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세월을 건 ‘진정한 좋은 소리’에 대한 집념으로 기타 만들어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기타 제작에 대한 모든 공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는 김대중 명장. 그는 “당시는 세계적인 기타 브랜드들이 임금이 비교적 저렴하고 손재주가 좋은 한국의 노동시장을 휩쓸고 있을 때라 고급 기술을 익히는 데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가 다니던 공장들이 중국으로 옮기거나 문을 닫고 수입상으로 바뀌게 되면서 기로에 서게 된 김대중 명장은 지인의 소개로 중국에 공장을 둔 기타 제조업체의 기술고문으로 활동했지만 자신의 기타를 직접 제작하고 싶은 그의 간절한 바람은 결국 그를 돌아오게 만들었다.

기타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장인의 길로 들어서다
자신만의 브랜드 기타를 제작하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품게 된 김대중 명장은 귀국을 하고 기타공장을 차렸다. 종로에 오프매장을 가지고 있는 지인을 만나 ‘Rain’이란 브랜드로 기타를 제작한 김대중 명장은 기타를 만드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마구 밀려들어오는 중국산 저가 제품과 한국에서 인지도를 올린 유명 메이커들은 염치없을 만큼 노동자 임금이 싼 나라로 경쟁적으로 옮겨 다니며 국내 수제 기타 장인들의 설 자리를 위협해왔다. 평생 경영이란 것을 해본 경험이 없는 김대중 명장에게 사람을 다루는 기술은 또 다른 공부였고, 그것은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벌인 일을 작파하고 싶을 정도로 궁지에 몰리게 되는 뼈저린 경험을 하게 되는 인생 공부였다고 한다.

이러던 중 김대중 명장은 다음카페에서 통기타 강좌를 개설해서 수만 명의 회원을 유치하고 있던 지천명의 7080 웹마스터 ‘몽블랑통기타의 몽샘’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
몽블랑통기타는 통기타 단일강좌로는 국내 최대회원을 보유한 사이트(http://www.raingt.com, http://ucchouse.kr, http://badaga.co.kr, http://cafe.daum.net/mong1)로 유명한데 때마침 사이트 운영자는 수제기타를 만드는 장인을 찾고 있었다고. 몽샘은 통기타강사이면서 웹마스터, 웹디자인, 나레이터, 비디오촬영, 카피라이터 그 작업을 혼자해낸 멀티 맨이다.
“몽블랑통기타도 회원들에게 믿을 만한 악기를 권해야 하는 일들이 자주 있었던 터라 저와 몽샘의 만남은 그야말로 행운이자 기회였습니다. 당시 몽블랑통기타에서 내건 슬로건은 간단했습니다. Rain기타를 구입하면 가르쳐 주겠다는 것이었죠.”
그동안 국내 인터넷 기반은 한층 더 발전하여 포털마다 양질의 동영상을 보유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다음카페 ‘몽블랑통기타’의 UCC동영상을 통한 레인기타의 브랜드 진입 광고는 적중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할 때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다. 카페 운영자인 몽샘은 ‘통기타배우기’란 키워드를 사용했는데 거의 1년 동안 동영상 검색에서 그 키워드를 독점해서 사용했다. 이러한 인터넷을 활용한 마케팅으로 소위 듣보잡이던 브랜드 Rain은 많은 통기타 애호가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몽블랑통기타는 몽샘의 절친한 사업파트너에게 ‘몽블랑’이란 독립브랜드로 OEM생산을 맡기며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그렇게 레인기타와 몽블랑통기타는 투톱 체제로 각각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고객들과 만났다. 하지만 인터넷 판매는 반드시 택배사를 거쳐야 되고 운송 중에 파손이라는 위험 부담은 고객들의 구매욕을 망설이게 만드는 큰 부담이 되었다. 그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몽블랑통기타는 택배사고로 제품이 손상 되었을 때는 누구의 과실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 새 제품으로 다시 보내준다. 그리고 고객들이 제 날짜에 받아볼 수 있도록 고객과의 약속을 지킨다.
30년의 혼으로 빚어낸 김대중 명장의 기타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상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브랜드 제품이라도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동남아시아에서 대량생산 되어져 음조차 맞지 않는 엉터리 기타가 브랜드의 명찰을 달고 대량으로 한국으로 수입되어 오기도 한다. 이러한 악기들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하여 소비자들이 쉽게 현혹되고 있는 것이 우리 기타 시장의 상황이다. 우리나라 악기 시장에서 더욱 아쉬운 것은 문화의 다변화로 인해 기타에 대한 수요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암흑기와 같은 현실에서 김대중 명장은 기타에 대한 애정과 좋은 소리에 대한 열정하나 만으로 기타제조시장에 뛰어 들었고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만든 완성된 통기타 안에는 몽블랑통기타의 로고와 김대중 명장의 낙관이 상표에 나란히 빨간 색으로 새겨져있다. 이는 고객에게 공동 책임을 지자는 결의이고 그래서 한몸이라는 것이 그의 얘기. “잘 만들기만 하면 잘 팔릴 줄 알았는데, 역시 받은 재주를 가장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 보기에도 아름답고 일도 쉽게 풀리는 것 같습니다. 몽샘이 그걸 달란트라고 하더군요”라며 김대중 명장은 지난 인고의 세월을 회상한다.
기타는 그저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라 제작자가 애정을 갖고 만드는 과정마다 장인의 혼을 쏟아 비로소 완성된다. 그래서 기타장인들의 기타에 대한 애정은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닿아있다. 단순한 악기로서만이 아닌 기타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김대중 명장. 그의 기타에 대한 열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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