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정읍 출신인 박 청장은 고려대 토목공학과를 졸업, 14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첫 발을 디딘 이래 틈틈이 공부해 도시계획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천시에서 도시계획국장, 동구청장, 재무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치고 내무부, 행정자치부에서 공기업과장, 감사관, 지방재정세제본부장, 지방혁신인력개발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지방재정과 도시행정 분야에서 기량을 발휘해 왔다.
박 청장은 취임사를 통해 소방방재청은 오직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이것이 우리의 숭고하고도 벅찬 소명임을 강조했다. 또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히 일해 온 직원들의 수고와 성과를 높이 사며, 한 걸음 나아가 더 큰 효율과 더 실질적인 성과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여건을 탓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며 철저한 결과를 강조했다. 더불어 “쓸데없는 일, 두꺼운 보고서, 면피성 공문생산을 추방하고 실효성있게 꼭 필요한 업무를 하는 사람을 가려낼 것”이라며 “내가 이끄는 동안 소방방재청의 목표는 ‘작동하는 방재, 한 발 앞선 대응’으로 정하고 성과를 이루어 낼 것”이라고 밝혔다.
뛰어난 업무수행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은 조직을 잘 이끌어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은 박연수 청장의 취임사뿐 아니라 그간 업무스타일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겸손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소신있는 정책을 수행하며 따뜻함과 배려심으로 직원들에게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소방관계자들의 지혜와 열정 가운데서 함께 성과를 이뤄가고, 이러한 희생으로 지켜내는 국민의 안전을 인생 최고의 보람으로 삼겠다”는 박 청장의 말처럼 많은 소방관계자들의 노고와 희생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대한민국 소방의 산 역사 ‘종로소방서’

응급전화번호인 119에 비롯된 11월9일 ‘소방의 날’이 올해로 47번째 돌을 맞았다. 그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제시대, 겨울철 화재예방을 위한 계몽 및 캠페인 성격을 띤 행사가 벌어졌던 기록이 있으며 정부수립 이후 지역단위로 벌어지던 각종 행사를 내무부가 주관하여 1964년부터 ‘소방의 날’이라 칭한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한국 소방 역사에 비해 뒤늦게 시작한 감이 적지 않지만 첫해부터 지금까지 매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소방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소방의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고 있다.
종로소방서는 구 경성소방서가 해방 이후 중부소방서로 불리다가 종로소방서로 개명되었고 위치도 남대문, 태평로2가에서부터 지금의 수송동으로 이전하는 등 변화·발전하며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소방서라는 자긍심은 종로소방서의 대표적인 훈장이지만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종로소방서 관내에는 청와대와 정부중앙청사 등 국가 공공기관이 밀집해 있고, 기업의 본사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대형·고층 건물들이 많아 화재 발생 시 재산피해는 물론이고 대규모 인명피해와 국가기관 마비라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만큼 종로소방서는 타 소방서에 비해 막중한 책임이 있다. 이에 종로소방서는 철저한 소방안전점검뿐만 아니라 관계자들에 대한 소방안전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대형·고층 건축물에 대한 소방안전대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많은 지하철 노선이 지나고 있어 지하철 승객안전을 위해 역사 관계자 합동으로 매년 소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하철 화재에 대비, 초기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역사별로 출동 매뉴얼을 작성하여 전 직원에게 교육하고 있고 지하철 5호선 종로3가 역에는 지하철 구조대를 배치시켜 승객안전 확보에 여념이 없다.
이외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곳은 많다. 창신동, 돈의동 쪽방지역 등 저소득층 밀집지역과 봉익동과 같이 금·은세공 작업장이 밀집한 지역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목조건물이 많아 화재에 매우 취약한 곳이다. 이에 종로소방서는 쪽방지역 화재 시 신속한 대피를 위해 꼭 필요한 ‘단독 경보형 감지기 달아주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는 가장 취약한 가구에 대한 1차 사업을 마친 상태다.
‘소화기 갖기 운동’도 꾸준히 전개하여 현재는 쪽방촌 집집마다 1대의 소화기를 비치해 두고 있다. 또한 봉익동 작업장 밀집지역은 화재 발생 시 재산피해가 크기 때문에 즉각적인 처리를 위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겨울에는 봉익동의 한 작업장에서 원인미상의 화재가 발생, 신고가 접수되자 종로소방서 현장지휘대에 의해 10분 만에 완전히 진화하는 등 화마와의 싸움에서 승자의 위치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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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불사조 소방관 정신 ‘광진소방서’
광진소방서는 1994년 개서해 65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방서로서 작년 성동소방서에서 광진소방서로 개명하여 광진구와 성동구 2개구를 관할하고 있다. 7개의 안전센터와 최강의 인명구조대원들로 구성된 119구조대, 한강의 지킴이 수난구조대원 등 275명의 정예대원들이 약 72만 시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키고 있다. 광진소방서의 특징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출동건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소방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은 특히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한 시간에 서너 차례는 기본이고 때론 5분이 멀다하고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이에 본지는 10월8일 광진소방서를 하루 동안 동행하여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힘쓰는 그들의 바쁜 일상을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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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9:40 화재출동 - 하왕십리동의 아파트에서 화재신고가 접수되었다. 화재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출동준비를 하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든든함이 느껴진다. 지휘차량을 선두로 펌프차, 구급차가 줄지어 화재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에 빽빽하게 들어선 차들로 인해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일분, 일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사이렌을 울리고 마이크를 통해 사정을 해보아도 도로의 차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소방관들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드디어 도착한 문제의 아파트, 확인 결과 집주인이 가스레인지에 음식물을 올려놓은 채 외출을 하여 음식물이 타는 과정에서 연기가 발생한 것이었다. 현장을 수습하고 돌아서는 소방관들은 대형화재가 아닌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AM 11:30 점심식사 - 점심식사는 보통 11시30분에서 1시까지 군대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식사시간에도 잦은 출동으로 인해 끼니를 거르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날은 다행히 큰 화재 신고가 나지 않아 전원이 출동하지는 않았지만 구급신고가 많아 구급대는 점심식사 시간동안 8번의 출동을 해야만 했다.
PM 13:25 구급출동 -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서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온몸을 떨며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불가한 것으로 보아 상태가 심각했다. 간단한 응급조치와 함께 구급차에 싣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향한다. 가는 도중에도 구급대원은 환자의 상태를 계속해서 체크한다. 구급대원은 직접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최선의 선에서 환자에게 응급조치를 취한다. 병원에 도착, 환자를 응급실로 옮기고 의사에게 환자의 초기발견과 현재의 상태를 설명한 뒤에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PM 14:50 수난구조출동 - 한강에서 구조신고가 들어왔다. 수난 사고는 지휘차, 119구조대, 구급대가 모두 출동하여 현장에서 재빠른 구급조치를 통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한다. 가는 도중 무전이 복귀명령 무전이 들어온다. 한강다리에서 공사 중인 인부들을 물에 빠진 것으로 오인한 시민의 신고였다. 실제로도 이러한 해프닝으로 인한 출동건수가 하루 2,3건이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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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광진소방서의 총 출동 횟수는 91건으로 시간마다 3,4건의 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진소방서의 대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불멸의 소방관 정신인 ‘불사조 정신’으로 전 직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맡은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광진소방서의 권료원 서장은 대원들의 자부심과 단결력,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불사조 반지를 만들고 불사조 영상물을 제작하여 많은 시민과 전국 소방관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또한 광진소방서의 자랑 중 하나인 ‘119수난구조대’는 매년 증가하는 수난사고에 대비해 24시간 깨어 시민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