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박종원 총장, 이하 한예종)는 지난 3월18일부터 4월24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았다. 5월18일 한예종은 그 감사결과를 통보받았고 다음날 황지우 총장은 사퇴를 선언했다. 도대체 문화체육관광부(유인촌 장관, 이하 문화부)의 감사 결과가 어쨌기에 국립대학의 총장이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를 선언하게 된 것일까. 한예종측은 ‘한예종 죽이기 표적감사’라 주장하고 문화부는 정기적인 종합감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생체 해부’ 감사에 황지우 총장 반발성 사퇴
‘참 이상한 감사였다’라고 시작하는 황 전 총장의 사퇴 기자회견문. 그는 5월19일 기자회견을 통해 “10명의 감사자들이 6주 넘게 투입된, 집중적이며 장기간에 걸친 이런 ‘융단폭격식 감사’는 학교 설립 17년 연혁 가운데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며 감사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황 전 총장은 “문화부로부터 종합감사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U-AT통섭교육 중지, 이론과 축소·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등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면서 예산집행이나 행정절차에 관한 감사지적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예술교육 시스템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행정 관료들이 손보려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황 전 총장은 이 날 기자회견에서 “처음에는 감사를 환영했다”고 전했다. 종합검진처럼 잘 받으면 그만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건강성이 입증된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건강 검진이 아니라 생체 해부에 가까운 쪽으로 흘러갔다”고 말한 그는 “감사 기간 중 제일 우려한 것은 총장퇴진을 압박하는, 나에 대한 오물 뒤집어 씌기가 아니었다. 걱정스럽고 심각한 것은 감사의 과녁이 제도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한예종 학사조직 개편 내지 구조 변경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황 전 총장의 주장에 따르면 감사팀의 최종 확인서 28건 중 10건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식물 상태에 빠진 총장직에 앉아 있다는 게 더 이상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도 나로 인하여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힌 황 전 총장. 그는 자신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인용해 “다시금 우리 사회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 시간이 도래한 것인가?”라는 말을 남기며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문화부는 황 전 총장의 기자회견에 앞서 한예종 감사 결과, 황 전 총장이 주무부처의 허가 없이 3차례 해외여행을 했으며 사진전 개최를 이유로 학교발전기금 800만 원을 받고도 전시회를 열지 않는 등 공금 유용, 근무지 무단이탈, 교육과정 부실 운영 등의 문제들로 중징계(해임, 파면)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황 전 총장은 기자회견자리에서 “3차례 해외여행 중 몽골과 중국의 경우는 휴가를 내고 다녀온 것이며, 일본의 경우 휴일에 1박 다녀온 것인데 휴일이라도 해외에 가면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해명했으며, 전시회 기금에 관해서는 “영수증 처리 과정에서 일부 실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과연 총장 파면으로까지 이어질만한 사안인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했다. 또한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에 이은 전 정권 인사 솎아내기 아니냐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문화부는 이번 감사가 1∼2년마다 실시하는 정기종합감사였으며, 말 그대로 학교운영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번 감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에 명시된 학교설립 목적인 예술영재교육과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 양성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었으며, 총 12건의 처분요구사항 중 대부분은 제도개선 사항이며 징계요구사항은 총 3건이라고 문화부는 설명했다. 또한 문화부는 이번 감사가 황 전 총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총장 퇴진과 예술학교 구조개편을 위한 표적감사가 아닌 일반적인 문화부의 정기종합감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수·학생에 이어 학부모까지 나서서 ‘학교 지키기’
문화부의 입장 발표에도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어 갔다. 황 전 총장 사퇴 발표 하루 만에 한예종 교수들도 들고 일어섰다. 5월20일 한예종 교수협의회(이하 교수협)는 “문화부는 한예종에 대한 강압적인 구조조정과 교권침해를 중단하라”면서 구시대식 정치논리에 휘말린 문화부가 예술교육의 정체성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수협도 황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학교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개선안에 대해서는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전공과 무관한 교수 채용부당, 이론학과 확대 운영 부적정, U-AT 통섭교육 사업 추진 부당, 예술학교 협동과정 운영부당’ 등을 이유로 내려진 주의, 개선, 시정 및 징계 사항의 결과는 대부분 한예종 교육의 유연성과 다양성을 왜곡하고 교수들의 정당한 교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교수협은 이 같은 결과는 21세기 예술교육의 새로운 흐름에 역행하는 내용들이라면서 “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고 밝혔다.
교수협은 학교 교육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문화부가 오히려 감사를 빌미로 학교의 미래지향적인 교육 사업들을 좌절시키고 교수들의 총의를 통해 선임된 총장을 좌파 코드인사로 몰아 쫓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며 개탄했다.
사태에 더욱 불을 지른 것은 ‘이론과 축소·폐지, 서사창작과 폐지’라는 감사 결과였다. 황 총장의 사퇴 표명 직후 학생들 역시 각 과별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 시작했고, 성명서 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상이론과 비대위가 전체 학생 비상대책기구 구성을 제안, 5월21일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원회(이하 학생비대위)가 발기되었다.
학생비대위는 총학생회와도 입장을 같이 했다. 이번 사태를 ‘교육과학기술부 주도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문화부가 편승하여 산하기관인 한예종을 시험대로 삼으면서 비롯된 것’으로 진단한 학생비대위와 총학생회는 “현 정부가 재정수지와 취업률 등 국정지표 개선을 위해 무리하게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문화부가 한예종의 해체를 주장하는 문화미래포럼의 입김에 휘둘려 한예종에 대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교육 공공성의 포기이자 교육주체의 학습권과 교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론과와 협동과정을 포함한 한예종의 현재 구조와 중장기 발전계획이 국립예술대학인 한예종의 설립 취지에 부합할 뿐 아니라 21세기 창의적 예술인 양성에 필요불가결하다”고 주장하며 뜻을 같이하는 모든 학생 및 교수단체, 예술단체, 시민사회단체와의 다각적 연대를 모색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학생비대위와 총학생회는 3,000명의 학생들에게 “춤추는 자는 춤으로, 노래하는 자는 노래로, 그리고 몸짓으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글로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자”고 당부했다.
학부모들도 “정부는 학부모 가슴에 멍들이지 말라”고 호소했다. 6월15일 학부모 일동은 “행정 절차상의 종합감사라는 법적 장치 뒤에서 사악한 일들이 버젓이 꾸며지는 현실에 통곡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직접 호소한다”면서 거리로 나온 이유를 밝혔다.
학부모들은 “국립대학의 총장을 조금이라도 예우하기는커녕 엉뚱한 사안을 업무상 비리로 곡해해 중징계를 요구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교수들을 중징계해 학교에서 축출하려고 한다”면서 “강의실에서의 수업과 강론이 神도 범접을 삼가야하는 신성불가침 활동이듯이 한예종 총장과 교수들은 우리 자식들의 소중한 스승들”이라며 문화부의 감사 결과에 반기를 들었다. 학부모들은 학제 개편 요구에도 쓴 소리로 지적했다. 행정감사 담당자들은 행정 관료일 뿐 예술학교 학제는 학교 특성에 따라 교육·예술 전문가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권침해이며 ‘한예종 죽이기’의 서곡이라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장관 ‘세뇌’ 발언에 차관 ‘좌파·우파’ 발언까지
특히 학부모들은 유인촌 장관에 대해 “초등학생들에게도 말을 삼가야 하는 법인데 한 대학의 대표로 공개 장소에서 시위하는 성인들에게 장관이라는 사람이 반말을 하느냐”고 성토했다. 이는 지난 5월21일 문화부 앞에서 시위 중이던 한예종 학생들에게 유 장관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얼른 가 공부해라, 뭐 하러 고생하고 있니, 다 해준다는데”라고 발언한 것을 꼬집은 것. 학부모들은 “시위 현장에서의 문광부 장관은 아전인수격의 생고집이며 그의 언행은 오만한 심성을 만천하에 표출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유 장관의 발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학생비대위가 6월6일 공개한 동영상에 따르면, 서사창작과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가 문화부 정문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중 지나가던 유 장관에게 “부모 된 입장에서 생각해달라고”고 말하자 유 장관이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를 시켰지?”라고 반응한 것. 이에 학부모가 “세뇌가 아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라고 응수하자 유 장관은 다시 “세뇌가 되신 거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이야기를 했고 학교 전체가 지금 다 일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폐지가 거론되고 있는 서사창작과를 두고 ‘학교에서 잘못 만든 과’라고 발언해 한동안 매스컴을 들끓게 만들었다.
신재민 차관의 발언도 기름을 부었다. 6월2일 한예종을 방문해 관계자들과 자리를 가진 신 차관은 “황지우 전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니냐”면서 “유럽에서는 좌파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가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교수협은 “국립대학 총장이 특정 정권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하고 심지어 협력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신 차관의 발언은 대학과 총장의 양식을 무시하는 폭력성마저 안고 있어 매우 우려된다”며 정부에 신 차관의 교체를 요구했다.
학부모들은 “자식의 문제를 통해 현 정부의 실체를 인식하기에 이르렀다”면서 ▲학과 폐지 또는 축소 조치 처분 즉각 철회 ▲황지우 총장 복귀, 교수들에 대한 중징계 조치 철회 ▲시위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한 유인촌 장관의 정중한 사과 ▲신재민 차관의 좌파-우파 총장 발언 공개 사과를 요구하며 이것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화부, “학과 폐지는 없지만 현행법 불일치는 숙제”
논란이 가중되자 문화부는 감사결과 발표 한 달여 만인 6월17일 뒤늦게 감사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한예종은 실기 중심의 예술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예술이론 교육의 필요성과 원칙을 바탕으로 현 이론교육 시스템의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6개원의 이론학과 폐지에 대해서는 문화부에 감사처분을 요구한 바가 없다”고 밝힌 문화부는 한예종이 감사에서 지적된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문제점을 시정, 해결토록 할 것이니 더 이상 이번 감사와 결과에 대해 오해나 편견이 없길 바란다고 전했다. 하지만 문화부는 “이미 재학생이 수학하고 있는 서사창작과 등 기존 학과는 폐지하지 않지만 현행법과의 불일치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여운을 남겼다.
국 감서 한예종 교수들 자녀 입시부정 의혹 제기
한예종 사태는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불거졌다.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에 의해 한예종 교수들의 자녀 입시부정 의혹이 제기된 것.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인 진 의원은 10월5일 문화부 국정감사에서 한예종 개교 이래 134명의 교수 중 18명이 자녀를 한예종에 입학시켰으며 그 입학인원은 25명에 이르고 있다면서 “한예종 교수 자녀들이 한예종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시험문제 출제 및 채점, 평가 등에 직접 참여해 부정입시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서울대, 홍익대 등 타 대학의 경우 매년 입시기본계획에 교수자녀 및 친인척 5촌까지 시험에 응시하는 경우 해당 교수들이 서약서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고 이후 시험출제, 채점 등의 모든 과정에서 철저히 해당 교수를 배제시키는 조취를 취하고 있는 반면 한예종은 매년 국민이 낸 세금 300여억 원이 들어가는 국립학교지만 입시관련 규정은 물론 입시 업무편람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실시시험을 실시할 경우 임시번호표 부여, 가림막 장치 등을 통해 교수 제자나 자녀 등이 응시하더라도 구별이 어렵도록 하는 등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장치가 전무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 의원은 주무 감독관청인 문화부가 지난 감사 때 이 같은 상습적 입시 비리를 밝혀내고도 관련자를 한 명도 징계하지 않은 이유가 석연찮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진 의원의 주장에 의하면, 18명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이 재직 중인 원에 자녀를 입학시켰으며 교수 상호간 자녀에 대해 시험출제 및 평가위원으로 교차 참여했다. 전통예술원 A원장은 자녀가 응시한 시험에 출제 및 평가위원으로 참여했고 음악원 B교수, 전통예술원 C교수는 자녀의 입학여부를 최종 심사하는 사정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갔다. 진 의원의 이 같은 지적에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한예종 입시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공감한다”면서 적극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6일 국감에서는 황 전 총장의 교수직 박탈 문제가 거론됐다. 6일 민주당 장세환 의원은 “법에는 대학총장이 임기를 다 마치면 교수직으로 복귀하도록 되어 있으나 황 전 총장이 총장 임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며 교수직을 박탈한 것은 문화부의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장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입법조사처에 질의한 결과 ‘위헌 소지가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히며 신임 박종원 총장에게 황 전 총장의 교수직 복직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이에 신임 총장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법적 문제가 해결되면 복직문제를 논의해 보겠다”고 전했다.
한예종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전문예술인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종합예술학교다. 하지만 ‘한예종 사태’로 불리는 이번 사태로 한예종의 수난은 계속 되고 있다. 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학생들은 ‘교수 황지우’라도 돌려 달라 소리치고 있다. 사태는 급기야 좌파, 우파 색깔론으로까지 번져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고 있다. 한예종 설립의 본래 취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