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장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할 것”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지난 4월23일 “나는 결백하지만 검찰의 명예에 누를 끼쳤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대검찰청은 지난 21일 <PD수첩> 보도와 관련하여 민간인을 위원장으로 두고 3/2 이상의 위원을 사회각계 민간인으로 구성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 현직 고검장을 단장을 하는 ‘진상조사단’을 위원회 소속으로 꾸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PD수첩>이 공개한 내용이나 정황으로 봤을 때, 모든 여론이 박기준 검사가 향응을 받았을 것이라는데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정 씨가 자필로 쓴 스폰서 검사 실체,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검찰은 물론 법조계 전체를 태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스폰서 검사’ 파문. 아직 거물급 인사 10여 명이 더 있다는 정 씨의 말은 과연 신빙성이 있는 걸까.
다음은 정 씨가 자필로 쓴 스폰서 검사의 명단과 건넨 돈, 그리고 정황이다.
“저는 1984년부터 약 10년간 법무부 위촉 갱생보호위원 및 창원지검 위촉 소년선도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출소자와 어려운 청소년을 선도하는 데 물심양면 열정적으로 일한 바 있습니다. 지난 기록을 찾아보시면 제가 제일 많은 사람을 담당한 것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로 인해 법무부 장관 표창도 받은 바 있으며, 지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진주지청을 거쳐 간 검사 중 저의 돈을 안 받아본 검사, 향응(술 및 여성 접대) 제공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명단과 금액은 조사 시 대질할 때 밝혀질 것입니다.( 당시 지청장 1~6호)(한 달 두 번 지청장 100만 원, 검사 1인 30만 원 상당 2번) 지청 각종 행사(등산대회, 체육대회, 수시로 검사 전체회식, 일반직 전체회식) 등 추정금액 약 7억 원 이상을 지출하였으며, 지금 그분들이 일부 검찰 고위간부로 재직하고 있으니 조사하면 철저히 밝혀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드리지만 장소, 일시, 당시 부장검사 및 평검사 분들의 명단과 계산서 및 모든 자료는 제가 보관하고 있고, 관계된 100여 명이 넘는 현직 검사 및 변호사들과의 대질신문으로써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리라 100% 확신합니다.
언론기관에서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국민들에게 검사들의 정말 더러운 치부를 모두 밝혀주셔서 검경의 여러 쟁점이 객관적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주십시오. 이 진정 및 고발은 저의 개인 이익이나 영달을 위함이 아님을 밝혀드리며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관계된 검사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검찰에 조사받을 때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정말 많이 망설였는데 말입니다. 다음과 같이 적시하는 부분은 민사적(구상권 또는 부당이득금) 또는 형사적 시효가 경과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참고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며 다음과 같은 사실은 명백한 진실과 사실이며 당시 재직하셨던 진주지청장 김○○·서○○·함○○ 등은 변호사 재직하거나 작고하신 분도 계신 걸로 알고 있으며 당시 재직하셨던 평검사들 대부분은 지금 현재 전국 각 검찰기관의 검사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직에 재직하고 계십니다. 또 각 정부부처의 파견검사 또는 각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제가 이런 어려운 기록을 하는 것은 정말 세상이 검찰이나 판사님이나 모두 제가 사업을 하는 처지에서 공권력이 무서워 향응 접대 및 각종 뇌물 아닌 뇌물 등을 대다수 검사님 및 일에 제공했을지라도, 또한 제가 약자 입장의 보험 성격도 있지만 대부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기업이 당시 서부 경남에서 건설부문 최고 430억 원(현재 시가 기준 4,000억 원)의 공공 공사를 수주하는 대형 기업이었으며, 제가 진주지청 및 각 지역 일부 검찰의 모든 공경(공적 경비) 및 개개인 검사에게 다음 내용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해왔으며 당시로서는 엄청난 출혈이 있었지만 기업을 경영하고 나이가 젊었던 저로서는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다보면 사람이 어려울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정말 소수의 현직 검사님 몇 분 빼고는 90% 이상 검사들의 처신과 행태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 위로의 전화 한 통도 하지 않는, 속된 표현이지만 시정잡배 필부들도 행하는 조그마한 의리 하나 없었고 모두 자기들 체면이나 생각하고 승진에 누가 될까 출세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추한 모습에 배신감과 함께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정코 제가 제시하는 이런 모든 내용이 한 치도 거짓이 없는 진실임을 다시 한 번 밝힙니다.
인간적 배신감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말 이번에는 저의 체면상 그래도 저는 인간성이 나쁜 놈이 아니고 특히 정신과 도덕성은 부모님으로부터 확실하게 받은, 정의감 강하고 진솔한 놈입니다. 저는 의리를 지키면서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온 놈입니다. 그러나 수십, 수백, 수천 번 생각해도 이번만은 검찰의 작위적이고 월권적인 기소편의 주의에 굴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고민 또 고민하고 있지만 더 이상 제가 잃을 게 없습니다. 대부분 검사들의 엘리트 정신과 배신감에 경종을 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인생에서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을 각오로 진실임을 다시 밝혀둡니다.
정 씨는 지난 4월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던 구속집행정지 취소청구 심문에 앞서 자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구속된 상태에선 검찰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단의 조사에서도 상황에 따라 정 씨의 진술이 신빙성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성낙인 위원장은 “공소시효나 징계시효에 구애받지 않고 신속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며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고, 이귀남 법무장관도 “검찰 내부에서 특검보다 훨씬 혹독하게 할 예정이며 필요하면 수사로도 나아갈 것”이라며 철두철미한 자정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검사들의 ‘돈줄’이었던 정 씨, “인간적 배신감에 폭로했다”
과거에도 법조계 주변에선 검사 스폰서 논란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전·현직 검사의 실명 거론과 함께 접대방법과 내용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적은 거의 없었다.
정 씨는 자신이 진정서에 거론한 인원은 57명이지만 실제로 접대한 전·현직 검사는 어림잡아 200명에 달한다고 말해 더 큰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57명은 검사장급 3명을 비롯해 부장검사 17명, 평검사 8명 등 현직이 28명이고,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사가 29명이다. 정 씨는 검사들의 지위에 따라 촌지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등 꾸준히 스폰서 역할을 해왔다. 촌지뿐 아니라 검찰 체육대회나 등반대회 등의 공식행사와 회삭, 환영식, 송별회 등 비공식적인 행사에도 어김없이 돈을 댔다고 한다. 말 그대로 그는 검사들의 ‘돈줄’이었다.
정 씨는 이러한 접대 리스트와 일자, 장소, 신용카드 종류와 수표번호까지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뒤통수를 칠 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종의 보험약관인 셈이다.
“…조그마한 의리 하나 없었고 모두 자기들 체면이나 생각하고 승진에 누가 될까 출세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추한 모습에 배신감과 함께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간적 배신감에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 씨가 검사 스폰서 리스트를 폭로한 배경에는검사들에 대한 강한 배신감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귀남 법무장관 “룸살롱이나 골프, 금지시키겠다”
이번 의혹의 몸통으로 지명된 박기준, 한승철 검사장을 동시에 소환·조사한 진상규명위원회 산하 진상조사단이 이들을 형사처벌하는 것을 전제로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진상조사단은 그동안 두 검사장이 정 씨가 낸 진정을 검찰총장에게 보고치 않고 공람종결 또는 각하처리하는 과정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접대 의혹의 경우 일부 인정하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여전히 부인하는 부분이 많아 정 씨와의 대질조사를 거쳐야만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단은 이밖에 그간 조사한 전·현직 검사 70여 명에 대한 처리여부도 고심 중이다. 하지만 정 씨가 특검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대질조사는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스폰서 검사’ 의혹과 관련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또 “사실 여부를 떠나 참으로 면목 없는 일이다. 조속한 시일 내에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엄정한 복무자세를 확립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 또한 지난 법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국민과 법조 선·후배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밝힌 바 있다. 앞으로 검사들에 대해 “룸살롱이나 골프같은 것은 금지시키고 소박한 회식문화가 되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장관은 부산지검장과 감찰부장 외에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가 더 있냐는 질문에 대해선 “일부 있는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라고 밝혀, 추가 파문을 예고하기도 했다.
아직 어디까지가 사실인 지는 알 수 없다. 폭로한 정 씨와 접대받은 검사 당사자들만이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상규명위든, 특검이든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스폰서 검사에 대한 확실한 마무리만이 국민들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는 길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