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연구와 토론을 표방한 결성 모임만 10여개
구시대적 계보정치의 맹아아니냐 우려의 시각도
열린우리당내 제 세력의 분화 양상이 심상치 않다. 최근 당 _청관계 논란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 현안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세력간 대립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우선 두드러지는 것은 청와대를 향해“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공개 일갈함으로써 청와대와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김근태전원내대표 측과 이에 발끈한 대통령 직계 인사들의 집단 반격 움직임이다.
최근 친노(親盧) 직계 그룹의 세력화가 급템포를 타고 있다. 당 _청 갈등과 당내 치고받기식 난맥상 와중에 청와대의 입장을 적극 뒷받침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표측에 각을 세우는 언사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적극적인 김근태계 對 잠잠한 친(親) 정동영계
문희상 유인태 의원을 비롯, 문학진 이광재 서갑원 김현미 백원우 의원 등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 의원들은 첫모임을 결성하고 한달에 한번 모임을 정례화 하기로 했다.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 젊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별도로 10여명 규모의‘의정활동 연구센터’를 만들어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 그룹이 주축인‘참여정치연구회’는 일찌감치 활동을 시작했다.
또 청와대 출신 의원 7명이 청와대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오찬모임을 갖고 “당내 중구난방식 어지러운 의견개진 양상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 중 염동연 의원은“대통령 덕에 당선된 사람들이 저 잘난 척만 하고 있다”고 소속 의원들을 비판했고, 유시민 의원은“계급장을 떼니 마니 하느냐”며 김 전 대표측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김 전대표는 일단 응전을 자제하고 있다. 김 전대표 측근들은‘계급장 발언’이후‘입각 포기 수순’등 해석이 나도는 데 대해서도“중요 현안에 대해 당에 조언한 것 뿐”이라며“입각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김 전대표가 민감한 시기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은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의견에 따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차별화 행보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는 김 전대표가 요즘 한미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두고 통일부 장관입각을 재시도, 제2의 입각파동을 불사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초 _재선 소장파의원 34명으로 구성된‘국가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모임이 발족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구성원들은“당내 세력경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지만, 모임의 주축은 김부겸, 송영길, 임종석, 이인영 의원 등 재야파이다. 이들은 유사 시에는 김 전대표를 지원할, 정치 역량을 갖춘 소장파라는 점에서 이른바‘김근태 계’ 또한 만만치 않은 잠재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정동영 전의장과 친(親) 정동영계 인사들은 일단 당내 분파 흐름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정 전의장이 미국에 체류 중인데다 지금 시점에서 혼란에 몸을 담글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친 정동영계 의원들이 별도모임을 만든 것은 없다.‘초선 모임’등 당내 다양한 소모임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정도다. 현안에 대한 목소리도 잠잠하다. 역설적으로 정 전의장은 잠수함으로써 노심(盧心)을 자극한 김 전대표와 달리 득을 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 측근은“귀국 후 쉬다가 입각 요청이 오면 입각해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 전의장 귀국 후에는 다른 정파에 맞서 입지강화를 위한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어서 당 세력분화는 한층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공부모임의 파벌형성 '딴짓'
17대 국회의 큰 특징은 여야를 막론하고 성향과 이해 관계에 따른 모자이크식 분화가 초기부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51명의 소속의원을 이끌 만한 뚜렷한 당의 구심점이 없는 열린우리당의 세포 분열은 다양한‘공부모임’의 형태로 세력화의 모습을 띠어가고 있다. 원 구성도 매듭되지 않은 현재, 모양새를 갖춘 모임만 10여개에 이른다. 크게는 재야파 중심의 진보진영과 전문가 그룹 중심의 실용주의 집단, 친노(親盧) 직계 그룹 등으로 분류된다.“정치색을 배제한 순수한 공부모임”이라는 게 공통된 주장이지만 당 안팎의 시각은 다르다. 스스로를‘잡탕 정당’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성향별 스펙트럼이 다양한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역학관계가 만들어낸 측면이 크다는 얘기다.
가장 주목받는 모임은 과거 개혁당과 신당연대 출신 인사들을 주축으로 결성된‘참여정치연구모임(참정연)’이다. 6월9일 현역의원 25명을 포함, 원내외 120여명의 인사들이 모여 공식 발족한 참정연은 스스로를“정책노선이 아니라 조직노선을 중심으로 모이는 당원과 지지자들의 정치결사”로 규정할 만큼 정치색이 짙다. 개혁당 그룹이 그동안 당내 주요 현안 결정 과정에서 특유의 결집력으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참정연의 발족은 본격적인 당내 헤게모니 싸움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른 측면에서 참정연에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은 모임의 산파역할을 한 유시민 의원의 정치적 역할에 맞춰져 있다. 최근 이해찬 총리후보 지명, 정동영 김근태 동반 입각 등 참여정부의 집권 2기 구상에 그가 관여한 흔적이 나름의 신빙성을 갖고 있고, 여권의 권력지형도 변화에서도 친노 세력을 대표하는 그의 역할론이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참정연을 유시민 대권 준비조직으로 보는 시선도 없지 않다.
◆문희상 특보 밀어낸‘새로운 모색’
6월 9일 유시민 의원이 주도한 개혁당 세력인 참여정치연구회가 공식 발족했다. 노무현 맨들이 동반 참여해 친노세력의 전위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임종석 송영길 이종걸 문석호 정장선 등 민주당 출신 재선그룹 중심인‘젊은 희망’은 최근 우상호 이인영 정성호 등 386세대 초선들을 대거 보강,‘국가 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색(새로운 모색)’으로 확대 개편했다. 김영춘 안영근 등 한나라당 출신‘독수리 5형제’의 일부도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당의 요로에 포진된 이들의 파워는 최근 몇 가지 당청간의 주요 현안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 정치특보이던 문희상 의원의 집중된 역할에 제동을 걸고 나섰고, 결국 노 대통령의 정치특보 폐지령으로 이어졌다. 김혁규 카드에 대한 당내 반대론도 모임에 참여한 일부 의원들이 주도한 측면이 크다. 이들은 지난달 11일 조찬모임에 문희상 의원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형식으로 갈등설 봉합에 나섰다.“언론의 과장 보도 탓”이라는 게 문 의원과 모임의 설명이었지만, 앞으로도 모임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치적 파장과 함께 언론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염동연 문희상 유인태 김진표 의원 등 노 대통령의 측근과 참여정부 1기 청와대 및 관료 출신들이 중심이 된‘친노 직계모임’도 조만간 발족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 내에선 당청간 고리가 상당히 약화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읽고 집권 2기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이들의 역할이 부상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많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의원 등 노 대통령의 젊은 참모 그룹 10여명도 꾸준히 독자 행보를 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그러나 염동연 의원의 주도하에 53명의 초선 의원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던 친노 초선모임은 염 의원이‘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활동이 거의 없는 상태다.
‘화(火)요 조(朝)찬모임’의 변형된 명칭인‘불새(火鳥)’는 실용주의 성향의 모임으로 눈길을 끈다. 주 제네바 대사를 지낸 정의용 당선자를 주축으로 민병두 박영선 이은영 의원 등 전문가 그룹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총선 당시 정동영 전의장이 영입에 앞장섰던 인사들이며, 이라크 파병이나 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참정연이나 새로운 모색에 비해 중도 온건 노선이 확연하다.
◆정동영 측근들로 구성‘불새’눈길
산자부 장관 출신인 정덕구 의원이 주도하고 현대카드 회장 출신의 이계안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시장경제포럼’도 정 의장과의 관련성이 뚜렷하다. 정 전의장의 의장직 사퇴 이후‘불새’와‘시장경제포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지만,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108명의 초선의원이 중심이 된 '초선모임'은 각 세력이 분화되면서 입지가 크게 약화됐지만 개혁성향의 의원들이 중심이 돼 여전히 힘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이밖에 이강철 전특보와 최철국 조경태 조성래 의원 등 영남 출신 인사들이 중심이 된‘지역개발연구회’, 임채정 우원식 이화영 의원 등 서울 강북지역 의원들이 중심이 된‘서울균형발전연구모임’은 지역의 현안 및 이해를 대변하는 지역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
13명의 여성 초선의원들이 참여한‘열린정치 여성의원 네트워크’는 원내 발언권 강화가 목표다. 또한 천정배 원내대표를 정점으로 이종걸 임종인 의원 등 10여명의 법조계 출신 인사들이 중심인 민변 그룹도 잠재력을 인정받는다.
반면 임종인 김재홍 이목희 의원 등을 중심으로 구성됐던‘초선 모임’은 지난달 10일 자진해산을 결정했다. 108명의 초선의원의 힘으로 거침없이 제목소리를 내왔지만, 각종 현안에서 여권 내 혼선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입지가 크게 약화된 것이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모든 계파를 거부하고 초선의 힘으로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취지가 108명의 각기 다른 성향과 이해관계를 묶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17대 국회 개원 초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더러는 몰락하기도 한 열린우리당‘공부모임’활성화가 당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최근 혼란스런 여권의 역학구도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당의 구심이 사라진 거대 여당의 정치적 세포분열이 이들 모임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더욱이 지난 16대 국회에서도 다양한 모임들이 등장해 정치세력화로 발전한 경험을 반추해 볼 때, 여권의 정치적 분화는 이들 모임의 흥망과 연관성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저마다“정책과 연구, 토론”을 모임 결성의 동기로 내세우고 있지만 구시대적 계보정치의 맹아가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최대계파‘개혁당의 대권대망론’
개혁당 출신의 참정연·개혁전략연구소, 정치세력화 확대
열린우리당에서는 언제나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출신 그룹이 단연 관심대상이다. 지도부에 대한 공격의 포문은 늘 그랬던 것처럼 유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그룹이 맡는다. 개혁당 그룹은 전체 73명의 중앙위원 중 30% 정도.
◆유시민 의원 대권론은 소설
유 의원을 노무현 대통령의‘장자방’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에다 유 의원이 중심이 돼 지난달 9일 발족한 참여정치연구회(참정연)도 언론의 주목대상이다. 25명의 현역의원이 참여하는 참정연은 정치세력화를 표방하면서 모임을 원외로 확대하고 있다.‘유 의원이 개혁당 세력을 앞세워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이야기가 신문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는 용어인‘노빠’에 빗대 유 의원을 좋아하는‘유빠’그룹에 대한 이야기까지 떠돌아다닌다.
유 의원은 청와대 교감설이나 차기 대권 준비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총리지명에 대해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서 유 의원은 노골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신문이 그 큰 지면을 채우지 못해, 일용할 양식을 때우지 못해 소설을 쓰고 있다”고 강변했다. 대권 준비조직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참정연에 대해 유 의원은“옛날부터 준비해오고 예정된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대권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참정연은 김원웅 의원(전 개혁당 대표)을 비롯해 유시민-이광철-유기홍-김태년-강기정-안민석-김형주-김재윤 의원 등 개혁당 출신 의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조경태-박찬석-장향숙 의원 등 영남 출신 인사가 가세한 것이 눈에 띈다. 준비모임 당시 10여명이던 현역의원이 25명으로 늘어났다. 원외인사로는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노혜경-허인회-김두수-고은광순-김영대-윤선희-김희숙씨 등이 참여했다.
◆또 하나의 패거리 문화 비판도
유 의원을 비롯한 개혁당 그룹에 대한 당 안팎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천-신-정으로 대표되는 당권파들의 권력구도를 적절하게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당내 한 초선의원은“여당 의원이라면 이제 저항정신이 아니라 수권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라면서“무조건 저항정신으로 대처하려 한다는 것이 개혁당 출신들의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여당 내 야당으로 통하는 개혁당 출신에 대한 신랄한 공격인 셈이다. 일부 당직자는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앉고 간혹 귀엣말을 나누는 것에 대해‘또 하나의 패거리 문화’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회의 전과 회의 후 함께 몰려다니는 것도 못마땅한 모습이다.
개혁당 출신 그룹은 또 하나의 단체를 갖고 있다. 개혁당이 해체되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개혁전략연구소란 조직을 출범시켰다. 동우회 형식으로 느슨한 조직이다. 물론 유 의원도 참여하고 있다. 개혁전략연구소는 그동안 기간당원 확보와 조직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혁전략연구소와 참정연이 개혁당 출신 그룹의 당내 개혁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당 출신의 한 인사는“유 의원이 계보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개혁당 출신 그룹이 유 의원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면서“유 의원과 개혁당 출신 인사들이 같은 길을 가는 것이며 다만 정세를 판단하는 유 의원의 탁월한 감각 때문에 유 의원의 도움을 받아 더 큰 일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당 출신 인사들 사이에도 대권대망론도 은연중에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인사는“전혀 언급조차 안 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 의원의 대권 대망론은 너무 빠른 이야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