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한류’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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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한류’ 뜬다
  • 김미란 기자
  • 승인 2009.11.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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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면 예뻐지고 건강해진대~”

#. 서울 논현동에 있는 한 피부과. 진료 대기중인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하루 평균 7~8명의 외국인 손님이 예약 접수자 명단에 오른다. 서양인이 주고객층이지만 최근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기미와 여드름을 없애주는 레이저 치료나 보톡스 등의 미용치료가 주목적이다. 이곳의 인기 비결이 있다면 4개 국어 구사에 어려움이 없는 한국인 의사와 외국인 손님을 위한 영문 홍보사이트 구축 정도다.

한국 의료관광의 가능성과 현주소를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5월 의료법 개정에 이은 의료관광 비자제도 도입으로 한국을 찾는 의료 관광객들이 크게 늘고 있다. 2007년 7,900명에서 지난해 2만7,000명으로 늘었고, 올해 연말까지 5만 명이 진료와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관광객에 비해 체류기간 2배, 1인당 평균 수백만 원을 소비하는 의료관광객은 관광을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의 새로운 기회요인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앞으로도 의료관광객은 매년 50% 이상 성장을 거듭해 2013년에는 20만 명에 이르고, 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입만 9,929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입소문이나 가격이 쌀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등에 업은 방문객이 대다수이다. 체계적인 마케팅과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 의료서비스를 한번 경험한 외국인이 다시 찾을 것이라는 보장도 미지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이 그동안 너무 급하게 진행돼 온 만큼 지금이라도 숨 고르기를 하면서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인출 예치과 원장은 “세계 의료관광시장은 향후 5년간 5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해외환자 유치 1명은 자동차 10대를 수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하면서,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는 가격, 의료기술, 언어 등 필요조건과 더불어 보험, 현지 거점병원, 신뢰(인증), 관광문화 여건 등의 충분조건도 갖춰야 된다”고 지적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의료와 관광의 만남이야말로 문화시대 핵심 화두인 ‘융합’의 좋은 예이자,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윈윈전략’의 대표적인 장”이라며, “의료관광 지원을 위한 제도적 틀을 정비하고 비자발급 불편을 줄이는 등 의료관광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수술·한방의학 등 높은 경쟁력…마케팅 부족 아쉬워

우리나라의 의료관광 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경쟁력은 매우 높다. 암·심장질환·성형·치과 등의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이 있으며 외국인 환자를 수용할 충분한 병상 수도 확보돼 있다. 또 컴퓨터 단층촬영장치(CT)·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 고가 의료장비 보유율 등 의료 인프라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의료비 역시 미국의 30%에 불과해 적은 비용으로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압구정동 성형외과 골목 <사진=연합뉴스>
특히 우리나라 성형시술 수준은 이미 최고 수준이다. 전문의의 수준과 경험, 의료 기술, 미적 감각에 있어 한국의 미용성형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또 성형외과를 선호하는 젊은 의사도 많은 데다 성형수술에 대한 경험과 연구도 많이 축적돼 있는 편이다. 여기에는 국내 수요층의 높은 기대치와 예민한 감각도 한 몫 했다. 서울 강남구를 중심으로 성형외과를 단 간판이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국의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여성들에게 한국에서의 성형수술은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가 2006년 중국 내 외국계 병원을 찾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중국인 1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중국 부유층 40만 명 중 여성 20만 명, 그 중의 71%인 14만여 명이 한국 성형수술의 잠재 고객인 셈이다.

한국의 한방의학 수준도 이미 인정받을 만큼 세계적 인지도가 높다. 특히 드라마 ‘허준’, ‘대장금’의 한류열풍 덕택에 한방의료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도 높아졌다. 한국의 특성을 반영한 한방 의료관광 육성에도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대도시 병원 중심의 해외 환자 유치와 달리 한방의 경우 대부분 지방 및 생태환경이 우수한 지역에 위치해 ‘한방의료관광타운’ 같은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의료관광이나 보양온천 같은 지역의 관광자원과 연계한 전략도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입소문 등에 의지한 채 체계적인 마케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의료관광의 단점으로 꼽힌다.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외국에서 한국 의료 서비스의 인지도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기억에 남는 한국 병원을 물어보면 ‘삼성’이라고 답하는 외국인도 있다고 했다. 이마저도 휴대폰 등 전자 제품에서 삼성이 유명해 쉽게 기억한 것일 뿐 삼성서울병원이 어떤 치료로 유명한지 는 알지 못한다는 것. 미국의 엠디앤더슨, 싱가포르의 래플즈 병원 같은 외국인이 머릿속에 떠올릴 만한 ‘스타 병원’의 육성도 효과적인 마케팅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2020년 의료관광객 100만 명 유치 발벗고 나섰다

고부가가치 창출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의료관광의 잠재력을 간파한 정부는 올해 1월 의료관광산업을 신성장산업 17개 중 하나로 지정하고, 의료관광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의료법과 관광진흥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해 의료관광 지원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였고 비자발급 문제 등 해외 의료관광객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소해 나가고 있다.

지난 8월 문을 연 ‘의료관광 원스톱서비스센터’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8월 인천국제공항과 공사 안내센터에 ‘의료관광 원스톱서비스센터’를 개관하고, 비자 발급에서부터 출입국, 관광숙박 서비스 등의 각종 정보 안내는 물론 외국인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원하는 진료 분야에 대한 병원 연결, 예약 등의 서비스도 진행중이다.

아쉬운 점으로 지적돼왔던 홍보·마케팅 전략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현지 에이전트와 여행사를 대상으로 한국의료설명회를 펼친 바 있으며, 뉴욕·블라디보스토크·홍콩까지 설명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는 러시아, 일본 등 핵심시장과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잠재시장 홍보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강원도를 비롯한 부산, 제주, 인천 등 주요 광역자치단체의 의료관광 시장 선점도 치열하다. 강원도는 현재 치과진료, 수(水)치료, 한·양방 진료 거점병원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며, 도내 치과대학병원과 강원도의 자연환경을 접목한 치유 관광상품도 개발중이다. 부산의 경우, 부산대 병원 등 권역 내 30개 병원이 보건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현재 성형·미용분야에 치우쳐 있는 해외 의료수요를 진단·치료까지 확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주는 해외의료법인을 유치해 메디컬 비자 발급이 개시되는 시점에 맞춰 국내외 여행사들과 공동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설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예산 42억 원을 투입해 ‘의료관광’ 활성화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사진=한국관광공사>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관광 활성화의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의료관광’을 선정하고, 예산 42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주요사업으로 ▲방한 외래 관광객에게 의료관광에 대한 정보제공 및 예약지원을 위한 원스톱서비스센터 확대 ▲의료관광코디네이터 등 전문인력 양성 ▲지역 의료관광 활성화와 연계한 한방의료관광 육성 지원 등 의료관광 수용여건 개선을 위한 사업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거점국가를 중심으로 한 의료와 관광의 연계상품 개발 및 판촉활동 전개 ▲ 해외 에이전트와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홍보설명회 및 팸투어 ▲국제 컨퍼런스·박람회 개최 및 참가 ▲ 글로벌 매체를 통한 해외 방송광고 및 특집프로그램 제작·방영, ▲해외언론 취재 지원 및 국제 비즈니스 네트워크 구축 등 다양한 사업도 전개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여 년 전부터 의료관광을 범국가 차원의 전략산업으로 추진한 태국, 싱가포르 등에 비해 출발이 늦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의 의료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최첨단 의료장비 보유율, 선진국에 비해 우위에 있는 가격경쟁력 등 의료관광에 유리한 많은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며, “이러한 여건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2013년 20만 명, 2020년 100만 명의 의료관광객 유치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관광 원스톱센터 김혜란 센터장은 “일단 위험부담률이 적은 성형외과, 피부과, 건강검진과 한방치료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료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한국의 의료비는 세계적으로 저렴한 데다 임상경험도 많기 때문에 의료관광산업의 미래는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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