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 주류-비주류간 갈등의 실타래가 풀릴 것 같지 않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던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문제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말 야당을 배제한 채 한나라당과 노동관련법을 처리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징계 문제로 민주당 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는 정 의원과 추 의원의 세력이 자연스럽게 정세균 대표 체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복당은 없다” vs “정동영을 안고 가자”
4.29 재보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복귀한 정동영 의원. 하지만 그에 대한 눈길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이 재보궐 선거에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초라해 보인다, 당론을 져버리고까지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느냐, 서울을 피해 고향에서 출마하는 것은 이름값 못하는 것이다 등 그를 향한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소신을 펼쳤다. 그 결과, 민주당으로 꼭 돌아오겠다던 정동영 의원에게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섞인 덕진의 민심이 올인한 것이다.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성공에 한몫했다.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와 초심으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고 정치적 의식이 높은 전주지역이 정동영이라는 ‘큰 인물’을 믿고 밀어준 것이다.
그렇게 정 의원은 6년 만에 다시 금배지를 달았다. 그것도 재보궐 선거 사상 가장 많은 득표인 5만 7,423표(72.27%)를 획득, 당당하게 지역의 품으로 돌아온 것. 자신의 출마를 두고 민주당과의 내홍을 겪으면서 마음고생도 많았던 그다. 하지만 탈당 기자회견 때 눈시울을 붉히며 “꼭 돌아오겠다”고 했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려 지난 1월12일 복당신청서를 제출하며 민주당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정동영의 복당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정 의원의 시나리오 대로 된다면 민주당 지도부의 체면이 말이 아닌 셈. 정세균 대표는 정 의원의 당선 전부터 “복당은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정동영을 안고 가자”는 세력과 대립각을 세웠다.
신 건(전주 완산갑), 유성엽(정읍) 의원 등 나머지 호남 무소속 의원 2명도 정 의원과 함께 복당신청서를 제출했다. 복당신청서가 접수되면 당원자격심사위 소집 등 관련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탈당한지 1년이 안될 경우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규정 때문에 정 의원의 희망대로 이달 내 절차가 완료될지는 다소 불투명하다. 정세균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민주적 정당 운영이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법과 절차, 당헌당규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당을 운영하는 차원으로 이번 일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 의원 징계수위에 대한 고민 길어질 듯 정 대표의 고민은 이뿐이 아니다.
‘추미애 환경노동 위원장 징계’, ‘정동영 의원 복당’, ‘비주류의 정세균 대표 사퇴요구’ 등의 문제가 한꺼번에 터진 것. 세종시 정국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지도부가 뜻밖의 복병을 만나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들 문제는 당의 계파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어느 문제하나 해결하기가 쉬워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는 1월20일 최고위원회에서 추 위원장에게 ‘1년 당원자격정지’를 징계 방침으로 정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최고위는 징계를 결정해 당무위원회에 회부키로 결정했다. 징계 수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어 당무위원회의에 회부할 때 최고위원회의 이러한 의견을 첨부키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 위원장은 이러한 지도부에 마지막까지 불복하겠다는 입장이다. 1년 동안 당내 현안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그에게 심각한 정치적 상처다. 추 위원장은 이날 명동 예술극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추미애 중재안’은 국민과 미래를 위한 결단이었다. 앞으로 국민을 믿고 함께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노조법이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임에도 핵심 지도부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지금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을 징계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면서 국민이나 여론이나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도 ‘1년 당원자격정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추 의원 징계수위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복당 앞두고 주류-비주류 갈등 고조돼
1월 조기 복당을 원했던 정 의원은 “이전엔 잘 몰랐는데 당헌·당규가 엄격한 것 같다. 친한 의원들과 만나면 오해를 살까봐 일부러 친하지 않은 의원들만 만난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고 1월 복당이 물건너 가게 되면 정 대표와 정 의원의 정면충돌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로서는 “정동영의 복당은 없다”고 뱉은 말도 있고 “다시 돌아와 당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정 의원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정동영 의원의 정치보폭이 커지면서 그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남과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자 호남과 수도권지역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지지세력을 만들자는 것이 대세. 이에 가장 중차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한 사람이 바로 정 의원이다. 차기 대선을 놓고 박근혜-정동영이라는 ‘빅2’구도로 고착화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정 의원은 최근 호남 정치1번지인 광주를 방문하는 등 정치행보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2010년은 예산안과 노동법을 다수의 폭거로 통과시키며 시작되었다. 나는 통합민주당의 대선후보로서 10년 민주정부의 성과들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대선패배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삶의 희망을 놓쳐버린 국민의 아우성이 넘쳐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민주주의는 결국 독주와 독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시장경제는 결국 독점과 탐욕이 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교훈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고 아쉬워하면서 “국민의 뜻 위에 군림하는 권력, 국민의 상식을 비웃는 정치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2010지방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 2010년 지방선거는 건강한 지방권력의 탄생과 함께, 독선과 독주로 일관하는 현 정권에 대한 중간심판의 기회이다. 또한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넘어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 ‘大同 민주당’, ‘큰 그릇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민주당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릇인가를 주시하고 있다. 작은 차이와 균열을 넘어서야 한다. 통합과 연대는 지금 이 순간 민주개혁세력의 절대적 책무이다. 우리가 부족했던 부분을 뼈를 깎는 마음으로 반성하고, 국민에게 다시 권력을 달라고 요구할 정당성과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부터 달라지겠다. 백의종군의 자세로 가장 낮은 길, 가장 험한 길 마다하지 않겠다”고 피력했다.
정 의원은 마음이 급하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입지 강화를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세균 대표 흔들기가 거세지고 있고 이에 맞서는 386 등 당내 주류 세력이 정 대표를 대신해 비주류 의원들과 맞서고 있다. 정 의원이 복당을 하더라도 사실상 현재 주류 세력과의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2010 지방선거의 승리가 우선시 되어야
이런 가운데, 17일 공식 창당한 국민참여당도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와 묘하게 엮이면서 향후 야권 통합과정에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 주류세력인 친노 입장에서 국민참여당은 사실상 친형제나 다름없지만, 국민참여당과 정동영 의원과의 관계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주류측 일부 당직자들 이야기를 들어서는 정동영 의원은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에도 걸림돌이며, 지방선거 야권 선거연대에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좋은 성적표를 내지 못했을 경우에 그 책임론이 정동영 의원에게 돌아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 의원에게는 당에 복당해서 전면에 나서기도 부담스럽고, 침묵을 지키고 있기에도 어려운 묘한 딜레마의 상황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 의원의 복당이 당내 역학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당연하다. 지방선거 공천권과 차기 당권 경쟁을 놓고 주류와 비주류간 긴장관계가 고조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하지만 정동영 의원은 민주세력에 힘을 보태, 다른 무엇보다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가져오겠다는 것이 복당의 첫 번째 이유이자 그의 정치적 진정성이다. 너무 올곧아 자기 욕심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정동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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