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경제회복의 열쇠 ‘미소금융’ 제대로 시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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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경제회복의 열쇠 ‘미소금융’ 제대로 시행될까
  • 장지선 기자
  • 승인 2010.02.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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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대출조건으로 저소득층 울게 만드는 ‘미소금융’

▲ 저소득ㆍ저신용 개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인 미소금융이 지난 12월 15일 수원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 팔달문시장안에 위치한 삼성미소금융재단 1호점을 필두로 공식 출범했다.
영하 9도의 혹한이 몰아친 16일. 수원지역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팔달문시장 입구에 자리잡은 ‘삼성미소금융재단 1호점’ 앞은 오전 9시 문을 열기도 전부터 수십 명이 줄을 선 채 기다렸다. 저소득·저신용 개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무담보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시작한 삼성미소금융재단 1호 지점이 업무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들어오는 고객들로 인해 사무실은 순식간에 북새통으로 변했다. 문의 전화도 폭주했다. 미소금융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 날 하루 방문자는 어림잡아 300여 명. 기다림에 지쳐 돌아간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그러나 한 달 남짓이 지난 현재, 삼성미소금융재단 1호점은 개점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루 평균 방문객도 1/10로 줄었다.
한국형 그라민은행을 표방하며 지난해 12월15일 공식 출범한 ‘미소금융’. 그러나 시행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서민들의 발길은 쉽게 이곳으로 향하고 있지 않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서민을 위한 정책이란 명목으로 시행하고 있다지만 실상 서민들의 입에선 불만 섞인 한숨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기대 속에서 출범한 미소금융의 ‘화려한 데뷔’

▲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창시자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지난해 6월 한국을 찾아 이화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갈등해결과 사회통합’ 특강을 하는 모습이다. 유누스 총재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금융정책 중 하나인 미소금융은 경쟁사회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소외계층과 저소득층 서민전반의 재활의지를 북돋우어 주기 위하여 선두그룹인 삼성을 비롯해 현대기아차, 포스코, LG, SK, 롯데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대기업들이 줄줄이 참여하면서 확대 개편되었다. 미소금융은 제도권 금융회사 이용이 곤란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운영자금 등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마이크로크레디트) 형태의 경제적인 지원과 더불어 창업 시 사업타당성 분석 및 경영컨설팅 지원, 취업정보 등 금융소외계층이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한 자활지원사업의 성격도 띄고있다.
출범 초기, 개인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저소득층에게 연 5~6%선 저금리로 1인당 최대 5,0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소금융은 급전이 필요한 저소득층에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우량한 직장인들도 연 7%의 신용대출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서민들에게 연 4.5%는 그야말로 꿈의 이자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대기업들이 서민들에게 자활의 기회와 기쁨을 주는 일에 나선 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모범사례이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연말에 발표된 2009년 15대 정책뉴스 선정 결과 발표에서는 “미소금융을 통해 친서민 중도실용정책에 주력했다”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삼성미소금융재단 1호점은 개점이후 사흘동안 1,140여 명의 방문객이 모여들었다.

까다로운 대출조건에 대다수 발길 돌려
1월4일 미소금융의 첫 대출 수혜자가 선정되었다. 미소금융이 출범한지 보름여 만의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3평 남짓한 옷가게를 운영중인 이모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는 3년 전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카드빚 1,000만 원을 갚지 못해 신용회복위에서 신용회복 절차를 밟고 있었다. 미소금융 사업이 시작된 이후 전체 사업장에서 ‘1호 대출자’로 선정된 이씨는 “이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다.
우리미소금융재단 관계자에 따르면 “500만 원 이내의 소액대출은 현장실사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빠르면 2주 정도에 실제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미소금융재단이 지난달 17일 문을 연 이후 첫 대출 수혜자가 나오기까지 재단을 찾은 고객 수는 1,284명이며, 이 가운데 실제 상담이 이뤄진 건수는 191건에 불과하다. 고객 수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처리건수이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이씨와 마찬가지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소금융재단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허탈한 마음만 갖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김씨는 “신종플루가 확산 된 이후 어려워져 대출이자는커녕 세금마저 내지 못해 집이 압류될 처지에 놓였다”며 “운영자금이라도 받아볼까 하는 마음에 찾아왔으나 집을 소유하고 있어 대출을 받지 못한다고 하길래 그냥 돌아간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창업자금을 대출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미소금융재단을 찾은 전모씨는 “음식점을 경영해보겠다는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왔지만 과거 3개월 이상 연체된 카드빚으로 인해 대출신청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요리사 자격증이 있어 그동안 마련해놓은 돈에 1,500만 원만 더 대출받으면 음식점을 차릴 수 있지만 카드빚 때문에 대출신청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돌아간다”고 말했다. 전씨는 현재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2명의 자녀와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
실제 대도시와 기타지역 실거래가 기준으로 각각 1억 3,500만 원, 8,5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은 미소금융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카드나 대출 등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사람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미소금융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이 7~10등급으로 낮아야 한다. 이렇듯 상당수의 방문객이 미소금융 대출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임에도 불구하고 대출 신청 기준에 부합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리고 있다.

‘미소’ 이름 딴 유사업체부터 보이스피싱까지 기승
미소금융을 방문하거나 상담을 의뢰한 신청자들은 미소금융이 전화나 현장 상담 인력이 너무 적은데다

▲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라디오 연설에서 “정부는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국민을 적극 도울 것”이라며 “서민들에게 저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주어 자활 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추진하는 중도실용 서민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한 2009년 15대 정책뉴스 결과 발표에서도 ‘미소금융’을 언급하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대출 기준과 자격 요건에 대한 홍보도 미흡하며, 기준과 요건 또한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소외계층에 자립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출범한 미소금융이 실상 ‘울상금융’이라는 지적이다.
한 상담자는 “전화상담이 이뤄지지 않아 직접 방문했으나 대출기준이 맞지 않아 그냥 돌아가야 한다”며 “대출기준 등에 대해 보다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담자는 “어차피 대출 연체 등으로 자금을 융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데 연체가 있다고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하면 실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기준을 좀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소금융은 자격요건, 서류, 절차 등 미소금융에 대한 홍보가 미흡해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오게 만들고 있으며, 신용 7등급 이하인 경우는 대부분 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와는 다르게,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내세워 서민들을 두 번 기죽이고 있다. 현재 미소금융재단은 3개의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 한국신용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 중 최소 1개사 이상에서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로 받아야 합격 판정을 준다. 저신용자라도 일정 보유 재산이 있으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기 일쑤다. 또한 창업자금의 경우 자기자금의 100% 범위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으며, 운영자금은 최소 2년간 운영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이 같은 높은 자격 조건으로 인해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미소’라는 이름을 딴 유사 업체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으며, 미소금융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한 뒤 수수료를 챙기는 악성 ‘브로커’들마저 활개를 치고 있다. 한 대부업체는 가칭 ‘미소펀드’라고 칭하며 미소금융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 20%대 금리에 소액대출을 해준다고 광고하고 있다. 또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유인하고 서류를 대신 접수해준 뒤 20만~30만 원의 중개 수수료를 챙기거나, 미소금융을 받게 해줄 테니 수수료를 몇십만 원 입금하라는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금융감독원, 미소금융중앙재단 등과 협력해 불법 수수료 수취행위에 대한 홍보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미소금융에서 신용등급이 맞지 않아 상담조차 해보지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70~80%에 달하는 상황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며 제재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속속 드러나는 문제점에 출범 한 달만에 개선책 논의

▲ 미소금융은 자격요건, 서류, 절차 등 미소금융에 대한 홍보가 미흡해 사람들을 무작정 찾아오게 만들고 있으며, 신용 7등급 이하인 경우는 대부분 대출이 가능하다는 광고와는 다르게,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내세워 서민들을 두 번 기죽이고 있다.
미소금융은 서민금융정책을 펼친다는 계획아래 힘차게 출발했지만, 요란한 출발과는 달리 실적 없는 제도로 그칠 것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실제로 지난달 15일부터 1월12일까지 미소금융재단 지역지점을 방문해 상담 접수를 한 인원은 5,872명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날 까지 실제 대출을 받은 사람은 총 28명, 대출금액은 1억 3,6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소금융의 까다로운 대출조건과 복잡한 절차에 대한 대안으로 현재 ‘자영업 기준 2년 이상’인 기간을 1년으로 줄이고, 차업자금에서 자기자금비율도 현형 50%보다 낮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대출금리와 원리금 상환 조건을 보다 다양화해 현재 일괄적으로 연 4.5%인 금리를 대출대상자의 신용등급이나 창업성공 가능성을 고려, 차등을 둬야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5년인 대출만기도 늘려 거치 후 원금상환액을 낮추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조금만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는 서민들에게 보다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서민금융지원이라는 취지에 맞게 가능한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미소금융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대출 심사와 조건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미소금융재단 관계자는 “일부 사람들은 미소금융 대출지원이 눈먼 돈이라고 생각한다”며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면 꼼꼼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500만 원 이하일 경우 1차 심사에서 자금용도 여부만 따지지만 그 이상일 경우 1차에 이어 2차 컨설팅 심사와 대출자들도 소상공인진흥원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하는 만큼 대출까지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소금융은 이렇듯 강경했던 출범 초기 반응과는 달리 여론이 거세지자 한 달여 만에 입장을 바꿨다. 서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미소금융의 본래 목적에 따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라는 모토로 정부가 잇따라 발표하고 있는 친(親)서민 중도실용 정책이 ‘골목골몰에서 서민과 중산층이 신나는 세상, 시장마다 소상공인과 영세사업자들이 신명나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해본다.
제2의 선택의 국면에 마주선 ‘미소금융’
미소금융은 2월말까지 전국의 미소금융 지점들에 대한 운영 실적을 점검한 뒤 대출 기준 등을 개선해 나갈 계획을 밝혔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가장 먼저, 원활한 대출을 위해 500만 원 이상 대출자의 컨설팅·교육 대기시간을 줄여 대출시기를 앞당길 예정이다. 또, 서울에 비해 창업교육 과정이 적은 지방 대출자들 역시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제공하는 인터넷교육으로 대체해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교육 대기시간을 줄일 계획이다. 이외에도 미소금융재단은 대출 관련 제출 서류와 종류를 줄여 대출자들의 불편을 줄이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재단 관계자는 “제출 서류가 줄면 2~3일에 거쳐 준비하던 것이 하루로 줄 수 있다”면서 “다만 서류는 부적격자를 가려내는 심사의 자료가 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토로하고 있는 문제점인 대출여건을 완화해 나갈 것임을 약속했다. 김승유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은 “창업자금만이 아닌 기존 사업자들의 운영자금이나 사업확장자금을 지원할 예정이며, 사업 2년 미만이더라도 사업성 검토를 통해 전망이 있으면 지원할 생각입니다. 또한 대출금은 1인당 5,000만 원 한도를 당분간 유지하되 재원이 추가되면 확대도 고려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창시자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돈을 갚고자 하는 의지를 최우선으로 여긴 그는, 까다로운 자격조건으로 대출자를 걸러내지 않았다. 미소금융은 지금 제2의 선택의 국면에 마주서 있다. 그라민은행을 따라 미소금융 본연의 목적인 서민들의 ‘자활’에 초점을 맞추느냐, ‘눈먼 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엄격한 심사기준을 지속하느냐. 외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그냥 들여온 수준이 아닌 진정으로 서민들의 든든한 금융창구로서의 역할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서민들이 미소지을 수 있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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