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협치’,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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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간 ‘협치’, 누구의 책임인가
  • 김옥경 차장
  • 승인 2016.10.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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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대통령 연이은 장관 해임 거부, 텅 빈 대의민주주의

野 강력 반발 “상생과 협치는 야당만의 의무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유는 해임건의안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헌법이나 법률 위반, 정책수립이나 집행의 중대 과실, 대통령을 잘못 보좌하는 등의 통상적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의결되었다고 해서 대통령이 해당 장관을 무조건 해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대의민주주의 기치 아래, 국민의 대표로 뽑힌 의원들의 요청을 한번쯤은 경청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 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장·차관 워크숍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참석시킴으로써 사실상 국회가 의결한 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장·차관 워크숍에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참석시킴으로써 사실상 국회가 의결한 김 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에 이은 대통령의 두 번째 독불장군식(?) 제식구 감싸기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은 올해만도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우리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고,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나라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며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개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법안들은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다. 이러한 비상시국에 굳이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한 야권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인 동시에 ‘절대 수용불가’라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야권이 제기한 의혹 중 사실로 판명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장관을 해임하려고 드는 것은 국정의 ‘발목잡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생각인 것이다.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에서 한 치라도 야권에게 밀릴 경우 정국주도권을 내주게 되고, 그로 인해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이 가속하면 집권 후반기 국정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사청문회 당시 김 장관의 대형아파트 전세문제를 거론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박성명서를 통해 청문회 당시 내용이 다 사실임을 거듭 강조했다.
“김재수 씨는 88평 고급 빌라를 거의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농식품부 영향권에 있는 농협에서 저리로 전액 대출 받아 식품 대기업의 계열 건설사로부터 시세보다 2억 낮게 주택을 구매했습니다. 몇 년 뒤 팔아치우면서 3억 7000만 원의 시세차익을 올렸습니다. 그 뒤 93평 대형아파트에 전세금 1억 9000만 원에 7년 동안 단 한 번의 전세값 인상도 없이 전세를 살았습니다. 지금은 90평이 넘는 아파트를 농협에서 1.4%의 황제금리로 대출받아 구입해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88평 빌라와 92평 아파트 구입 시 농협에서 대출 특혜를 받은 것이 분명함에도, 빌라 구입 때는 1.4%가 아니었다고, 그래서 허위 폭로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힐 일입니다. 또한 자신이 농식품부 차관 등 고위직에 재직 중이고, 동생은 외국계 대기업 부사장으로 있으면서도 모친을 10년간 차상위 계층으로 등록해 2500만 원이 넘는 건강보험을 부당 수령한 것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선 듯하고, 민생의 문제보다는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장·차관들 마음도 무거울 것”이라며 “다시 한 번 신발끈을 동여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말고 모두 함께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국민을 위해 뛰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더불어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20대 국회에서는 요원해 보인다고도 덧붙여 야권의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악의적인 정치공세로 몰아붙였다. 이로써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던 김 장관이 먼저 사의를 표명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진 셈이다.
 
“거듭 진언”, “대통령 체면구하기 올인”…野 공세적 압박
   
 
‘협치’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고 개원한 20대 국회는 5개월 만에 파행을 맞이했다. 20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실시한 국정감사는 여야의 강경 대치로 처음부터 어그러졌고,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4일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이 청와대 장·차관 워크숍 자리에서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며 유감을 표명한 것에 대해 오히려 “야당이야말로 유감스럽다”라며 맞받아쳤다.
윤 대변인은 “상생과 협치는 야당만이 져야할 의무가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상생을 위한 노력은 무엇이었는가”라고 반문하며, “비상시국이기에 국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더욱 부적격 장관의 해임이 필요하다. 비상시국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고 묵인될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윤 대변인은 “해임건의의 형식적 요건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국회의 정당한 절차를 문제 삼는 것은 국회에 대한 무시로, 행정수반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더불어 “정부여당이 비상한 경제와 안보, 국민안전을 위해 노력했다면 국민들이 이토록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헌정사상 다섯 차례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 그들은 모두 사퇴했다. 여섯 번째 해임건의안이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이것은 국회의 요구이자 국민의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을 무겁게 받아들여 김재수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외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9월 25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대통령께서 비상시국에 농식품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한 국회를 야단치시며 사실상 해임 거부를 시사했다”며 “거듭 진언드린다. 해임해야 한다. 혼자 가면 실패한다”고 피력했다.
박 위원장은 “우병우 수석은 감싸고, 이석수 특감은 오랜 전 사표 냈지만 국감 기관 증인 의결하니 예상대로 국감 증인 못 나가도록 타이밍 맞춰 사표 수리하는 게 비상시국 대처라고 우기지는 않겠죠”라고 비꼬며 “대통령께서 비상시국이라 인정했다면 누가 자초했나. 타개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더불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집권당이 국회를 보이콧하겠다니요? 민생을 포기하려 하나요”라고 꼬집으며 “지진으로 무너져가는 민생, 한진해운사태, 사드공포로 생기마저 사라진 지역경제 이런 심각한 일 다 팽개치고 대통령 체면구하기에 다 올인할 겁니까”라고 질타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의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 야당의 의견과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협조를 요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의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박 대통령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결정을 거부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며 “박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 또다시 막장의 새로운 역사를 남긴 날”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새누리당은 25일 야권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와 관련, 정세균 국회의장을 직권남용으로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
김현아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 직후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 방해죄로 형사고발할 것이며 국회 윤리위원회에도 회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 누리당 박명재 사무총장이 9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김재수 농림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를 두고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균 국회의장 또한 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과 관련한 처리가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국회사무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해인건의안 처리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을 반박했는데, “23일 본회의는 교섭단체 의원총회 등으로 개의(오전 10시 예정)가 지연돼 오후 2시에 개의하게 됨에 따라 예정된 안건심의를 완료하지 못했다. 특히 해임건의안은 처리시한이 법정돼 있어 국회가 법적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24일 본회의 개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국회법 제77조의 회기 전체 의사일정 변경절차에 따라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24일 본회의를 개의했다”고 설명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해임건의안 처리시한은 본회의 보고가 이뤄진 시점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이다. 이번 김 장관 해임건의안이 22일 오전 10시쯤 본회의에 보고됐기 때문에 23일 오전 10시부터 25일 오전 10시까지 해임건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사무처는 또 의사일정 변경에 반발하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일정에 올린 안건에 대해 심의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 국회법 제78조에 따라 안건의 상정여부 및 순서를 다시 정해야 한다”며 “안건의 상정여부 및 순서는 국회법 제76조제2항에 따라 국회의장이 작성하도록 돼 있고, 당일 의사일정은 그날에만 효력이 있으므로, 24일 본회의 의사일정은 23일 본회의 의사일정에 구속받지 않고 국회의장이 다시 심의대상 안건과 그 순서를 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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