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팬, 그리고 제3의 이름 ‘사생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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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팬, 그리고 제3의 이름 ‘사생 팬’
  • 박희남 기자
  • 승인 2010.01.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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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활동은 NO, 오로지 스타의 사생활만 추적해

▲ 아이돌그룹 2PM의 열성팬이라는 한 네티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옥택연 너는 나 없이 살수 없어’라는 생리혈서를 올려 네티즌들을 충격으로 내몰고 있다.
지난해 10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은 ‘팬덤 르포-사생 뛰는 아이들’을 방영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인기 아이돌그룹 2PM 멤버 택연의 사생 팬으로 추측되는 한 극성팬이 ‘생리 혈서’라는 엽기적인 행동을 보여 잘못된 팬덤문화에 대한 우려와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인 즉 지난 10월28일 2PM 택연의 팬이라고 자칭한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2PM 갤러리에 ‘옥택연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어’라는 내용의 글자가 적힌 생리 혈서를 만들어 사진으로 공개한 것. 이를 접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혈서를 놓고 진위 여부 논란이 일자 이 극성팬은 자신의 생리혈이 묻은 속옷까지 공개하며 진짜 혈서란 사실을 입증하여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이건 스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이라고 보기엔 도가 지나쳤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마치 스토커 같다’라며 극성팬을 향해 욕설을 남기는 등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연예계 ‘사생 경계주의보’

▲ 스타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타들의 뒤를 따르는 일부 사생 팬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연예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연예계는 도를 넘어선 일부 사생 팬들의 막무가내식 행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연예인들 역시 사생 팬들로 인해 자신의 사생활이 노출될까 하는 심리적 불안감으로 심할 경우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 아이돌 스타는 방송 녹화현장에서 팬들을 향해 ‘집까지 찾아오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호소했지만, 사생 팬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이러한 가운데 원더걸스의 전 멤버 현아가 포함됐다는 점에서 데뷔와 동시에 다양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신인 여성그룹 포미닛이 사생 팬들의 과도한 사랑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일화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포미닛은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를 비롯해 멤버들의 사적인 물건과 무대 의상을 도난당했으며, 이에 앞서도 팬들의 소행으로 축제 차량의 뒷 유리창이 파손됐다. 포미닛을 향한 사생 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도난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소속사 측은 사건 현장을 보존하고 경찰에 지문감식을 의뢰한 상태이며, “일부 극심한 사생 팬들로 인해 스타와 팬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빗나간 애정 표현은 자제해 주길 당부했다.
지난 4월 동방신기 믹키유천의 카메라 압수 논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은 한 블로그 사이트를 통해 ‘믹키유천 공항에서 팬에게 화가 나 카메라 뺏음’이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믹키유천이 공항에서 자신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 민 팬으로부터 강압적으로 카메라를 빼앗는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시작됐다. 동영상은 삭제할 틈도 없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네티즌 사이에서는 믹키유천의 강압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극성팬에 대한 비난의 주장이 팽팽이 맞섰다. 하지만 며칠 후 믹키유천에게 카메라를 빼앗긴 극성팬이 믹키유천의 사생 팬으로 밝혀졌고, 이 여성은 동방신기의 사진을 찍기 위해 비행기 표까지 구입하며 공항 안내원에게 표 검사를 하면서 바로 뒤에서 표 검사를 기다리고 있던 믹키유천에게 근접촬영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송 역시 스타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른바 ‘사생방송’을 방영해 시청자들의 따가운 질타를 받고 있다. KBS 2TV ‘일요일 밤으로’에서는 한국인 비하 발언으로 2PM을 탈퇴한 재범의 근황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재범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직접적인 인터뷰를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취재하는 과정이 그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재범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취재에만 몰두해 오히려 재범에게 심적 부담만 줬다는 것이 시청자들과 팬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에 네티즌들은 이 방송을 사생 팬과 비교하며 ‘인권침해 하는 사생방송을 즉각 중단하라’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생 팬이 단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지나친 팬심과 사생 팬들에 대한 문제해결의 필요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 KBS 2TV ‘일요일 밤으로’에서는 한국인비하 발언으로 2PM을 탈퇴한 재범의 근황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지만 재범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직접적인 인터뷰를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취재하는 과정이 그러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우리에게 때와 장소는 상관없어요”
공개방송을 위주로 활동하는 팬을 흔히들 ‘공방팬’이라 부른다. 반면 이들과 스스로 차별화를 시키는 사생 팬은 주로 밤에 활동을 하며 이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사생 뛴다’라고 표현한다.
헤어샵, 식사 장소, 데이트 장소, 숙소 등 스타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이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타들의 뒤를 따르는 이들은 자신의 한 달 용돈을 훌쩍 넘긴 30여만 원의 돈을 지불해 택시를 타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차량을 뒤 쫓는 일은 기본이며, 단 한번이라도 스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기획사 사무실과 연예인의 숙소 등을 배회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추위에 몸을 덜덜 떨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기 위해 숙소 앞에서 무작정 밤을 새워 기다리는 일은 부지기수이며, 혹여 해외 스케줄이 잡힐 때면 즉시 공항으로 달려가 그들의 입출국 모습을 지켜보며 마냥 흐뭇해한다.
최근엔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에서 원정 나온 외국 사생 팬이 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부분 일본이나 중국에서 건너온 이들은 한국어 연수를 빙자해 한류 스타의 집 근처에 숙소를 구한 뒤 본격적으로 사생을 뛰는 등 시종일관 적극적으로 사생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사생 팬 못지않게 온갖 기동력을 동원해 스케줄을 파악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아예 국내로 이사를 온 경우도 드물지 않게 눈에 띄고 있다. 또 국내 사생 팬과는 달리 스타들의 회식장소에 접근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매니저와 경호원들이 해외 팬들을 관광객들로 오인하고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 이러한 이유들로 해외 사생 팬은 국내 연예계 또 하나의 문젯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건전한 팬클럽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들은 “사생은 스타를 힘들게 하는 혐오 대상일 뿐”이라며 사생 팬 과 구분 없이 통칭으로 일컬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과 사생 팬을 분명하게 구분지어 줄 것을 요구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생’이라는 단어 뒤에 ‘팬’이라는 말을 빼줄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연예계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사생 팬들은 누군가를 연모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같은 팬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죽음으로 가는 사생택시
사생 팬은 소위 ‘죽음의 택시’라고도 불리는 사생택시를 이용수단으로 방송사에서 공연장으로, 공연장에서 소속사로, 숙소로 위험천만한 추격전을 벌인다. 쫓기는 자와 쫓으려는 자의 긴박한 레이스는 무려 180㎞~200㎞에 이르는 속도의 아찔한 상황까지 치달으며,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상태에 다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습관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 스타의 뒤를 밟고 있다.
4인 기준 하루 20만 원 정도의 돈이면 밤샘 추적도 가능한 사생택시의 수는 서울 시내만 해도 100여 대가 훨씬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시간에 약 2만 5,000원 정도로 하루 40만 원 가량의 돈을 번다는 사생택시 기사들은 “위험한 줄은 알고 있지만 학생들은 오히려 더 빨리 가길 원한다”며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그들은 이어 “휴게소에서 잠깐 쉬는 가수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부산이며, 대구 등 지방까지 따라가는 경우는 매우 흔한 편”이라며 “어떤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그랜드피아노까지 선물했다고 자랑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들도 자식 또래의 아이들이 안쓰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변변치 않는 택시기사 수입으로는 넉넉한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이들에게 단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사생택시는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일 터. 하고 싶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사생택시를 운전해야 한다는 이들의 불안한 운행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과거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독특한 응원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팬 문화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부각되고 있다. (사진: 소녀시대 팬들이 멤버 유리의 생일 맞아 일간지에 축하광고를 게재. 지난 6월에는 멤버 서현의 생일을 기념해 쉼터에 후원금을 기부를 한 적이 있다.)
학교 자퇴, 가출 등 사회적 병폐로 연결
그렇다면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 24시간 스타들의 뒤를 쫓아다니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대부분의 사생 팬들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자신만이 알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에 강한 중독성을 느껴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무의미한 성취감은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병폐로 연결되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 무리한 사생활동으로 인해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 수가 점차 늘어가고 있으며, 매니저와 경호원과의 마찰로 인한 폭행 문제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소음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며, 사생차량과 연예인 차량의 교통사고 등 탈선과 사고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또한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사생 팬이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개인차량번호 등 스타의 개인 정보를 유출해 인터넷상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날이 갈수록 연예인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착과 극단적인 애정표현으로 왜곡된 10대 청소년의 팬심에 대해 가볍게 여기고 넘길 것 이 아니라 학교와 가정의 올바른 교육과 팬클럽 스스로의 자정작용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과거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홍보하기 위해 선행을 베풀고, 독특한 응원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팬 문화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음지에 존재하는 일부 사생 팬들로 인해 다수 팬들의 진심어린 애정까지 사생으로 오해되고 있어 팬덤 문화의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단순히 이들을 표현에 솔직한 ‘신세대 집단의 한 부류’로 보느냐, 스타의 인간적 권리까지 침해하는 ‘철부지 집단’으로 보느냐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스타도 먼저 사람이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가 원치 않는 행동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팬의 자세가 아닐까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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