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역행하는 획일화된 교육방식에 학생들 회의감 느껴

이후 대자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견은 크게 엇갈렸다. 명문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수 사수도 불사하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그저 복에 겨워 별 짓을 다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비춰졌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젊은 지성이 바로 선 영웅이 되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 대학의 병폐에는 크게 공감했다는 부분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 커리큘럼과 창의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전형적인 교육방식에 병들어 가고 있는 대학은 대학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 지식을 매매하고 졸업장을 판매하는 단순한 공장으로 전락해버렸다.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빛을 잃어가고 있는 캠퍼스의 낭만. 이에 학생들은 오늘부터 대학을 거부하기로 했다.
경쟁만 부추기는 대학, 이젠 우리가 필요 없거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그런가하면 국내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S대학교에서도 제2의 예슬이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S대학 지리학과에 재학 중이던 채상원(20)씨. 그는 지난 3월27일 서울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사회과학대 등에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여 대학 사회를 비판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대학생들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가 적인 대자보에는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12년 동안 대학에 들어가면 ‘자유’라는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친구를 밝고 올라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학에 들어왔으나 이는 그저 헛된 환상에 불과했고, 무한 경쟁의 닫힌 공간인 대학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고 있다”며 현 대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아울러 그는 낡고 답답한 대학에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조용히 다짐한다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너희들은 진정한 혁명가야”
지난 3월30일 K대 김예슬씨의 자퇴가 처리됐다. 자퇴서 논란 이후 정확히 20일만이었다. K대 교무처 학적지원팀 관계자는 “김예슬 학생의 자퇴가 처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으며, 자퇴시기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논란의 주인공인 K대의 지지 열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지난 3월16일 K대 정경대학 후문에서는 김예슬씨를 응원하기 위한 작은 문화제가 개최됐다. 대자보는 치워진지 이미 오래지만 그녀의 뜻에 감동한 학생들이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날 응원 문화제에서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인디밴드의 공연과 한 줄씩 댓글을 달아 단체 대자보를 제작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학생들이 제작한 대자보 속 김예슬씨는 한마디로 혁명가였다. 대자보에는 “당신은 최고입니다”, “아무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언니가 해낸 거예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인 당신을 오늘부터 존경해요” 식의 댓글들이 이어졌고 문화제를 준비한 이들은 그녀의 선택을, 그리고 그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응원하기 위해 준비한 작은 공연이라고 말해 항간에 떠도는 사위 조장설에대 일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K대나, S대 등 명문대학생들이 쓴 대자보이기 때문에 주목받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가했다. 이른바 ‘지잡대’(지방 잡것 대학) 학생이 이러한 대자보를 작성했다면 지금과 같이 세간의 이슈가 되고 화제를 모을 수 있었겠냐는 것. 이것 또한 우리가 깊게 생각해보고 성찰해 봐야할 또 하나의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경쟁 과부하로 죽어가는 대학의 현실

사람들은 고한다.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은 바로 교육, 그리고 대학이라고.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대학은 많이 변모했다. 사전 상 대학의 정의는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기관으로서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해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배움터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학은 어떠한가. 우정도 낭만도 사제 간의 믿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 오로지 경쟁만을 부추기는 살벌한 전쟁터가 아니던가.
대학은 우후죽순 마구잡이로 생겨나고 그 속에는 급우보다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나 홀로 공부하는 얌체족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오래된 전통인 ‘시험족보’는 그 자취를 숨긴지 이미 오래다. 여기에 취업 잘되라고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학생들은 학점을 잘 주는 교수에게 후한 강의평가점수를 주는 일종의 상부상조 시스템 ‘학점인플레’현상도 대학의 병폐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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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몇 년 전까지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취업을 위한 준비기간이 되었다. 철학과 학생이든 경영학과든 국문학과이든 전공과는 별개로 다 토익 영어 공부만 하고, 죄다 공무원 공부만 하는 상황이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기자는 K양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적은 글귀 중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맴돌아서다.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꿈을 쫓아가야 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만난 젊음은 고통과 답답함을 넘어 참으로 슬프고도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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