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개패논란
상태바
국가보안법 개패논란
  • 글/최승걸 기자
  • 승인 2004.10.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보안법 파동에 요동치는 한국호(號)"
국가보안법 파동으로 나라가 요동치고 있다. 지난 7월 시작된 정치권의 개정-폐지 논의 양상이 정파간 세대결로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사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 불가 입장에 맞서 노무현 대통령이 폐지론을 직접 피력하면서 청와대와 사법부의 정면충돌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그리고 행정수반인 노 대통령 사이의 정면대결은 사상초유의 일이다. 이런 가운데 국가보안법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단순폐지론이야 애초부터 힘을 잃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개정론과 폐지 및 형법보완론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대안입법론으로 국보법 논쟁의 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며, 여기에 덧붙여 국보법 개정론도 새로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개정론과 폐지 및 형법보완론에 대안입법론까지 난무하는 이견들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으로 지금 한반도 남쪽에서는 사상적 내전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격렬한 논쟁이 벌이지고 있다. 대표적인 악법인 국보법을 폐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지적에서부터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개정론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 對 사법부의 대립각
노 대통령은 지난달 MBC 〈시사매거진 2580〉 500회 특집기념 대담에서ꡒ국가보안법이 위헌이다, 아니다 해석이 갈릴 수 있지만, 위헌이든 아니든 악법은 악법ꡓ이라며ꡒ국가보안법을 없애야 대한민국이 드디어 문명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ꡓ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ꡒ보안법을 가지고 법리적으로 자꾸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ꡓ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사법부의 국보법 폐지불가 입장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헌재와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시 일고 있는 소모적 찬반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읽힌다.
노 대통령은 다만 문제 조항(찬양고무죄-불고지죄) 등에 대해서는 형법 등으로 대체입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법리적인 문제로 사법부와 대결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법리적 대결에서 빚어지는 사법부 침해 시비에서 벗어나겠다는 발언인 셈이다.
사법부가 국보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8월 30일 대법원 판결문에는 법률적 판단 수준을 넘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사법부 견해가 포함됐다. 판결문은 ꡒ북한은 여전히 우리 체제를 전복시킬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가져오는 조치는 여간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ꡓ고 적시했다. 이는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법부가 국가의 중요사안에 대해 정책적 의견을 제시한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대법원의 정책적 의견 제시는 헌재의 위헌판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헌재의 찬양고무죄 판정은 개별조항에 관한 것이다. 반면 대법원 의견은 국보법 자체에 대한 의견이었다. ꡒ국보법의 규범력을 소멸시키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ꡓ는 대목은 국보법 폐지론자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한 대법원 재판연구관은ꡒ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열린우리당에 작심하고 경고를 보낸 것 같다ꡓ고 말할 정도다. 사법부의 의견이 교착상태에 빠진 국보법 논쟁을 확대재생산한 것은 물론이다.
어떻든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보안법 존치라는 공통된 의견을 냄으로써 국회의 국보법 폐지 논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됐다. 대법원이 확고하게 국보법 개정불가 입장을 못박은 상황에서 국보법 폐지 노력은 제동이 걸린 것이다. 사법부의 한 인사는 ꡒ이제 공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국가보안법을 정비하든지 정부가 이를 적극 추진하지 않는 이상 대법원 판례는 강력한 귀속력을 갖게 될 것ꡓ이라고 말했다.

◆폐지 당론화 對 정권퇴진운동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않는 이상 국보법 폐지가 난항에 봉착할 것은 불문가지다. 국보법 폐지는 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정면돌파를 선언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는 물론 열린우리당도 즉각 노 대통령의 견해에 부응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ꡒ이 법이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반인권의 상징ꡓ이라며ꡒ정부 입장은 국보법 폐지ꡓ라고 못박았다.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도ꡒ행정부 수반으로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당원인 대통령의 말씀을 중요한 참고의견으로 생각하고 좀더 넓게 국민의견을 수렴해나갈 것ꡓ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국보법 폐지 당론화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폐지론의 선봉장인 임종석 의원은ꡒ폐지당론화에 도움이 될 것ꡓ이라고 전망했다.
7월 말 현재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은 114명이었고 개정을 주장하는 의원은 145명(〈서울신문〉설문조사)이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보법 폐지 87명(서명의원), 개정 30여명으로 나뉘어 있다. 유보 입장을 보이는 40여명 의원이 열린우리당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당론화를 추진할 경우 유보적 입장을 보인 의원들은 폐지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심지어 개정론에 앞장섰던 안영근 의원조차도ꡒ지금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냐ꡓ며 입을 다물었다. 노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대체입법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라면 국보법을 둘러싼 여야의 정면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나라당은ꡒ노무현 정권의 국가정체성 훼손ꡓ이라며 극렬히 반발하며 노 대통령의 탄핵을 재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ꡒ국보법 반대하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겠다ꡓ는 요지의 북한의 남북 민간교류창구역할을 맡고 있는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 담화를 예로 들면서ꡒ노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위해 국가정체성으로 포기하고 있다ꡓ고 말했다. 보수 일각에선ꡒ노무현 정권이 국보법 폐지를 강행할 경우 이 정권에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ꡓ고 말해 정권퇴진운동 가능성도 시사했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현실
그렇다면 현재 국보법폐지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양분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남북관계는 과거에 비해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지난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교역량이 지난 2002년 6억4000만달러에서 지난해 7억2000만달러로 늘었고, 인적교류도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등으로 연간 1만5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런 교류 활동도 국가보안법의 잣대로 보면 언제든지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김인회 변호사는ꡒ어떤 때는 반국가 단체 구성원을 만나는 것이고 어떤 때는 대화와 협상의 상대방을 만나는 것인데 이것이 어느 쪽으로 될 것인가를 법 집행자가 판단하는 것이 큰 혼란이었다ꡓ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ꡒ국가보안법이 있다고 뭐가 불편하냐, 불편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것 아니냐ꡓ는 지적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은 그냥 둬도 문제가 없는 법이 아니라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공안 관계자들은 1991년 국보법이 개정된 이후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국보법으로 인한 피해사례는 끊이질 않고 있다.
진주경상대 교수 7명이 공동집필한ꡐ한국사회의 이해ꡑ사건이나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의 ꡐ나는야 통일1세대 사건ꡑ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들은 1, 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났다. 결국 학문연구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셈이다. 어떤 사회학자들은ꡒ총기소지를 금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ꡓ며ꡒ그러나 그 총기가 강도 등 범죄에 이용되기도 하고 사소한 가족간의 다툼에 잘못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총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ꡓ는 예를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언제든지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악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폐지되야 한다는 것이다.

◆폐지론 對 유지론 對 개정론
국보법 존폐를 둘러싼 시민들의 찬반 입장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때문에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나타났던 보혁 대립구도가 또 한번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시민은ꡒ우리 같이 북한이 무섭고 전쟁이 무서운 게 뭔지 아는 세대들에게는 국보법 전면 폐지는 시기상조이다ꡓ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시민은ꡒ형법으로 커버가 되는 상황에서 전면 폐지가 당연하다ꡓ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면 폐지와 존속이 아닌 부분개정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다.
한 시민은ꡒ형법으로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니까 국보법은 있되 지나치게 인권유린 등을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은 고쳐야 한다ꡓ며ꡒ함부로 폐지하는 것은 국민 대부분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 있다ꡓ고 밝혔다.
이처럼 논란을 빚는 이유는 국가보안법의 상징성 때문이다. 국보법 폐지 반대론자들은 무엇보다 북한도 노동당 규약과 형법을 통해 우리를 적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국보법을 폐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보법은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꼭 필요한 하나의 국가 안보의 상징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폐지론자들은 국보법이 인권침해와 정권안보에 악용돼온 구시대의 유물, 구시대의 상징이라는 입장이다.
이러다 보니 서로의 의견을 좁힐 만한 접점을 찾기 힘들게 되고 대립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은 상황이며 정치권의 첨예한 대립도 정당의 색깔과 상징성이 맞물리면서 상승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잘못 적용돼 인권침해를 당하고, 군사 정부 당시 정권의 안전을 담보했던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또 남북 교류가 확대돼 한 민족인 북한에 대해 동질성을 느끼고 협력을 하고 있지만, 군사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보법 폐지가 안보의 공백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부분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국보법의 상징성만을 내세우지 말고 서로가 인정하는 공통점을 찾아 진지하게 타협의 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보법 폐지 문제가 국민의 의견 수렴과 정치권의 활발한 토론을 통해 색깔론 등 대립이 아닌 타협으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보법이 '이분법을 부른다'
참여연대등ꡐ폐지집회ꡑ…보수단체는ꡐ유지 서명운동ꡑ
국가보안법 존폐논란이 여야 정치권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도 성향별로 국가보안법 폐지 찬반집회를 갖기로 하는 등 장외공방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참여연대, 녹색연합, 여성민우회 등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국민연대는 전국적으로ꡐ국가보안법 폐지 범국민 대행진ꡑ행사를 벌였다. 이들은 지방에서도 동시에 시민들이 참가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촉구 행진을 벌일 계획이며, 조만간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온라인 찬반토론도 가질 예정이다.
반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은 이에 맞서 각종 서명운동과 집회, 강연회 등을 통해 국가보안법 존치여론을 확산시킨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미니3당ꡐ국보법 당론ꡑ3色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兩强)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자민련도 저마다의 당론을 설정해 당력을 쏟고 있다. 입장도 선명히 갈린다.
민주노동당은 완전한 국가보안법 폐지에 선다. 김혜경 대표 등 지도부는 국보법 폐지를 위한 전면 투쟁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김대표는ꡒ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국보법을 폐지시켜 국민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고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당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할 것임을 선포한다ꡓ고 밝혔다.
민주노동당은 시민․사회단체와 국보법 완전 폐지를 위한ꡐ1백만인 서명운동ꡑ을 펼치고, 문화제 등을 통해 범국민적인 운동을 벌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국보법을 폐지하되ꡐ민주질서 수호법ꡑ이나ꡐ국가보위에 관한 특별법ꡑ(가칭)으로 대체입법을 하자는 쪽이다. 한화갑 대표는 성명에서ꡒ이번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북한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닌 전세계를 상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보존하기 위한 법체계를 새롭게 갖추는 건설적인 논의가 되어야 한다ꡓ고 주장했다. 자민련은 현행 국보법 수호 쪽이다.

◆국보법폐지 일침놓은 종교계
이부영(62)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박근혜(52) 한나라당 대표가 일제히 종교계 원로를 찾아 국가보안법 폐지 등 정국 현안에 대한 동의와 협조를 구했다가 이 의장은 울고, 박 대표는 웃었다.
이 의장이 찾아간 조계종 법장스님(총무원장)은ꡒ아무리 좋은 것도 대중이 부정하면 좋은 것이 못 된다ꡓ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해 집권여당의 정책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의장은 법장스님의 여과없는 꾸지람 앞에 집권여당의 정책 보따리를 다 풀어 보이지도 못한 채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반면 박 대표를 맞이한 김수환 추기경은ꡒ여성이 고생하고 있다. 꿋꿋하게 나라를 화합으로 이끌어 달라ꡓ며 등을 토닥거렸다. 서울 혜화동 주교관 주변에 웃음소리가 자주 새나왔다는 후문이다.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두 정당 대표의 성적은 극명하게 갈렸다. 종교지도자를 상대로 한 정치 마케팅에서 박 대표는 100만 원군을 얻었고 이 의장은 혹을 더 붙인 셈이다. 이 의장으로선 위로와 격려를 받으러 갔는데 호된 야단만 맞았다. 두 종교지도자의 이어진 일갈은 이 같은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김 추기경은ꡒ모든 문제를 갈라서 생각하는 남남분열이 큰 걱정ꡓ이라며ꡒ지금 상황을 볼 때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것 같다ꡓ고 말해 국론분열의 진원지를 경계했다.
법장스님도ꡒ칼이 있는데 과일을 깎으면 과도요, 식당에서 쓰면 식도고 살인에 쓰면 식칼이 된다ꡓ며ꡒ수청무어(水淸無魚)라,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는 법ꡓ이라면서 권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두 종교지도자의 충고는 원로급 인사 1500여명의 시국선언 이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국보법 폐지를 놓고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그간 입을 열지 않았던 원로들의 속깊은 가슴앓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경세제민(經世濟民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보다는 정쟁에 몰두하는 양대 정당이 향후 정국 운영에 두 종교지도자의 충고를 어떻게 활용할지 주목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