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관세화 협상의 의미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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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관세화 협상의 의미와 전망
  • 글/신혜영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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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설득하지 못한 쌀 관세화의 문제점은 뭔가
농업을 살릴 수 있는 비전과 종합적인 대책부재가 더 문제

쌀 시장의 전면 개방(관세화)을 10년 유예하는 대신 의무 수입량(88∼98년 연평균 소비량 대비)을 현행 4%에서 8%로 늘리고 수입쌀의 일정량을 시판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공개한 쌀협상 잠정 결과 내용이다. 이 결과에 대해 비록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에서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정황을 참작할 때 ‘얻을 것은 얻은’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면 개방유예’?비롯해 이번 협상의 여러 전제조건이 실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고려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쌀 수입 자체를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농민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정부의 쌀 관세화 협상의 의미와 문제점을 짚어봤다.



쌀협상 종료되다
정부가 2005년까지 쌀 관세화 유예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이를 일축하고 협상을 연내에 종료키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협상 종료 때까지 미국·인도 등 9개 협상국들과 외교채널을 통해 추가협의를 마친 뒤 최종 협상결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 관세화를 유예한다는 기존 방침에도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 협상단 고위 관계자는 “최종 협상결과를 반영한 이행계획서를 통보할 때까지 입장 차를 보이고 있는 일부 국가들과 외교채널을 통해 최대한 우리측 입장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것”이라며 “관세화 유예 협상 법적 시한인 연내에 협상을 끝내지 못하면 관세화 의무 발생 등 우리나라에 불리한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지난해 말까지 협상을 종료키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 협상단은 현재 관세화 유예를 10년간 추가 연장하는 대신 올해 4%인 의무수입물량(TRQ)을 기준연도(88∼90년) 쌀 평균 소비량의 8%로 늘리고, 의무수입물량 중 10%를 2005년에 시판한 뒤 수입쌀 시판비중을 단계적으로 30%까지 확대키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협상단은 미국을 상대로 의무수입물량을 7%대 후반으로 낮춰야 한다는 우리측 입장을 협상종료 직전까지 외교채널을 통해 계속 전달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반영시키기로 했다. 또 협상 막판에 자국산 쌀의 국내 시판을 요청하고 있는 인도·이집트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서도 설득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정부 협상단은 의무수입물량 증량 수준과 수입쌀 국가별 배분, 수입쌀 시판 비중 등의 핵심 쟁점들이 사실상 타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일부 국가가 이견을 드러내고 있는 수입쌀 입찰시기 등의 기술적인 문제는 3개월 정도인 WTO의 이행계획서 검증 기간에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타결…주요내용과 문제점
정부가 공개한 쌀 협상 결과만을 놓고 보면 쌀 관세화를 10년간 유예하는 조건에 어렵게 합의를 이뤄냈지만 우리가 치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2014년까지 국내 쌀 소비량의 10% 이상을 의무수입해야 하고, 당장 올부터 수입쌀이 가정의 식탁에 오르게 된다.
△타결 내용=최대 쟁점이던 의무수입물량(TRQ)은 1988~90년 평균소비량을 기준으로 올해 4%(20만5천t)에서 향후 10년간 8%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대로 간다면 2005년부터 10년간 쌀의 관세화(시장개방)를 유예하는 대신 저율관세(5%)로 도입해야 할 TRQ가 내년 22만t을 시작으로 매년 2만t씩 늘어 2014년에는 41만t까지 확대된다. 충북대 성진근 교수는 "국내 쌀소비량이 매년 1백만섬씩 감소하고 있으므로 2014년 41만t은 국내 쌀소비량의 14%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TRQ 가운데 '밥짓는 쌀'로 들여올 수입쌀의 비중은 올 10%(2만2천t)에서 2010년까지 30%(9만8천t)까지 연차적으로 확대된다. 이후부터는 30%로 고정되지만 전체 TRQ가 계속 커지기 때문에 2014년에는 밥짓는 쌀로만 12만3천t이 수입된다. 12만t은 2003년 쌀 捻廚??기준으로 할 때 약 1백48만명이 1년간 소비하는 규모다.
△문제점=협상팀은 이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상 수입쌀에 대한 차별대우가 금지돼 있고 대만도 2002년 관세화 유예협상에서 밥짓는 쌀로 30%의 민간무역을 허용한 전례가 있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또 WTO 농업협정서 5조(예외조치를 연장할 경우 추가 양보) 의무를 고려할 때 10년간 쌀개방을 연기하면서 TRQ를 현재 4%에서 8%를 넘지 않은 것은 나름대로 선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과 대만은 95년과 2003년에 관세화를 각각 6년, 1년간 유예하는 대가로 TRQ를 처음부터 8%까지 허용했다.
하지만 농민단체는 정부가 "연내 협상타결이 안되면 자동 관세화의무조항이 발효된다"며 스스로 규정하고 저자세 협상으로 일관해 국내 쌀시장의 특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내 쌀농가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고려할 때 소비자시판물량을 6년 안에 30%까지 확대하기로 허용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중앙대 임정빈 교수는 "정부로서도 불가항력적 상황이 있었겠지만 TRQ 8% 방어에 집착하다 보니 소비자시판물량에 대해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민의원' 강기갑, 무기한 단식 돌입
정부의 쌀협상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쌀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강기갑 의원은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본청 소회의실에서 단식에 돌입하기 전 기자회견을 갖고 "UR 협정문에 명시적 규정이 없음에도 정부는 '연내 타결을 못하면 자동 관세화 개방이 된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최악의 쌀협상 결과를 낳고 있다"며 "농민대표 50여 명의 광화문 앞 무기한 단식농성에 농민 의원으로서 뜻을 같이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전날 '쌀전면재협상 촉구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농민들의 분노와 절규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국회는 결의문에 대한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최악의 협상결과로 연내타결하기 전에 국회는 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김광원 농해수위 위원장은 허상만 농림부 장관에게 전달한 위원장 명의의 문서에서 쌀 관세화 유예 10년 연장을 위한 의무수입물량(TRQ) 증량을 8%이하(현재 4%)로 낮추고, 쌀 농가에 대한 소득보전대책, 쌀자급이 가능한 경지면적 확보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 의원측은 "김 위원장이 여야 76명이 제출한 결의안에서 핵심적 사안인 '전면재협상'과 '국회비준여부'를 뺀 결의안 내용을 제안해왔으나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의결정족수가 부족해 결국 두가지 결의안 다 논의되지 못했지만 농민들이 단식까지 하는데 농해수위 의원들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민노, "정부의 쌀협상 전면 무효"
또한 민주노동당의 김혜경 대표, 노회찬, 이영순 의원 등 지도부도 “쌀 협상 전면 무효와 재협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민주노동당은 성산대교, 천호대교, 한남대교, 성수대교 등지에서 “쌀 개방 반대, 식량주권 사수”를 외치는 고공시위를 전개했고 여성농민들은 광화문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내년까지 협상시한을 연장할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기자회견에서 "민족의 명운이 걸린 쌀 협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협상전략으로 협상을 망치더니 이제 협상이 난항에 빠져 스스로 정한 시한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가 되자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말마저 바꾸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인가?”라고 농림부를 강력 비판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이번 쌀 협상안은 우리 농업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는 최악의 협상이기에 정부의 잠정 협상안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민주노동당은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에 '조속한 국회 정상화와 민생현안 해결'을 강력 촉구했다.

'쌀개방' 흐름은 시대적 대세
미국-중국-태국 등 9개국과 벌여온 쌀 재협상이 관세화를 10년간 유예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여론은 시장개방에 직면한 쌀농가의 어려움과 막막함은 인정하지만 '쌀개방' 흐름을 부인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쌀 관세화 협상에 동행했던 김충실 경북대 교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농민들이 쌀개방 자체를 부인한다면 WTO의 룰(Rule)을 인정 안 하겠다는 건데 농민들도 그런 생각은 아니다"라며 "농민들의 경우 농업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점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런 불안이 이번 쌀협상으로 가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는 안정적으로 농업을 지속해갈 수 있는 비전과 함께 종합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농민들은 WTO는 인정하되 농업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제시하라는 것"이라며 "다른 것을 요구해도 대안이 안나오니까 협상에 대한 부분을 놓고 농민들이 강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협상결과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농업을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지금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고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부 농민들은 쌀시장 개방협상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김 교수의 지적대로 농민들이 불안해하는 근본적 이유는 쌀시장 개방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농가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정부의 정책이 쌀농가의 수입을 보전해주는 소극적 차원의 농업정책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년 동안 막대한 세금이 투자되고도 여전히 농민들은 빚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봐서라도 정부의 농가 정책은 전면적으로 재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과학화로 쌀개방 파고 넘어야
먼저 시급한 것은 농가의 체질 강화라는 지적이 많다. 쌀시장 개방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만큼 농가가 적극적으로 체질 개선을 위한 대안을 제시-요구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체질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개방화-세계화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이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농업개방이 불가피한 이상 그에 적응하는 방법은 농업을 기업화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토지소유의 제한을 풀고, 과학적 농법으로 도시민들의 기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고 유통체계를 현대화하면 수지맞는 농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이와 관련, 최근 한 월간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생명공학-유전공학 등을 활용해 농업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제고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한뿌리의 넝쿨에 수백개의 토마토가 열리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따라서 정부가 할 일은 "농업의 과학화를 적극 지원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국내 토종쌀과 낯선 외국쌀의 한판 경쟁

캘리포니아쌀, 중국 랴오닝성쌀, 태국 안남미 등 치열
내년 10월부터는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쌀 코너에 낯선 외국 쌀들이 국내 쌀과 나란히 진열된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저렴하고 다양한 수입쌀이 들어와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 외국 쌀 싸게 구입한다=외국 쌀은 지난해 총 20만5000t이 수입됐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쌀과자나 떡 등 가공용으로만 사용됐다. 시중에 판매된 적은 한번도 없다. 소비자들이 쌀이 수입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쌀협상에 10년 간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수입물량이 올 해 4%에서 10년 후 8%로 단계적으로 늘어난다.
특히 올해에 수입되는 쌀은 22만6000t 중 10% 정도가 할인점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판매된다. 수입쌀 중 소비자에게 시판되는 비중도 올해 10%에서 2010년에는 30%로 늘어난 다. 또 2014년에는 내년보다 5배가 많은 외국 쌀이 시중에 풀릴 전망이다. 물론 국제입찰 결과에 따라 수입쌀 가격이 달라지지만 80㎏ 기준으로 국산 쌀보다 1만~2만원 정도 싸게 유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농촌 구조조정 불가피=관세화 시기가 10년 이후로 연기돼 국내 농가는 전 면적인 쌀개방 압력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쇠고기나 오렌지 등 다른 농산물과의 연계 개방도 차단했고 북한 등 제3국으로 재고 쌀을 재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점도 협상 성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같은 협상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외국 쌀은 올 이후 매년 2만t 정도씩 늘어나며 국내 쌀시장을 빠르게 잠식할 것으로 예 상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번 협상에 따라 국내 쌀 총소득은 올해 6조7870억원에서 2014년에 4조1000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농지 10a당 평균 소득 역시 올해 67만8000원에서 10년 후면 53만5000원으로 줄어든다.

◇농민단체 반대시위 거세질 듯=지난해 12월 농촌경제연구원은 '쌀협상 결과와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관세화를 통해 쌀시장을 전면 개방할 경우 쌀 한 가마 가격은 최대 10만600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 며 "특히 2007년부터 발효되는 DDA 협상 결과에 따라 150%의 관세 상한선이 적용된다면 최악의 경우 쌀 가격은 가 마당 8만원까지 폭락할 수 있다" 고 설명했다.
전국농민총연맹은 같은날 성명서를 내놓고 "농민의 의견을 배제하고 정부가 쌀 협상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서는 안된다" 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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