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마의 이유 있는 변신, 경마 선진국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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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마의 이유 있는 변신, 경마 선진국을 향하여
  • 장지선 기자
  • 승인 2010.05.20 10: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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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마장을 찾은 관람객 2,000만 명, 매출액은 7조 2,400억에 달해

한국마사회(KRA)에 따르면 지난해 경마장을 찾은 관람객은 약 2,000만 명에 달하며 이에 따른 매출액은 약 7조 2,40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에서 경마를 시행하는 120여 개국 중 경마선진국인 일본, 영국, 미국, 프랑스, 홍콩, 호주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규모이다. 그러나 한국경마는 세계 7위의 성장규모를 자랑하면서도 그간 대표적인 사행 산업으로 분류돼 강력한 규제를 받아왔다.
‘경마는 도박인가, 레저인가.’ 모든 대상이 그렇듯 목적에 따라 그 가치와 방향은 달라진다. 오직 베팅 자체에 목적을 두고 일확천금을 획득하기 위해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 전 재산을 경마에 올인해 돈과 인생 모두를 탕진한 사람들에게 경마는 당연히 ‘도박’이다. 하지만 주말 데이트를 즐기러 경마장을 찾는 연인들이나,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경마장을 찾는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관람하며 소액 베팅을 한다고 해서 ‘도박꾼’이라며 손가락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갬블산업으로 분류되는 경마나 경륜, 경정, 카지노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바둑, 골프, 주식 등 도박적 요소들이 매우 흔하다. 굳이 경마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도박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덫이 주위에 수없이 널려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 국민들은, 혹은 정부는 경마를 대표적인 사행산업으로 분류해 억압하고 외면해왔다.
최근 경마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도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음지에서 활동해오던 경마가 레저스포츠이자, 고부가가치 말(馬) 산업으로 인지되고 있다. 경마관계자들의 지속적인 홍보강화, 이미지 개선 등의 노력이 경마가 가지고 있는 산업적, 레저문화로서의 가치를 조금씩 부각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경마는 지금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

한국 경마의 시장성과 무한한 경제적 효용가치
흔히 경마라 하면 단순히 베팅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 경마는 경주마를 중심으로 이를 생산하고 육성시키는 1차 산업, 경마장과 목장건설 등의 2차 산업, 마권발매, 중개 등의 서비스업인 3차 산업, 그리고 4차 산업인 경마정보 제공, 인터넷 발매 등의 지식·정보업이 어우러진 복합 산업이다. 즉 말 산업이란 말의 생산, 육성, 유통단계에서부터 소비까지 모든 산업을 어우르는 말이다. 현재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말 산업의 가치를 진작부터 알아보고 국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여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

세계 최대 말 산업 국가인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말 사육두수 920만 두, 고용인구 140만 명, 말 산업 참여인구 460만 명으로, 이로 인한 경제기여효과는 1,015억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2005년 GDP 대비 0.81%에 해당하며, 경주마시장도 연간 매매 규모가 3조 원을 웃도는 것은 물론, 이중 32%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이러한 말 산업의 산업 유발효과는 미국의 영화산업 전체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한편 국내의 경우, 한국마사회가 지난 2009년 발표한 ‘국내외 말 산업 현황보고’에 따르면, 현재 말 생산 및 사육 농가는 1,300여 농가로 2,500여 두의 말을 사육 중이며, 연간 3,500여 두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경마산업만 보면 경마인구는 연간 2,000만 명, 서울과 부산, 제주 등 3개의 경마장, 경주용마는 7,000여 두로 산업규모는 약 4조 6,000억 원에 이른다. 또 승마산업의 경우 승마인구 2만여 명, 승마장 109개 소, 승용마 5,000여 두로 산업규모는 약 5,300억 원에 이른다.
현재 국내 말 산업의 수입대체 효과를 추정해 보면 국내 말 생산을 제외하고도 최근 5년간 약 650억 원에 이르고 있으며, 승용마로 활용되는 국내산 경주마의 수요확대를 감안하면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추가 수입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아울러 최근 신흥 경마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등으로 경주마를 수출 가능성도 고려할 경우 그 효과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마사회는 국내 경마시스템을 수출하기 위한 계획을 발 빠르게 진행 중이다.
21세기 신성장 원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경마의 시장성과 무한한 경제적 효용가치는 자유무역협정(FTA) 시대 국가 간 무역장벽이 허물어져 피폐해져가는 농촌을 되살릴 대안책으로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다이아몬드 1캐럿에 맞먹는 명마의 정액 한 방울

캐나다의 부호 테일러(E.P. Taylor)가 생산한 전설의 명마 ‘노더댄서(Northern Dancer, 1961~1990)’를 기억하는가. ‘명마의 정액 한 방울이 다이아몬드 1캐럿과 맞먹는다’는 말을 만들어낸 노더댄서는 씨수말로서의 전성기였던 1987년 종부료가 100만 달러, 한화 12억에을 호가했던 명마 중의 명마였다. 노더댄서는 왜소한 체구와는 달리 화려한 경주실력을 자랑하며 1963년부터 1964년까지 2년 동안 통산 18전 14승을 거두어 58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이후 뒷다리의 고질적인 문제로 더 이상 경주를 할 수 없게 되자 1965년부터 씨수말로서 제2의 인생을 살며 총 635두의 자손을 생산해낸다. 이 중 511두가 경주마가 되었고, 410두가 우승마였으며, 146두가 대상경주 우승마였다. 현재 영국산 경마용 말인 더러브레드(Throughbred)의 반수 이상이 노더댄서 혈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더댄서의 수많은 자손 중 20세기 최고의 씨수말로 평가받는 미국 오버브록 목장의 ‘스톰캣(Storm Cat, 1083~)’은 현존하는 씨수말 중 최고의 종부료를 자랑한다. 종부료가 가장 비쌌을 때 1회 50만 달러, 한화로 약 6억 원에 이르렀고, 그 해 종부료로 벌어들인 수익이 약 700억 원이 넘었다. 스톰캣은 씨수말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경매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아 십여 년 간 경매시장에서 그의 1세 자마들은 100만 달러 이상의 몸값을 기록했다. 수년간 북미 프리미어 씨수말로 군림해 온 스톰캣은 지난 2008년 26세의 나이로 은퇴 전까지 16년 간 1,250여 마리의 자마를 생산하였고, 수많은 자마가 특급 씨수말로 성장하는 등 그 부가가치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씨수말들은 짝짓기 시즌이 되면 전용기를 타고 신부 찾아 지구촌 삼만리를 하게 된다. 유명 씨수말들은 연간 200~300두의 엄선된 씨암말과 사랑을 나눈다. 이러한 씨수말들을 셔틀 스탤리온(Shuttle Stallion)이라 부르는데 이는 씨수말들이 마치 셔틀버스처럼 오가며 씨를 뿌린다 해서 생겨난 말이다.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이지만 경마산업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듯 돈으로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우수한 혈통과 뛰어난 성적을 거둔 명마들의 피를 대물림하는 종마산업은 엄청난 고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경마의 종주국 영국, 최대 말 산업 국가 미국

현대 경마의 종가(宗家)로 불리는 영국은 경마시행 규모면에서는 미국이나 호주에 뒤지고, 마권 매출 면에서도 일본과 미국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경마 종주국으로서의 전통과 위상은 타에 추종을 불허한다. 영국은 경마의 발생지이자 세계경마의 축이라 할 수 있으며, 현대 경마의 모든 개념과 용어는 오랜 전통을 가진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런던 북쪽 100㎞에 위치한 뉴마켓 목장은 연간 5,000~6,000여 두의 경주마를 생산해 전 세계에 널리 보급시키고 있으며, 연간 6,000여 개(평지)의 경주를 시행하여 연 입장객 약 600만 명, 연 매출액 약 20조 원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특히 매년 6월 첫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엡섬 더비’는 현대 경마의 효시가 된 경기로 이 기간 동안 영국은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엡섬 더비가 열리는 날이면 영국 국왕과 왕실가족을 비롯한 영국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환호하며 경마를 즐긴다. 마주는 엡섬 더비의 우승을 인생 최고의 영예로 여길 정도이며 우승마의 마구는 박물관에 보존된다. 왕실과 국민이 하나가 되는 화합과 축제의 장, 영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의 중심에는 ‘경마’가 있다.
경마의 종주국이 영국이라면 스포츠 및 대중 레저로서 경마가 가장 번성한 나라는 단연코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마권매출에 있어서만 일본에 이어 2위이나, 경주마 생산 및 총 경마상금, 총경주수 등의 측면에서는 모두 세계 최고의 위치를 자랑한다. 최근 미국 경마는 경기침체로 다소 부진한 양상을 띠고 있으나 경마장내 슬롯머신 운영 등 정부의 경마활성화 정책을 통하여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179개의 경마장이 있으며, 연간 경주는 5만여 개(평지)로 매출액은 약 17조 원에 달한다. 미국은 나라전체를 대표하는 경마 총괄기관이 없어, 각 주별로 주경마위원회가 경마규정을 두고 경마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1980년대 이후 미국 각 주정부에서 세수 증대를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경마장을 유치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각 주별로 자체적인 경마 홍보를 행하여 자국마의 수출과 관광산업으로의 연계를 꾀하고 있다.

한국 경마의 발전 모델, 일본 경마의 ‘성공전략’
한국 경마의 발전모델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경마는 질적인 면에서는 유럽 선진국 및 미국, 호주에 비해 중급에 속하고 있지만, 사업규모와 베팅 총 금액 면에서 보면 전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일본 전체에는 총 33개의 경마장이 있으며, 경주 수는 미국 다음으로 많고 매출액의 경우 약 40조 원에 달한다. 아시아에서 경마를 행하고 있는 국가로는 유일하게 경마 최고 등급에 속한 이웃나라 일본은 40여 년 전 지금의 한국과 비슷하게 경마의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다. ‘도박’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지금의 일본 경마시장이 자리 잡기까지는 크게 4가지로 압축되는 성공전략이 있었다.

째, 샤다이 목장의 창시자 ‘요시다 젠야’라는 경마를 산업으로 인지한 선각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마주이자 생산자였던 요시다 젠야는 일본을 경마대국으로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요시다 젠야는 ‘선데이사일런스’라는 명마를 일본으로 들여와 경주에 참여시켰고, 은퇴 무렵에는 종마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하여 일본산 명마를 생산, 세계무대로 진출시켰다. 둘째, 국민적 관심을 끌어올리는 경마스타의 창출을 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매번 꼴찌를 거듭하면서도 경기에 계속 도전하여 ‘희망과 용기를 전해 준 위대한 꼴찌’로 불리는 경주마 ‘하루우라라’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국민기수 ‘다케 유타카’를 꼽을 수 있는데 다케 유타카의 경우는 현재 이치로와 같은 유명 야구선수에 못지않은 부와 명예를 누릴 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셋째, 매스컴의 적극적인 경마홍보이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를 비롯해 후지, 니혼, 아사히 TV 등 방송사와 각종 신문들이 앞 다투어 경마대회 유치, 경마홍보에 힘씀으로써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켰음은 물론, 경마의 긍정적 이미지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넷째, 경마를 산업으로 육성시키려고 했던 일본 정부의 노력이 경마를 선진화로 이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는 훗카이도를 말 생산지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일본의 축산업을 일으켰으며, 혁신적인 경마상금 정책을 마련하여 마권매출액을 급증시켰다. 일본중앙경마회(JRA)는 이 상금을 기반으로 경주마 생산 확대에 따른 농촌 투자를 확대시키고, 각종 사회시설의 지원, 세금납부의 증액 등에 기여하여 경마를 국민의 사랑받는 대중레저로 키워냈다. 이 같은 노력이 원동력이 되어 일본 경마는 현재 세계 경마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고 있다.

경마 선진화를 위해 한국 경마가 가야할 길

한국 경마는 칠흑 같던 암흑기를 지나 경마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과도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경마가 전통과 자연스러운 일상문화로 여겨지는 외국과는 달리 어려운 국내 경제 여건 속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마 팬들의 과잉 베팅으로 각종 사회적 부작용이 발생함에 따라 아직까지 경마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사회전반에 팽배해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한국 경마산업의 규제강도는 330으로, 한국 다음으로 규제강도가 높은 프랑스의 규제강도 40에 비해 단연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규제정책은 마권원천세, 구매상한선, 장외규제, 인터넷베팅규제, 광고규제, 총량규제, 전자카드, 교차투표규제, 감독요원, 부담금징수 등 10여 가지에 이르고 있으며, 이 중 마권원천세를 제외한 9가지의 규제는 한국만이 유일하다.
더욱이 세계 각국에서 온라인베팅에 대한 점진적 확대 및 해외시장 개척에 주목하고 있는 추세 속에 디지털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실명제와 베팅금액의 원척전 규제를 100% 준수하고 있는 건전한 방식의 온라인베팅을 폐지한 것을 두고 경마산업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경마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향후 매출을 끌어올릴 매우 중요한 돌파구를 저버린 한국 경마의 크나큰 손실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선진국들은 앞 다투어 경마를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만은 유독 사감위법의 각종 규제로 ‘경마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모든 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일본 경마가 지금의 선진화를 이룬 배경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일본을 비롯한 경마 선진국들의 장점과 선진 경마시스템을 습득하여 경마를 사행산업이 아닌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발전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경마는 도박인가, 레저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자료협조 - 서울마주협회(www.sro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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