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 자고 타락한 성년의 날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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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놀고 자고 타락한 성년의 날 천태만상
  • 박희남 기자
  • 승인 2010.05.2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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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취지 망각한 채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어

봄기운이 만연한 5월이 우리 곁을 찾아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5월에는 유난히 꼭 기억해야 하는 날들이 많다. 5월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5월8일 어버이날, 5월18일 민주화운동 기념일, 5월20일 세계인의 날, 5월21일 석가탄신일, 5월31일 바다의 날 등 무수한 날들이 포진하고 있는 다사다난한 달이 바로 5월이다.
그 중에서도 매년 5월 셋째 월요일 날은 만 20세가 된 젊은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일깨워주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 격려하는 ‘성년의 날’이다. 무심코 지나치기가 부지기수지만 만 19세 남녀들은 이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하지만 정작 코앞에 닥친 성년의 날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장미꽃 스무 송이와 향수, 그리고 가슴 떨리는 연인의 키스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던 성년의 날이 불건전한 음주문화와 충격적 의식 등의 이유로 흉악한 괴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야호 피 봤다” 충격적인 의식에 말문이 턱
20살 꽃띠들은 달라도 뭔가 확실히 다르다. 스케일부터 창의력까지 그야말로 상상이상이다.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마저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기상천외한 성년의 날 의식이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몇 년 전 한 고등학교에서는 평생 잊지 못할 ‘엽기 성인식’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어느 날 이곳에 근무 중이던 여교사는 한 여학생의 부모로부터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전화 한통을 받았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보자는 학부모의 요청에 의아한 마음도 잠시, 워낙 간절했던 학부모의 목소리가 생생한 여교사는 약속장소로 나갔다. 여 교사는 학부모를 보자마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인 즉슨 학부모가 경찰을 동반하고 약속장소에 나타났기 때문.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한 동안 멍해있던 여교사는 정신을 수습한 후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후 조심스럽게 학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여교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학부모가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학부모의 말에 따르면 딸이 성년의 날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성고문을 당했다는 것. 성년의 날을 맞이해 친구들끼리 노래방을 갔던 것이 화근이 됐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중 친구들 가운데 한명이 노래방에서 성인식을 치러야 한다면서 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고, 이후 물리적 도구를 이용해 딸의 처녀막을 터뜨렸다. 딸의 몸에서 피가 나오자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심지어는 울고 있는 딸에게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치레까지 하는 파렴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제 막 19살이 된 아이들이 저지른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뿐만이 아니다. 성년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배에게 여성의 처녀성을 상납하는 성년의 날 新풍속도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성년이 된 수희(가명)는 100% 타인의 의해 자신의 순결한 처녀성을 상실해야만 했다. “선배들이 ‘오래된 전통인데 너라고 안할 수 있겠냐’며 만약 거부할 경우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했어요.” 미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왈칵 눈물부터 쏟아내는 수희. 한참을 울더니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 같은 여학생이 많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암암리에 성년의 날 의식이라고 해서 이러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더라고요. 제 친구도 피해자였다니까요.”
물론, 수희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남자 선배들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학교 내 ‘왕따’였다. “남자 선배들이 ‘너도 좋아서 했으니까 거절하지 않은 것이냐’며 오히려 학교 내에 저에 대한 나쁜 소문들을 퍼뜨려 저를 왕따로 몰아갔어요.” 덕분에 수희는 학교도 혼자가야 했고 밥도 혼자 먹어야 했다. 결국 수희는 휴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그 날의 상처를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위의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말도 되지 않는 의식과 관습들로 성년의 날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는 일부 몰상식한 젊은이들로 인해 성년의 날은 멍들어 가고 있다.

오가는 술잔 속에 사망선고
만 20세가 된 것을 자축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성년의 날을 맞아 캠퍼스에서 일부 대학생들의 잘못된 음주문화와 악습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잘못된 음주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춘천의 K대학. 이곳에서는 매년 성년의 날을 맞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성년이 된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사발에 소주를 가득 따라 마시게 하는데,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잘 놀지 못하는 애’로 낙인이 찍혀 선배들과 동기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린 양들은 죽기 살기로 술을 마시고,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버린다.
지난해 성년식을 치른 이 대학 현화(가명)는 성년의 날을 축하하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한 사고를 겼었다. “원래 술을 못 먹는 타입인데, 분위기도 몰고 가는 쪽이었고 선배들이 어찌나 눈치를 주던지 마시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솔직히 술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문제는 그 후였죠.”
동기들과 선배들은 술이 취한 현화를 들쳐 매고 학교 연못에 빠뜨렸다. “성년의 날이 되면 술에 취한 학생들이 학교 연못으로 뛰어드는 이상한 전통이 있는데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완전 허겁지겁 빠져나왔다니까요.” 수영을 할 줄 몰랐던 현화는 결국 호흡곤란으로 응급실까지 가야만했다. 한편 현화는 지저분한 학교 연못의 상태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깨끗하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나뭇잎부터 쓰레기, 벌레까지 휴. 생각하기도 싫어요. 제 친구 중에 한명은 성년의 날 연못에 빠졌다가 피부병으로 한 달을 넘게 고생했어요. 아마 지금도 병원 다닐걸요.” 실제로 이 대학 학생들이 연례행사처럼 빠지고 있는 캠퍼스 내 연못은 각종 시커먼 오물들이 뒤엉켜 역겨운 악취를 뿜어내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였다.
성년의 날 잘못된 음주문화로 고생을 하는 건 비단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대학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성년의 날 저녁만 되면 만취한 학생들의 소란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대학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는 한 주민은 “학생들이 술이 만취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몸싸움을 하는 등 난리도 아니다”며 “경찰이 출동하는 일은 하도 봐서 이젠 놀랍지도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모텔 문전성시, 성년의 날 ‘베이비’ 조심
나도 언제까지 그대가 생각하는 소녀가 아니예요. 이제 나 여자로 태어났죠. 기다려준 그대가 고마울 뿐이죠. 나 이제 그대 입맞춤에 여자가 되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니 망설이지 말라는 박지윤의 노래 성인식. 성년이 된 젊은이들은 노래인 성인식과 성년의 날을 혼동이라도 하는 것일까.
2010년 성년의 날은 그야말로 ‘성(性)년’의 날이다. 진한 키스 선물은 기본, 섹스는 옵션이라는 성년의 날. 술 마시며 즐기다 눈빛 통하면 충동적으로 이뤄지거나 ‘19’금을 넘어설 수 있는 나이라는 들뜬 생각에 준비되지 않은 거사를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성관계는 자칫 원치 않는 임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오죽하면 성년의 날 베이비를 조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까. 대학이 밀집된 신촌 일대에서 10년 째 모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규식(가명)씨는 성년의 날을 대목으로 표현했다. 박 씨는 “해마다 성년의 날 무렵이 되면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커플 손님들이 급증한다”면서 “성년의 날은 방이 없어서 장사를 접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우리끼리는 다 아는 편인데, 이들 대부분이 이른바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충동적으로 찾고 있다. 이들이 묵은 방에는 휴지부터 콘돔까지 섹스를 하기 위한 도구들이 즐비한 편”이라고 전했다.
사실 피임부터 이성에 대한 에티켓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숙박업소를 찾는 젊은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성인이 되었다는 기쁨과 분위기에 휩쓸려 한 순간의 충동으로 무작정 해보고 보자는 식이다. 그러니 피임에 대한 대비와 사후 처리는 미흡할 수밖에. 이 때문에 해마다 성년의 날이 끝나면 산부인과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랑한다면 당연히 섹스를 할 수도 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것을 인정받은 만큼 키스를 하건 섹스를 하건 선택은 100 %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성인인 된 만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연인과 성스러운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행복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삶의 주체로서 자부심과 책임의식 부여하는 날
인격을 가진 독립적 성인으로서의 자각과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 주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격려하고 국가사회가 바라는 유능한 인재 양성을 위한 바른 국가관과 가치관을 정립시키는데 의의를 갖는 성년의 날.
하지만 오늘날 성년의 날은 본래 취지가 퇴색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성년의 날은 본래 어떠한 의미를 갖는 날이며,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과 행사에는 무엇들이 있었을까.
먼저 성년의 날 역사는 버라이어티한 편이다. 지난 1973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6615호)에 의거해 4월20일을 성년의 날로 정했다가 2년 후 1975년 5월6일로 변경했다. 이후 1985년 5월 셋째 월요일로 정해져 다양한 기념일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성년례(成年禮)가 발달해 어린이가 어른이 되면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찌는 관례(冠禮)의식을 통해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었음을 알렸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첫째 관문인 ‘관’이 바로 이 성년례를 말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만 20세가 되면,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어른들을 모셔 놓고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전통 의례를 치르는 곳이 많았으나, 갈수록 서양식 성년식에 밀려 전통 성년례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문화관광부에서는 이러한 전통 성년례를 부활시켜 청소년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전통 성년례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깨우쳐 줄 목적으로 지난 1999년부터 표준 성년식 모델을 개발, 전통 관례복장을 갖추고 의식을 주관하는 어른인 ‘큰손님’을 모셔놓고 상견례(相見禮)·삼가례(三加禮)·초례(醮禮)를 거쳐 성년선언으로 이어지는 성년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성년의 날 기념식을 열고 일정한 절차에 따라 성인식을 거행하며 청년·청소년지도자·청소년단체 등에게 상을 주기도 하는데, 일례로 서울특별시에서는 나라사랑상·서울청년상·서울청소년지도자상 등을 수여하고 있다.
키, 몸무게, 신체사이즈가 변했다고 성인은 아니다. 성인(成人, adult)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이는 외면의 성숙과 내면의 성숙을 모두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생의 단 한번뿐인 날을 먹고, 놀고, 섹스하는 날로 기억하기 보다는 조금 더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는 날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 사치와 향락의 문화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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