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가 다시금 불거진 것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외고 폐지 법안 추진 중이라는 발언에서부터였다. 이에 정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의원 15명은 지난 10월30일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한 정 의원은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비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을 압박하고 있으며 이 핵심 원인 중 하나가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인 외고 입학시험을 위한 학원비용이 증가함에 따른 것”라면서 법안을 제안했다.
정 의원은 “외고가 외국어 특기를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지만 현재 외고 입학시험에서는 전 과목 우수자를 대상으로 선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외고는 소위 명문대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재학생 중 대학 어문계열로 진학하는 학생은 23%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외국어에 소질이 있거나 흥미가 있는 학생도 전 과목이 우수하지 못하면 외고 입학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이에 정 의원은 이 법안이 현행 특목고를 특성화고로 통합하고 외고 등 특성화고를 자율형학교로 지정해 운영하도록 하며 과학고, 예술고 및 체육고 중 일부 우수학교를 영재고등학교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이철우 의원은 지난 10월6일 교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외고가 설립취지에 맞지 않게 상위권 대학 진학에 유리한 학교로 변질되면서 교육정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외고 정책을 바로 잡지 않으면 결코 사교육은 근절되지 않는다”면서 외고의 방향 전환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 안병만 장관은 연말까지 방향 전환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외고 선발방식이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 주장
이 의원은 이에 덧붙여 학교 관계자들이 외고 선발 방식 변경에 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이 10월28일∼30일까지 전국 16개 시·도 중고등학교 교장, 교감, 일반교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 교사 86.9%는 외고 선발 방식 변경에 찬성했으며, 현재 외고 선발방식이 설립 취지를 상실한 채 명문대 입학 통로로 변질되었다고 답한 교사들도 무려 90.8%에 이르렀다. 이 의원은 “지역, 학교, 연령, 외고 진학 지도 유무 등 모든 조사단위에서 80%의 압도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교사들 사이에서 잘못된 외고 선발방식이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라는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결론”이라고 밝혔다.
또한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외고 문제의 대안 방식으로 자율형 사립고처럼 입시를 없애고 내신 50% 범위 내에서 선지원 후추첨으로 선발하자는 의견에 42.7%,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에 24.5%가 의견을 같이했다.
한편, 현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 정책들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성공적이라는 의견이 22.7%에 불과했다. 특히 교장, 교감은 45.5%가 성공적이라고 말한 반면 일반 교사는 18.7%에 불과해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 정책의 실효성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에 이 의원은 “교육 전문가인 일선 교사들이 외고 선발 방식 변경에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어 외고 폐지 제안이 포퓰리즘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가 거의 없는 것”이라면서 외고에 대한 문제점은 국민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의원은 “현재 사교육비 경감과 공교육 정상화 정책들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 정부가 외고 전환과 관련해 국민들이 바라는 전향적인 조치를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백지상태에서 해법 수렴하는 자리 마련해야
여의도연구소도 외고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관련 기관, 단체 및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들어보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을 찾아보는 긴급 간담회를 10월27일 개최했다.
여의도연구소 진소희 소장은 “외고가 평준화 틀 속에서도 수월성 교육을 담당하고 조기유학 없이도 외국의 명문대에 진학시키는 등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으로 학력과 빈곤이 되물림 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면서 백지상태에서 다양한 외고 문제 해법을 수렴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진 소장은 이 날 토론회를 통해 여의도연구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ARS/전국 총 5,490명) 결과도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자녀가 있는 성인 중 74.7%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 비용은 월 평균 49만 원 이하라고 대답한 이들이 59.9%를 차지했다. 50∼149만 원을 지출하고 있다고 말한 사람도 36.5%를 차지해 가구당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사 대상 중 70.6%가 외고의 잘못된 운영이 사교육 증가의 원인이라는데 공감한다고 대답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엄민용 대변인은 보다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엄 대변인은 외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외고 폐지 또는 특성화고교로의 전환을 단행해야 한다고 밝히며 2년 전에도 같은 문제로 논란이 있었는데 부분적 개선책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면서 이번이 외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강윤봉 대표는 “수월성 교육, 교육다양화 등 외고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공교육 전체를 볼 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강하므로 교육정책을 평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강 대표는 외고를 국제고로 전환하는 것은 이름만 바꾼 것이므로 자율형 사립고 수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양외고 강성화 교장은 “외고란 전문직업인 육성이 아닌 외국어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라면서 명문대 진학 역시 글로벌 인재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데 사교육의 주범으로 오해하고 있어 아쉽다고 토로했다.
명지고 박성수 교장도 “외고가 없어진다고 사교육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별도로 사교육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면서 외고를 국제고, 자사고, 외고, 일반고 등 학교별 특성에 맞춰 체제를 전환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교총, “외고 폐지는 현 정부 정책에 역행”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는 일부 정치권이 외고를 특성화고교로 변경하려는 법안을 추진하려는 것과 관련 “외고 폐지 주장은 사교육비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현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학교체제 다양화, 학교자율화에도 역행한다”면서 외고 폐지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난 10월22일 밝혔다.
한국교총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당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외고의 특성화고교 또는 일반고교로의 전환방침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요즘 정부에서 외고를 특성화 고교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정부가 임의적으로 하는 것은 반대한다”면서 “앞으로 자율형 사립고를 100여개 만들게 되면 29개 외고는 자율적으로 선택을 하면 된다. 정권이 바뀌면 그나마 안심할 수 있겠다”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외고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가 여전히 많고 이로 인한 사교육비 유발 등 부작용이 많다면 원인을 분석하고 특목고를 비롯한 모든 학교의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일차적인 책임이라고 전한 한국교총은 이런 노력도 없이 외고를 특성화고로 전환해 하향평준화 시키겠다는 식의 접근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교총은 외고의 기능을 축소하기보다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해 입학전형에서 사교육을 유발하는 요인을 최소화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외고의 자성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교육비 유발요소인 영어듣기평가의 합리적 개선, 입학전형 시 수학·과학 가중치 반영 비율 축소, 관련 외국어 능력 및 중학교 내신 위주로 외고 입학생을 선발하는 등 외고 스스로 환골탈태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외고 교장·교감들도 외고 문제를 정치적 논리로 풀지 말고 실질적인 당사자인 교육계에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일부 교장·교감들도 ‘마녀사냥’,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외고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여당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외고 교장·교감들은 “정책을 개선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구하고 특히 교육 정책은 교육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전문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오로지 정치 논리로만 해결하려고 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선거를 앞두고 교육 문제를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보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것을 불쾌해 했다.
“현 여당이 몇 년 전 야당일 때는 특목고를 존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의 외고 폐지 움직임은 인기에 영합한 기회주의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사교육 문제는 외고 입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하는 외고 교장들은 외고를 폐지한다고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외고에 입학해서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사교육 문제는 대학 입시제도 개혁의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고 진학 중학생 사교육비, 평균보다 33.3% 많다
하지만 서울시의회 양창호 의원은 “외고 진학하는 중학생들의 사교육비가 일반 중학생의 사교육비보다 33.3%나 많다”면서 반박했다.
양 의원이 11월16일 발표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행정사무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관내 6개 외고 중 2개교 1학년 641명을 대상으로 중학교 3학년 때의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월 평균 42만원을 지출, 중학교 3학년 학생 평균(2008년 통계청 조사) 31만 5,000원보다 10만 5,000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7.6%는 월 평균 60만 원 이상을 지출했으며 100만 원을 넘긴 학생도 0.8%(5명) 있었다.
또한 사교육 참여율도 외고 학생들이 훨씬 높았다. 중학교 3학년 학생 평균 75.9%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데 외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경우 95.8%가 사교육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 같은 결과에 양 의원은 “조사 결과 외고가 사교육 시장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마녀사냥식 폐지론은 문제가 있지만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개선 방안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교과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외고를 포함한 고등학교 체제 개편안을 오는 12월10일까지 마련할 예정이라고 11월2일 밝혔다. 교과부는 국정감사에서 연말까지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외고 문제에 대한 신속한 대응을 부문해 일정을 조금 앞당겼다.
개편안에는 외고 뿐 아니라 복잡하게 나뉜 고교 유형을 단순화하고 일반고나 전문계고 학생의 교육력을 끌어올리는 방안 등이 포함되며 이를 위해 외부 영역을 통해 고교 체제 개편에 대한 정책연구를 의뢰해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학부모, 외고 교장단, 국공립·사립 일반계고 및 전문계고 교장단, 시도교육청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용역 결과와 수렴된 의견을 토대로 교과부는 27일 공청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나온 각계의 의견을 모아 당정협의, 시도교육청 관계자와 협의회를 거쳐 최종 개편안을 발표한다. 그 후 연말까지 세부 과제와 실행 계획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