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학대하시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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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학대하시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 장지선 기자
  • 승인 2010.04.07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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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경시 풍조, 솜방망이 처벌 등이 만들어낸 동물학대 잔혹사

올해 초 공중파의 한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학대받은 개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지난 12월 초부터 일주일에 한번 꼴로, 송파구의 어느 골목에서 화상으로 피부가 녹아있거나 멀쩡한 발톱이 뽑혀있는 등 끔찍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학대 받은 개들이 발견됐다. 취재 중 속속들이 드러나는 피해 학대 실태들에 동물애호가를 비롯한 방송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학대범은 케이블 선으로 개의 입을 묶고, 라이터로 얼굴을 지지고, 펜치로 발톱을 뽑았다. 커터 칼로 몸에 상해를 입히고 이마저 시원치 않으면 커터 칼 조각들을 억지로 먹였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면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산채로 밖에 내다버렸다.
이에 제작진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극악무도한 개 연쇄 학대범을 잡기 위해 본격적인 추적에 나섰다. 주변 CCTV를 검색하고 잠복취재, 탐문조사를 통해 마침내 만난 학대범은 범행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구체적인 진술과 정황증거들 앞에 결국 자백을 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범죄를 연쇄적으로 저지른 범인에게 내려진 처벌은 고작 동물보호법상 최고형으로 지정되어있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최악의 동물학대 사건으로 꼽히는 이 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학대범의 잔인한 범행 내용에 한번, 그에게 내려진 처벌 수위에 또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동물학대에 대한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들끓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동물학대 동영상 속 학대방법 잔혹·끔찍

지난 12월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에 충격적인 제보가 들어왔다. 살아있는 햄스터를 믹서에 갈아 죽이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유포됐다는 것이다. 인터넷에 이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순식간에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네티즌들은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짧은 분량의 이 동영상에는 믹서 안의 흰색 햄스터가 믹서를 작동함과 동시에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갈가리 찢겨 사라지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소식을 접한 동물사랑실천협회는 동영상 게시자를 동물학대 혐의로 서울 동대문 경찰서에 고소했지만, 조사결과 영상의 출처가 어느 외국 사이트라는 것이 밝혀져 게시자에 대한 별다른 처벌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에 앞선 지난 9월에는 끈으로 몸을 묶은 고양이를 진돗개 두 마리가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내용이 담긴 일명 ‘고양이 학대’ 동영상이 한 개인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돼 큰 충격을 주었다. 진돗개 우리에 던져진 이 고양이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두 마리 개에게 여러 차례 번갈아 물어뜯기다 결국 처참하게 숨졌다. 문제의 이 동영상은 진돗개 관련 단체에 가입한 한 남성이 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려 인터넷에 일파만파 공개되었으며, 특히 게시물 아래에 ‘고양이를 던져주니 진돗개가 이게 웬 떡이야 한다. 성견이 되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견이 될 것’이라는 글을 덧붙여 네티즌들을 더욱 충격에 몰아넣었다. 이 남성은 동영상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해당 동영상을 삭제하고 동물학대방지연합 인터넷 게시판에 사과 글을 올렸지만, 고의적인 잔학행위에 단단히 화가 난 네티즌들은 이 남성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현재 약식재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이 남자는 결과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은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이밖에도 경북의 한 남성이 살아있는 고양이에게 휘발유를 부은 뒤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으며, 서울의 한 가정집에 살던 진돗개 강아지에게 이웃 남자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한쪽 눈을 실명케 한 사건, 철없는 한 중학생이 강아지를 냉동실에 넣었다 꺼냈다 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자랑스럽게 올린 사건이 있었다. 더욱이 이 학생은 “꺼낼 때 털도 차갑고 발바닥도 차갑고 혀도 차갑고 저한테 안기고 막 그러는 게 너무 좋다”고 말해 청소년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동물학대에 관한 교육이 시급한 실정임을 나타냈다.

'멧돼지 사냥‘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공중파 프로그램

동물학대 논란의 정점을 찍은 사건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난 연말 공중파의 한 쇼프로그램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멧돼지를 잡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부터이다. 멧돼지는 최근 몇 년 새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 인간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이에 환경부는 멧돼지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포획 사실을 결정하고 추정 개체수의 50%인 2만 마리를 포획하여 죽일 수 있도록 포획마리수를 대폭 늘렸다. 멧돼지뿐만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에서는 유해야생동물피해방지단을 운영하여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또 수렵인 들을 동원하여 포획하고 사살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영 버라이어티 오락 프로그램에서 조차 사냥을 한다고 난리를 쳐댔으니 엎친 데 덮친 격,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격으로 동물 애호가들과 많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실제 죽음과 연결되는 불편한 사안을 오락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생태계가 파괴될 만큼 개체수가 늘어나고 그 피해가 인간에게 직결되고 있다면, 분명 해결책이 제시 돼야 하지만 그것이 무분별한 사냥으로 전개될 경우 사람들의 의식 속에 고정관념화 될 수 있다는 점을 방송국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생명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멧돼지 사냥에서 멧돼지 축출로 방향을 바꿨지만 사실상 방송 4주 만에 폐지되는 결과를 맞았다.
또한 경인년 호랑이해를 맞아 노원구에서 주최한 ‘동물의 왕국 호랑이 특별기획전’에서는 300여 점의 호랑이 진품박제와 모형 등과 함께 생후 8개월 된 호랑이 2마리를 투명한 아크릴 상자에 넣어 관찰할 수 있는 체험코너가 운영돼 시민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이는 동물학대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의식수준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정부나 사법부 등의 인식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벌금 상향조정에도 불구하고 처벌 수준은 똑같아
1988년 올림픽이 개최되고 대한민국이 외국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개고기를 먹는 민족으로 외국동물단체들로 많은 비난을 받기 시작하자, 우리나라도 1991년에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으로 1991년에 만들어진 동물보호법은 91년 이후 동물보호법으로 처벌된 사례가 10건도 안될 정도로 법조항만 있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한 선언적인 의미만 담고 있었다. 이후 동물단체들의 여러 차례 개정 요구에 힘입어 2006년 개정을 마지막으로 학대동물의 피난조치권, 금지동물실험의 신설, 동물의 운송 및 도살 조항 마련, 동물학대 벌금 상향조정 등 중요하고 핵심적인 성과를 이뤄냈지만, 동물보호단체가 이루고자 하는 중요한 사항들이 보다 더 반영되지 못함으로써 현재 많은 단체들이 동물보호법 재개정을 과제로 삼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벌금이 500만 원까지 상향됐음에도 불구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동물학대를 저지른 많은 동물학대범들 중 현재 최고형을 받은 학대범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라며 “지금까지 적발된 동물학대 사건들은 대부분 20~50만 원선의 벌금형이 내려졌고, 지난해 동물학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100만 원, 300만 원으로 강력해졌지만 이러한 판결을 받은 몇몇 학대범들 조차 결과에 불복하고 있는 상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강력해진 법조항에도 불구하고 판례자체가 미미한 까닭에 동물학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동물학대를 부추긴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도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우선적으로 동물 학대 처벌법을 강화하여 억지로라도 국민의 의식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에는 일치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법 적용 시 최고형을 적용하고 다른 동물 복지 선진국들처럼 법을 개정해 징역형도 추가하라는 것이다.
서양의 경우는 동물학대에 대한 다양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해, 최고 징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강력한 법조항을 내세워 동물학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6주된 강아지를 총으로 사살한 후 가죽을 벗긴 20대 여성에게 징역 5년의 중형과 벌금 500달러를 부과했으며, 폴란드에서는 임신한 개를 굶겨 죽인 여교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또 영국에서는 자신의 애완견을 살찌게 놔둔 남성과 애완견을 알코올중독으로 만든 주인에게 각각 10년간 접근금지령, 1년간 동물사육금지 판결을 내렸다. 이는 단순히 동물을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것뿐만이 아닌 동물에게 적절하지 못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자체를 동물학대로 간주하고 엄격하게 처벌한 사례이다.

동물학대 근절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강력한 법 개정 요구
동물학대 적발 건수는 발생횟수정도를 예상하여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동물학대는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물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대변할 수 없기에 그러하다. 또한 이웃의 동물학대를 적극적으로 신고하려는 시민의식이 부족하고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꺼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소유의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에 동물보호법 상 규제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인 통념 상 동물학대로 볼 수 있는 경우는 한 해 1,000여 건에 달하는데 비해 정작 신고 되는 것은 한 해 20여 건 이내이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박소연 대표는 “동물학대를 제보한 시민들도 막상 법적인 증언을 요구할 때 물러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현행법은 학대자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소유권이 주인에게 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피학대동물을 완전하게 구호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동물 활동가들은 학대자를 신고하지 못하고 돈을 주고 사 오거나, 몰래 훔쳐오는 사례도 빈번하다.
현재 동물학대 근절을 위해서는 교육과 강력한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한 상태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생명사랑교육은 꼭 동물의 관점에서가 아니더라도 인성교육에 있어 기본적이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동물학대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폭력적인 행위도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성범죄나 살인 등 끔찍한 연쇄범들은 어려서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다는 외국의 보고도 있듯이 생명교육과 인간성의 문제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이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동물을 구호할 수 있는 압수권, 영구격리조치, 징역, 보호감호제도 등의 법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법이 아무리 강력하게 개정된다 하더라도 이를 담당하는 사법부의 동물보호의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벌금을 외국의 수준과 같이 상향조정하더라도 학대자를 온정적으로 봐 주거나, 동물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의식이 팽배한다면 항상 같은 결과만 반복될 것이다.
더불어 동물학대를 폭력적인 학대만으로 정의하지 말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행위나, 질병을 방치하는 행위, 적절한 먹이나 식수를 공급하지 않는 행위, 자연적인 습성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지 않는 등의 행위도 동물학대로 포함돼야 할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말했다.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동물학대를 동물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 사회, 동물학대를 근절해 나가려는 의지가 있는 성숙한 시민사회로의 도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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