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참여정부의 천도계획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 준비 안 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 결정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긴 결정문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ꡐ서울은 헌법상 수도(首都)ꡑ라는 것. 관습헌법이라는 위헌 결정의 논거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쟁이 제기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무리한 내용의 입법은 언제라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의해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회의 다수 의사로 결정하였다고 해도 ꡐ국민적 합의ꡑ를 무시한 권력 행사는 정당성을 갖지 못함을 이번 헌재 결정은 보여주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향후 정부의 중·장기 경제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을 되짚어봤다.
헌재, 국민여론 외면한 정부의 '일방통행' 제동
◈헌재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판결의 의미와 파장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은 ꡐ국민의 기본권ꡑ을 확대해석함으로써 국민이 헌법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인 헌법해석을 통해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 130조 국민투표권 침해(다수의견)=헌재의 결정은 크게 세 가지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첫째, 특별법이 규정한 신행정수도 이전은 일부 행정 기능을 옮겨가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의 중추 기능을 이전하는 사실상의 ꡐ수도 이전ꡑ이다. 특별법이 이전 대상 기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전 범위가 국가 정치 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를 정하는 것은 국가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헌법 사항이자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이다.
둘째, 헌법상 ꡐ서울이 수도ꡑ라는 명문 조항은 없지만 서울은 13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후로 지금까지 수도였다. 이는 전통과 관습에 의해 모든 국민이 확고하고 자명하게 인식하는 사실로 불문(不文)의 헌법규범화 된 '관습헌법'이다. 서울은 또 헌법 제정 이전부터 수도로 존재해 왔으며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의 폭넓은 합의를 얻은 것이다.
셋째, 이러한 관습헌법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을 하려면 헌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충청권의 특정 지역이 한국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면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다. 헌법 130조 2항은 이러한 헌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 이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특별법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국민투표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헌법 130조 위반에 의한 위헌이므로 72조 등 다른 쟁점에 대한 판단이 필요 없다.
▽헌법 72조 국민투표권 침해(김영일 재판관의 별개의견)=수도 이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안위에 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한다. 대통령은 ꡐ필요하다고 인정할 때ꡑ 이런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지만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것은 72조의 입법 목적과 정신에 위배된다. 대통령이 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는 것은 자의(恣意)금지 원칙과 신뢰보호 원칙에도 위반되는 위헌적인 것이다.
수도의 위치가 관습헌법에 관한 사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설혹 다수의견과 같이 관습헌법규범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이 특별법이 헌법 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130조보다는 72조에 의해 특별법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것이 타당하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법리적 특징은 ꡐ관습헌법ꡑ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ꡐ서울이 수도ꡑ라는 사실 자체가 관습헌법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관습헌법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또 헌재는 이처럼 법전에 문자로 표현되지 않은 불문 헌법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인정함으로써 ꡐ국민의 기본권ꡑ의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즉 헌재가 법률의 위헌 판단을 하려면 법률로 인해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돼야만 하는데 개헌시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됐다는 논리를 구성한 것.
현행 헌법은 헌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헌법제정권력자'이면서 동시에 '헌법개정권력자'이므로 불문헌법을 바꾸려 할 때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무리하게 수도 이전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또 국민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 입법 추진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결정 내리기까지…3개월만에 신속한 결정 이례적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 헌법소원 사건을 심리한 3개월간 철저히 ꡐ정중동(靜中動)ꡑ 상태였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보안유지가 최우선 사항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처럼 헌재 외부에서의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재판관 9명이 모인 사실은 연구관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이 평의(評議)를 몇 차례 열었는지, 평의 때 무슨 말들을 주고받았는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또 탄핵심판 때와 달리 언론에 대한 일일 브리핑도 없앴다. 공보담당 연구관조차 ꡒ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전혀 알 수 없다ꡓ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난 19일 당사자들에게 선고기일을 통지할 때도 헌재 내부에서조차 ꡒ텔레비전을 보고서야 알았다ꡓ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7월 12일 청구인 169명이 헌법소원을 제출할 당시만 해도 헌재 내부에서는 각하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청구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가 없었기 때문에 헌법소원 제기 당사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이유가 많이 거론됐다고 한다.
하지만 헌재는 사건 접수 하루 만에 이례적으로 재판관 3명이 참여해 헌법소원 제기의 기본형식을 갖췄는지 여부를 심리하는 지정재판부 평의를 열고 사건을 전원재판부로 회부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앞서 지난달18일 열린 국회 법사위의 헌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범주(李範柱) 처장은 ꡒ재판부가 법적심리 기간인 180일 이내에 선고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ꡓ고 말했다. 이 처장이 정말 몰랐던 것인지, 연막작전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신행정수도 건설작업 올스톱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이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됐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신행정수도 건설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따른 신행정수도 건설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따라 선정한 예정지 등 그간의 활동이 모두 효력을 잃기 때문에 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위헌결정은 특별법 자체에 국한된 것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추진 행위 자체를 위헌으로 판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향후 국민투표 절차를 거쳐 개별법률에 따라 신행정수도 건설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신행정수도 건설 반대론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데다 개별법률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경우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신행정수도 건설이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 추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더욱이 특별법이 위헌결정난 마당에 개별법률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할 경우국민여론 악화 등 모양새도 좋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추진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다 행정수도 이전시 헌법 개정에 준하는 국회 동의(제적의원수의 3분의 2찬성) 및 국민투표 절차를 거쳐야 되기 때문에 사실상 국회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나라당과 서울시 등은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의 신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하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우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특별법에 따른 신행정수도 건설계획이 무산된 만큼 앞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정부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방침을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대안으로는 도시개발법 등 개별법률에 따라 신행정수도 건설을 계속 추진하는 방안 등이 있을 수 있다. 개별법률을 이용할 경우 정부는 개별법률이 정하고 있는 절차를 모두 밟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많이 소요되게 된다. 참여정부 임기말인 2007년 착공하려던 정부의 계획도 자연스럽게 물거너가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가 개별법률에 따라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올해안에 연기.공주를 최종 입지로 지정, 고시하려던 정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에 비용상으로도 막대한 추가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신행정수도 건설비용 45조6천억원중 토지보상비는 4조6천억원으로 이는 보상 기준시점을 올해 1월1일로 잡은 비용이다. 토지보상 기준시점은 입지 지정 당해의 1월1일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 시점이 최소한 1∼2년 늦어지면서 비용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토지보상 기준시점이 1년 늦어지면 공시지가 상승분 만큼의 비용, 즉 최소 10%이상의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에 토지보상비는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추진위 관계자는 “워낙 파장이 커 지금 당장은 구체적으로 뭐라 할 말이 없다”면서 “개별법률에 따라 신행정수도 건설을 재추진할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부처간 협의를 거쳐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대한 경제적 파장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위헌 결정 여파로 경제에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부동산 경기를 중심으로 소비와 투자가 냉각될 전망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지난달21일 주가는 전날보다 7.98포인트(0.96%) 떨어진 820.63을 기록했다. 위헌 결정은 단기적으로 수도이전을 전제로 충청권 개발 사업을 벌여온 건설업체와 충청권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당장 큰 타격을 줄 전망이다. 이 때문에 현 정부 들어 충청권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급격히 늘려온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기관도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재무구조가 부실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충청권 대출 잔액은 2002년말 약 40조원이던 것이 지난 6월말에는 약 49조원으로 9조원 이상 급증했다. 대출 증가율은 22.5%로 전국 평균 17.6%를 웃돌았다. 서울 거주자가 충청권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경우까지 감안하면 충청권 대출은 더 많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의 A상호저축은행 관계자는 ꡒ부도나는 건설업체가 줄줄이 생길 것ꡓ이라며 ꡒ정부가 기업도시 등 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지역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할 판ꡓ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위헌 판결로 정부정책의 신뢰도에 금이 가고 정치적 혼란이 빚어질 경우 경제여건의 불투명성이 확대되고 경제 주체의 심리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서도 오는 2007년부터 신행정수도와 지방혁신도시 건설 공사에 따른 경기부양을 전제로 수립한 거시경제 운용계획을 다시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력 낭비․국론 분열의 책임은 누가
현 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 1년8개월여 동안 위헌적인 수도이전을 추진한 데서 비롯된 유 무형의 국력 낭비, 사회 갈등, 정치 대립은 막을 수 있었다. 집권세력이 국민 다수 여론에 귀를 기울였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수 여론은 철저히 무시됐다. 이 커다란 국가적 피해의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노무현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수도 이전 문제 자체가 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충청권 득표를 위해 공약으로 제기해 밀어붙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부의 이의 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ꡐ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 균형 발전ꡑ을 명분삼아 ꡒ필요하면 국민투표라도 하겠다ꡓ며 앞만 보고 달렸다. 취임 이후 사회 각계에서 반대 여론이 일었지만 노 대통령은 ꡐ정부의 명운과 진퇴ꡑ까지 거론해 가며 강경 일변도로 치달았다.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 문제를 자신의 진퇴와 연결시켜 발언한 것은 세 차례나 된다.
노 대통령은 선거 과정서 약속했던 국민투표에 대해선 ꡒ헌재가 법에 걸린다고 해서 탄핵될까봐 못하겠다ꡓ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1일 수도이전이 국민투표에 해당하는 사항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여권 핵심부가 헌법 문제조차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청와대 정부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수도 이전 문제에 관한 한 철저히 노 대통령의 ꡐ예스맨ꡑ이었던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해찬 총리는 ꡒ(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언론이 올바로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ꡓ고 언론 탓을 하며 직접 라디오 홍보에 출연하는 등 총대를 멨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전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도 다수 여론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기에만 열중했다.
◈여야 ꡐ위헌결정ꡑ 공방속 대안모색 분주
여야는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정부여당의 수용문제를 놓고 공방을 계속하면서 대안모색에 나서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헌재의 위헌 결정기준인 ꡐ관습헌법ꡑ의 법리적 문제점을 계속 제기하면서도 충청권 행정타운건설 등 각종 대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번 파문이 여당의 정략적 충청권 득표작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고, 헌재 결정 수용을 거듭 촉구하면서 충청권을 과학기술 행정도시로 육성한다는 대책을 제시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여당이 추진하는 4대 입법에 대해서도 위헌 가능성을 공식제기하고 나서 위헌공방 전선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의장은 전남 강진군수 재보선 유세에서 ꡒ요즘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재판소가 근거로 제시한 듣도보도 못한 관습헌법으로 좌절되어 여러분이 크게 실망하실 줄 안다ꡓ며 헌재의 위헌결정을 거듭 비판했다. 그는 ꡒ참여정부와 우리당은 독재가 만들어 놓은 모든 악법을 청소하고자 개혁입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반개혁, 반민주주의자들의 저항과 발목잡기로 어려운 처지에있다ꡓ면서 ꡒ이들은 국민통합을 방해하고 냉전․분단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시대착오적 세력ꡓ이라며 한나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ꡐ10.30 파주시장 보궐선거ꡑ 지원유세에서 ꡒ정부여당은 이른바 4대법안을 관철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이 법안은 하나같이 헌법에 위반되고 국민을 분열하고 있다ꡓ고 말해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관련법, 과거사진상규명법 등도 위헌공방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