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학교촌지, 근절시킬 해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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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학교촌지, 근절시킬 해법 없나
  • 글_이연제 기자
  • 승인 2008.05.1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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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봉투 주고받기 여전, 교사들이 적극 나서야 근절 가능

   
▲ 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부터 교사 사기 진작 차원에서 일선 학교에 ‘스승의 날’에도 정상적으로 수업하도록 권장했다”고 말했다.

학부모 잠 못들 게 하는 촌지괴담

“근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말에는 요즘 누구나 1년에 2번 정도 촌지를 한답니다. 참 걱정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제 양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아이한테는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친 제가 아이의 눈을 피해 봉투를 건네야 할까요. 아니면 다들 한다는 돈봉투를 외면한 채 속으로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학교 촌지 문제로 잠까지 설친다며 이 문제를 정리해 줄 것을 교육당국에 당부한 어느 학부모의 글이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학부모들의 머릿속 에서는 일찌감치 스승의 날 행사가 시작된 셈이다. “스승의 날은 학생과 학부모가 선생님의 노고와 은덕을 가슴에 새기고, 선생님들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랑을 다 주었는가를 되돌아보는 날입니다. 이런 뜻 깊은 날이 일부라고는 하지만 어쩌다가 촌지 문제로 얼룩지게 됐는지 안타깝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는 한 초등학교 교장의 말이다. 그는 촌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교육을 바로 세워야만 선진국으로의 진입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촌지(寸 志)’는 ‘마디 촌(寸)’과 ‘뜻지(志)’로 이루어진 일본식 한자어다. 직역하면 ‘손가락 한 마디 만큼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주 작은 정성, 혹은 마음의 표시’라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 ‘촌지’였다. 처음에는 어떤 이로부터 은혜를 입었을 때 고마움의 뜻으로 작은 정성을 표시하던 것에서 유래한 ‘촌지’가, 점차 그 규모(액수)가 커지면서 지금은 ‘뇌물’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고마움을 전하는 의미가 아니라 사사로운 이익을 얻기 위해 권력자에게 주는 정당하지 못한 돈이나 물건을 뜻하는 말로 인식되고 말았다. 정말로 고마운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어도, 이렇게 ‘촌지’가 ‘뇌물’로 인식되는 까닭에 우리는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아야 하는 사회를 만들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촌지 무서워 스승의 날에 수업 못하랴

학창시절 스승의 날이면 아이들이 풍선을 불어 교실을 장식하고 선생님께서 교실에 들어오실 때를 맞추어 존경심에 불렀던 그 노래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던 기억과는 달리 지난해까지만 해도 5월 15일(스승의 날)은 거의 모든 학교가 휴업(休業)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올해는 대부분 학교들이 정상수업을 한다. 서울시내 초·중·고교의 8.8%가 올해 스승의 날에 휴교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는 15일 스승의 날을 재량 휴업일로 지정, 휴교하는 학교는 1,242개교 중 109개교로, 8.8%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22일 밝혔다. 이중 초등학교가 573개교 중 81개교로 가장 많고 중학교는 368개교 중 12개교, 고등학교는 302개교 중 16개교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초등학교 262개교, 중학교 62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스승의 날 휴교를 해 올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지난해에 비해 휴교가 크게 줄었으며 고등학교는 다소 늘었다.

스승의 날 휴업 관행은 2006년 촌지 문제가 불거지면서 초·중·고교장협의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이날을 자율 휴업일로 정했고 상당수 학교가 이에 동참하면서 비롯됐다. 이후 2007년에도 전국 학교의 50%가 스승의 날 학교 문을 닫았다. 학부모와 교사가 촌지 수수를 하지 못하도록 아예 학교 문을 닫자는 발상이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연간 수업일수 220일 중 10%인 22일만큼 학교장이 재량으로 수업을 더 하거나 덜 할 수 있어 스승의 날에 쉴 수 있다. 또 교육당국은 스승의 날을 방학 중인 2월로 옮겨 촌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한편에서는 스승의 날 학교 휴업이 교사들의 자존심만 상하게 할 뿐이라는 지적에 따라 휴업을 없애기로 하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부터 교사 사기 진작 차원에서 일선 학교에 ‘스승의 날’에도 정상적으로 수업하도록 권장했다”고 말했다. 학교들의 인식변화도 한 요인이다. 얼마 전만 해도 스승의 날에 들뜬 분위기로 인해 수업이 잘 되지 않았고 촌지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고심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구의 한 고교 교장은 “굳이 스승의 날 휴업을 해서 교사들의 사기를 꺾을 필요가 없다. 촌지문제에서 학교들이 상당 부분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촌지 안 주고 안 받는 지침’ 즉시 폐지 방침

   
▲ 남보다는 내 아이에게’, ‘내가 우선하여’ 라는 것이 없어 지지 않는 한 촌지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교과부가 지난 15일 즉시 폐지한 29개 지침 중에는 ‘촌지 안주고 안 받기 운동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 지침은 각종 행사경비, 회식비, 스승의 날 촌지 등을 예방하기 위해 시도교육청별 자체계획을 수립토록 시달하고 지도점검 및 평가에 반영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지침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촌지 문화를 많이 줄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촌지 안주고  안받기 운동 지침이 폐지됐다는 교육부의 발표에 교직원 노조 및 일부 학부모들은 “그럼 이제는 촌지를 줘도 된다는 말이냐”고 반문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학교 자율화 가운데 ‘촌지 안 주고 안 받는 지침’의 즉시 폐지 방침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학교자율화 계획’ 추진으로 교육계 내부가 뒤숭숭한 가운데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4월 17일 오후 자신의 모교인 용산초교를 찾아 학부모와 교사 등과의 간담회에 이어 모교 후배 학생을 대상으로 ‘1일 교사’로 나서 직접 의견을 듣기도 했다.

자율화추진 반대입장에 대하여 김 장관은 “학교 자율화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학교와 교사를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추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 학교가 이미 스스로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특히 학교 자율화를 추진하며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촌지 금지 규정 폐지에 대해 “촌지 금지를 정부가 규정으로 금지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며 “이제 교사 스스로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교사가 촌지 수수 등 비리에 연루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비리를 전제로 정부가 지침을 만들고 강제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침이 있을 때도 우리 아이 잘 봐달라고 가져다주는 마당에 그것까지 없애면 학교에 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학부모단체는 입장을 표명했다. 심지어 일부교사들은 시험 때면 교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학부모에게 전화해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며, 이밖에도 촌지로 요구하는 명목도 여러 가지여서 학교발전기금과 교사들의 식대 등으로 학부모들이 내는 돈이 많게는 한 학년에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그 액수도 제각각 이여서 100만 원, 50만 원, 30만 원 정도라고 하니, 이 같은 사례를 보다 못해 한 시민단체가 촌지를 주는 학부모도 처벌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지난해 국회에 청원하기도 했다. 이렇듯 학부모 스스로 촌지 근절대책을 마련하려고 발 벗고 나선 마당에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지침을 즉시 폐지하겠다고 밝혔으니, 자율화 추진에 대한 반대 물결이 거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촌지 안 주고 안 받는 지침’ 이 과연 학교의 자율성을 해치는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 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 현장의 실질적 주도자인 교사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촌지는 아이에게 오히려 ‘독’
시드니에 있는 어느 여자 고등학교에서 한국 유학생이 시험 시간에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이 되어서 정학의 위기에 처하자, 학생의 어머니가 급히 비행기를 타고 와서는 교장에게 돈 봉투를 내밀었다가 망신만 당하고 오히려 학생은 퇴학을 당한 일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법, 자격, 도덕보다는 돈 봉투 내밀고 빽으로 자식들의 문제를 해결하던 한 어머니의 그릇된 교육방법이 낳은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촌지에 대한 학교 선생님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과 지방의 초·중·고 교사 10여 명의 대답은 ‘부담스럽다’는 게 대세였다. “부담스러워 돌려주면 ‘적어서’ ‘성의가 부족해서’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하고는 더 큰 걸 가지고 다시 나타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마지못해 받습니다.” 대구 모 중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경력 7년차의 한 선생의 말이다. “그 때문에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 상담이 정작 필요한 경우가 생기지만 촌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까 봐 간단한 메모 한 장, 전화 한 통 넣는 것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는 동료 선생에게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작년 스승의 날에 학생을 통해서 부모님으로부터 케이크를 하나 받았답니다. 때마침 반에 생일을 앞둔 아이들이 있어서 그걸로 생일 파티를 교실에서 열어줬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봉투가 하나 있어, 편지겠거니 하고 열어 봤는데 현금 5만 원이 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그 선생님이 신중했어야 했지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금세 알아챘죠. 그 뒤로 케이크를 가져 온 친구는 거의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죠.” 그는 이 같은 부모들의 ‘과잉 인사’가 부지기수라며 혀를 찼다.

 

촌지문화 근절은 학부모·교사 모두의 과제
촌지 문화는 저학년일수록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초등학교에선 촌지를 학교 운영자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도 눈에 띈다고 울산 모 초등학교의 선생은 말했다. 가령 많은 학부모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1학년 자녀의 담임이나, 졸업여행을 앞둔 5,6학년의 담임을 배정할 때 소위 ‘능력’ 있는 교사가 배정된다는 것. 이 때의 능력이란 갖은 방법으로 부모들을 학교로 불러들일 수 있는 수완을 의미한다. 영화 ‘선생 김봉두’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식물이 자랄 때 처음에 손이 많이 가듯, 공교육의 영역에 첫발을 내디딘 자식에게 보다 많은 교사의 손길이 닿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김 교사는 일부이긴 하지만 이를 촌지로 연결하는데 이용하는 선생님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아예 별도 수입이 많은 자리에 앉기 위해서 인사권자에게 로비를 하는 교사들도 있다”고도 했다. 인사권자는 교장이지만, 실무자 격인 교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것저것 상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 ‘교장이 왕이면, 교감은 황제’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촌지(寸志)의 생명력이 유난히 끈질긴 부문 중 하나가 교단이다. 교육당국은 틈날 때마다 ‘촌지추방’ ‘촌지근절’을 외치지만, 같은 구호를 반복한다는 사실 자체가 촌지가 근절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대다수 양심 있는 교사들에게는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겠으나, 학교현장에 촌지가 살아있다는 학부모들의 증언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물론 온 국민이 학부모 이다 보니 다른 부문의 부정부패에 비해 교사 촌지가 국민들 입에 잘 오르내리지만 결국 촌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육 현장의 실질적 주도자인 교사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한 두 사람으로는 안 되고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이 힘을 합쳐야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다.

   
▲ 촌지로 요구하는 명목도 여러 가지여서 학교발전기금과 교사들의 식대 등으로 학부모들이 내는 돈이 많게는 한 학년에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예전 우리 선조들은 서당에서 훈장들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키며 일년내내 가르쳤다. 훈장은 선비였다. 한양에 가서 과거 시험을 봐서 붙으면 관리가 되지만 재수, 삼수한 그런 선비들이 훈장을 보통 하곤 했었다. 그런 선비들이 밖에 나가 일을 할리가 없었고 기껏해야 애들 가르치는 것 뿐 이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 부잣집 애들만 교육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애들도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 가난한 집안의 부모들이 일년내내 자기 자식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큰돈을 냈을까? 아주 작은 여윳돈이나 집에 가서 찬거리 만들어드리는 것, 그런 게 촌지였었다. 받는 사람도 부담 못 느끼고 주는 사람도 고마운, 지금 우리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의 촌지라 하면 주는 사람이건 받는 사람이건 잘못된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런 ‘촌지’라는 말이 왜 부정의 대표적 언어로 사용되고 있을까? 이것은 우리스스로가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이 없이 개인적인 욕심과 이기주의 때문이다. ‘남보다는 내 아이에게’, ‘내가 우선하여’ 라는 것이 없어 지지 않는 한 촌지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남에게 촌지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부터 없애야 되는 것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할 수 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과 정신들이 점점 사회를 어둡게 만든다는 것임을 학부형이나 교사 모두가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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