넘어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주는 젊은이의 사랑과 처세 그들의 좌표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안타깝게도 그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공모했으나 민족 독립심이 고취된 작품으로 심사대상에서 불리하게 작용되어 석패하고 말았다. 이상목 세무사는 선친의 문학작품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동아일보 공모에서 낙선해 빛을 보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청춘의 포대’를 탈고해 이동우 선생이 돌아가신 지 20년 만인 1986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상목 세무사는 선친의 교육철학을 이어받아 해마다 고향에 나무를 심고 초중고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해마다 300여 권의 책을 모교인 성북초등학교와 강경중학교에 기증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09년 9일 한글날을 맞아 이동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상목 세무사와 성북초등학교의 동문회(성북회), 동명장학회, 익산교육청의 협찬으로 ‘제1회 이동우 추모 백일장 대회’를 성북초등학교에서 개최했다. 2007년, 2008년 2년 동안 성북초등학교 교내 행사로 이동우 백
일장 대회가 치러졌으나 2009년도에는 인근 지역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그 범위를 넓혀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이상목 세무사도 이날 백일장 대회에서 유족 대표인사를 했으며 모교 후배들의 독서 및 문예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35년 간 한결같이 세무업무를 담당해오면서 겪은 수많은 희로애락은 이상목 세무사의 삶을 성숙하게 만들었고 수필, 시 등의 문학활동은 그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으며, 선친 이동우 선생의 삶은 삶의 방향을 인도해 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세무사로, 시인으로서, 효자로서 어느 하나 게으름 피우는 것 없이 부지런히, 또 성실하게 살아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책임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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