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숱한 기록을 남긴 2004 아테네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정정당당한 겨루기의 표상인 스포츠맨십이 발현되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축제에서 한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9개로 서울, 바르셀로나 대회 이후 세 번째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한 경기가 끝나면 다시 다른 경기가 이어지고, 한 종목이 끝나면 또 다른 종목이 이어지는 세계적인 수준의 게임들. 한마디로 말해 스무 개가 넘는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를 한꺼번에 치르는 게임, 올림픽. 더구나 108년 만에 올림픽의 발상지에서 치러지는 금번 아테네올림픽은 월드컵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순위를 떠나 갈수록 스포츠맨십 결핍, 메달지상주의에 지배되어 근대 올림픽의 정신이 혼탁해지는 경향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4년마다 세계 각국을 돌며 지상 최대의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올림픽은 제전경기(祭典競技)였던 고대 올림픽의 ‘평화와 화해의 축제’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모든 인간한계에의 도전이 무의미했던 고대 올림픽에서 전세계인들의 선의의 경쟁, 평화와 화합의 장이 되고 있는 근현대 올림픽에 이르는 올림픽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근대올림픽의 정신을 재조명해 본다.
신들을 위한 인간의 제전에서 세계인들의 축제로 발돋움
‘신화의 나라 그리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108년 만에 개최되는 제 28회 아테네 올림픽은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열띤 선의의 경쟁은 물론 신들에게 바쳐졌던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에서 치뤄지는 스포츠 축제라는 사실에 전세계 올림픽 마니아들의 구미를 당겼다. 고대 신화가 공존하는 아테네에서의 올림픽은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제 28회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관심이 집중되는 고대와 근대 올림픽에 대해 알아보자.
신들이 관객이 되는 인간의 제전
기원전(BC) 776년. 그리스의 100여 개 도시국가들에 의해 4년마다 개최된 고대 올림픽은 인간이 그리스의 주신(主神) 제우스에게 정성 들여 바친 제전경기(祭典競技)로, AD 393년 제293회까지 열렸다. 당시 이 기간이 되면 신에게 바치는 행사인 만큼 모든 전쟁과 적대행위까지 일제히 멈췄다고 한다.
그리스 전역에서 경기장인 올림피아로 이동하는 데만 최대 일주일이 걸리는 긴 여행. 올림피아에 도착해도 쉴 곳이 없어 무려 6만 여명이 노숙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우승자에게는 올리브로 만든 관이 주어졌을 뿐 부귀나 출세와는 관계가 없었다. 신들을 닮고자 했던 그리스인에게 올림픽은 자신이 가꾼 완벽한 몸과 정신을 신들에게 바치는 제전.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발상 자체를 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기에 승패나 기록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평화와 화해의 축제가 바로 초기 고대 올림픽의 정신.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프랑스)이 1896년 제1회 올림픽 개최지로 그리스를 택한 것도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였다.
종교의식으로 시작된 고대 올림픽
그리스인들은 필로폰네소스반도 서부연안의 아르페오스강과 그라디오스강이 만나는 비옥한 올림피아드 평원에 거대한 신전과 경기장을 세웠다. 그곳에 4년마다 한번씩 모여 절대신인 제우스에게 바치는 종교행사 뒤에 여흥의 성격으로 개최한 운동경기가 바로 고대 올림픽의 효시이고, 올림픽이란 명칭도 바로 올림피아에서 따온 것이다.
고대 올림픽은 지금과 다르게 하루 만에 모든 경기를 치룰 정도로 종목수가 적었으나 점점 늘어나 기원전 692년은 경기일수가 5일로 늘어났다. 진행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1일에는 제우스 신께 들리는 제사와 개회식이 있었는데, 이 때 떠들거나 신성하고 엄중한 분위기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용서 받지 못했다고 하는 일화도 있다. 이 외에 선수와 심판의 서약과 선서가 있었다.
제 2일에는 시 낭송회와 전차경주 등 있었다.
제 3일에는 제우스신에게 또 한번의 제사가 있은 후에 경기가 진행됐다.
제 4일에는 갑옷입고 달리기, 권투, 레슬링, 판크라티온이 있었다.
제 5일에는 시상과 제우스신에게 올리는 감사제가 있었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고대 올림픽은 아무나 참가할 수 없었다는 것. 각 도시국가의 시민권을 보유하고 범법행위가 없으며, ‘주신’ 제우스에 대한 불신행위가 없는 사람만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그러한 자격은 남자들에게만 주어졌으며, 여자는 참가가 금지됐다. 경기 중 적발된 여성은 티마에움산에서 떨어뜨리는 중형에 처했다. 기혼여성과 노예, 이방인은 관람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경기에 참가하는 남자 선수들은 나체로 경기를 치뤘으며(판크라티온) 신발조차 신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구속과 형식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의 정신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과 여자의 참가를 금하기 위해 확인 조치로 옷을 벗겼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대회의 우승자(전차경주는 소유자)는 올리브의 잎으로 만든 관(월계관은 아님)을 받았는데, 수상자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와 로마에 정복당한 뒤에는 우승자에 상금을 주는 풍습이 생겼다.
시 낭송, 연극도 올림픽 종목?
경기종목은 개인경기로서 초기에는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1스타디:발굴 후 실측에 따르면 192.27m, 스타디움의 어원) 달리는 단거리경주 뿐이었고, 제1회 대회 우승자는 에리스의 크로에포스였다. BC 724년 제14회부터 경기장을 1왕복하는 경주, BC 708년 제18회부터 레슬링과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었던 5종 경기(멀리뛰기·창던지기·단거리경주·원반던지기·레슬링) 등 점차 경기 종목이 증가하여 전성기에는 13종목에 이르렀다. 고대 올림픽 전기간을 통하여 행해진 경기를 순서에 따라 기술하면, 단거리·중거리(1왕복)·장거리(3~12왕복)의 각 경주, 5종 경기, 레슬링, 복싱, 4두 전차경주(四頭戰車競走), 경마, 판크라티온(레슬링과 복싱을 합성한 격투경기), 무장경주(武裝競走), 2두(二頭) 노새 전차경주, 빈마 경마(牝馬競馬), 2두 전차경주, 나팔수 경주, 전령(傳令)경주, 준마(駿馬) 4두 전차경주, 준마 2두 전차경주, 빈준마(牝駿馬)경마, 준마 10두 전차 경주의 19종목이었다.
이색종목으로는 시인, 철학자, 예술가들도 올림픽에서 시와 문학, 연극, 학문을 겨뤘다.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역사에 관한 연구발표로 올림픽에서 스타가 됐다.
고대 올림픽의 변질
초기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신들에게 보여준다’는 종교적 의식이 강했던 올림픽은 점차 참여하는 도시국가의 수가 늘어나고 전문 체육인 계급이 등장하며 변질되기 시작했다.
우승자에게 상금이 수여되고 명예와 함께 부가 따르자 동료 선수들과 심판들에 대한 뇌물도 횡행했다. 당시의 시인 유리피데스는 “그리스의 수만 병든 이들 가운데 직업적인 선수들이 가장 그 정도가 심했다”고 노래했을 정도.
BC 146년 그리스가 로마에 정복된 뒤에는 노예들의 경기로 격하됐고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는 전차경주에서 두 번이나 전차에서 떨어지며 완주하지 못했음에도 스스로 자신을 우승자라고 선포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명맥을 이어오던 고대 올림픽은 393년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내린 ‘이교(異敎)금지령’에 따라 1160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이 외에 고대 올림픽이 중단된 원인은 종교적 이유 외에도 그리스 인들을 하나로 단합 시킬 수 있었던 올림픽이 로마의 그리스 통치 전략에 ‘눈에 가시’가 될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세계인의 제전, 근대 올림픽의 시작
근대 올림픽은 1850년 윌리엄 페니 브루스에 의해 영국 시골마을에서 생겨 났다. 초기에는 고리 던지기, 축구, 돼지잡기, 할머니들의 차 마시기, 눈 가리고 손수레 밀기 등 비교적 단순한 게임이 종목이었다. 브루스는 이 경기를 세계화 시키기 위해 수많은 중요 인사들을 알고 있던 프랑스 귀족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1892년 11월 25일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는 프랑스 스포츠의 권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의 본래 목적은 프랑스 스포츠의 발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가한 쿠베르탱은 이 회의의 본래 목적을 벗어나서, 국제적인 차원에서 고대올림픽 경기의 재건을 위한 계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2년후, 1894년 1월 쿠베르탱은 유럽의 모든 스포츠클럽에 스포츠맨의 국제회의를 소집하는 안내장을 발송했다. 이 회의의 주요 관심사는 표면적으로 아마추어 운동경기였다. 그러나 쿠베르탱은 근대올림픽경기의 부활을 위한 회의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다. 6월 23일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는 귀족회원, 왕족, 세계각국 스포츠협회와 교육기관을 대표하는 79명의 대표단이 모여 8일간의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두 개의 위원회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하나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올림픽 경기의 재건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 이 두 문제를 정리해냄으로써 쿠베르탱의 이상은 실현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이념이자, 회의의 의제인 10개 제안은 별 탈없이 받아들여졌고, 쿠베르탱이 제안한 12명의 회원은 만장일치로 인정되었다.
그리스의 뛰어난 작가인 비켈리스(Demetrius Bikeles)가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쿠베르탱은 IOC의 운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IOC위원은 이때부터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갖는 독특한 지위를 누리게되었다.
1894년 위원에 뽑힌 위원들은 국가주의보다는 국제주의에 더 가치를 둘 수 밖에 없었다. 이 때의 위원들은 자국의 대표라기 보다 오히려 세계를 대표하는 IOC회원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국가가 IOC위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회원을 뽑는 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소르본느 회의를 성공적으로 마친 쿠베르탱은 그해 가을 아테네를 방문했다. 그는 아테네 국민들이 올림픽 경기에 강한 열망을 갖고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상인인 아베로프(George Averoff)가 39만불을 기증하는 등 열성적인 모금에 힘입어, 고대의 경기장이 본래대로 희대리석으로 재건되었다.
2년 뒤 1894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를 창설했고 1896년 4월 5일 일요일, "고대 올림픽의 정신인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부활시켜서, 전 세계 사람들의 화합과 그에 바탕 한 평화를 추구한다"는 고대 올림픽의 정신을 이어받아 제 1회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무대는 그리스의 아테네. 이 올림픽경기는 근세에 이르러 자주 있어왔던 의사올림픽 경기 중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경기로 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대 올림픽경기의 이념
쿠베르탱이 생각한 올림피즘은 아마추어였다. 아마추어 정신이야말로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순수하고 고상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국제올림픽경기를 통한 세계평화의 구현은 올림픽 정신의 기본요소로 인정돼왔다.
쿠베르탱은 고대의 낭만주의 사조에 심취해있었고 "만약 올림픽경기가 세계평화를 구축하는데 간접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올림픽경기는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올림피즘은 지성과 정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육체도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그리스 사상의 주요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체와 정신이 똑같이 단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883년부터 1896년까지는 근대 서구문명 사회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인 사회발전과 물질문명의 발달이 일어난 시기다. 이 기간동안에 올림픽경기가 재건된 것은 낙관주의 경향이 유행했음을 나타내준다. 쿠베르탱이 제창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형태의 세계적인 운동경기가 아마 20세기에 나타났을 것이다. 이미 올림픽 이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많은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열리고 있다. 그렇지만 쿠베르탱은 국제적인 경기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헬레니즘의 문화와 이상적인 영국의 스포츠맨십을 조직적인 운동으로 결합시켰다. 그의 생각은 매우 인간주의적이었고, 젊은이의 신체적인 조화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올림픽운동보다 더 성공한 제도는 인류역사상 없었다.
올림픽이 알린 세계 속의 한국
1948년 14회 런던올림픽을 시작으로 세계인의 축제에 합류한 우리나라는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 예상메달 개수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림픽 정신에 부응하는 최고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첫 출전 때 7종목에 50여명의 선수가 참가, 동메달 2개에 그친 것에 비하면 56년만의 올림픽은 유도, 양궁, 배드민턴, 탁구 등 효자종목에서 세계적 순위(9위)를 기록하며 발 빠르게 도약하는 한국의 모습을 전세계인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한편으로는 세계 결속을 다지며 전쟁마저도 그 열기를 식히지 못하는 올림픽의 의미가 한반도에서도 그 위세를 떨쳐 후에는 남북이 아닌 하나된 국가로 출전하게 될 날도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