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 신창목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 진단 및 소비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에서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분기별 소득과 부채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계부채 증가는 유동성 제약을 완화해 소비를 8,500억 원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즉, 빚을 내 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졌다 것. 하지만 부채 상환 부담도 늘어 결과적으로 소비를 1,400억 원 억제했다고 신 연구원은 설명했다. 이는 지난해 실질 민간소비 증가분인 11.6%(1조 2,4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가계부채 78.2%로 OECD 국가 비해 높은 수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개인부문의 금융부채는 빠른 속도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개인부문의 금융부채는 854.8조 원으로 2008년 말 802.3조 원에 비해 6.5% 증가했다. 2009년 1/4분기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었으나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확대됐다. 금융권 전체의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월 59.9%로 2008년 말에 비해 2.6%p 상승했다. 신 연구원은 2003년 신용카드 사태를 계기로 가계부채 증가율이 크게 하락했으나 2005년 이후부터 최근 금융위기까지 10%대의 높은 증가세를 수년간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과 신용카드 사태시기를 제외하고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개인처분가능소득 증가 속도를 능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0년~2009년 중 개인처분가능소득은 연평균 5.7% 증가한 데 반해 가계부채는 같은 기간 중 연평균 11.6% 증가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및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가계부채의 축소 조정이 진행 중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2008년 말 기준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의 비중이 78.2%로 OECD 국가 평균인 64.4%를 상회하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가계부채가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중 가계대출 금리 상승으로 가계의 이자지급부담도 가중됐다. 2010년 1월 말 기준 월 이자지급부담 추정액은 2.05조 원으로 2009년 6월말 1.82조 원에 비해 0.22조 원 증가했다. 신 연구원은 앞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될 경우 현재 고용 및 소득개선이 부진해 이자 부담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주택담보대출의 만기구조 및 취급방식의 변화 역시 가계부채 부실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 말 평균 약정만기는 13.8년으로 2008년 말의 14.3년에 비해 단축되고, 분할상환방식 대출 비중은 같은 기간 중 61.2%에서 57.7%로 하락했다. 변동금리대출 비중은 지속적으로 90%를 상회하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계부채 상환부담 소비 감소로 이어져
가계부채의 위험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가 커지면서 하반기 더블딥의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건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 제약 효과다. 소비가 위축될 경우 국내 경기 전반으로 파급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가계에 부족한 유동성을 공급해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는 반면, 채무상환부담을 가중시켜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신 연구원은 지난 1996년 1/4분기~2009년 4/4분기의 분기별 자료를 이용한 회귀분석 결과 유동성제약 완화에 의한 소비증대효과와 채무상환부담 증대에 따른 소비억제효과 모두가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분석했다. 여타의 조건이 불변일 때 실질금융부채가 1% 증가하면 민간소비가 약 0.35% 증가했으며 부채·소득 비율이 1% 상승하면 민간소비는 약 0.40%감소했다. 이를 기반으로 측정한 결과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억제효과가 소비증대효과보다 큰 것으로 신 연구원은 분석했다. 민간소비가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유동성제약 완화로 인해 약 0.85조 원 증가했지만 채무상환부담 증가로 인해 0.99조 원이 감소한 것.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소비억제효과가 소비증대효과를 상회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이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인한 소득부진이 채무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부실 위험 적지만 소비회복 저해요인이 더 우려
최근 수년간 가계부채가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가계부채의 질적 측면이 소폭 개선되고 있어 대규모 부실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신 연구원은 가계부채가 늘었다고 해서 당장 부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이 지난해 34.45%에 머물러 70%를 웃도는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며, 위험도가 높은 LTV 50% 이상 대출 비중도 줄어 대규모 부실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2009년 중 만기가 2년 미만인 가계대출 비중이 39.5%를 차지, 신 연구원은 차환에 실패한 다수의 차주가 담보자산 매각을 시도할 경우 자산가치의 급락 및 금융시장의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 연구원은 “가계부채의 만기구조를 장기화하고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높여 미리 부실위험을 줄여야 한다”며 “원리금 부담이 갑자기 커지지 않도록 대출금리 안정화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금융자산의 비중이 지나치게 낮으면 유동성 위기에 취약해 부실화 가능성이 증가하기 때문이 역모기지론 등 실물자산 유동화 제도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과다한 실물자산 수요를 억제함과 동시에 자산가치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선 부동산 가격의 급변동을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가계부채의 증가가 소비회복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가계부채의 증가는 가계에 부족한 유동성을 공급해 소비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채무상환부담을 가중시켜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에 신 수석연구원은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제약효과를 완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주택담보대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CD금리의 하향 안정화를 유도하고 CD 보다 금리의 움직임이 안정적인 코픽스(COFIX) 연동 대출 비중을 확대해야 하며 주택담보대출 외에도 코픽스 기준금리를 적용한 다른 대출상품도 확대하는 한편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큰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연동대출보다는 잔액기준 코픽스 연동 대출의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 및 고용상황 개선을 통해 가계의 안정적인 소득증대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1인당 국민소득 하락, 저축·투자도 줄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달러기준)이 2년 연속 1만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 GNI는 1.5% 증가했다.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급등과 경기침체 영향으로 경제 전반이 위축된 것으로 저축률과 투자율도 동반 후퇴한 것으로 나타나 성장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NI가 증가한 건 빚을 내 소비에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26일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발표한 ‘2009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은 -11.0%를 기록했다. 이는 2008년 증가율 -11.1%와 비슷한 수치다. 원화 기준으로 1인당 GNI 증가율은 3.3%로 1998년 -2.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김명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원/달러 환율이 15.8% 상승한 탓에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GNI는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금융위기에 따른 가계의 수입 감소 여파로 실질 교육비 지출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실질 교육비 지출액은 전년보다 0.1% 줄어 1998년 -2.3%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주류·담배의 실질 지출액은 전년보다 3.0% 감소하면서 1998년 -5.3% 이후 최대폭으로 줄었다. 의류·신발지출이 2.0% 줄었으며 음식·숙박과 오락·문화는 각각 1.8%와 1.6% 줄었다.
통신비 지출은 작년 0.5% 증가했지만, 증가율은 1980년 -20.4% 이후 2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의료·보건은 고령화와 정부의 지원 등으로 9.9% 증가하면서 비교적 큰 폭으로 늘었으며 교통비 지출은 3.6% 증가했다.
지난해 노동소득을 나타내는 피용자보수 증가율은 5.8%에서 3.3%로 둔화됐다. 반면 기업의 영업잉여는 3.8%에서 5.9%로 증가했고, 노동소득분배율은 61.0%에서 60.6%로 다소 하락했다. 환율이 올라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본 반면 근로자 등 서민들의 살림형편은 상대적으로 나빠진 것이다.
성장동력의 원천이 되는 저축과 투자는 동반 하락했다. 총 저축률은 30.0%로 2008년보다 0.5%포인트 하락하면서 1983년(28.9%) 이후 27년 만에 가장 낮았다. 총 투자율도 5.2%포인트 떨어진 25.8%를 기록해 1998년(25.2%)이후 11년 만에 최저치였다. 성장잠재력이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현재와 미래의 성장력을 나타내는 투자율과 저축률이 크게 하락한 것은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이 앞으로 크게 떨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김 국장은 “저축률이 떨어졌지만, 우리나라의 소득 수준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며, 투자율도 올해는 상당히 회복할 것으로 보여 미래 성장 잠재력을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신 수석연구원도 개인부문의 금융자산/부채 비율 개선 및 순금융자산이 증가하고 있어 안정적인 추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