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척박하기로 명성 높은 대형화물 및 특장차량 판매 분야에서 고객과 함께할 수 있는 감성마케팅으로 수십 차례 판매우수상을 수상하며, 마침내 판매 장인에 등극한 그의 성공비결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놀라웠다.

현재 인천은 국내에선 유일무이하게 전 세계 유수의 대형화물 및 특장차 판매망이 구축되어 있어 판매 전쟁이 치열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승용부터 화물까지 전 차종을 생산하는 세계유일의 기업인 현대자동차 내에서도 인천 트럭지점의 위상은 두말할 필요 없이 매우 높다. 그러한 일환으로 지난 2007년에는 당시로선 거액의 금액인 8,000억 원을 투자해 트라고를 개발·생산하여 고객들의 인지도를 상승시키는가 하면, 근래에는 동남아지역으로 현대자동차 특장차량 수출도 활성화 되어 전망이 밝다.
2007년 판매장인 등극, 2008년 지역판매왕 수상, 2009년 전국 판매왕 1등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한재필 차장은 동사형 인간에 가까운 편이다. 말보다는 실천이 앞서는 사람, 그래서 묵묵히 실천에 주력하다보니 마침내 대기만성을 이룬 케이스다. 지금이야 지점 연간목표에 1/4정도를 담당할 만큼 지점 내 최고 자리에 등극했지만, 한재필 차장도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형화물차판매’라는 핸디캡이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고객층이 넓어 비교적 판매하기 쉬운 승용차와는 달리 대형화물차의 경우 소수 고객을 위한 맞춤형 차량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판매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는 1년 365일내내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한재필 차장의 인생을 한방에 역전시켜준 사건이 발생했다. 때는 바야흐로 지난 1990년 10월. 입사 초기 건설경기 호황으로 모든 차종이 계약 후 1년 정도의 납기가 소요되었고, 주요 운수업체는 이미 선배들의 영역이었다. 이에 그는 주로 관심 밖의 차종인 유류운송트럭 탱크로리 기사쉼터로 방문하여 세일즈를 해야 했다. 그 날도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탱크로리 기사쉼터를 방문하던 날이었다. 길 건너 서 있던 대우 15톤 탱크로리가 주차브레이크 고장으로 운전자가 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그가 타고 있던 차량을 향해 돌진했고 결국엔 추돌사고로 이어졌다. 이후 소속운수회사와 사고수습을 하던 도중 회사대표와 교분을 쌓게 되었는데, 그 인연이 거래로까지 이어져 지금은 한재필 차장의 판매차종 중 무려 80%이상이 탱크로리차종이 되었다.
꿈을 꾸고, 도전하고, 성취감을 맘껏 느껴라
한재필 차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은 두 가지로 요약했다. 그것은 바로 ‘신용’과 ‘집중’이다. 대형화물차 판매는 차량판매만이 아닌 UP-BODY도 장착해야 하는 판매특성상 고객과의 납기 및 탱크 발주, 제반서류 등 복잡한 절차가 어우러지는 관계로 고객의 신뢰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분야이다. 이에 한재필 차장은 하면 탱크로리 전문가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도록 일에 집중하고, 고객이 신용하고 맡길 수 있도록 노력을 거듭해 왔다.
무엇보다 신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이념에는 어머니의 공이 컸다. 30대 후반 홀로되어 40년 가까이 어시장에서 생선판매에 종사하시던 어머니는 늘 그에게 신용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다. ‘장사 즉 영업을 하는 사람에겐 신용이 밑천이다’라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오늘에서야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된 한재필 차장은 앞으로도 고객의 물류 특성과 부합하는 차량을 통해 회사와 고객을 두루 만족시키고,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이뤄나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열린 귀로 좀 더 많이 듣고 많이 보아 카 세일즈맨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판매 명장에 도전하겠다는 굳은 포부를 밝혔다. 늘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가는 한재필 차장의 소망대로 ‘명예의 전당’에 탱크로리 한재필 이름을 올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