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3월26일 밤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비 활동을 수행 중이던 1,200톤급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알 수 없는 충격을 받고 침몰했다. 각 방송사는 긴급속보를 통해 ‘천안함 선체 뒤쪽 스크루 부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발생했다’며 ‘엄청난 폭발 소리와 함께 엔진이 꺼졌고 선체 뒤쪽 바닥에 구멍이 뚫렸다. 전기가 나가고 뚫린 구멍을 통해 물이 계속 차오르면서 선미 쪽부터 가라앉기 시작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배가 침몰하자 104명의 승조원 중 상당수가 바다로 뛰어내렸다. 신고를 접수한 군과 경찰은 초계함과 경비정 등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벌였고, 사건 발생 3시간 후 58명의 구조자 명단과 함께 46명의 실종자 명단을 발표했다.
다음날인 27일 아침,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실종자 가족들은 애타는 마음을 안고 경기도 평택의 해군 제2함대 사령부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자 사령부는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제가 대신이라도 죽겠으니 제발 우리 아들만 살려주세요”라고 울부짖는 서대호(21) 하사의 어머니. 결혼식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겨둔 강준(36) 중사는 예비신부를 홀로 남겨두고 돌아오지 못했다.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에 참전 후 6년 가까이 이어진 공포심을 이겨내고 1년 전 천안함에 오른 박경수(30) 중사의 아내는 “남편이 지난 제2연평해전처럼 죽음의 문턱을 넘어 살아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해군 제2함대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숙소가 마련됐고 실종자 가족들은 함미 부분에 물이 차지 않았을 경우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군의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구조 소식을 기다렸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침몰 이틀이 지난 28일 오전 해군 해난구조대(SSU) 잠수사들이 구조작업을 위해 사고해역에 첫 입수를 했다. 군에서 발표한 실종자들의 생존가능 시간 69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들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새까맣게 타들어갔지만 기상 악화 등의 이유로 수색작업은 난항을 겪어왔다.
그날 오후 10시경 사고 장소에서 북쪽으로 180m 떨어진 지점에서 실종자들이 몰려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안함의 함미 부분이 발견됐다. 침몰 후 격류에 휩싸여 수km를 떠내려갔을 것이란 군의 관측과는 달리 최초 폭발지점에서 불과 18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 더욱이 함미를 발견한 것이 해군이 아니라 탐색·구조 작업을 지원하던 어선 3척 가운데 하나인 연성호인 것으로 알려져 군의 무성의한 수색작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실종자 가족들은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실종자들의 생존을 기원하며 “생존자들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전력투구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계속된 수색작업에도 불구하고 29일 “천안함의 함미를 찾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종자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해군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얼굴은 어두워져갔다.
특히 함미에 로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잠수사들이 함미의 표면을 망치로 강하게 두드리며 생존자 여부에 대한 확인을 시도했지만 내부에서는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고 밝혀 실종자 가족들을 더욱 애타게 했다.
또 날씨는 맑았지만 바다 속 조류가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들도 쉽게 잠수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자칫하면 구조대원들조차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면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샘 구조작업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를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위해 함미에 있는 굴뚝 부분의 갈라진 틈에 호스를 연결해 산소통 한 개 분량의 산소를 함미 내부에 투입한 것이 성과의 전부였다.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군전사 故한주호 준위, 바다에 잠들다

한 준위는 15년을 넘게 특수전수요원 양성 교관으로 근무하며 수백 명의 특수전수요원을 배출해낸 해군의 전설이었다. 호랑이 교관으로 훈련과 실전에서는 엄격한 한 준위였지만 후배들을 아끼고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인간미 넘치는 선배로 후배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왔다.
지난 2009년에는 53세의 나이로 실전경험을 쌓기 위해 청해부대 1진에 자원해 총 7차례에 걸쳐 해적을 퇴치하는 공을 세웠고, 같은 해 8월에는 노토스스캔호에 대한 해적공격 시 해적선에 직접 승선해 해적을 퇴치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평생 솔선수범을 몸으로 실천하던 그는 이번 천안함 침몰 실종자 탐색 작업에도 자원하여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차례나 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수색 작업을 지켜본 실종자 가족들은 이번 한 준위의 사고는 ‘예고된 인재’였다고 말했다. 수색 작업에 투입된 UDT 등 특수요원들의 장비 대부분이 80년대 것으로 밝혀진 것. 또한 잠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감압챔버가 사고현장에 단 한 대밖에 없는 것을 지적하며 안전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채 무리한 수색 작업을 강행한 군을 비판했다.
금양98호의 ‘이름 없는 영웅들’
오후 8시30분께 인천시 웅진군 대청도 남서쪽 48km 해상에서 선장 김재후(48) 등 선원 9명을 태운 99.48톤급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인근에서 항해 중이던 캄보디아 선전 1,472톤급 화물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천안함 수색 작전에 참여한 후 인천으로 회황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금영호와 충돌한 것으로 보이는 캄보디아 화물선은 충돌 후 도주하다가 인천 해경의 추적에 덜미를 잡혀 추궁 끝에 혐의를 시인했다.
금양호는 충청도 앞바다에서 주꾸미 잡이를 하던 중 군의 요청을 받고 바로 조업을 포기하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수색 작업에 동참할 경우 돈도 되지 않고 그물도 아예 못 쓰게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니냐, 가는 게 맞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현재 선원 故김종평(55)과 인도네시아 국정의 故람방 누르카오(36)의 시신은 발견돼 분향소에 안치된 상태지만 나머지 7명의 시신은 아직 행방불명이다. 더욱이 군은 “금양호 실종 선원들에 대한 수색 작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말해 실종 선원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또한 금양호의 침몰은 단순한 해양 사고로 처리돼 보상비도 보험금을 포함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나라를 위한 금양호 선원들의 값진 희생은 천안함 실종자 46명이나 한준호 준위에 못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의 빈소는 썰렁하다 못해 적막했고,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군과 해경은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정부 대책 역시 온통 천안함 쪽에만 몰려 ‘우리 사회는 죽음에도 차등을 두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침몰 8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故남기훈 상사

남 상사는 발견 당시 상의에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었으나 하의는 속옷차림으로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이 취침시간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실종자 대부분이 평소처럼 개인 일정에 따라 생활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생존자들의 구조 당시 해양경찰청 경비정이 장병들을 찍은 영상에서도 승조원 상당수가 내복이나 체육복 차림이어서 침몰 당시 평시상황으로 긴박한 전투 상태가 아니었다는데 의견이 좁혀지는 듯 했다.
그러나 군은 남 상사 시신 부검 결과 익사했을 때 관찰되는 코·입 주변의 거품 현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얼굴 위·아래턱뼈와 우측 팔 위쪽 부분이 부러져있었고, 좌측 팔 근육이 찢어져 있는 등 여러 곳에 찔리고 찢어진 상처가 발견돼 이미 폭발 당시 충격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승조원들이 어뢰 공격 등 비상상황에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당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남 상사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인명구조 및 수색 작업을 중단하기로 군과 협의했다. 실종자 가족 협의회 이정국 대표는 “일말의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수요원이 진입할 경우 희생이 우려돼 더 이상 선체 내부에 대한 진입을 요청치 않기로 했다”고 수색작업 중단 요청의 이유를 밝혔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실종자 가족들은 잇단 비보를 접하면서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이로써 천안함 침몰사건은 수중수색에서 인양작업으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천안함 생존자 기자회견 “각본에 의해 짜 맞춰진 듯”
그동안 격리 조치돼 있던 천안함 생존자들이 7일 오전 11시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누구보다도 생존자들과의 만남을 간절히 원했던 실종자 가족들은 오전 기자회견에 이어 잇따라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구조장병들을 배려해 이날 오후로 예정되어있던 실종자 가족들과 구조 장병들의 만남을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생존 장병 56명은 모두 환자복을 입고나왔으며, 얼굴에는 슬픔과 괴로움이 겹친 듯 심신이 모두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천안함 병기장인 오성탁 상사는 침몰사고 당시 상황과 관련하여 “‘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붕 떴고 정전이 됐다”며 “정신을 차려보니 암흑세계였고 아무 것도 안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어두워 안보였지만 발밑에 걸리는 게 있어 만져보니 출입문이 바닥에 있었다”며 배가 90도로 뒤집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외부 어뢰공격이었다면 필연적으로 수반됐어야 하는 물기둥, 화약 냄새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해 의문이 제기됐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침몰 원인으로 제시했던 천안함의 노후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일괄했다.

생존 장병들을 통해 사고 당시 상황 및 사고원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기대했던 가족들은 “생존자들의 답은 ‘못 들었다’거나 ‘없었다’ 뿐이었다”며 “사고 당시의 악몽 같은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체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이냐”라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기자회견에서 끝내 눈물을 보인 천안함의 최원일 함장은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세상이 천안함을 제발 있는 그대로 이해해줬으면 감사하겠다. 아직도 옆에 있는 듯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있다.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들 생각뿐이다”라고 말해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울지 마라.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생존 장병 39명과 실종자 가족 59명의 만남이 약속된 8일 오후 8시. 이들은 서로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아들, 내 남편이 입고 있던 군복과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장병들의 모습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잃어버린 아들의 얼굴을,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생존 장병들도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동거 동락하던 실종 전우 생각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리며 흐느꼈다.
한 때 자신의 아들을 버려둔 채 혼자만 살아 돌아온 생존 장병들이 한없이 밉기도 했던 가족들이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료를 남겨두고 살아남은 장병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겪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는 장병들을 부둥켜안고 “울지 마라. 괜찮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 내 아들 몫까지 씩씩하게 살아다오”라며 오열했다.
가족들은 실종된 아들과 남편이 평소 어떤 모습이었는지, 침몰 순간에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등 잃어버린 혈육의 마지막 자취를 생존 장병들을 통해 전해 들으며, 실종 장병들이 충분한 구조도움은 받았는지, 시스템의 문제나 억울한 부분은 없었는지 등 궁금증과 풀리지 않는 의혹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생존 장병들은 어머니들의 손을 부여잡고 실종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당시의 기억을 털어 놓으며 가족들을 위로하고, 일부 생존 장병들은 수첩을 꺼내들고 실종된 동료들이 사고 전 선내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설명했다. 100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아픔을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천안함 절단면 볼 때 외부 공격 가능성 높아

한편 국방부는 이날 오후 천안함 함미 승조원 식당 및 기관부 침실로 이어지는 통로, 기관부 침실, 탄약고 등에서 실종자 故서대호(21) 하사의 시신을 시작으로 다수의 실종자 시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임시숙소에 머물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은 착잡함을 억누르며 아들, 남편, 조카, 형제의 주검만이라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한 구 한 구 싸늘한 주검이 헬기편으로 속속 임시 안치소로 옮겨지자 실종자 가족들은 절망과 비통함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은 함미 인양 다음날인 16일까지 계속됐다. 현재 46명의 실종자 중 40명만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으며, 6명의 시신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수색 종료 시점까지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는 산화자로 처리하고 더 이상 추가 수색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접고 또 다른 희생을 우려해 마지막까지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동안 한명의 생존자라도 남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국민들의 가슴에도 안타까움의 눈물이 맺혔다.
국민 모두에게 참담함을 안겨 준 천안함 사태가 함미 인양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미국과 영국, 호주 등 외국 전문가까지 포함된 민·군 합동조사단은 천안함 함미를 평택2함대로 옮겨 정밀 촬영을 실시하는 등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 활동에 착수했다. 군은 첨단 장비를 갖추고 사고 해역을 중심으로 단서가 될 파편을 찾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현재 민·군합동조사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천안함 침몰은 내부 폭발보다는 외부 폭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잠정적인 결론이 내려진 상태이다. 이제 이를 입증하기 위해 더욱 과학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순직 장병들을 국가유공자로서 최대한 예우하고 유족 보상에도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로지 살아서 귀환하라’는 마지막 명령을 지키지 못한 대한의 자랑스러운 아들 46명을 잃은 그 충격과 슬픔에 대한민국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