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스릴러물의 무덤’ 오명 벗고 우리정서의 독특한 장르로 승부
‘스크린 쿼터 축소’가 다시 화두에 오른 가운데 올 여름 시장을 겨냥한 한국영화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가족영화, 코미디 영화, 공포 영화 등 장르가 다양해진 한국 영화가 여름극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공포영화는 5편이 넘는 개봉 준비 작이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여고괴담’을 시작으로 한국식 공포영화의 출발을 알린 후, 작년 ‘장화홍련’, ‘여고괴담-여우계단’등의 한국식 공포영화의 흥행을 기반으로 올해는 다양한 소재의 공포영화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신인 감독들의 약진이 눈에 띈다.
◇한국식 공포영화
공포영화의 대명사는 미국식 영화였다. ‘13일 밤의 금요일’, ‘나이트 메어’, ‘스크림’ 등의 영화처럼 정체모를 누군가에 의한 악의적 공포, 즉 죽음에 대항하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하지만 토종공포 영화는 생활에서 마주 칠 수 있는 공포에 긴장감 넘치는 스릴을 가미한 심리 공포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공포와 스릴러 물의 무덤이라고 까지 불려왔던 한국영화가 새로운 도전에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극한의 공포보다는 한국적인 정서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분석에 의해 독특한 장르가 형성이 되고있다. 특히 ‘한’ 이라는 부분에서의 접근은 한국식 공포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소재로 한 몫 했다.
u소재의 다양성
우선 소재부터 자유롭고 다양해 졌다. 제일 먼저 개봉하는 <페이스>는 사라진 얼굴을 찾으려는 복안 전문가와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그린 영화로 시신의 얼굴을 복원하는 '복안(復顔)'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 송윤아와 신현준이 투 톱으로 나선다.
<령>은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여대생 지원이 자신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물로 인해 상징되는 공포로 그려내고 있다. 지원 역은 로맨틱 코미디로 영화계에 자리를 잡은 김하늘이 열연한다.
7월말 개봉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촬영을 진행중인 <인형사>는 인형제작자(인형사)가 실제 사람을 모델로 구체관절 인형을 만들기 위해 조각가, 여고생, 사진작가, 직업모델, 인형 마니아를 외딴 숲속의 작은 미술관으로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김유미와임은경 주연이다.
개봉 일정을 8월 중순으로 잡고 있는 <알포인트>는 베트남 전쟁을 무대로 하는 호러물. 제목 R 포인트는 베트남 당시 실재했던 '로미오 포인트'의 줄임 말 이다. 이 지역에서 실종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던 병사들로부터 무전이 걸려오고 이 무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병사 9명이 현장으로 투입된다.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감우성이 공포영화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김규리, 이세은, 이유리 등이 출연하는 <분신사바>는 왕따 당하던 여고생들이 부른 '분신사바' 주문이 현실이 되며 엄청난 저주를 몰고온다는 내용. <분신사바>는 여고생들이 연필을 쥐고 귀신을 불러내는 주술을 말한다. 영화는 일본을 비롯하여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등지에 총340만 달러(약 38억원)에 판매되는 등 국내 개봉 이전에 이미 제작비 이상을 벌어들였다.
◇신인감독 VS 기성감독
신인감독 4명과 기성감독 2명의 영화가 맞붙었다.
<페이스>는 단편영화 감독 출신인 유상곤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 <령>은 96년 ‘진짜 사나이’의 조감독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29살의 김태경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기억의 저편’, ‘나우-그 끝없는 유혹’ 등의 단편으로 주목을 받아온 정용기 감독도 공포영화를 데뷔작으로 택했다. 정 감독은 ‘비천무’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으로 배창호 감독의 연출부를 거쳤다. ‘하얀전쟁’, ‘텔미섬딩’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출신의 공수창 감독도 <알포인트>로 영화 감독 신고식을 했다.
안병기 감독은 <분신사바>로 다음달 말 관객들을 만난다. ‘가위’, ‘폰’으로 한국적 공포영화의 가능성을 다진 안 감독은
또한 지난달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옴니버스 <쓰리-몬스터>를 8월 중순부터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과 함께 공동으로 제작하는 이 영화에서 박 감독은 괴한의 침입으로 인생을 뒤흔들만한 상황에 직면한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름 극장가의 승자는 누구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 등 관객 천만 시대를 열면서 국제영화제에서 이름을 날리는등 한국영화가 승승장구 하고 있다. 하지만 여름극장은 두고 봐야 할 문제. 한국영화가 강세 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의 대부분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흥행의 주를 이루었던 과거를 뒤 돌아 보면 낙관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8월까지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은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반헬싱> <킹 아더> <스파이더맨2> <아이로봇> <헬보이> 등 여섯 편에 이른다. 이미 개봉한 두 편의 블록버스터 <트로이>와 <투모로우> 등이 국내 박스오피스 진입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정된 스크린을 어떤 영화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흥행의 승부수가 던져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들의 개봉 편수가 많기 때문에 전체 관객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긍정적 예측도 있지만 스크린 수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전망이다.
2004년 여름 극장가, 한국적 공포영화의 승리가 될 것인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의 승리가 될 것인지에 대한 전쟁은 시작되었다.
스크린 쿼터 제도, 영화계를 지키는 힘인가
◇스크린 쿼터 제도란
1967년 처음 시행된 스크린쿼터는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를 말하는 것으로 외국 영화의 지나친 국내 시장 점유율을 낮추어 자국 영화를 보호.육성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현행 영화진흥법 제28조는 '영화상영관 경영자는 연간 대통령이 정하는 일수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영화진흥법 시행령 13조는 '연간 상영일수의 5분의2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크린쿼터 일수는 146일이지만 한국영화 수급 상황 등을 감안해 실제로는 106일이 적용된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최근 수년간 줄곧 40%를 넘기며 한국영화의 자생력이 강해진 객관적 상황이 영화계와 극장간의 공방전을 다시 시작하는데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게다가 스크린 쿼터 옹호자였던 이창동 장관까지 축소쪽으로 의사 표명을 함으로서 그 파장이 알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한참 자리잡아 가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찬물을 끼얹는 식이라며 조심스럽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오세암>이 안시 애니매이션 페스티벌 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금까지 확대되어 가던 영화 시장의 금융자본의 투자 후퇴, 한국 영화 제작편수 감소 등의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 감소가 순차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가장 크다. 제작과 흥행 모두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지금 영화계는 시장 변화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