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2일 방영된 KBS 1TV 시사기획 쌈에서는 전자발찌 제도 도입 1주년을 기해 ‘내 아이는 안전한가’를 주제로 아동성범죄를 다루면서, 9세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일명 ‘조두순사건’을 재조명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조두순사건’은 방송 직후 네티즌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연일 도마 위에 오르는 등 인터넷과 언론을 뜨겁게 하고 있다.
‘나영아, 은지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난해 12월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 앞에서 발생한 ‘조두순사건’은 50대 남성이 9세 나영이를 등굣길에 화장실로 끌고 가 강간한 사건으로 우리사회 아동성범죄의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충격적인 실화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제 막 9세가 된 나영이는 소장과 대장이 파열됐으며 성기의 80%이상이 소실돼 향후 여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밝혀진 조두순(57)은 범행 당시 자신의 지문에 의해 체포될 것을 우려해 아이의 탈장된 내장을 물로 씻는 등 극악무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재판 도중에는 안경과 모자를 이용해 변장을 하는 등 자신의 혐의를 숨기기 위해 치밀하고 정교한 범행 수법을 보였다.
법원은 조두순에 대해 죄질이 불량하고 그로 인해 어린 피해자의 신체 일부가 훼손되는 등 상해 정보가 매우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사건 당시 만취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해 ‘심신미약’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조두순은 현재 청송 제2교소도 CCTV가 설치되어있는 독거실에 수용되어 있다. 청송 제2교도소는 엄정한 교정 관리로 교도소 중의 교도소로도 유명한 곳으로 아동성범죄자가 수감된 경우는 이례적이다.
방송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공개되자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가릴 것 없이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12년이란 형은 다소 가벼운 형벌이라며 사회와 국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또한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조두순사건’이 연일 상위 검색 순위에 랭크돼 있으며, 다음 아고라를 비롯한 각종 토론 게시판에서는 이번 사건을 성토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다음 ‘아고라’게시판에는 4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조두순사건’ 가해자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선고를 요구하는 청원에 서명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0월10일에는 ‘조두순사건’ 해결 촉구를 위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시청 앞에 모여 촛불집회를 개최하는 등 정부의 강력한 처벌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27일 한 초등학교 교사의 글에 의해 제2의 ‘조두순사건’으로 불리는 이른바 ‘은지사건’이 인터넷에 공개돼 아동성범죄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 글은 현재 조회수 12만 명을 기록했으며, 1,800여 건의 댓글이 달릴 만큼 세간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글을 작성한 교사는 “2008년 초부터 성폭행 당한 반 아이를 돕고 있지만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사람들의 무관심에 절망감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 꺾여 가고 있다”며 지난해 1월 자신의 제자인 은지와 은지의 엄마에 대한 성폭행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11세 은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을버스 기사를 비롯하여 남학생들, 동네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왔으나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은 채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은지의 교사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여성회, 아동보호센터, 경찰서, 해바라기 아동센터, 전교조, 장애인 부모연대 등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직접 찾아가 은지의 피해사례를 호소했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뚜렷한 해결책을 얻지 못한 채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이 글을 본 누리꾼들은 우리시대의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참담함과 분노를 표했다. ‘은지사건’ 역시 ‘조두순사건’과 마찬가지로 네티즌들이 직접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을 통해 ‘우리 은지를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서명운동을 벌이며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다. ‘밝은 사회’라는 ID의 네티즌은 “장애를 가진 아동성범죄는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지적 장애인도 인간이다”라면서 “어린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루빨리 아동성범죄의 강력한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분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영이와 은지 사건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로 확산되자 아동 성폭행 범죄자의 미비한 양형기준과 사후관리의 허점 등 아동성범죄 사법체계의 문제점이 다시금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급증, ‘솜방망이’ 처벌 논란
전체 15세 미만의 아동 성폭력 피해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30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5세 이하 성폭력 피해자 수가 2005년 1,402명에서 2006년 2,178명, 2007년 2,302명, 2008년 2,674명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는 곧 사회적 약자인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8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가 지난 2006년 172명, 2007년 163명, 작년 154명 등 매해 150명 선을 넘는 것으로 파악돼 아동성범죄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어 사회적 보호망 검토가 시급한 실정이다. 아울러 아동과 청소년들의 주요 활동공간인 학교의 성폭력 사건 발생빈도가 다른 장소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작년 한해 학교에서 일어난 성폭력 범죄는 231건으로 올해 6월까지도 63건이나 발생해 학교안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동성범죄 재발을 방지하고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사법체계 자체가 개선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아동성범죄자들이 징역형이 아닌 가벼운 벌금이나 집행유예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이것 마저도 ‘초범’이거나 ‘범죄사실 인정’, ‘심신미약 상태’ 등의 각가지 이유들로 죄를 면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또한 성범죄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성범죄자 신상공개, 가해자 교육, 전자발찌, 치료프로그램 등 각종 대책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유명무실해진지 오래. 특히 성범죄자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발찌의 경우 이를 착용한 성범죄자들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껴 범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되었지만 사실상 성범죄자의 거주에 제한을 두지 않는 위치확인 정도에만 불과하다는 한계에 부딪치며 실효성 논란을 빚었다. 실제로 발찌를 착용한 성범죄자 170명 가운데 어린이들이 많이 가는 학교나 공원 등 특정지역에 출입금지를 당한 가해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또한 성범죄자 신상공개제도 역시 볼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어 정작 필요한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꼭 필요해서 봐야 할 경우 서류를 구비하고 경찰서를 직접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번거로움 때문에 찾는 이들이 극소수이다. 최근 2년간 열람 실적을 살펴보면 전국적으로 53건에 불과했다. 이밖에도 성범죄자의 인식 전환을 위해 시작된 가해자 치료프로그램은 국내에서 공주 치료 감호소 한곳만이 유일하다. 현재 이곳에서는 의사 1명이 무려 환자 58명을 도맡아 치료하는 등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성범죄의 피해자가 어린이들이다 보니 성인에 비해 진술 능력이 떨어져, 증언을 바꾸는 일이 잦기 때문에 성폭력 사범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 아동이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피해 상황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점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를 해결할 뚜렷한 대책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3월부터 연말까지 수도권 5개 지역에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성폭행 피해 아동의 피해자 조사를 도와주는 ‘아동성폭력 심리전문가 참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법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성폭력 아동 전문 상담소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조사한 한 설문조사가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점점 가해자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
‘해바라기 아동센터’에서 조사한 성폭력 가해자 645명 가운데 만 7세 이하가 58명, 8세부터 14세 미만이 101명으로 드러나 아동성범죄 사건에 있어 가해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미성년자 성폭력 가해자가 지난 2005년 1,329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8년 2,717명으로 나타나 몇 년 새 미성년자 아동성범죄 가해자수가 두 배 이상 급증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계 수치 역시 정확한 현황을 반영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 현행법상 만 12세 이하의 성폭력 범죄는 법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질 수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부끄럽게 여겨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미성년 가해자의 심각성이 큰 이유는 그들이 범행 초기에 적절한 교육과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경우 향후 상습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폐해를 보여주는 일명 ‘13세 꼬마 발바리 사건’은 당시 세상을 떠들썩했던 것은 물론, 사건발생 1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큰 충격을 준 실화로 유명하다. 지난 2008년 충주의 한 아파트에서 13세 남자아이가 7세 여아를 성추행한 이 사건은 13세 남자아이의 잘못된 성 문화에서 비롯된 성추행 사건으로 13세 가해자 아이는 다른 아파트에서도 성추행 대상을 물색하는 등 성인 범죄자 못지않은 주도면밀한 범행을 계획하고 저지른 상습 범인이었다. 결국 미성년자였던 13세 가해자 아이는 죄질이 불량한 상습 범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 없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으며, 당시 7세 여아였던 피해자는 그 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고통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이 복합되어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원인은 무분별한 인터넷 문화라고 말한다. 정보의 홍수라 불리는 인터넷에 아동 포르노물이 범람하면서 아동과 청소년이 인터넷의 음란·폭력 등 유해사이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면서 아동·청소년의 성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인터넷 포르노 행위를 따라하는 행동이 일종의 놀이 문화로 변질된 점도 아동성범죄 미성년자 가해자를 증가시키는 것 중 하나이다. 이에 학교에서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 기회를 확대, 체계적인 성교육을 시행하여 아동과 청소년의 건전한 성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동성범죄자 ‘평생 전자발찌’ 추진, 국가 제도 개선 활발
‘조두순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범죄자에게 평생 전자발찌를 채우고 현행 15년인 유기징역 상한선이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 10월7일 법무부는 현행법에서 최대 10년으로 규정한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전자발찌 착용기간을 연장하여 최대 무기한으로 늘리자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또 한 현행 15년으로 정한 미성년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더 연장시키거나 성범죄 피해 아동이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공소시효를 중단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동 성폭행범죄 등 용서받기 힘든 흉악범을 대상으로 유전자정보(DNA)를 수집하기 위한 ‘디엔에이(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빠르면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계획으로 이른 시일 내에 아동성범죄의 형벌이 강화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아울러 법무부는 아동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나 대통령령 개정을 보건복지가족부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현재 시행중인 신상정보 공개 제도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 중에 법원으로부터 신상정보 공개명령을 받은 사람의 이름과 나이, 주소 및 실제 거주지, 사진, 범행내용 등을 공개하되 구체적인 절차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어 다소 불편한 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화학적 거세법’을 도입하여 아동성범죄의 재범률을 줄이자는 의견이 제시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몸에 남성 호르몬의 분비를 차단하는 약물이나 ‘에스트로다이올’과 같은 여성호르몬이 들어오면 성욕을 감퇴시키는 화학물질을 주입하여 성욕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이미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지에서는 아동성범죄의 처벌에 시행되고 있는 방법이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아동 성폭행범에게 1주일에 한번씩 ‘데포프로베라’라는 여성호르몬 복합물을 주사해 성욕을 억제해 효과를 보고 있다. 우리나의 경우 지난 2008년 한나라당의 박민식 의원이 ‘화학적 거세 법안’으로 ‘상습적 아동성폭력범 및 치료 법안’을 제시하여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에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이 법안이 현실화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한편 지난 10월5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조두순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예상과 재범방지 시스템 구축 강화를 당부하고 아동성범죄자의 강력한 처벌을 강구했다. 이 대통령은 “아동 성범죄자는 사회에서 최대한 격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어 “아동 성폭력 범죄자는 해당 거주 지역 주민들이 인지할 필요성이 있고 이사를 가더라도 이사한 동네 주민들이 그 위험을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처방과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아동에 대한 법적 도움과 의료지원 등은 여성부가 주관하고 총리실과 법무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지역병원이 동참해 유기적이고 종합적인 예방 단속 체제를 구축해 달라”며 사회전반 시스템을 더욱 굳건히 할 것을 강조했다.
아동 성폭행 양형기준에 대한 보완과 함께 성폭행 전과자에 대한 엄격한 재범방지 시스템 구축이 현실화 되는 지금, 사건이 터지면 늘 그래왔듯이 순간의 감정적인 대응에서 탈피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제2, 제3의 나영이를 발생하지 않게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사건의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사회의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피해자의 또 다른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며 단지 법 개정만이 아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 구조를 통해 우리의 아이들이 대한민국, 이 땅에서 밝고 씩씩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