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꿀이 될 줄 알았던 대우건설이 결국 쓰디쓴 독이 되어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금호그룹은 지난 12월30일 재계 8위라는 명예에도 불구하고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재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은 1999년 대우그룹 이후 금호그룹이 처음이다.
금호그룹은 이와 관련, “주력 계열사 두 곳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된 데 따른 경영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조속한 시일 내에 경영정상화 방안을 수립해 이를 실행, 신속한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서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추진키로 해 3년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후 2년간 추가로 말미를 얻은 뒤에도 정상화에 실패하면 경영권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총수일가 부실 경영 책임지고 사재 출연키로
금호그룹은 대우건설의 매각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어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FI(재무적 투자자)에 대한 PBO 채무 등으로 인해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됨에 따라 재무구조개선 및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금호타이어의 경우에는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동차산업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이에 따라 재고처리 문제 등이 발생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전했다. 게다가 두 달에 걸친 파업과 태업으로 생산, 영업, 수출 등 전반적인 사업에 차질을 빚고 동 업계에 비해 높은 인건비 부담이 더해져 워크아웃을 요청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총수일가는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계열사 주식과 자산 등 사재를 출연키로 했다. 그 규모에 대해서는 추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으나 전문가들은 사재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박삼구 명예회장은 금호석화 5.305%, 금호산업 지분 2.14%를 보유하고 있으며 박찬구 前 회장은 금호석화 지분 9.44%, 박세창 전력경영본부 상무는 금호석화 6.665%, 금호산업 1.45%를 보유, 총수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규모는 전량 매각하더라도 3,000억 원 선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마저도 상당부분 금융권에 담보로 묶여 있어서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박찬법 금호그룹 회장은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신년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재 우리의 위기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겸허한 마음가짐과 자세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굳게 단결해 힘을 모으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올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각 그룹사는 조직의 효율적인 축소, 비용 절감,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영업력을 극대화해 탄탄한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회장은 지난 1946년 그룹창업 이래 1, 2차 석유 파동, IMF 외환위기 등 수많은 시련과 고비를 넘겨오며, 비 온 뒤 땅이 더 굳듯이 매번 더욱 강해져 왔다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는 ‘집념의 재도전’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마음가짐과 자세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저력을 발휘해 지금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내자”고 당부했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체결한 ‘풋백옵션’이 제동
금호그룹은 지난 2006년 6월 자산관리공사로부터 대우건설 주식 72%를 주당 약 2만 6,200원, 총 6조 4,000억 원을 투입해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 대금 절반이상을 금융권에서 빌렸고 ‘풋백옵션’을 체결한 바 있다.
당초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등을 매각해 풋백옵션 대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호렌터카, 서울고속터미널 등의 매각 작업은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정작 3조 원대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큰 대우건설 매각 작업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패로 끝난 금호그룹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는 무리한 몸집 부풀리기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룹이 무리하면서까지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은 국내 최고 건설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대우건설의 미래가치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그룹 계열사인 금호산업 등과의 시너지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대우건설 인수 작업에 올인했다.
시작은 좋았다. 매출은 눈에 띄게 증가했고 금호산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톡톡히 올렸다.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금호그룹은 재계 11위에서 8위로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대한통운까지 인수해 결국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인수 3년만인 2009년 6월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금호그룹에 제동을 건 것은 인수 당시 맺었던 ‘풋백 옵션’이었다. 풋백 옵션은 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제시한 조건으로, 대우건설 주가가 3만 1,500원을 밑돌더라도 자금 조달 지원에 나선 투자자가 요구할 경우에는 2009년 연말 무조건 3만 1,500원에 되사주겠다는 제안이다. 하지만 2009년 6월 대우건설 주가는 1만 2,000원에 머물고 있었다. 연말까지 풋백옵션을 이행하려면 최소 4조 원이 필요했다. 금호그룹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제3의 투자자를 유치하고 복수의 국내외 투자자와 협상을 시작했으나 부채만 증가한다는 판단에 따라 대우건설을 매각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산은금융지주 민유성 회장은 지난 18일 대우건설 매각과 관련, “주채권 은행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연내 인수후보들과 조율을 끝낼 것으로 보이나 대우건설 매각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비상대책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전략경영본부 ‘오남수’ 가고 ‘기옥’ 사장 오다
한편, 금호그룹은 워크아웃 신청 이후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에 그룹은 ▲임원수 축소 및 임원 임금 삭감, 전 사무직 1개월 무급휴직 실시 ▲보유자산 매각을 통한 1조 3,000억 원 이상의 유동성 확보 ▲경영경비 절감, 복리후생 시행 유예 및 축소 등 전사적 경비절감 등의 강력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기로 했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먼저 금호그룹은 대폭적인 조직 및 인력 슬림화에 들어갔다. 솔선수범 차원에서 금호그룹 컨트롤 타워인 전략경영본부 조직을 40%이상 축소하고 계열사별 조직 재정비를 통해 사장단 및 임원수를 대폭 줄이는 등의 인력 감축에 돌입했다.
지난해 금호그룹의 임원수는 대우건설 120여 명을 포함해 총 370여 명이었으나 대우건설,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등의 매각에 따라 이미 230여 명 정도로 축소되었고, 이번에 추가로 20% 정도의 임원 감축을 통해 금호그룹 전체 임원수를 180여명 정도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또한 금호그룹은 임원 감축과 함께 전 임원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했고, 생산현장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한 그룹의 모든 사무직을 대상으로 1개월 무급휴직을 실시한다.
금호그룹은 또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등을 중심으로 보유자산 매각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금호산업은 매각 추진 중인 베트남 금호아시아나플라자와 금호건설 홍콩유한공사 등의 자산을 매각해 약 4,776억 원 가량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금호석유화학은 제1열병합발전소 Sale& Lease back과 자사주 매각 등을 통해 약 2,653억 원을,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IDT와 금호종금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약 1,838억 원을, 금호타이어는 중국 및 베트남 소재 해외법인 지주회사인 금호타이어 홍콩 지분 49%를 매각해 1,500억 원 등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도 추가로 가능한 자산매각을 통해 총 1조 3,000억 원 이상의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으로, 채권단과 긴밀히 협의해서 이 같은 내용을 조속히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금호아시아나는 ▲운영경비절감 ▲복리후생 시행 유예 및 축소 ▲영업효율성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 등의 전사적 경비절감도 실시한다.
계열사별로 교육비, 출장비, 업무추진 경비 등 일상적인 운영경비를 대폭 줄이는 것을 비롯해 경영정상화가 될 때까지 기존 시행중인 복리후생 제도를 유예하거나 과감히 축소하는 등 모든 임직원들이 고통분담을 통한 비용절감에 최대한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어 금호그룹은 12일 또 한 번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작업을 실시했다. 임원수 20% 감축 및 임원 임금 20% 삭감 등의 고강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오남수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 등 사장단 7명을 퇴임시키고 일체의 승진자 없는 사장단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금호그룹은 지금이 그룹 최대의 위기 상황인 만큼 올해에는 사장단 및 임원에 대한 일체의 승진자 없이 전보 및 관장업무만 조정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며 이번 사장단 인사와 함께 향후 있을 임원 인사에도 일체의 승진 임원 없이 관장업무 조정에 따른 전보와 함께 20%의 임원수를 감축할 계획이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금호그룹은 12일자로 사장단 인사를 단행, 사장단 18명 중 7명을 퇴임시키고 기옥 금호석유화학 사장을 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기옥 사장은 금호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과 함께 금호미쓰이화학, 아스공항, 금호개발상사 사장을 겸임하게 됐다.
또한 이원태 금호고속 사장은 대한통운 사장, 김성산 금호터미널 사장은 금호고속 사장, 한이수 금호에스티 사장은 금호리조트 사장, 온용현 금호폴리켐 전무는 금호피앤비화학 대표이사 전무로 각각 발령했다. 또 김성채 금호석유화학 부사장은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는 등 관장업무가 변경됐다.
정상화 계획 밑그림 이달 중 나올 것으로 전망
이러한 가운데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이 1월6일 시작되었다. 이날 우리은행 본점에서 개최된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전체 채권금융기관의 약 75% 이상의 채권자들이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개시 안건에 찬성에 정식으로 워크아웃이 시작되었다.
채권단은 채권행사 유예기간인 3개월간 실사를 거쳐 금호산업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수립하고 금호산업과 경영정상화계획 이행 약정을 체결하는 등 본격적인 기업 개선작업을 추진하게 된다.
향후 금호산업은 비업무용 자산 매각과 각종 비용 절감 방안 등을 포함하는 고강도의 구조조정 방안을 이행하고, 채권단은 대우건설 지분 인수와 관련 FI와 산업은행 간의 협상 및 실사 결과를 토대로 기존 채권의 재조정 및 단기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신규자금 지원 등을 통해 금호산업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평가는 1월8일자로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한국복합물류, 금호렌터카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이 개시되고 이에 따른 타 계열사의 직·간접적인 지원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 한국기업평가는 해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검토’ 대상으로 하향 조정했다.
금호렌터카는 ‘점진적 관찰’ 대상으로 등록했다. 금호렌터카가 대한통운의 연대보증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 대한통운과 신용등급을 동일하게 평가했다.
한편, 금융권은 워크아웃을 추진하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정상화 계획의 밑그림이 이달 중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해 각각 삼일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을 실사 기관으로 정해 실사를 개시했다.
채권단은 통상적으로 후발채무 등의 정밀실사를 거쳐 실사보고서가 확정되려면 2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실사를 조기에 마무리 짓고 이번 달부터 채권금융기관 간 사전 협의를 진행해 정상화 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단, 채권단과 금호산업 및 금호타이어 간 양해각서(MOU) 체결은 실사보고서가 확정되는 3월말쯤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사전 분석 결과, 두 기업 모두 청산 가치보다 계속 기업 가치가 높아 채무재조정만 수반되면 지속적으로 영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채권단 관계자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계속 기업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정 차입금 규모와 부채비율, 외생변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실사 결과에 따라 자본 확충 규모와 기존 여신 만기 연장, 금리 조정 등의 세부 내용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호산업의 출자전환 규모는 당초 1조 5,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으나 회사 상황이 생각보다 양호해 1조 5,000억 원 수준이 될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금호타이어는 금융권 채무가 당초 채권단이 추산한 2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호산업의 출자전환 규모는 당초 1조 5,0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봤으나 실사를 들어가 보니 회사의 상황이 생각보다 양호한 것으로 보인다”며 “출자전환 규모는 1조 5,000억 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풋백옵션 처리 두고 채권단 갈등 양상
그런가 하면, 대우건설 풋백옵션 처리를 두고 갈등이 양상 되고 있다. 대우건설 매각이 예정대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FI들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건설 풋백옵션 문제가 먼저 처리되어야 하지만 채권단 내의 의견 차이로 지연되고 있다. 우리은행 측이 FI를 워크아웃 참여에서 배제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FI에 대해 “주당 1만 8,000원에 보유주식을 살 테니 풋백옵션 행사가격인 3만 1,500원과의 차액은 출자전환하거나 무담보 채권으로 떠안으라”는 방안과 우리은행이 “FI의 보유주식을 대우건설 청산 가치에 따라 매입하고 나머지는 탕감토록하자”는 의견이 대립되는 것이다.
우리은행의 이 같은 제안에 FI들은 “우리은행의 주장은 곧 손해만 보고 빠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FI 처리 문제가 지연되면 대우건설 매각작업과 금호산업 워크아웃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신청 직전 아시아나항공 보유지식을 금호석유화학에 넘긴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보유주식 33.5% 중 12.7%를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952억 원에 넘긴 바 있다. 이에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이 금호산업의 나머지를 마저 매입하되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계산할 것을 주문해 놓은 상태다.
실질적인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이 워크아웃에서 빠진 것도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다. “금호석유화학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하지 않은 채 금호산업의 출자전환이나 감자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한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도 워크아웃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호그룹이 긴 잠에 빠졌다. 꿈은 달콤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금호그룹이 이 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그들의 의지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