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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김득훈
  • 승인 200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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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탈북자에 대한 포용정책…탈북자의 U턴 부추겨
정부 '요주의 탈북자' 특별관리시스템 강화 방침

급증한 탈북자 입국 대열에 ‘간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탈북자가 북한에 재입국해 간첩 교육을 받은 뒤 비밀리 한국에 재입국한 사건이 밝혀져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다. 탈북자 이모 씨는 지난해 4월 가족을 만나러 입북했다가 붙잡혀 북한 당국에 국내 탈북자 실태를 보고하고 밀봉교육까지 받은 뒤 한국에 재입국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 씨가 자수한 점을 들어 “적극적인 간첩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탈북자들의 실태를 취재했다.


탈북자에서 간첩으로 ‘사선 넘나들어’
탈북자로 혹은 간첩 교육을 받고 압록강의 ‘사선(死線)’을 넘나든 이모 씨(28)의 ‘7년 행적’은 살얼음판 그 자체였다. 평양 출신의 이 씨는 함북 온성군의 국경경비대 소속 하사로 근무하던 1997년 6월 절도 사실이 적발되자 1차 탈북했다. 중국 산둥(山東)성 등에서 식당, 노래방 종업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중국 공안에 붙잡혀 1999년 7월 강제 북송됐다.
북한 보위사령부의 정치학습을 받은 뒤 ‘중국 내 반(反)공화국 활동사항 수집 및 탈북자 동향 등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 씨는 탈북 형식으로 2000년 2월 다시 중국으로 잠입했다. 이 씨는 임무 수행이 어렵고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될 것을 걱정하다 2002년 11월 베이징(北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진입했으며 이듬해 1월 27일 한국행에 성공했다. 이 씨는 입국 직후 자신의 중국 내 행적 등도 진술했다.
일반 탈북자로 분류돼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 수용됐다가 이후 공사장 잡부, 주유 및 세차원 등으로 생활하던 이 씨가 다시 북한행을 감행한 것은 지난해 4월. 북한에 두고 온 동생들을 탈북시킬 목적으로 중국을 거쳐 4월 20일 압록강을 넘었다. 그러나 북한 경비병에 붙잡혔고 보위사에 신병이 인계된 그는 탈북자 관련 시설 정보를 북한에 제공하고, 5월 7일부터 열흘간 평북 신의주시에 있는 초대소에서 대남 공작지도원으로부터 ‘밀봉(密封)교육’을 받았다.
공작 암호명(○○○번)과 함께 탈북자 동향수집 지시를 받은 이 씨는 5월 19일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뒤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중국 내 북한 공작망에 보내기도 했으나 6월 11일 자수를 택했다.

간첩 혐의 적용은 어떻게 될까
탈북자 이 씨에 대한 간첩 혐의 적용 여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이 씨는 현재 국가보안법상의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 혐의로 검찰에서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씨가 북한 밀입국 사실은 시인하고 있는 만큼 잠입탈출 혐의가 적용되고, 북한에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으므로 회합통신 혐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검찰은 국보법상 간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수사해 봐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보법상의 간첩죄는 ‘간첩행위’를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수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씨가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지 수집했을 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 씨는 ‘국정원에 자수한 이유는 간첩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고 밀입북 사실에 대한 것’이라며 간첩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특히 목적수행 혐의 부분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북송 뒤 교육을 받고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으로 일하다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부분과 지난해 4월 북한 당국에 붙잡혀 교육을 받은 뒤 임무를 받고 국내로 돌아왔다는 대목 등 두 가지 사안의 경우 명쾌하지 못한 논란의 소지가 일부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관계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내 활동에 대해서는 이씨가 국내입국과 동시에 남측 관계기관에 모두 털어놓고 일반 탈북자로 인정을 받았다”며 “올해 5월 중순 국내 입국 후에도 간첩활동으로 의심할 만한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 본인도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 같은 활동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씨가 탈북자 신분이라는 점 또한 국보법의 일면적인 적용을 힘들게 하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는 광의의 이산가족으로 2001년 이후 지금까지 1천명이 넘은 사람들이 해외를 여행하고 있고 이 중 70%가 중국으로 가고 있으며 상당수 탈북자들이 북한에 들어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일부 탈북자는 각종 명절 때 두만강을 건너 고향에서 명절을 쇠고 가족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 중에는 한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나서는 북쪽에 있는 집에 다녀왔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밀입북이라는 점과 고향을 찾는 인간 본연의 정서 사이에서 처리가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탈북자 그들은 왜 재입북 하는가
북한 당국은 최근 ‘탈북자도 돌아와 자수하면 용서하고 환영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탈북자의 재입북이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96년 7월 11일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던 최승찬 씨(37). 그는 당시 자전거 튜브에 의지해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넘어와 화제가 됐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최 씨는 북한의 처자식을 탈북시키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여의치 않자 지난해 음력설 전날인 1월 21일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넘어갔다. 보위부에 ‘자수’한 뒤 몇 달간 조사를 받았지만 큰 문제없이 탈북 때의 거주지인 개성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북한 특수부대인 38항공육전여단에 복무했고 탈북 전 개성벽돌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한국에서는 1997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농협중앙회 본부 대리로 근무했다. 지금은 개성컴퓨터센터에서 일한다.
최 씨는 개성 주민 사이에 ‘8년만에 팔자를 고친’ 선망의 대상이라고 한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잘 대해주라’는 지시를 2번이나 했고, 한국에서 번 돈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배운 컴퓨터 실력도 부러움의 대상. 개성 주민들 사이에는 “최 씨처럼 남조선에 가서 돈을 벌어오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최근 탈북한 김모 씨는 전했다.
최 씨의 경우, 재입북 때 한국에서 번 5만 달러(약 5100만원)를 갖고 갔다. 북한 당국은 이 돈의 ‘처분권’을 최 씨에게 주었다. 개성에서는 “최 씨가 국가에 3만 달러를 바치고 8,000달러는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1만2,000달러(약 1,250만원)를 개인 소유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현재 북한 암시장 환율로 1만2,000달러는 북한 돈 2,160만원 상당. 월급 3,000원을 받는 북한 중학교 교사 600명에게 1년간 월급을 줄 수 있는 거액이다.
최 씨처럼 단독으로 탈북한 뒤 한국에서 번 돈을 갖고 가족을 찾아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기러기 탈북자’는 또 있다. 1996년 한국에 입국해 사업 실패 뒤 2000년 북한으로 U턴, 2003년 다시 한국행을 했던 남수 씨(47/지난해 4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는 북한으로 돌아간 뒤 환대를 받았고, 갖고 간 돈으로 목욕탕과 이발소까지 경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 달 전에는 서울 양천구와 강서구에 거주하던 20대 남녀 탈북자 2명이 각각 4,000만 원, 1,000만 원을 갖고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지는 등 탈북자의 U턴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 만나 결혼한 처를 부모에게 소개한다며 함북 회령으로 밀입국했던 탈북자 부부가 이웃주민의 신고로 북한 보위부에 체포된 일이 있었다. 심지어 일부 탈북자는 두만강을 건너 국경 부근의 고향에서 설을 쇠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중 국경을 몰래 들락거리는 일이 쉬워졌다는 이야기다.
탈북자 U턴에는 북한의 유화적 태도의 영향도 크다. 탈북자 가족을 박해하던 정책에서 회유 정책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다수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번 돈을 북한 가족에게 송금하고 있다. 북한이 탈북자에 대한 포용정책을 계속한다면 한국에서 번 돈으로 ‘가족과 함께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북한 U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나올 수도 있다.

현재 국내 입국 탈북자 5천명 넘어
그렇다면 현재 탈북자 수는 얼마나 될까. 분단이후 남한으로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수가 5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들어 탈북자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고 지난 7월에는 탈북자 460명이 동시에 입국하는 사태도 발생함에 따라 북한이탈주민 대량입국에 따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가 발간한 ‘2003회계년도 통일부 결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분단이후 2003년 말까지 북한을 탈출,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수는 총 4천147명으로, 지난 89년 이전까지 입국한 사람은 607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꾸준히 늘어나 99년 148명, 2001년 583명, 2002년 1천139명, 2003년 1천281명 등으로 늘었다. 여기에다 지난해 들어 8월말까지 입국한 탈북자수가 1천399명에 달해 분단이후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수가 5천546명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2003년 말까지 입국한 탈북자 4천147명 가운데 남성은 2천377명(54%), 여성 2천33명(46%)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다. 그러나 지난 2002년과 2003년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각각 111명, 345명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최근 여성 탈북자의 입국이 크게 늘어 조만간 ‘여초현상’으로 역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03년 입국자 1천281명 가운데 지역별로는 함북 921명(71.9%), 함남 150명(11.7%), 평안도 81명(6.3%) 등이었고, 탈북후 출생자도 11명(0.9%)에 달했다. 또 입국자의 입국당시 연령은 30대가 447명(34.9%)로 가장 많았고, 20대345명(26.9%), 10대 이하 207명(16.2%), 40대 160명(12.5%), 50대 이상은 122명(9.5%) 등으로 20~30대 젊은층이 61.8%를 차지했다.
지난 9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8년동안 탈북자에게 지원된 예산은 총 762억 5천만원으로, 이중 정착금이 481억원으로 63%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보로금 31억5천만원, 주거지원 190억8천만원, 사립대공납급 15억1천만원, 학자금 2천만원, 직업훈련수당 8억7천만원 등이었다.

해외 체류 탈북자, 과연 얼마나 되나
탈북자 규모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어디에고 없다. 탈북은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탈북 후 중국이나 제3국에 머무르고 있는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불법 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노출을 꺼려, 철저히 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의 전체적 규모는 정부관계 기관, 한국의 NGO와 연구자들의 보고서와 중국과 국제기구의 발표내용 등에서 추정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탈북주민 지원 및 보호단체인 ‘좋은 벗들’은 현지 실태조사를 근거로 재중 북한 이탈주민의 숫자를 20~30만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정부 그리고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UNHCR)은 탈북자 전체 규모를 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와 NGO 간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탈북자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조사방법의 차이, 제약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 몽골 등에 머무르거나 경유하고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바 있는 민간 전문가들은 이들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방문, 현지 관계자들의 의견, 그리고 현지 국가들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탈북자의 전체적인 규모가 10만 정도라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특히 2003년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루드버스 UNHCR도 탈북자 전체 규모를 10만 여명으로 추산한 바 있다.
탈북자의 전체적인 규모를 추산할 수 있는 자료 중 하나는 송환 탈북자의 규모이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책 연구소가 동북 3성 국경도시를 실사한 후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당국이 북한으로 송환한 북한 이탈주민의 수는 1996년 589, 1997년 5,439명, 1998년 6,300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 미국의 난민위원회(USCR)은 1999년 이후 중국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2001년 봄 중국이 단속과 송환을 강화한 뒤 6월과 7월에 6,000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측이 집계한 탈북 송환자가 연간 6,000명에 이른다면, 한국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탈북자 전체 수자 1~3만 명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규모인 것이다.
탈북자들은 중국 이외에 러시아와 구 소련 연방지역, 몽골, 동남아시아 지역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체류지역이라기 보다는 한국행 또는 최종 정착지역을 위한 경유지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 지역의 경우, 북한 노무자들이 파견되어 있으며 이들이 근무지역을 이탈하여 탈북자 신세가 되고 있다. 북한 노무관리자는 자체적으로 이탈자 규모를 2,000여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그 외에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와 몽골 지역은 한국행을 위한 경유지, 대기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1,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향후 전망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전망은 탈북자들의 전체 규모와 이들의 선택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탈북자들의 전체 규모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의 재외공관 진입사태 이후 중국 당국의 단속 강화로 북한에서 국경을 넘는 주민들이 급속히 증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단속이 약화되고 탈북자 지원과 보호에 대한 국제적 여론이 형성되어, 한국 정부와 미국 등이 탈북자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출 경우 탈북 주민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이러한 예측은 탈북자 발생 요인 중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의 경제 사정이 호전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을 근거로 하고 있다.
미국 난민위원회(USCR)의 연례 세계 난민실태 조사보고서는 북한 내에서 유랑하는 주민이 10만 명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북한에 경제난 해결과 체제 변화가 없다면 탈북사태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탈북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북한 주민 자신의 의지이다. 철저한 사상 교육과 통제정책으로 북한 주민이 탈북을 결행한다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 등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가 북한에 더욱 많이 흘러 들어가면서 북한 주민들의 북한 및 한국에 대한 시각이 계속 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의 탈북자에 대한 시각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 규모는 탈북자 규모와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체류자, 그리고 이들의 한국행 희망 욕구 수준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탈북자들은 체류국가의 단속과 북한으로의 송환 때문에 자발적 귀환, 한국행, 그리고 현지 정착을 위한 적응력 제고의 세 가지 중에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이 장기 체류자로서 북한으로의 귀환은 선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지에 영구히 정착해 산다는 것은 당초부터 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의 선택은 직접적인 한국행과 한국행을 위한 제3국행이 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원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착 지원정책과 관련이 많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가 입국하면 신변보장은 물론이고 주택제공, 교육지원, 의료보호, 직업훈련, 취업지원을 해준다. 또 단독 입국을 기준으로 1사람에게 4,000만원 수준의 정착 지원금을 준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정착지원 제도와 한국의 자유로운 체제, 경제발전 상황은 탈북자들이 한국행을 원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국내 입국자에 대한 예상 규모는 앞서 지적한 대로 중국, 러시아 등지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 규모와 이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최근 국내 입국자의 대부분은 제3국 체류의 경험을 갖고 있다. 실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10만 여명의 탈북자 중 상당수는 한국으로의 이주를 원하고 있으나, 주재국 정부의 비협조와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제한적으로 입국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이 개선된다면 단기간에 대규모의 탈북자들이 국내로 유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국내 입국자의 상당수는 여권 위조와 밀항 등의 불법적 방법을 이용, 자력으로 입국하고 있다. 정부는 이같은 자력 입국자에 대해서도 수용을 거부할 수 없다. 제3국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의 생활은 여전히 대단히 열악한 상태이며 이들의 체류기간이 늘어날수록 자력입국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에 이들의 국내 입국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 상태에서 탈북자들의 국내 입국은 더 이상 북한 국경을 넘는 주민들이 없더라도 앞으로 4~5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북한 주민의 국경탈출이 계속된다면 이들의 국내 입국은 통일이 될 때까지, 아니면 남한 체제의 우수성이 소멸될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4년 이후 증가해 온 탈북자 규모는 2002년을 기점으로 연간 1000명을 넘어섰고 올 10월 말 현재 6047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탈북자 1만~2만 명 시대도 머지않았다. 정부가 탈북자 200여 명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추적하고 있다지만, 북한이 과거 동독과 같이 탈북자를 이용한 본격적인 대남 교란작전을 구사하려 한다면 상황은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 당국이나 국민이 안보의식을 확실히 해야 하고, 법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과연 현시점과 현재의 방식대로 국보법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탈북자 국정원서 특별관리 검토
'탈북자 간첩혐의 사건' 이후 탈북자들의 관리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요주의 탈북자'의 관리를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일반관리 대상자 가운데 '위장간첩이나 범죄 발생 등의 우려가 있는 자'로 파악되면 국가정보원의 특별관리 대상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탈북자들이 입국하면 사회정착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수료하고 특별관리 대상과 일반관리 대상으로 나눠진다. 경호가 필요한 테러 대상자나 특이 신분자 등의 '요주의 인물'은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국가정보원이 직접 보호, 관찰한다.
지금까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였던 이한영씨와 황장엽 전 북한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이 이에 해당됐다. 나머지는 일반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관할지역 경찰이 지정됐으며, 5년이 지나면 관리대상에서 제외된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탈북자 수가 매년 2배 가까이 급증하는 데 반해 인력과 예산부족 등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일반관리 대상의 경우 경찰관 1명이 많을 때는 40여 가구를 맡기도 한다"면서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이들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올해 말부터 지방정부가 맡는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체제경쟁의 우월성에서 비롯되는 관리책보다는 이들에 대한 정착과정의 문제를 고려한 대책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근식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살인이나 테러 혐의가 있는 사람의 경우 법률적으로는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돼 있는데 아직도 탈북자를 귀순영웅으로 간주해 엄밀한 신문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남한에 정착한 뒤 재입북해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정착과정의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탈북자 입국 정착지원의 허와 실
남한의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정성 모아야
한해 1천명을 넘어 2천명에 육박하는 탈북자가 국내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일방통행식의 지원만이 더는 능사가 아니며 이들이 정상적인 남한의 사회인으로 자리잡도록 도울 것이냐 하는 지혜와 정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나원 시설 턱업이 부족=1999년 6월부터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모두 경기도 안성지역 출신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받는다. 하나원에서 정착지원교육을 받으며 현지에서 취직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때문. 8주에 걸친 307시간의 사회적응교육이 하나원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하나원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대목은 문화적 충격을 해소하는 것으로 문화탐방, 구매체험, 봉사활동 등을 통해 문화적 이질감을 없애는 교육과정이다.
또 기초직업교육 및 훈련, 심리안정 및 정서순화 교육 등이 하나원에서 이뤄진다. 최근에는 역사교육 등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도 주력하고 있다. 이 곳을 다녀간 UN의 난민보호 관계자,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은 교육 프로그램이 조직적으로 구성돼 있다고 일단은 평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국내입국 탈북자를 수용하기에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작년 11월 건물을 증축, 동시에 300명, 연인원 2천명의 북한이탈주민 교육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의 탈북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감당하기 벅차다. 게다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도 어려움의 하나로 꼽힌다.
▲정착지원금 제 기능 발휘하도록 해야=월 최저임금액의 200배 범위 내에서 지원되는 지원금과 주택 임대에 필요한 주거지원금을 포함해 탈북자의 정착지원금은 1인 3천590만원, 2인 가족 4천555만원, 3인 가족 5천511만원, 4인 가족 6천466만원 등이다. 받는 탈북자 입장에선 늘 모자라겠지만 정부로서는 국내 빈민층에 대한 복지수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정착지원금의 대부분이 탈북자 본인의 국내입국비용이나 가족의 후속탈북을 추진하기 위한 비용으로 결과적으로 브로커의 주머니 채우기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정착지원금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또 정부는 탈북자의 교육기회 보장을 위해 각종 특례를 부여하고 있으나 탈북자들은 개인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입학하고 보자’식으로 입학한 다음 휴학으로 취업적령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따라 무조건 지원이 능사가 아니라 탈북자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도록 취업기회를 확대하고 스스로 먹고살려는 자활의지를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탈북자 수용 적극 나서야=탈북자들은 국민의 정부와 현정부가 대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해 탈북자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통계수치는 이 같은 탈북자의 불만이 근거 없음을 보여준다. 문민정부시절 100명을 넘기지 못했던 탈북자의 국내입국은 국민의 정부 들어 100명 단위를 넘겨 2002년에는 1천명 선을 돌파했고 올해에는 2천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탈북자 정착지원금도 김영삼 정부시절 671만원에 불과했지만 김대중 정부 들어서 외환위기로 인한 국내 경제불안에도 불구하고 4배 이상 인상한 2천757만원으로 증액했다. 주거지원 또한 15평 이하 임대보증금에서 25.7평 이하 임대보증금으로 올랐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고위층 탈북자에서 생계형 탈북자로 국내입국 양상이 변하고 있다”며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중국 등 북한과 수교한 나라에서 탈북자를 더욱 많이 데려오려면 조용한 물밑접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자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우리나라 국민은 대체로 탈북자들을 포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정부의 대북정책엔 다소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관련 설문조사의 주요 항목을 살펴본다.
▽입국은 환영하되 세금에는 부담감=‘탈북자가 한국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질문에는 ‘그렇다’(64.0%)는 응답이 ‘그렇지 않다’(34.2%)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여성(57.6%)보다는 남성(70.7%)이 탈북자들을 더 환영했으며 대체로 학력과 월평균 소득이 높을수록 탈북자에 대해 개방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의 68.3%, 블루칼라의 66.35%가 환영한다고 밝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농림수산업 종사자들도 ‘그렇다’(47.3%)와 ‘그렇지 않다’(46.3%)가 엇비슷하게 나타나 직업별 차이는 거의 없었다
탈북자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엔 ‘그렇지 않다’(49.2%)가 ‘그렇다’(48.9%)보다 약간 많았으나 오차의 한계(95%±3.1%포인트)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성별로는 차이를 보여 남성 응답자의 57.1%는 세금을 더 내겠다고 응답했으나 여성 응답자는 56.5%가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한다면=‘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해도 상관없는가’와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라도 상관없는가’를 묻는 설문엔 주부층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해도 상관없는지에 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52.2%가 ‘상관없다’고 응답해 ‘그렇지 않다’(39.6%)보다 많았다. 주부층은 51.9%가 ‘상관없지 않다’고 답변했다.
주부들은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라도 상관없는지를 묻는 설문에는 45.9%가 ‘상관없지 않다’, 43.2%가 ‘상관없다’고 밝혀 오차범위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탈북자 정책 평가=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대한 평가는 ‘잘못하고 있다’(43.3%)가 ‘잘하고 있다’(34.9%)보다 많았다. 연령별로는 20대와 30대의 50.3%와 51.0%가 각각 ‘잘못하고 있다’고 밝힌 반면 50대 이상은 29.8%만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해 젊은층이 더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트칼라와 학생층의 경우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29.5%와 28.2%에 불과했다.
▽탈북자가 적응 못하는 이유는=전체 응답자의 3분의 2인 67.0%가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연령별로 차이를 보였다. 20~50대 이상 모든 연령층이 공통적으로 ‘남북한 체제 차이’를 탈북자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탈북자 본인의 노력 부족’이 이유라는 지적에 대해선 50대 이상에서 20.4%가 동의한 반면 20대에선 8.3%만이 동의했다. 또 ‘한국 사회의 차별’이 탈북자 부적응의 이유라는 지적엔 20대 응답자의 34.7%가 동의했으나 50대 이상에선 9.5%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젊은층은 ‘체제의 차이’와 ‘한국 사회의 차별’ 등 구조적 이유를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50대 이상 장년층은 탈북자 개인의 노력 부족을 상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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