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장성군애향운동본부장에 취임한 이정범 회장은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애향운동 본부장이라는 과분한 직책을 맡게 되어 한량없이 어깨가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봉사의 기회를 부여해 주신 성원의 힘을 믿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인 노천명님의 시처럼 ‘언제든지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요. 또 마지막에 돌아가고 싶은 곳도 고향’ 내고향 장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향을 떠나 살아 온지가 어언 40년이 흘렀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고향을 떠올렸고 어머님을 생각하며 이겨냈습니다. 이제 이순을 넘기며 평소에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던 차에 고향 어르신과 선후배님의 권유로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뜻을 모아 펼치는 참된 애향운동을 위해 노력하겠으며 먼저 장성인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일에 우선하여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티끌만큼의 사심도 없이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하나의 구심점으로 똘똘 뭉쳐 사는 장성인의 참모습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라고 취임소견을 밝히며 협조를 당부했다.
고향사랑 나라사랑을 실천한다
이정범 회장은 “어머님품 속 같은 고향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언제나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저마다의 고향이 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따라서 애향과 애국은 일맥하기에 애향을 못하는 사람은 애국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며 “아름다운 강토, 살만한 나라, 보람 있는 사회를 만들어서 우리의 아들딸에게 빛나는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은 민족적 의무요, 책임입니다”라고 고향사랑 실천을 당부한다.

오직 밝은 희망만을 꿈꾼 오뚝이 인생
이정범 회장은 (주)태청실업이 작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오직 철저한 자기관리와 신뢰가 승부수였다고 한다. 고향인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 이문출생으로 1남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나 안타깝게도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로 인해 부친을 여의고 분가하지 않은 사촌과 함께 한집에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우애 깊게 자랐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상경한 이종범 회장은 건축업에 종사했다. “당시 어렵고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사촌동생을 서울 중학교에 진학시켜 학업에 전념케 했습니다”라는 이 회장은 당시를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화마에 가계는 불에 타버리고 가족들은 길거리에 쫓겨나는 고통을 겪었다. 1993년 사업실패로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너무나도 힘들고 견디기 어려워 한강대교에 신발을 벗어본 적도 있다고 털어 놓는 이 회장. 신뢰가 두텁고 성실한 그는 주변의 조력으로 재기를 시작하여 성공할 수 있었다.
절망과 좌절의 어둠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고 오직 밝은 희망만을 꿈꾸며 칠전팔기 오뚝이 인생을 살아온 그는 “행복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은 결코 비옥한 땅이 아님을 상기시키며 절망과 좌절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된 행복을 이루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라고 단정하고 싶다고 말한다.
만학으로 2006년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제2기 부동산 최고경영자 과정 이수, 순천향대학교 건강과학대학원 건강과학 CEO 과정 이수, 1998년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문화체육 최고위 과정 제9기 운영위원장,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해공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이 회장은 국제라이온스클럽 표창, 1998년 2월24일 장성군수 감사패, 삼서농협장 감사패, 2007년 10월1일 장성군민 대상 수상(사회복지 및 체육부문 본상 수상)을 수상했다.
법조계에 소문난 아우사랑 형사랑

자신을 촛불처럼 태워 빛으로 나눔을 실천해온 그는 저소득층, 독거노인, 중증자애인, 고향어르신을 위해 잔치를 하고도 지역신문에 보도하지 못하게 하는 등 선행을 일삼고도 드러내지 않는다는 주변의 변에서 그가 무상 보시 행을 실천하는 참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횃불 장학회와 ‘사랑이 있는 세상’ 어린이재단 등에 장학금 지원하고 있다. 그는 늘 베풀고 보시하는 마음으로 조금은 손해 보며 잘 살아야 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정범 회장은 또한 함평 이 씨 서울종친회장에 추대되어 종무를 관장하고 있으며, 어떤 일이든 완벽을 기하는 그는 장성군의 유명한 명사들로 구성된 백양회 회원이며 발기를 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의 소박한 소망은 고향 선산의 선영을 모시고 조상을 받드는 산소 정비가 남겨진 일이다.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독실한 불자로 현재 장성 백양사 불교대학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