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성 상봉 한계, 상봉 확대와 정례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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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 상봉 한계, 상봉 확대와 정례화 시급
  • 김미란 기자
  • 승인 2009.11.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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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호의 보여 달라’ VS 南 ‘쌀·비료 지원 없다’

60여 년간의 긴 이별, 2박 3일의 짧은 재회, 그리고 또 다시 기약 없는 생이별. 지난 9월26일부터 10월1일까지 총 888명의 남북이산가족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뒤로 한 채 이들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여한(餘恨)이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가슴에 움트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미완의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
지난 9월26일부터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금강산에서 열린 추석계기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가 10월1일 종료되었다. 2007년 10월 이후 약 2년 만에 개최된 이번 상봉행사는 9월26일∼28일, 9월29일∼10월1일 1, 2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남한 가족 554명, 북한 가족 334명이 상봉행사를 통해 가족을 만났다. 2007년 4월 8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합의하지 못했던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 상봉도 이루어져 국군포로 1가족, 납북자 2가족이 가족들과 재회했다.
이에 앞서 남북 양측은 지난 8월26일부터 28일까지 금강산에서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하여 이산가족상봉행사를 갖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적십자회담도 마찬가지로 2007년 11월 이후 1년 9개월 만에 개최된 것으로 남측 대표로는 대한적십자사 김영철 사무총장이, 북측 대표로는 조선적십자사 중앙위원회 최성익 부위원장이 단장으로 참석했다. 이날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상봉 관련 논의 외에도 향후 적십자 인도주의 문제를 남북관계 발전의 견지에서 지속적으로 합의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이번 추석계기 상봉행사에서 가장 눈에 띈 이들은 20대 청춘에 헤어져 백발이 되어 재회한 로준현(81)-장정교(82) 부부였다. 이번 상봉행사에서 유일한 부부 상봉자이기도 했던 이들은 “젊어서 만나면 좋았을 것을 나이 들어 만나게 됐다”며 자신들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남측 아내 장씨는 16세에 로씨와 결혼하여 딸 선자씨와 아들 영식씨를 낳았다. 하지만 장씨가 23세 되던 해 남편은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당시 아이들은 5세, 2세. 아내는 그렇게 경북 예천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두 아이들을 키우며 이제나저제나 남편이 돌아올까 재혼도 하지 않고 기다리며 한평생을 살아왔다. 이렇게 59년을 살아온 아내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남편을 만났다. 아내를 만난 남편은 “시부모도 다 모셔주고…”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동시에 자신은 북에서 재혼해 슬하에 2남 5녀를 두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할 수밖에 없었다.
59년 만에 백발이 성성해진 모습으로 만났지만 이들의 시간은 20대의 꽃다운 청춘에 머물러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해온 시간에 비하면 재회의 기쁨은 짧기만 했다. 작별상봉을 하던 날 아내는 남편에게 물었다. “전화 연결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남편에게선 안 된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상봉기간 내내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던 부부. “통일이 되면 그때 손을 잡고, 그게 진짜래”라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이윽고 작별의 시간. 아내는 떠나는 남편에게 “점심도 못 먹고 우짜노”라며 남편이 전쟁터로 떠나던 그 때의 그 애달픈 마음으로 돌아갔다.
모두 제각각의 사연으로 눈물의 상봉을 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끝끝내 터뜨리지 못한 채 다시 돌아가야 했던 이들도 있었다. 가족으로 알고 만난 이가 동명이인이었던 어이없는 착오가 발생했던 것이다.
북 에 있는 형을 만나러 나선 남측 이종학, 이종수 형제는 상봉장에서 애타게 형을 기다렸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몇 분간 이야기를 해봐도 우리 형님이 아니었다”라는 말만 남긴 채 형제는 상봉장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12차 상봉 때 형을 만났는데 이번에 또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안 그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양쪽에서 찾는 이름이 서로 일치해 착오가 있었다”면서 자세한 경위를 파악해보겠다고 밝혔다.
한편,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좌절된 70대 실향민이 전동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A씨는 지난 9월2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화서역에서 수원역으로 향하던 전동열차에 몸을 던졌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강원도 통천에서 부모와 형제들을 두고 홀로 남한으로 건너온 A씨는 10여 년 전부터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선정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아들은 경찰에 “1년 전부터 중풍을 앓던 아버지가 최근 성사된 이산가족 상봉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신청했으나 또 다시 탈락해 상심이 컸었다”고 진술했다.

남측 신청자만 8만 7,500명, 하루 10명씩 사망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최초로 성사된 것은 분단 40년 만인 지난 1985년. 그 해 9월20일 남북 양측은 판문점을 넘어 각각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과 북으로 향했다. 대한적십자사 김상협 총재를 비롯한 151명으로 꾸려진 남측은 북측이 제공한 버스 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고려호텔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런가하면 북측은 북한적십자회 손성필 위원장이 인솔로 쉐라톤 워커힐에 짐을 풀었다. 인원은 동일하게 151명. 이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첫 만남 이후로 남북 양측은 이번 상봉행사까지 총 17차에 걸쳐 상봉행사를 개최해왔다.
하지만 그동안의 상봉행사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만큼 이산가족 상봉 확대와 정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오고 있다. 현재 남측 상봉 신청자만 해도 8만 7,500명이며, 상봉 신청자들은 대부분 고령자에 속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들 중 평균 하루에 10여 명씩 사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 2년, 그것도 비정기적으로 고작 100명씩 이산가족을 만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많은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가슴에 한(恨)을 품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더욱이 한번 상봉이 성사된 가족들의 경우에는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다시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통일부 홍양호 차관은 지난 10월3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열린 재이북부조(在以北父祖) 합동경모대회에서 격려사를 통해 “이산가족 간 일회성 상봉방식은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차관은 “앞으로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남북 간 인도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원칙을 갖고 꾸준하게 북한을 설득해 나갈 것”이라면서 북한도 이에 호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원할 땐 언제든지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혼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월7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김덕룡 대표상임의장도 남북경협 법률아카데미 개강식에서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과 관련, “남북 당국이 인도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남북이 조심스럽게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 김 의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이후 북한 특사 조문단의 이명박 대통령 면담이 이루어지고 이산가족상봉 행사까지 열린 것은 ‘분명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의장은 북한이 지속적인 대화의 장에 나올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쌀과 비료를 지원하는 등 북한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인도주의 지원을 조건 없이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한 대규모 지원 없다”
북측도 이와 같은 의견을 낸 바 있다. 북한의 주간지인 통일신보 10월3일자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는 화해와 협력의 성과이며 남북이 이번 성과를 살려서 북남관계를 더욱 진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통일신보는 “서로 적대시하는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는 북남관계의 발전과 나라의 통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지금 북남관계는 곡절과 좌절을 딛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국면에 다시 접어든 소중한 기회”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과 남은 서로 존중하고 화해하고 협력하면서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신보의 보도를 살펴보면 이번 상봉행사를 대하는 남북 양측의 태도에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신보에서는 이번 상봉행사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회장을 만나 ‘청원을 풀어줬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상봉행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도 ‘김 위원장의 숭고한 뜻과 의지의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상봉 기간 중에도 장재언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에게 “남측의 호의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보아 통일신보의 주장도 남측의 호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9월28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조취를 취한만큼 이에 상응하는 조취를 검토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원 원장의 이 같은 발언에 조심스런 뜻을 내비쳤다. 박 대변인은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현재 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이나 비료지원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다만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현재도 북한의 영유아·노약계층에 대한 의약품이나 구호 식품 등은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홍양호 통일부 차관도 “과거에 암묵적으로 비료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해 대규모의 쌀과 비료를 지원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5년마다 이산가족 실태 조사’ 법률 시행
한편, 정부는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과 교류촉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북한당국과의 적극적 협의 및 지원을 촉구하며, 아울러 남북 당국 간 이산가족 문제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기까지 민간차원의 이산가족 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 9월26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 법률에는 통일부장관은 5년마다 방문·전화·우편조사를 통해 이산가족 실태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재북가족 생사 최초 확인, 제3국 또는 북한에서 상봉, 교류를 지속하는 경우 각각 1회에 한해 경비를 지원하고, 이산가족 교류추진 또는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한 연구·조사 사업을 하는 비영리민간단체를 지원한다는 등의 내용도 법률에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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