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먹거리 비상, 식품안전 관리 강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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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먹거리 비상, 식품안전 관리 강화 시급하다
  • 글_이현지 기자
  • 승인 2008.05.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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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먹거리 이물질 소동… 소비자들 ‘강력 응징’ 분통

   

▲ 보건복지가족부와 식약청이 지난 3월 25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내놓은 강력한 식품안전 관리강화 대책이 눈길을 끈다.

생쥐머리 새우깡’ 파문으로 촉발된 식품 이물질 파동이 식품업체들의 안전불감증과 식약청의 관리부실, 그리고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까지 한꺼번에 겹치면서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노래방 새우깡의 ‘생쥐머리’사건을 시작으로 즉석밥에서 곰팡이, 참치에서 커터칼, 컵라면에서 애벌레, 녹차에서 녹조류, 쌀과자의 실리콘벨트 조각 등 이물질 소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와 식약청이 지난 3월 25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내놓은 강력한 식품안전 관리강화 대책이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처럼 반복되는 식품 이물질 파동 속에서도 안일한 대처로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식품행정당국의 책임도 함께 분명히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소비자신고센터 설치, 6월엔 식품이력추적제
복건복지가족부는 최근 ‘새우깡 이물 검출’을 계기로 대통령 업무보고의 긴급 현안과제로 발표했다.
복지부는 잇단 식품안전사고와 관련해 위해식품을 상습적으로 제조하거나 이를 은폐하려 한 영업자는 영업장 폐쇄 등 강력한 행정조치 등을 통해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식약청에 ‘소비자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소비자가 업체에 불만신고(클레임)를 제기하면 식약청에 이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한 위해발생 우려가 있는 신고를 접수할 경우, 즉시 언론에 공표하고 유통·판매업자에 대한 판매중지 등 신속경보를 발령, 긴급조사를 실시해 위해우려가 있는 때에는 영업장 폐쇄, 긴급 회수명령 등 행정적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오는 6월 20일부터는 위해식품의 원인규명, 신속 회수 등을 위하여 식품 제조·가공, 판매단계의 정보를 관리하는 식품이력추적관리제도를 실시한다. 특히 고의, 상습적인 식품위해사범에 대해서는 영업장 폐쇄, 형량하한제를 강화하고 부당이득환수제를 도입키로 했다. 동일 식품 섭취로 다수인에게 피해 발생시 1인 또는 다수가 대표가 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식품 집단소송제’도 도입된다. 아울러 사전예방적 식품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제도를 확대하고, 중소업체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HACCP 모델을 개발·보급키로 했다.

식약청도 사태 책임져야…대책도 실효성 논란
하지만 그동안 식품안전을 맡아온 식약청의 최근 행보를 지켜보는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안전불감증에 빠진 식품업체도 문제지만,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손 놓고 있던 식약청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번에 복지부가 내놓은 식품사고 시 ‘신속 회수 등급제’가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반응이다.
이번 등급제에 따르면 위해정도에 따라 회수등급을 3등급으로 분류하고, 등급에 따라 회수기간 등 관리체계를 차등화하고 있다.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인 미국의 FDA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Class Ⅰ(심각한 위해)으로 분류되면 위해인지 3일 이내 리콜을 개시하고, 리콜일로부터 10일 이내 검증을 완료한다. 리스테리아, 살모넬라, O157:H7, 알레르기물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Class Ⅱ(일시적 위해)는 위해인지 5일 이내 리콜 개시, 리콜일로부터 12일 이내 검증하며, Class Ⅲ(위해가능성 희박)의 경우 위해인지 10일 이내 리콜 개시, 리콜일로부터 17일 이내 검증을 끝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식약청의 대응 속도로는 과연 이같은 신속 회수가 가능할 지 미지수다.
실제로 지난달 말 시중에 유통중이던 중국산 장어구이 완제품에서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돼 회수에 나섰지만 20일이 지나도록 회수율이 1%에 그쳤다. 이미 지난해 말 서울, 대전 등에서 대부분이 소비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노래방 새우깡 역시 사건이 최초 보고됐던 2월 18일로부터 1달이 훌쩍 지난 뒤에야 언론에 알리는 ‘뒷북’행정을 해왔다. 또한 이번 대책에는 식품안전 업무를 일원화하기 위한 방안이 아예 빠졌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신고에 의존하겠다는 건데, 이렇게 될 경우 최근 식품 이물질 파동이 계속되면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생산에서 유통, 판매에 이르는 이력 추적이 원활해야 안전관리도 잘 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생쥐야채 우리도?” 대형마트 식품 단속 나서

   
▲ ‘생쥐 머리 새우깡’ ‘칼날 참치’에 이어 옥수수 가루와 즉석밥에서 곰팡이가 발견되는 등 먹을거리에서 잇따라 이물질이 검출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과 불안이 점증하고 있다. 피자 제조에 쓰이는 이탈리아산 모차렐라 치즈 원료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면서 국내 판매가 중단됐다.

대형마트들이 식품 품질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계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에서 생쥐로 추정되는 이물질이 미국산 냉동야채에서 발견된 것이 계기가 됐다. 주로 재래시장에서 유통되는 중국산과 달리 미국산 식품은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데다 문제의 식품이 PB(자체 상표) 제품이었기 때문. 또 ‘곰팡이 즉석밥’ ‘녹조류 녹차’ 등도 제조업체가 아닌 유통 단계의 문제로 드러났다. 대형마트들은 수입식품과 PB(자체 상표) 식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신뢰도 추락과 매출 타격이 불가피해 위생,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매장을 감독하는 준법 담당자들에게 하루 1~2회 검사를 상시검사로 강화하고 검사 부서에는 제품 외관검사를 엄격히 할 것을 지시했다. 홈플러스 본사 조직인 상품품질관리센터 내 테크니컬 매니저(TM)들은 한 달에 한두 번 납품업체를 찾았으나 최근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제조공장을 둘러본다. 30명가량인 TM이 ‘암행 감찰대’가 된 것. 롯데마트는 롯데상품시험연구소 품질관리팀과 연계, 입점 상품에 대해 미생물 검사 등 안전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부적합 제품이 발견되면 즉시 판매 중단과 재검사를 실시한다. 위생 문제가 불거지면 해당 제품은 물론 비슷한 제품군(群)이 타격을 입는다. 한 대형마트 바이어는 “‘쥐머리 새우깡’ 사태 이후 과자류의 전체 매출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매일 탈 없이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부적합식품 회수율 14%.. 미국의 절반도 안돼
식품 리콜조치가 잇따르고 있지만 국내 식품 회수율이 극히 저조해 회수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2005년~2007년 상반기까지 국내 부정·불량식품 회수율은 14.2%에 그쳤다.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36%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이다.
연도별 부정·불량식품 회수실적은 지난 2005년 22.2%, 2006년 10.4%, 지난해 상반기 10.2%로 집계됐다. 특히 국내제품 회수율인 22.8%인 반면 수입식품 회수율은 절반수준인 13.9%에 불과했다. 국내 식품 회수율이 이처럼 저조한 것은 보건당국의 회수관리 시스템이 부실하고 사회 전반의 인식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식약청은 회수계획과 관리, 결과보고 등을 포함하는 효율적인 회수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회수업무가 지방자치단체를 거치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치, 수산물, 과자류 등 회전속도가 빠른 단기 유통식품이 전체 회수 대상식품의 53.6%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것도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식약청은 설명했다. 김치와 수산식품류는 짧게는 10일 이내, 길게는 2개월내 소비되며, 과자류의 소비회전율도 2개월 이내인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회수 개시일은 제조·수입일로부터 평균 5.8개월이 소요돼 회수시점에는 대부분의 제품이 소진되고 유통되지 않는 실정이다. 더욱이 회수대상 업체 대부분이 영세업자로 회수에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불성실 회수업체에 대해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도 회수실적이 저조한 또 다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번에 마련된 식품안전종합대책에 따라 신속회수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회수시스템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회수가 부실한 업체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 안전 신고는 국번 없이 1339

   
▲ 지난 3월 28일 미국산 채소가공품에서 ‘생쥐’ 추정 이물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수입식품 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식품 안전문제를 처리하는 곳은 크게 3곳으로 나뉜다. 정부가 운영하는 특수공익법인인 한국소비자보호원과 민간기구인 소비자단체협의회, 그리고 이들 식품의 문제점을 최종적으로 분석하는 식품의약품안정청이 있다. 9개의 민간 소비자 시민단체로 구성된 소비자단체협의회(774-4050)는 식료품을 비롯해 상품의 문제점을 접수, 소비자와 기업의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먼저 식품 문제가 접수되면 소비자와 기업의 합의를 중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보상금을 합의하는 선에서 끝나지만, 이 단계에서 합의가 안 되면 소비자자율분쟁조정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중재를 한다. 그래도 기업과 소비자가 합의를 하지 못하면 민사소송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
소비자 시민단체 중 하나인 전국주부교실중앙회 소비자민원접수 담당자는 “식품고발은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급증한 ‘식파라치’ 때문에 기업이 되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다. 안전 위생상 긴급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민간기구를 이용하기 보다는 식약청에 접수를 권한다”고 밝혔다. 식품을 비롯한 상품 결함의 경우 신체적 손상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시 동일 상품 교환을 원칙으로 한다. 식품 섭취 후 상해를 입은 경우 피해법 상 치료비를 보상하는 것이 전부다. 식약청 안전 검사를 원할 경우 국번없이 ‘1339’로 전화하면 해당지역 식약청으로 연결된다.   

食파라치, 제품 하자 빌미 “언론제보” 협박 거액요구

 
“당신 회사 제품을 먹던 중 압정을 발견했다.” 지난 3월 25일 A업체 상담실에 한 소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소비자는 “1억 원을 달라”며 “안 주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요구했다. 회사는 거절했고 이 소비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럼 2,000만 원을 달라”고 말했다. 계속 거절당하자 이 사람은 요구 금액을 500만 원, 300만 원으로 낮췄다. 이보다 하루 전날인 24일 B업체 상담실에도 30대 안팎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 “음료수 캔 속에 플라스틱 조각이 들어 있다”며 대표이사와 통화를 요구했다. 회사 관계자가 정중히 사과하자 “방송국에 제보하겠다”고 했다. 회사 측은 이물질 확인 결과 신용카드를 구겨서 캔 속에 넣은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동료가 장난을 친 것”이라며 “고발하지 말아 달라”고 사과했다.
식음료 업체들이 식(食)파라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식파라치란 식품과 파파라치의 합성어다. 불량식품을 만들거나 판매하는 사람을 찾아낸 후 신고해 보상금을 타내는 사람을 말한다. 동원F&B는 3월 26일 “참치 캔에서 칼날이 발견된 사건 이후 소비자 불만 신고 건수가 일평균 30건에서 80∼90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다수는 이물질과 관련해 정식으로 문의하고 항의하지만 식파라치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먼저 “대기업이 이래도 되느냐”고 질타를 한 뒤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다음 은근히 돈을 요구한다.
최근 이물질 파동을 겪은 업체들 상황은 더 심하다. C업체 관계자는 “식파라치로 의심되는 분들이 예전에는 50만∼100만 원을 요구했다면 이번 일이 터지고 나서는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D업체는 식파라치와 법정 소송까지 진행한 경우다. 이 업체에 전화를 건 소비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료를 먹고 온 가족이 배탈이 났다”며 “내 연봉이 수억 원에 이르니 회사 측이 일 못한 시간을 배상해야 한다”며 1억 원을 요구했다. 이 같은 협박은 한동안 계속됐고, D업체는 이 사람을 법정에 고발했다.
업계에서는 식파라치에게 제공되는 보상금이 제품 원가 상승 부분에 반영돼 결국 소비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이물질 유입에 정당하게 항의하는 소비자까지 식파라치 취급을 받는 부작용도 일으킨다. 회사원 홍 씨는 “친구가 라면에서 구더기가 나온 것을 제조업체에 항의하자 식파라치 취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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