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사회인식 전환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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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 사회인식 전환 모색해야
  • 김옥경 차장
  • 승인 2016.06.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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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정책과 사후 구제조치 조화 이뤄야

 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는 노동을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인간적 자아실현의 도구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신성한 것은 자본이고, 인간적 자아실현의 도구 또한 자본이다. 자본은 언제나 옳으며, 갑(甲)이다. 때문에 자본가에 고용된 근로자는 언제나 을(乙)이며 자본가의 부당함을 견뎌야 한다. 실례로 몇 달 전 체불임금 17만 원을 10원짜리 동전으로 받은 한 배달원의 일화는 공분을 사기도 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이런 임금체불 사건이 더욱 비일비재하고 있다.

 

 
 사례1 :  K(23) 씨는 지난 2월에 6개월간 근무한 회사를 퇴사했다. 퇴사 이유는 임금체불이다. 체불액은 3개월치 월급 440만 원이다, 지난 2월 10일에 퇴사한 K 씨는 지금 법률구조공단에 체불임금확인서를 제출하고 구제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회사 대표는 ‘주겠다’는 말만 하면서 차일피일 지급을 미루더니 진정서를 제출하자 협박성 문자를 보내왔다고 한다. K 씨는 회사가 계속해서 직원을 뽑고 있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구직자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례 2 : P(41) 씨는 1년 4개월 전 중구에 있는 한 조그만 잡지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간혹 월급이 밀리기는 했으나 크게 문제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 퇴사하기 3개월 전부터는 아예 월급이 나오질 않았고, 결국 지난 3월에 퇴사를 했다. 당연히 월급과 퇴직금은 받질 못했고,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 대표에게 여러 번 전화와 문자를 했지만 대표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이미 퇴사한 직원 중 4명이 임금체불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중 한 건은 벌금형을 받았는데도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5월 11일 현재 P 씨는 대표와의 면접일을 통보받고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1천만 원에 달하는 3개월치 월급과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올 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로 어려움을 겪은 근로자 수는 29만5677명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에 육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3년 잠깐 주춤했던 임금체불 현황은 2014년과 2015년 연속으로 증가하며 세계적 경기침체의 어려움을 대변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7만853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건설업, 도소매·음식숙박업, 금융보험부동산·사업서비스업 등이 이었다. 이중 제조업과 도소매·음식숙박업의 경우에는 최근 몇 년 새 임금체불 증가세가 가파르게 치솟았는데, 제조업의 경우에는 2011년과 비교해 지난해 임금체불액 증가율이 59.8%에 이르렀으며 임금체불 근로자 수도 6만390명에서 7만8530명으로 30%나 늘었다. 도소매·음식숙박업의 경우에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각해 2011년 2만4262명이었던 임금체불 근로자 수는 2015년 6만 140명으로, 체불액도 836억 원에서 1740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임금체불 문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안일하게 대처해야할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더욱이 내수침체로 자영업자나 영세업자들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안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근로자의 어려움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황규수 노무사는 임금체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조언하고 있다. 
“임금체불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치부하는 한 임금체불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한 사업주의 노력도 필요할 것이며 일단 임금체불이 발생했다면 응당한 사회적 처분이 뒤따라야 임금체불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보다 교섭력 약화가 문제
한국의 노동계를 대표하는 노조를 생각나는 대로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금속노조를 처음으로 꼽을 것이다. 그만큼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에도 금속노조를 둘러싼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와 다시금 대중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한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의 자유권과 관련한 이번 판결은 노동계의 교섭력과도 무관치 않아 더욱 관심을 모았다. 대법원은 발레오전장 노조의 선택권을 인정했고,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로의 전환을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향후 노동계의 단체교섭력 약화를 의미하고 나아가서는 노동정책 전반에 대한 타격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러한 후폭풍은 임금체불의 근본적인 해법 수립에도 난항을 예고한다.
“임금체불과 관련한 문제점을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에서 찾는 견해도 많다. 즉 대기업·정규직 부문과 이에 대비되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부문으로 나누어, 대기업·정규직 부문의 경직성과 불공정성을 개선하면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가 해소되고 그로 인해 임금체불도 해소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임금체불이 주로 취약한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는 황 노무사는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지극히 현상적인 면에만 천착한 것으로, 타당한 결론이 될 수 없다. 노동시장이 분리되고 고용상 불이익이 특정 부문에만 집중되는 것은 오히려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와 맞물려 있다”고 역설한다.
때문에 그간 임금 같은 근로조건 중심의 협상뿐 아니라 공공성 확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연대, 노동정책에 대한 개입 등 노동환경의 전반적인 분야에 교섭력을 행사해온 산별노조의 와해는 더욱 노동시장의 위험요소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교섭의 주체가 개별 기업노조로 축소되면 정부나 재벌을 상대로 한 교섭은 불가능해져 노동운동 전체가 후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기업별로 교섭을 하면 노조의 규모나 영향력에 따라 동일 업종에서도 근로조건이나 임금 양극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황 노무사 또한 “임금체불 문제만 한정해서 살펴보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전적인 임금체불 예방정책과 사후적인 체불근로자 구제조치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에 대한 배타적인 사회분위기와 친기업적인 고용정책이 국가와 사회의 개입을 제한하고 있다”며 “정부나 의회에 친노동적인 집단과 인사가 적절하게 참여하여 친기업적인 세력과 균형을 이루어야 임금체불과 관련한 법적, 제도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결론적으로 노동시장에 대해 노동조합과 근로자 측의 개입력과 발언력을 더 높여주는 것이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미봉책보다는 현실적 대안 절실
임금체불 증가의 난맥상에는 살아날 줄 모르는 불경기가 자리한다. 최근에는 꽃 피는 남쪽에서부터 불어오는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까지 겹쳐 그야말로 최악의 경기침체라 할 것이다. 지난해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5년 만에 최대치를 갱신했고, 2차, 3차가 없어진 직장회식 문화는 술집경기를 곤두박질치게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사업체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불 현상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악의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기보다는 불경기로 인한 부득이한 임금체불이 늘어난다는 것이며, 단기적 해법의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황 노무사는 “임금을 고의로 안 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의 경제사정 때문에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임금체불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만으로는 임금체불 발생을 막을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소액 임금체불의 경우, 서비스부문 소규모 자영업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전제하며 “누구나 알다시피 자영업 부문은 포화상태이고, 사업주조차 생존에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이다 보니, 이들에게 체불임금을 해결하라고 강요만 하는 것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도 결국 다른 산업부문에서 유출된 근로자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데, 궁극적으로는 지급능력이 강한 기업을 길러내고 한계기업을 해소해나가는 사회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 과정 속에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리적 대안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부언한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사업주에 대해서는 예방조치를 강화해 사전에 피해사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힌다.
“예방적 조치로써 근로자에게 기업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할 것”이라는 황 노무사는 “예를 들어 고용상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 필수적으로 공시하게 하여, 근무 중인 근로자뿐만 아니라 구직 중인 근로자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미 고용노동부에서 체불사업주 명단공개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공개요건이 더 완화되어야만 실질적으로 근로자에게도 도움이 되고, 사업주에게도 경고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계속해서 “임금체불이 발생하기 전부터 기업에는 이상징후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를 감지하여 관련 기관들이 사전에 개입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사회보험료나 공과금을 미납하게 되는데, 이런 정보들을 확보하여 근로감독을 강화하거나 근로자의 이직을 지원하면 임금체불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라고 예방책도 제시한다.
더불어 사후적 조치로는 근로자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조치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는 황 노무사는 당장 생활비가 급한 근로자들에게는 기초조사를 통해 체불임금 사실이 확인되면 체불임금의 일부를 긴급지원하고 차후에 사업주에게 구상하는 제도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물론 체당금제도와 같은 좋은 제도가 있긴 하지만, 도산 등 사실인정 조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최종 체당금 지급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되어 긴급 구제조치로써는 한계가 있다. 또 당장 생활비가 급한데 노동청에 가서 진정한다고 바로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법원으로 가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실제 체불임금을 받는 데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
 
임금체불 근로자 두 번 울리는 근로감독관
임금체불이 발생한 근로자가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진정서가 제출되면 사업장이 소재한 주소지에 따라 해당 지역 근로감독관이 배정된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사업주와 근로자를 배석시켜 체불된 임금의 지급을 조정하고 감독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이 체불임금 지급을 강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한을 정해 체불임금 지급에 대한 약속을 사업주에게 받아내긴 하지만 고의나 혹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사업주가 기한을 넘긴다하더라도 근로감독관은 이를 처벌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근로자의 편에 서서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해야 할 근로감독관의 안일한 업무태도가 더욱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어 공분을 산 적이 있다. 부산북부 고용노동지청 소속 근로감독관이 김해지역 인터넷 설치·수리를 하는 LG유플러스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노예’로 빗댄 것이다. 이들 협력업체 노동자 8명은 체불임금을 받아달라며 해당 노동지청에 진정서를 냈고, 처리가 늦어지자 담당 근로감독관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근로감독관이 되레 체불임금을 깎아주면서 근로자에게 사업주와 합의할 것을 유도한다거나, 정책적 고려를 위해 만들어진 행정지침을 법률적 판단보다 우위에 두고 업무를 처리한다거나, 배당 사건 종결에만 치중해 노골적으로 사업주 편을 든다거나 하는 등의 행태는 임금체불로 힘든 근로자를 두 번 울리는 격이 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근로감독관이 ‘사법경찰관’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잊어버리고 ‘체불임금 조정관’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기도 하다. 
“근로감독관이 1인당 담당하는 사업체가 적게는 1,200곳, 많게는 1,700곳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또 1인당 담당하는 신고사건도 많게는 200건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근로감독관 개인이 개개 사건을 만족스럽게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력충원이 답인데, 이를 위해서는 정부부처 간 협의와 예산 증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부문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국가나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황 노무사는 에둘러 대변한다. 
이에 더해 임금체불이 발생하기 전에 근로감독관을 활용해 사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귀띔하는 황 노무사는 “‘근로감독 청원제’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본인이 근무하는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청원’할 수 있는 제도인데, 근로감독을 청원하면 청원내용을 검토한 근로감독관이 해당 사업장을 정기·수시·특별 감독대상 풀에 포함시켜 근로감독을 실시하거나 사건성이 있는 경우 즉각 신고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다. 아직 체불임금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근로조건 위반사항이 많다고 의심되고 향후 피해가 예상될 경우 청원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덧붙여 황 노무사는 구직자들에게 조언하기를 취직하고자 하는 회사에 대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재직자나 퇴직자를 접촉해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한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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