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외교·안보·경제 등 대내외적 분야에서 적합한 인물이 적재적소에서 활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임명권자의 큰 복이다. 머리를 빌리는 게 통치권자의 부끄러움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시대적 상황이 요청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는 인사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취임 3일 만에 중도 하차함으로써 청와대의 인사 검증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교육부총리에 대해 "임기 5년을 같이하겠다"며 교육수장 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총리가 57시간의 단명에 그친 것은 인사시스템의 작동 불능을 단적으로 반영한 셈이다. 집권 3년차 인사정책에 있어 최대 관심사는 노 대통령이 과거처럼 자신의 비전에 공감하고 철학을 함께하는 사람을 중용하는 이른바 '코드인사'에 집착할 것인지, 아니면 '코드'를 접고 '정책실무형'으로 변신을 꾀할 지다.
신조어 양산하는 오락가락 인사원칙
'이기준 파동'을 보면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 인사'라는 말들을 써서는 안될 것 같다. 노무현 정부는 인사할 때마다 정실, 보은, 코드, 자리 챙겨주기라는 쓴소리를 들었다.
13차례나 땜질 개각이 이어지면서 노무현 정부의 '원칙과 시스템'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노 대통령 스스로 "국민을 달래기 위해 바꿀 필요가 있다"는 말로 국면전환용 개각을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또 2년 임기라는 전혀 새로운 원칙을 내세워 "2년쯤 일하면 아이디어도 다 써먹을 만큼 써먹고, 열정도 조금 식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너리즘(독창성을 잃고 신선미와 생기를 잃는 일)에 빠질 때쯤이 된다"고도 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스템 인사' 원칙을 강조해 왔다. 정실에 흐르지 않는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를 하겠다며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신설하고 인사 추천과 검증을 서로 다른 부서에 맡겨 견제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의 인사 결과는 '시스템의 실패'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집권 초기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서는 '코드인사', '보은인사'라는 비판이 많았다.
아무래도 전문가 직군보다는 노 대통령과 개혁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이 요직에 많이 발탁됐고 대통령 선거 논공행상 차원의 인사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겨난 최근에 와서는 여기에 참모인사, 정실인사라는 말이 새로 더해졌다. '참모인사'는 청와대를 거쳐간 참모들이 주요 부처 장관, 주요국 대사, 정부 산하 기관장 등 따뜻한 곳을 찾아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정실인사'는 인사추천을 담당하는 참모들이 정실에 얽매여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인사를 그르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서 비롯된 말이다. 말이 땜질인사요, 독서인사다.
역대 정권은 늘 인사원칙으로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곳에 쓴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도 이기준 부총리 발탁 배경에 대해 "개혁의지나 전문역량이 있느냐가 먼저 이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윤리적 법률적 하자 여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맹목적 실용주의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코드'서 '실용'으로 전환되나
노 대통령은 공정한 인사를 강조하면서도 특별한 결함이 없는 한 인연을 맺은 참모를 쉽게 버리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수석, 보좌관 등 주요 참모들은 그만두더라도 장관, 대사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 대통령의 이런 인사 스타일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호흡을 맞춘 인사들을 내각이나 해외로 보내 개혁을 적극 추진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고, "협소한 인재 풀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지난해 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주미대사로의 전격 발탁은 정·관계 등에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홍 회장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보수언론의 오너이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기 때문이다. 2년 가까운 집권기간 동안 줄곧 '코드 인사'를 강조해온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홍 회장을 주미 대사로 발탁한 것은 노 대통령 특유의 깜짝 승부수로 해석할 수도 있고, 언론관과 기업관 변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밝힌 홍 회장 발탁의 배경에서 미국관의 변화도 감지된다. 김 비서실장은 "앞으로 대미관계를 공고히 해야 하고, 이는 정말 중요하다는 점을 노 대통령이 숙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비서실장은 "양국이 정부 차원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지고 있지만 아쉬운 점은 미국 사회의 여론과 지식인 중에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다소 좋지
않은 것이고, 이를 바로잡고 고양시켜야 한다."면서 '깜짝 놀랄 만한 빅카드' 선택 배경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이유에 대해 "미국에 안보·경제면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한·미간 특별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연장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가 노 대통령의 유럽 순방 이후에 '관용의 문화'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3일 "대한민국이 관용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면서 관용정치를 화두로 꺼냈다. 상대의 잘못을 용서한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세상의 가치와 원리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 ▲동시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관용의 의미를 정의했다. 홍 회장의 발탁 배경도 이런 범주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전·현 정권 인사파동은 공통분모
허술한 인선 아직도 시스템 타령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사태와 유사한 인사 파동은 비단 노무현 정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역대 정권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인사로 인해 휘청거렸고, 그때마다 검증 시스템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깜짝인사 선호했던 김영삼(YS) 정권=출범 일성으로 '깨끗한 정부, 깨끗한 사회' 구현을 내걸었지만 조각(組閣) 멤버들이 잇따라 낙마했다. 지나치게 보안을 지키려다 사전 검증이 부족한 인사를 자초했다는 게 주변 평가였다. 1993년 2월26일 임명된 당시 박희태 법무부장관과 김상철 서울시장(당시 임명직)은 각각 자녀의 외국국적 취득 등과 그린벨트 무단 형질변경 문제로 도마위에 올랐다. 청와대는 임명 나흘만에 터진 박 장관건을 밀고 나가려다 곧이어 김 시장 문제까지 겹치자 경질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두 사람 모두 열흘을 넘기지 못했다. 같은 시기 박양실 보사부장관도 부동산 투기혐의로 사퇴했다. 정권 출범의 막후 브레인 역할을 했던 전병민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내정자는 임명도 되기전에 본인 등의 전력 의혹이 불거지면서 낙마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사전에 내정사실이 알려질 경우 교체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로 깜짝 인사를 선호했던 YS 정권의 인사 스타일은 임기말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충성도 인사' 김대중(DJ) 정권,=1999년 초부터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을 비롯한 옷로비 의혹 사건이 불거졌고 언론의 강력한 비판이 잇따랐지만, 정작 DJ정권은 이를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받아쳤다. 급기야 김 총장은 같은 해 5·24 개각에서 법무부장관으로 영전했다. 정치권에서는 1997년 10월 대선직전 'DJ 비자금' 수사 유보 결정을 한 김 총장의 충성에 대한 정권 차원 배려라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검찰간부의 파업유도발언 파
문으로 김 장관은 15일만에 경질됐다. 이른바 '충성문건'으로 임명 43시간만에 옷을 벗은 안동수 전 법무부장관 사건도 여권 전체를 혼돈 속에 빠뜨렸다. 2001년 5월11일 임명된 안 전 장관의 사무실 컴퓨터에서 발견된 메모에는 '정권재창출을 위한 노력' '태산같은 은혜' 등이 나열돼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은 그를 추천한 사람을 문책하라
는 요구와 함께 대대적인 정풍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앞서 송자 전 교육부 장관은 2000년 8월 도덕성 시비에 시달리다 24일만에 사퇴했다.
◇노무현 정권은 코드인사로 휘청=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과 최낙정 전 행양수산부장관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노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 대해 "내가 키워줄 수 있으면 최대한 키워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2003년 9월 국회의 해임건의안 가결로 임명 7개월만에 낙마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치권을 "재활용도 어려운 쓰레기 집단"이라고 공격해 파문을 일으켰다. 임명 14
일만에 전격 경질된 최 장관 건도 '노무현식 코드인사'로 분류된다.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노 대통령과 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으로 근무하던 최 전 장관은 인연을 맺었고, 이후 그는 튀는 언행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2003년 9월 해수부장관에 오른 뒤 "우리나라 대통령은 태풍 때 오페라 보면 안되나"는 등의 폭탄발언으로 단명장관 반열에 끼였다. 서강대 손호철(정치학) 교수는 "정통성이 없는 군사정권의 인사정책도 지금처럼 오만하지는 않았다"며 "인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여론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이해 당사자가 철저히 배제되는 원칙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