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문화 가교의 새 역사 ‘평양통일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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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문화 가교의 새 역사 ‘평양통일예술단’
  • 김옥경 차장
  • 승인 2016.06.0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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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건 속에도 예술 소신 지켜나가

 지난해 기준으로 북한이탈주민 수는 2만8607명이며, 이중 국내 거주자 수는 2만6514명이다. 이들의 70%는 여성이며, 연령대로는 20~30대가 가장 많다. 진정한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어온 남한이지만, 국내의 어려운 경제여건과 북한과의 관계악화 등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북한의 생활이나 문화가 소개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거부감이나 이질감은 줄어들고 있다. 또한 다문화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전환도 북한이탈주민을 따듯하게 받아들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훈풍 속에 북한의 공연예술도 점차 인기를 더하고 있는데, 그 주인공 중 하나에 ‘평양통일예술단’이 있다.

 

 

36년 만에 당 대회를 개최하고 김정은의 입지를 곤고히 한 북한이 최근 기존의 긴장국면을 해제하고 남북 회담을 주창하고 나섰다. 국방위원회 공개서한과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담화, 인민무력부의 군사회담 제안 통지문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남북대화 개최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당 대회에 이어 예견되었던 5차 핵실험도 감행하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를 외치고 나선 데에는 강력한 대북제재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긴 하겠으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어 한반도의 평화모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통일을 향해 가는 길이 정치적인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간 분야도 얼마든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조할 수 있는 것이다. 민간협력이나 문화교류 등 방법도 다양하다. 남북한의 오랜 분단으로 이질화된 문화를 하나로 조율하고 합쳐가는 일이야말로 남북한의 진정한 평화를 일궈내는 초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석을 다져온 숨은 공로자 중 한 명에 ‘평양통일예술단’을 창설하고 이끌어온 방분옥 대표가 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탈북한 지 10여 년. 이 세월은 평양통일예술단의 나이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6월 1일 방 대표는 지금의 평양통일예술단을 결성했다. 10여 명 남짓으로 구성된 북한이탈주민 단체인 평양통일예술단은 말 그대로 남북한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초라한 무대라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평양통일예술단은 북한의 공연예술을 남한에 알리는 사절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절된 남북한을 잇는 중요한 가교라고 믿는다. 
“우리가 다 북한이탈주민인 것은 맞지만, 다 무용을 전공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무대에 오를 때만큼은 최선을 다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관객들도 ‘아, 이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감동을 줘서 마음을 울리고, 그것에 대한 박수갈채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방 대표는 “우리는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공간이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1년에 평균적으로 130회 공연을 하는 내로라하는 예술단으로 자리매김 했지만 초창기에는 설움도 많았다고 방 대표는 털어놓는다.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선입견으로 때문에 관객들이 예술공연을 감상한다기보다는 무슨 신기한 묘기를 보는 듯이 쳐다보았다고 한다. 
“우리 공연 중에 물동이춤이 있다. 이 춤은 최승희 선생의 5대 명작 중 하나로, 옛날 아가씨들이 샘터에서 물을 길어오던 일상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그런데 남한 관객들이 그 공연을 보고는 묘기라고 생각한 건지, 중국에서 하는 기예무술 중 하나인 발로 항아리를 돌리는 것을 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라며 방 대표는 씁쓸하게 웃는다. 방 대표와 함께 평양통일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조예은 단장은 이런 남·북한의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북한에서 무용은 온전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는 김정일 부자의 주체사상을 고취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때문에 힘과 박력, 절도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딱딱하다. 하지만 남한의 무용은 선이 부드럽고, 유려하며, 아름답다. 그렇다고 무작정 남한의 것을 좇아갈 수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북한의 문화를 알린다는 우리의 정체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을 적절히, 잘 조율하고 녹여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 단장은 말한다. 
탈북하기 전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8년 동안 무용을 전공한 조 단장은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5대 명작을 완벽히 전수한 마지막 전수자이기도 하다. 북한의 고전무용이 최승희 선생의 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조 단장의 춤에는 북한 무용의 진수가 배어있다. 
 
 
소신이 돈보다 중요하다
현재 남한에는 다양한 북한 예술단이 활동하고 있다. 저마다 북한의 전통무용을 선보인다고 자랑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단체도 많다. 또한 순수한 북한이탈주민 단체라기보다는 조선족이나 한국인들까지 끼어있는 데도 있다. 
“북한에서 무용을 배우려면 평양으로 가야 한다. 물론 지방에서도 무용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군무일 뿐이지 전문적인 무용은 아니다”라며 “여기저기 공연무대에 초청되어 가서 하다보면 다른 북한이탈주민 예술단을 만나게 되는데, 안타까운 상황이 많다. 그저 돈을 벌기위해 모인 사람들이 시간만 대충 때우며 설렁설렁 공연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는 방 대표는 그래서 평양통일예술단만큼이라도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단다. 비록 인원은 적지만 모든 무대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며, 이런 소신을 지켜나가려 무던히 애쓴다고 덧붙인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조 단장은 더욱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예술 하나에 꽂혀서 그것만 바라본다. 지금 한 3개월 되는 우리 막내도 팔 드는 것, 손 펴는 것, 손가락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 무대에 세웠는데, 그게 1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도 쫓아 다니면서 잔소리한다”라고 방 대표는 웃는다.
처음 15명이었던 단원이 지금의 7명으로 축소된 것도 평양통일예술단의 이런 소신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지만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그리고 소신을 가지고 당장 눈앞의 돈보다는 명예를 좇을 수 있는 단원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단 돈 1만 원 때문에 1분 뒤 나가야될 무대를 뛰쳐나가는 단원을 볼 때는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우리는 인원은 적지만 공연시간이 1시간 이상 되는 큰 무대도 너끈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북한에서부터 정신력을 배워서 그런지, 공연이 있으면 정신력으로 버틴다. 한창 시즌 때는 하루에 5~6번씩 공연을 할 때도 있는데, 공연 마치고 들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보면 내가 봐도 미안할 정도다. 어떤 사람들은 메달을 따는 대회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다. 단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평양통일예술단의 고집이다.”
때문일까. 평양통일예술단의 공연은 환호성이 끊이질 않는다. 지방공연의 경우에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며 ‘앵콜’을 외치는가 하면, 공연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맛있는 것 사먹으라며 쌈지돈을 털어 주시는 어르신에서부터 가까운 슈퍼에서 사탕이나 과자를 사 올라가는 길에 먹으라고 건네주는 어르신까지, 팬들(?)의 사랑도 끝이 없다. 물론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아무 반응 없이 무대를 쳐다보는 10대나 20대도 있다.
현재 평양통일예술단은 안성시 바우덕이 풍물패와 함께 1년간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안성 맞춤랜드 상설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은 제법 입소문이 나서 인기가 있다. 진짜배기 북한 공연예술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곳에 가보길 추천한다. 더불어 이곳에 가면 한때 남한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의 노래는 물론 남한의 트로트와 발라드까지 간드러지는 북한 음색과 창법으로 즐길 수 있다. [사진_평양통일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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