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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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파동
  • 글_최승걸 기자
  • 승인 2004.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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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논쟁 잠재우기 빠를수록 좋다. 종교적 병역거부 법원 판단 제각각 혼선 심각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후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른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거부를 둘러싸고 법원의 유무죄 판결 논란에 이어 구속여부를 놓고도 법원마다 판단이 제각각 이어서 혼선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상고심의 판결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유·무죄 혼선
최근 춘천지법 형사2단독 이철의 판사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위반)로 구속 기소된 이모(21.춘천시 후평동)씨 에 대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사훈련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 영을 거부한 것은 정당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지난 5월 21일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 병역 소집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오모(22)씨에 대해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는 사물의 시시비비나 선악과 같은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이와 같은 윤리적 판단을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 받지 않는 자유 즉 윤리적 판단 사항에 관한 침묵의 자유까지 포괄한다"고 밝혔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거부자의 신병 구속에 대한 법원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병훈(閔丙勳)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5월 28일 종교적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임모(20.성남시 분당구)씨에 대해 영장을 기각했다. 민 판사는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고밝혔다.
이에 반해 전주 북부경찰서는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 박모(20.전주시 인후동)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영장 기각은 '수사결과 일정한 주거가 없고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 관할법원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를 구속시킬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한 무죄판결의 정신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병역거부 뜨거운 찬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후 찬반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인권단체들은 이 기회에 대체복무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향군인회 등은 판결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법원의 판결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법원의 판결 이후 시민단체들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대체복무제란 병역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 모두를 지키면서도 징병제에서의 예외를 인정하는 제도. 현재 시행 중인 공익근무나 산업체 근무 등도 일종의 대체복무제도이며 현재 징병제 국가 가운데 독일과 프랑스, 대만 등 28개국에서 이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인권시민단체들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22살 오모씨 등 3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환영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들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고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실질적으로 제도화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이제는 대체복무제 입법 청원운동에 힘을 쏟기로 했다.
평화인권연대 최정민씨는 "대체복무제도가 없기 때문에 그 분들이 재징집이 된다"며 "그래서 대체복무제도의 실질적인 논의를 통해서만이 이 분들이 더 이상 감옥에 가는 그런 일들을 그만하게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평화인권연대 등 36개 인권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는 기자회견을 열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복지시설,장애인,환경단체 대체복무 인정과 대체복무자에 대한 차별 금지 등을 포함한 대체복무법안의 주요 내용을 제시했다. 이들은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공청회 등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국회 로비단을 구성해 대체복무법안의 의원입법 발의를 추진할예정이다.


◇17대 국회에서 대체복무 입법 추진
반면 재향군인회 등은 "이번 법원의 판결은 우리의 분단 상황을 도외시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병역거부자에 대한무죄 선고를 내린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고 "이번 판결은 기회주의적 징병 거부자들에게 병역기피와 거부 명분을 줄 뿐 아니라 반국가적 행위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향군인회 박동형 연구부장은 "양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사람들이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방향이 되도록 저희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에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강조했다.
병무청 역시 법원의 선고에 우려를 나타내며 상급 법원에서는 판결이 뒤집어지기를 바라고있다.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에서 분명한 것은 이 사람들이 명백한 병역법 위반자이다"며 "하급심에서 지금 대법원 판례를 완전 위반해서 판례를 한 것이다"고 말했다.이들은 이번 판결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대하고 상급 법원의 판결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 설득이 관건

또 다른 문제는 '어떻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가려내느냐'와 '그들에게 병역에 상응한 어떤 대체복무 기회가 있겠는가'이다. 이번 법원 판결을 반대하는 측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허용할 경우 너도나도 병역을 거부해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옹호하는 쪽 역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수용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인권시민단체등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정하기 위한 독립적 지위의 대체복무위원회를 설치한 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와 단순 병역기피자를 가려내자고 제안했다. 또 병역을 대신한 대체복무도 병역보다 결코 쉽지 않은 의무를 부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남부지법 이정렬 판사 역시 "양심에 따라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결단에 그치지 말고 사회 활동을 한다든가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든가 평화수호활동을 한다든가 등 활동이 상당히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향군인회와 병무청 등은 여전히 양심에 대한 선별 문제와 적절한 대체복무 기회 제공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결국 이들 인권시민단체 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 대안을 제시해 여론을 설득해 나가느냐에 따라 이번 논란의 향방이 가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현재 징병제가 실시되는 나라는 80여 곳으로 이 중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나라는 독일 대만 오스트리아 등 40여 개국에 달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쿠바 폴란드 등 상당수 사회주의 국가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 또는 법률로 보장한다. 이들 국가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사회봉사 등을 통한 대체 복무를 시키고 있다. 독일은 헌법상 병역거부권을 보장해 종교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 대신 현역 복무기간(12개월)보다 긴 15개월 동안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케이스
서울 남부지법이 지난달 21일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병역 소집을 거부한 오모씨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하기 전까지 법원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일관되게 유죄 판결을 내려왔다. 재판부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구속 영장 발부 여부가 다소 엇갈리기는 했어도 유무죄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만큼은 남부지법의 판례를 제외할 경우 이견이 없었다.
재작년 1월 서울 남부지원(현 남부지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적은 있었지만 당시에도 법원이 무죄 판단을 하지는 않았다. 이 법 조항에 대한 심리를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는 가급적 올해안에 위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에서는 지난 69년 7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종교인의 소위 양심상의 결정으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속하지 않는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아니지만 대법원은 92년에도 입대후 군사훈련을 받던 중 집총을 거부, 군형법상 항명죄로 기소된 피의자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고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대부분 1, 2심에서 유죄가 확정돼 상고심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따라서 대법원이 최근 기소된 2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본격 심리하게 된 것은 30여년만의 일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2개의 일반 합의부에 각각 배당, 심리토록 했으며, 만약 한 부에서라도 판례변경 판단이 나오면 대법관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합의체를 열어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이 남아있어 논란은 앞으로도 상당 시일 계속될 전망이다.

◇병역거부 상반된 판결, 두 판사의 인연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엇갈린 판결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두 판사의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병역 거부 유죄판결을 내린 전주지법 남준희(39.사시 37회.전북 고창 출생) 판사와 무죄판결을 낸 서울 남부지법 이정렬(36.사시 33회.서울 출생) 판사로 이들은 전주지법에서 3년간 한솥밭을 먹은 절친한 사이로 밝혀졌다.
병역거부 문제를 사회문제로 쟁점화시키는 계기를 만든 이 판사는 2001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전주지법으로 전보되면서 같은 시기에 부산지법에서 온 남 판사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됐다.
함께 지낸 3년의 세월 가운데 1년간을 아예 한방에서 지낸 이들은 저녁에는 소주잔을 기울이고, 주말에는 운동을 함께 하면서 자신들의 법철학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눌 정도로 친근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군 중위 제대로 뒤늦게 법복을 입은 남 판사가 이 판사보다 사법고시 합격기수는 4기수 늦지만 나이는 세살 많아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형동생으로 호칭하곤 했다. 절친했던 두 판사 였던 만큼 이번 병역 거부 판결 이면에는 유무죄를 둘러싼 법리공방(?)도 벌였다는 후문이다.
남 판사는 "이 판사가 무죄판결을 낸 지난달 중순 그에게 전화를 걸어 판결 배경을 묻고 판결문 전문을 건네받기도 했다"면서 "당시 나도 같은 사안의 판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판사의 판결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 판사는 "이 판사와 대화도중 국방의 의무를 도외시 한 채 절대적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충고했고 나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의견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판결로 마치 이 판사는 진보, 나를 보수성향의 판사로 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결국 오직 양심의 자유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 하는 법리해석의 차이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남 판사는 "오늘 판결직후 이 판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으나 오후 공판 때문에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서 "퇴근후 전화를 걸어 판결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생각"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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