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르는 ‘시일야방성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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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르는 ‘시일야방성대곡’
  • 편집국
  • 승인 2016.12.07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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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 사태,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

‘저 개, 돼지보다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00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1905년 횡성신문에 실린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다. 장지연 선생은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잃고 통분을 못 이겨 이 같은 논설을 썼다.

   
 
최근 성균관대 인문과학캠퍼스 한 외벽에는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오천만 꿈 밖에 어찌하여 비선 실세 개입이 사실로 나타났는가. 이 진실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조짐인즉, 그렇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본 뜻이 어디에 있었던가.…국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고 권력에 의해 그것을 뒤흔드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아예 민주주의 형식 일반을 거부하는 이 권력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한단 말이냐?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엎고 국민들을 기만하며 목을 조르는 박근혜 정부는 필시 하야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장지연 선생의 동명의 논설을 패러디한 것으로 총 전지 7장 분량이다.
시국이 어지럽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고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이 올라있다. 매주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으며 매일 같이 박근혜-최순실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정권의 임기 말은 늘 소란스러웠다. 이승만 前 대통령은 장기적이고 폭압적인 독재를 휘두르다 4.19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고, 미국으로 망명해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前 대통령은 가장 신임하던 부하의 총탄을 맞고 임기 중 서거했다. 그나마 ‘놀랄 만한 경제성장’이라는 성과 덕분에 ‘유능했던 독재자’라는 역설적인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12.12사태라는 또 다른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소위 ‘신군부’의 최후도 그리 훈훈하지 못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5.18 광주학살의 원흉이자,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한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박탈당한 채 옥살이까지 했다.
민주정부의 초입(初入)으로 분류되는 김영삼 前 대통령의 문민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김 前 대통령은 70~80년대를 대표하는 민주인사이자, 독재에 항거한 혁명가였다. 그러나 그는 1990년 ‘3당 야합’으로 대권을 잡았다. 이는 다분히 국민을 볼모로 한 밀실정치였음에 틀림없다. 임기 초 9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각종 개혁정책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민주정부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드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잇따른 인사실패와 국정운영 미숙으로 경제를 파탄냈고,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환란으로 불리는 ‘IMF사태’를 불러왔다. 역사는 김 前 대통령 정권을 ‘문민독재’라는 신조어로 요약했다. 그리고 그 여파와 후유증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형편이다.

   
▲ 정권의 임기 말은 늘 소란스러웠다. 이승만 前 대통령은 장기적이고 폭압적인 독재를 휘두르다 4.19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났고, 미국으로 망명해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前 대통령은 가장 신임하던 부하의 총탄을 맞고 임기 중 서거했다. 그나마 ‘놀랄 만한 경제성장’이라는 성과 덕분에 ‘유능했던 독재자’라는 역설적인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다.
민주정부 10년이라 칭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어떠했던가.
김대중 前 대통령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노벨평화상까지 거머쥐었다. 평생의 헌신이자 업적이었던 진정한 민주화를 이뤄냈고, 대북화해정책인 ‘햇볕정책’을 통해 일촉즉발의 남북대결구도를 재편했다. 개성에 남북합작의 공단이 들어섰고,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정부의 말로 역시 쓸쓸했다. 김 前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고, 남북정상회담 조율과정에서 이뤄진 대북송금문제가 불거지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의 자금줄이 됐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 후 우리 현대 정치사의 분기점이라 할 만한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등장했다. 스스로를 ‘구시대 정치세력의 막차’로 지칭하며 등장한 후 권위주의 타파와 ‘3김 정치’로 축약되는 1인 보스정치의 종식을 선언했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자본권력을 비롯해 언론권력, 검찰권력, 수구정치권력 등 해방 이후 이 땅을 지배해 왔던 수많은 토착 기득권 세력과의 외로운 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탄핵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이를 돌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국민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로 역시 비극적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측근과 가족의 비리연루 혐의가 불거졌고, 유사 이래 가장 도덕적인 정부를 표방했던 참여정부의 폐부를 찔렀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노 前 대통령의 서거 이후 그의 고향이자 빈소가 세워졌던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던 400여 만 명의 추모객들이었다.
노 前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를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지세력은 그의 서거 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봉하마을에 조성된 추모공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한편에서는 사회양극화의 주범이자, 정권재창출을 이뤄내지 못한 무능한 정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노 前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 파란만장한 현대 정치를 되짚어 보며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몇 가지 지점이 있다.
우선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정체되고 부패한 권력에 대한 처단은 분명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또한 그 처단의 주체는 또 다른 권력이 아닌 국민 그 자체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킨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봉기에서 시작된 4.19혁명이었다. 18년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박정희 前 대통령의 서거사건의 저격범은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총구를 박 前 대통령을 향해 겨누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79년 10월을 달군 부마항쟁의 열기였으며, 그 중심은 단연 독재와 폭압에 분노한 국민들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노 前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진행 중이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를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지세력은 그의 서거 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봉하마을에 조성된 추모공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 前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옥에 가둔 것은 김영삼 정권이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군부독재와 부정축재 그리고 5.18광주학살에 대한 단죄를 갈망하는 범국민적 열망이 있었다.
그 후에 이뤄진 정권심판은 조금 특이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김대중,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 역시 준엄한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측근과 가족들이 검찰조사를 받았고, 일부는 감옥에 가야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심판이 국민의 정서에 반(反)하는 정치검찰 등 사법권력의 치졸한 복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만약 김대중 前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가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면, 정치적 적자(嫡子)라 할 수 있는 참여정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참여정부가 보수세력들이 공격하는 것처럼 무능하고 부정한 세력에 불과했다면, 그가 탄핵위기에 몰렸을 때 수백만에 이르는 촛불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의 서거 이후 400여만 명의 추모객과 이 시간에도 봉하마을을 찾고 있는 추모객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정권심판’이 꼭 처단이나 단죄의 형태로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불행했던 현재 정치사에서 단죄 받아야 할 정치 권력자들이 더 많았을 뿐이었다. 정권심판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민중항쟁이나 촛불 등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때론 저조한 투표율 등 침묵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항쟁이 됐든 촛불이든 권력자를 향한 원망으로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 또 한 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 몰렸을 때 100만 명이 넘는 촛불시민들이 그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점이 이를 대변해 준다.
숱한 비리의혹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제대통령을 자임하며 대통령선거 사상 최대의 득표 차이로 정권을 차지한 이명박 정부도 심판대에 올랐었다. 그 첫 심판대가 지난 4.11총선이었고 그 당시 매우 복잡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통령 중심제의 국가에서 현 정권의 실정(失政)은 곧 의회에서 집권여당의 의석수와 직결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어긋난 탓이다.
사실 대선 때부터 각종 게이트로 몸살을 앓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서도 정부출범 100여 일도 채 되지 않았던 2008년 5월 무렵부터 레임덕에 시달렸다고 볼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4대강사업 반대, 세종시 수정안 무산, 한미FTA반대 집회, 최근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 반대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는 굵직한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범국민적 저항에 시달려 왔다. 이미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불거진 이 대통령 개인과 가족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비리의혹이 정권의 도덕성을 일찌감치 무너뜨렸다. 이와 함께 이른바 정권실세의 각종 게이트 연루의혹도 끊임없이 쏟아졌다.
정국도 천안함 폭침 사건,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저축은행비리사건,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공격사건, UAE원전수주 이면계약 의혹, 내곡동 사저 문제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각종 사건사고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독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으나 지금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그리고 현 박근혜 정부가 심판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심판대는 그 여느 때와는 대조적이다. 민심을 잃었다. ‘’대통령 하야’, ‘대통령 퇴진’이란 푯말을 든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순실 문건파문에서 시작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국정 농단한 최순실, 한 나라의 정책, 안보, 경제, 외교, 조직개편까지 모두 최순실이 개입되었고 그 중심엔 박근혜 대통령이 있었다. 수십 년 간 이들이 행해왔던 모든 일들이 하나 둘 파헤쳐질 때마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꼭두각시 대통령, 최순실 아바타, 갖가지 수식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서 박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774억 원 기금 모금 관련 첫 지시부터 수시로 상황을 보고한 뒤 박 대통령이 추가 지시를 내린 구체적인 사항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포스코, KT 등 민간 기업 임원에 특정인을 내려 보내라고 지시한 내용도 자세하게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안 전 수석의 불법 행위 대부분이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걸 보여준다. 검찰은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대통령을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기 말까지 1년. 불통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루아침에 5%란 어처구니없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말았다.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독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으나 지금은 사이비 종교에 빠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대한민국 한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박근계 정권 심판론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발 빠르게(?) 조사가 진행 중이며 속속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 사태를 겪고 있는 지금,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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