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1심 무죄 선고로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6.2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한 전 총리의 무죄 선고는 어느 때보다 큰 파괴력을 가진다.
야권 단일후보 위상 강화하려는 포석
민주당은 이때를 틈 타,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당초부터 보복성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한명숙 바람’을 돌풍으로 키우기 위한 총공세에 나섰다. ‘한명숙 전 총리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지난 4월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전 총리와는 달리 유죄를 선고받은 사람들이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김준규 검찰총장과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한 전 총리는 전날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평화센터를 방문해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한 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만났다. 한 전 총리는 이 여사에게는 “김 전 대통령은 공작정치로 오랫동안 희생당하고도 보복정치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권 여사에게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국민들이 가슴속에 맺힌 한을 좀 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을 아우르는 야권 단일후보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포석인 듯 싶다.
한명숙-오세훈 지지율 엎치락 뒤치락
한나라당은 “한 전 총리의 무죄 선고와 그의 도덕성 문제는 별개”라며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한 전 총리의 도덕성 문제를 최대한 부각시켜 선거 정국을 정면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정병국 사무총장은 11일 “청빈하고 순수한 것으로 알려졌던 한 전 총리가 ‘골프를 못 친다’고 거짓말을 한 사실과 골프 리조트에서 공짜로 장기 투숙하는 부도덕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미경 대변인은 “재판을 통해 국민들이 한 전 총리의 실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만큼 한 전 총리의 지지율 변화는 ‘반짝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 전 총리의 가상대결에서 한 전 총리 지지율에 급격한 상승이 있어, 한나라당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 다음날인 10일 실시한 오세훈-한명숙-노회찬 3자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 오 시장이 47.2%를 차지했고 한 전 총리가 40.2%,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5.4%를 기록했다.
3월24일과 25일 이틀간 같은 내용과 방식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는 오 시장이 53.3%로 29.9%를 기록한 한 전 총리를 월등히 앞선 바 있다.
‘리서치 앤 리서치’의 10일 여론조사에서도 오세훈 서울시장과 야권의 한명숙 단일 후보가 격돌할 경우 오 시장이 46.7%의 지지를 얻어 42.2%를 얻는 것으로 나타난 한 전 총리를 4.5%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지난 9일 한 전 총리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직후 리서치뷰가 실시한 긴급 여론조사에서는 ‘당장 내일이 투표일이라면’ 한 전 총리에게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39.2%로 37.6%를 기록한 오 시장을 1.6% 포인트 앞섰다.
이에 오세훈 시장 측은 시간이 지나면 지지율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의연한 입장을 보였지만 출마 선언을 연기하는 등 선거전략을 새로 짜고 있는 움직임이다. 오 시장 캠프 측 이종현 대변인은 “한 전 총리의 재판결과에 따른 논란은 있었지만 4월11일 여론조사에선 다시 오 시장이 한 전 총리를 이기고 있다. 정치적 변수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지율이 안정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는 야권의 후보 단일화에 대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의 1심 무죄선고, 진실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인사청탁에 따른 금품수수 혐의로 검찰로부터 5년 구형을 받은 한 전 총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합의27부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사람됨을 ‘자기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본인의 기억과 다른 진술을 쉽게 할 수 있는 성격’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람됨을 토대로 곽 씨의 말을 의심했고, 한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에 반영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 몇 번으로 곽 씨의 인간 됨됨이를 알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비판했다.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해 12월 초다.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사장을 구속 기소한 상황에서 곽영욱 전 사장으로부터 “참여정부 시절 한명숙 전 총리에게 수만 달러를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전 총리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으며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표적수사를 중단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해 12월22일에 한 전 총리는 불구속 기소됐으며 올해 1~3월까지 3차례 공판준비기일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사상 처음으로 총리 공관 현장 검증이 결정됐으며 3월8일 열린 첫 공판에서 한 전 총리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검찰은 곽영욱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5만 달러가 든 봉투 2개를 건냈다고 공소장을 작성했지만, 곽 전 사장이 진술을 할 때마다 말을 바꿨고 “돈을 의자 위에 두고 왔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뇌물수수 적용이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 일으켰다.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과 청탁이 오고 갈 정도의 친분조차 없다는 입장을 줄곧 유지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와 함께 서초동 골프숍에서 1,000여 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사주는 등 친분이 두텁다고 반론을 폈다. 변호인단은 골프숍에 함께 간 점은 인정하면서도 고가의 선물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공판 과정에서에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 소유의 골프빌리지를 무료로 한달 여간 사용했다는 증거를 찾으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징역 5년·추징금 5만 달러를 구형했으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전례없는 불공정한 재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에 관한 진실이 어떤 완결편을 가져올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인지 정치 보복성 수사였는지, 진실공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