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위한 폐지론과 '정의'를 위한 존치론 팽팽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온 국민의 관심을 끌 전망
인권 침해 논란을 빚어 온 사형제도에 대해 정치권이 이를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한 가운데 엽기적인 연쇄살인범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사형제 폐지 문제에 대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은 지난해 12월 9일 현행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야 의원 175명이 서명한 이 법안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이나 감형 없이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형무소에 구치하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폐지론이냐, 존치론이냐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형제 폐지 논란을 집중 분석했다.
사형제 폐지 논란 왜 치열한가
사형 제도에 관한 논쟁은 근본적으로 도덕적 문제로 효과 여부를 떠나 과연 사형 제도가 정당한가라는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형제도가 흉악한 강력 범죄의 예방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는 범죄에 대해 사회가 응분의 형벌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법부는 사형에 대해 '필요악'이라며 사실상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헌법재판소는 96년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제250조 등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사형은 현재로는 필요한 제도로 헌법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7 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형벌로서의 사형이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현실에 미뤄 지금 당장 이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면서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돼야 하고 시대상황이 변하면 재론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2000년 10월 '영웅파' 두목 이모(34)씨에 대해 사형을 확정하면서 "우리나라 실정과 국민의 도덕감정 등을 고려하면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국가가 형사정책으로 사형을 처벌로 규정했다고 해서 헌법위반이 라고 볼 수 없다"며 사형제에 대해 다시 합헌으로 판단했다.
대법은 '사형제 유효' 판결
최근에도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사형제도 폐지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신도 6명을 살해한 영생교 관계자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배교자 6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영생교 신도 라모(62)씨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또 라씨의 공범 김모(66)씨에게 무기징역, 조모(55)·정모(49·여)씨에게 각각 12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고 전제한 뒤 "양형의 조건이 되는 모든 사항을 철저히 심리한 뒤 비로소 사형의 선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혀 현행 사법체제 내에서는 사형제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 라씨는 교주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에서 범행을 시작했지만 대체로 뉘우치는 인상을 주고 있다"며 "그러나 범행계획이 치밀한 데다 수법이 잔혹하고 죄의식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등 극형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영생교를 이탈하거나 교주를 비방한다는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죄의식 없이 신도들을 살해하는데 가담한 것은 책임이 가볍지 않으므로 원심의 형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라씨 등은 1990년부터 2년 동안 영생교를 이탈하거나 교주를 비방한다는 이유로 신도 지모씨 등 6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신도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총재 조씨는 항소심에서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무죄, 범인도피 혐의는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상고심 중이던 지난 6월 구치소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존엄한 인권, 국가가 빼앗을 수 있나
반면 사형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일종의 '법에 의한 살인'인 사형 제도가 윤리적으로 타당한가를 문제삼고 있다. 형벌 특성상 잘못된 법집행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 과거 군사 정권 시절 사형 제도가 악용됐던 사례는 사형제도를 없애고 감형이 안되는 종신형 등 장기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형제 반대의 논리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전제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휴머니즘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개별 구성원의 생명을 부여한 적도 없는 데다 그 구성원의 존엄과 가치를 적극 보호해야 할 국가가 어떤 개인을 도저히 구제할 수 없다고 가정해 그의 생명을 빼앗는 권한을 갖는 게 과연 합당한가'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사법제도의 오판 위험성과 사형제의 설득력 없는 '범죄 예방 기능'이 추가된다. 사실 남북이 날카롭게 대치하는 분단 한국에서 사형은 진보당사건의 조봉암, '민족일보'사건의 조용수 등의 예에서처럼 사상범을 처리하거나 정적을 제거하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극단의 형벌'에서 검사 출신 변호사 스콧 터로는 "백인을 죽인 살인범은 흑인을 죽인 경우보다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3.5배나 높을" 정도로 사형선고에 있어 인종이나 성별 등이 개입돼 법의 '균형 잡힌 도덕성'을 의심케 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형제 존속을 떠받치는 또다른 근거인 '살인범죄 예방 기능'도 의심스럽다. 터로는 1976년 이후 미국의 살인사건 발생률은 사형제도가 없는 주보다 있는 주에서 더 높을뿐더러, 미국 전체 사형집행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텍사스주의 경우 전미 평균을 웃도는 살인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형 집행이 사실상 중지된 1998년 이후 이로 인해 더 많은 살인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통계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륜적 범죄가 발생하면 사형제 폐지론은 설 자리를 급격히 잃기 마련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극심한 분노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유족들에게는 괴로움과 상실감을 안긴 살인자가 '여전히 존재의 작은 기쁨을 누리고, 그의 삶이 피해자나 유족의 삶보다 나은 불합리한 사태'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자에게는 '보복'이나 '복수' '응징'의 단어가 적당해 보인다.
'사형집행 유예제' 도입하자
이런 가운데, 폐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는 사형제에 '집행유예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법조계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유학 또는 연수 경험이 있는 전국 52명의 법조인들로 구성된 중국법연구회는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사형집행유예제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형집행 유예제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사형을 선고하되 2년간 집행을 미뤄 이 기간동안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면 무기징역으로 형을 감경하는 제도다. 최근 중국이 한국인 마약사범에 대해 사형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회는 지난해 말 세미나를 갖고 사형 집행유예제 도입에 대한 공론화 작업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중국의 사형집행유예제도에 대한 고찰'이란 기조연설을 한 서울중앙지법 86단독 김영규 판사는 현행 형법에 규정돼 있는 사형제와 무기징역 사이에 중간형인 사형집행유예제도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형제를 유지하되 이 제도를 통해 잘못된 판결의 위험과 생명 경시라는 단점도 동시에 보완하자는 주장이다.
국내 법조인들에게조차 생소한 '사형집행유예제도'에 대한 개념을 확산시키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지만 이 주장이 사형제 유지론자들의 지지를 얻는다면 사형제 폐지론에 맞설 대안으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사형제 폐지법안은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 여야의원 151명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상태로, 사형제를 폐지하되 형법에 가석방이나 감형이 금지된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 참석자는 "사형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한 감정을 생각한다면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제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국법연구회는 국내 기업들의 활발한 중국 진출 및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 유학 또는 연수 경험이 있는 실무 법조인들이 2년 전에 만든 모임이다. 이들은 분기에 한번씩 세미나를 갖고 '중국법 논단'이라는 논문집을 발행하는 등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광주고검 이만희 검사(회장)와 정연호 변호사(간사)를 중심으로 오재성·최승록(이상 서울고법), 윤성근(서울중앙지법), 김선종(서울가정법원) 판사, 명동성 제주지검장, 구본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김현웅 법무부 법무심의관, 백영기(대구지검) 검사, 김종길(법무법인 태평양), 나승복(화우) 변호사, 이만수 변호사 등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사형제 폐지의 대안으로 '종신형' 도입을 추진키로 한 데 이어 실무 법조인들까지 사형제 폐지 논의에 뛰어들면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한층 본격화할 전망이다.
감정적 대응 자제, 진지한 논의 모색돼야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려는 정치권의 입법 노력은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온 국민의 관심을 끌 전망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사형제 폐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34.1%가 사형제도 폐지에 동의, 아직은 사형제도 유지 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는 국회의원 100명, 법관 113명, 검사 138명, 변호사 105명, 교정위원 100원, 의무관 55명, 언론인 250명, 시민사회단체 상근자 260명과 국민 1천64명 등 모두 2천20명을 상대로 실시됐다.
그러나 97년 12월30일 문민정부가 사형집행 대기자 23명에 대해 대규모 집행을 한 뒤에는 국민의 정부를 거쳐 지금까지 6년6개월 동안 단 한 건의 사형 집행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사형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던 시민, 사회, 종교단체의 노력과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의식한 판단의 결과로 풀이된다.
민변 장주영 변호사는 "한번 잘못된 법집행은 되돌릴 수 없는 사형이 너무 많은 범죄 처벌 조항에 규정돼 있다"며 "단기형을 보완하고 가석방이 안 되는 50년 형이라든가 종신형 등 장기형을 도입하는 식으로 제도를 보완한다면 사형 폐지도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형사 재판을 담당하는 일선 판사는 "흉악 범죄자에 대해 감정적 대응을 삼가는 게 법 정신"이라며 "사형제도 존폐 논의가 이제 시작됐는데 '유영철 사건'으로 논점이 흐려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징역 250년’ 한국서도 나온다
司改委 대대적 “형벌체계 손질”
형벌 규정이 대대적으로 손질될 전망이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는 법무부에 법원과 검찰, 변호사협회,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설치해 형법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범죄의 법정형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아 합리적 양형에 배치된다는 등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다음은 위원회에서 검토될 주요 형벌제도.
▽징역형=현재의 선고형량은 '사형-무기징역-최고 15년의 유기징역(가중 땐 25년)'의 순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감형 또는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과 유기징역의 형량을 높이는 방안이 연구된다. 현재는 무기징역수가 모범수로 10년을 보내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된다.
이는 사형제 폐지 논의 및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의 간격이 너무 크다'는 지적과 맥이 닿아 있다. 즉 절대적 종신형에 처할 경우 굳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도 범죄자를 사회와 영구히 격리할 수 있으며, 오심의 경우엔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기징역 형량을 높일 경우엔 외국처럼 '징역 40년', '징역 250년' 등의 형이 가능해진다.
▽벌금형=똑같은 죄를 범해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벌금 액수가 차별화되는 '일수(日數) 벌금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현재 음주운전의 경우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벌금이 달라지는 것처럼 소득 수준에 따라서도 벌금 액수가 달라진다.
또 징역 또는 금고형 이상에서만 가능한 집행유예를 벌금형에 대해서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연구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 등에 대해 벌금 납부를 미뤄주자는 취지. 아울러 벌금을 내지 않았을 때 교도소 노역장에 유치하는 대신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집행유예 및 선고유예=현재는 집행유예 기간에 범죄를 저지르면 또다시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는 1회에 한해서 다시 한번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연구된다.
선고유예의 경우엔 현재는 무조건 2년인 선고유예 기간을 '6개월 이상 2년 이하'로 세분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또 선고유예 대신 이와 비슷한 미국식 제도인 '판결연기' 등의 제도가 연구된다.
가령 현재는 '징역 1년, 선고유예 2년' 등의 형식으로 선고가 이뤄지지만 '판결연기'가 도입되면 형량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 기간 사회교육 등을 받도록 하고 형량을 판단하게 된다.
사형폐지 "외국의 경우 어떻게 되나"
118개國 폐지 78개國 유지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세계의 절반을 넘는 118개국으로 이 가운데 81개국은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했다. 지난해는 부탄, 사모아, 터키가 이에 가세했다. 또 전쟁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에 대해 폐지한 나라는 14개국이다. 이 밖에 과거 10년간 단 한 건의 사형집행이 없으며, 법률상 사형제도를 두고는 있지만 정책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사실상 폐지국'은 23개국이다. 1981년 사형제 폐지국가가 63개국이던 데 비해 많이 늘어난 셈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78개 나라나 영토에서 사형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4년 11월 현재 전체 50개 주 가운데 38개주가 법률상 사형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수도인 워싱턴DC를 비롯해 12개 주는 사형제도가 없다. 연방법원은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72년 인권단체 등의 요구로 사형제를 폐지했던 미국은 범죄소탕을 이유로 1976년 사형제도를 재도입했다. 그후 2004년 11월 22일 현재까지 총 944명이 사형집행됐다.
세계 전체로는 2003년 한 해 동안 28개국에서 1146명이 실제 사형이 집행됐으며, 이 중 2개 국가는 100명 이상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국제사면위원회는 실제 사형이 집행된 숫자는 훨씬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